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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까지 독점하려는 악마에게 (166)화 (166/168)

166. 외전 09

제인은 착시현상이 일어날 정도로 복잡하고 정교한 마법진 위로 밀리타에게서 받은 마법 구슬을 던졌다. 곧바로 검은 바람이 크게 몇 바퀴 소용돌이쳤다.

휘우웅……!

“……드디어.”

제인의 읊조림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네. 드디어.”

이 미친 마법진이 완성됐네요.

일반적으로 마법진의 개발 및 연구는 기존의 양식을 조금씩 변형시켜서 진행하지만, 눈앞에 있는 마법진은 완전히 새로운 양식이었다.

자그마치 3개월.

이안이 단세포 원생동물처럼 먹고 자기만 하면서 눈앞의 마법진에 매달린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이 결과물이 제 손에서 창조되었다는 사실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영혼을 묶는 흑마법을 구현하고 싶다는 말씀인가요?

이안은 처음 제인이 설계하길 원하는 마법진에 대해 들었을 때 제 귀를 의심했다. 영혼을 묶는 흑마법은 사실상 마법이라기보다 저주에 가까운 주술이었다.

-그것도 인간과 인간의 영혼이 아니라…….

데시안과 영혼을 묶는다니.

미친 건가.

원리원칙주의자인 이안은 흑마법에 있어서도 일정한 선이 있었다. 제인이 의뢰한 마법진은 확실히 그의 가치관에 있어서 선 밖의 일이었다.

하지만 제인이 모은 수많은 자료와 마법진의 구성 요소를 보는 순간.

그는 인정해야 했다.

이 여자, 내가 아니더라도 반드시 이 마법진을 만들고 말겠구나.

사실상 흑마법은 드호아망 마탑에서 정규과정으로 편성하기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 음지에서만 사용하던 힘이었다.

그런 이유로 흑마법사들은 자연스럽게 비윤리적, 비도덕적인 사고를 갖기 쉬운 환경에 노출되었다.

이 의뢰를 저 아닌 다른 흑마법사가 받는다면.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안은 차라리 자신이 이 마법진을 완성하는 게 가장 안전할지도 모른다는 판단에 이르렀고, 그렇게 오늘날 이 자리까지 서게 된 것이었다.

눈앞의 마법진은 그의 모든 걸 쏟아부은 일생일대의 완성작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마음이 복잡했다.

잘한 짓일까.

어쩌면 이제라도 제인을 설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흑마법사가 아닌 이상, 이 고도의 마법진을 단번에 다루는 건 기적…….

화르륵!

“…….”

“아, 확실히 이론이랑 다르긴 하네요? 그래도 이 정도면 바로 사용할 수 있겠어요.”

이안은 기적을 보았다.

바로 눈앞에서.

언제 들어간 건지 제인은 마법진 가운데 서서 마나를 발현했다. 그러자 둥근 원형을 따라서 푸른 불꽃이 선연하게 타올랐다.

화르르르륵!

화르륵!

이안은 진정 이게 현실일까 싶었다.

저 여자는 분명 흑마법사가 아닌데 내가 설계한 마법진을 어떻게 한 번에 다루지? 도대체 어떻게?

하지만 그의 경악에 일체 무관심한 제인은 호엘리반에게 날강도처럼 타 먹을 연구비를 생각하며 보람…… 차다기보다 광기에 가까운 미소를 지었다.

“이번 기회에 드래곤의 그림자로 일반 마나를 변용할 수 있다는 연구서까지 제출하면 일거양득이겠어요. 몇 개월간 야근하면서 연구한 보람이 있네요. 그동안 수고 많았어요, 이안.”

“…….”

그녀의 미소를 본 이안은 다시 한번 닭살이 일어난 팔뚝을 쓰다듬어야 했다. 왜인지 집에 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일순.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물론 제인과 있는 1분 1초가 묘하게 정상적이지 않고 이상했으나 그와 별개로 연구실이 너무 과하게 따뜻하고 아늑…….

“제인, 제가 지금 꿈꾸고 있는 건가요?”

“……아뇨.”

“그럼 제 연구실이 지금…… 불타고 있는 게…….”

맞는 건가요.

물을 시간 따위 없었다.

제인은 연구실 한쪽에 놓인 간이침대에 있던 솜이불을 가져와 불을 죽였고, 이안은 그대로 근처 수돗가로 달려가서 물통에 물을 담아왔다.

얼마 후, 불이 그런대로 꺼져가자 제인은 너덜너덜해진 솜이불을 내팽개치고 이안과 함께 물통으로 여기저기 물을 뿌리면서 사과했다.

“미안해요! 제가 화신의 그림자를 마법진에 넣었는데 그게 화력이 됐나 봐요! 그래서 불길을 조절할 생각을 못 했어요.”

……화신의 그림자라니. 그건 또 어떻게 구한 건데요.

묻고 싶으면서도 알고 싶지 않은 기분에 사로잡힌 이안은 불이 소진한, 그리고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연구실 한가운데 서서 한숨 돌렸다.

“괜찮아요.”

그리고 땀을 훔치며 뒷말을 삼켰다.

저 곧 퇴사할 것 같거든요.

생각하며 제인을 바라보던 이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반대편으로 홱 돌려버렸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입술을 가렸다. 그의 얼굴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뭐지? 왜 옷이 다 젖어있지? 왜?

아, 불이 나서…….

이안은 블라우스 안의 속옷이 훤하게 드러난 여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우왕좌왕했다. 그러다 의자에 걸린 담요를 발견했다.

저대로 나가면 안 될 테니 이걸 두르라고 하자.

담요를 가져온 이안이 쭈뼛거리며 그녀에게 다가갈 때였다. 젖은 머리를 짜고 있던 제인이 그의 인기척에 뒤를 도는 찰나.

이안은 나쁜 짓이라도 하려다 발각된 사람처럼 화들짝 놀랐고.

“!!”

“!”

물기 젖은 바닥에 발이 미끄러졌다.

그대로 몸이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아래로 쑥 꺼진 그는 머리가 잠시 멍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렸을 때, 바닥에 엎어진 그의 눈앞에 보여서는 안 될…….

“…….”

그는 차라리 기절하고 싶었다.

눈앞에는 젖은 블라우스와 속옷이, 머리 위에서는 흐으, 하는 여린 신음이 들리자 한 군데로 피가 몰렸다. 스스로도 불순한 쓰레기라는 생각이 들 때였다.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감각이 들었다. 동시에 어디선가 무언가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기괴하게 들리는가 싶더니.

콰광-!

폭음이 들리면서 연구실 유리창이 죄다 깨졌다.

그리고 휑해진 창문가에는.

“다 죽죠, 그냥.”

해탈한 표정으로 금이 간 안경을 쓴 분홍 머리 미소년과.

“……왜, 젖어있지?”

실로 정체성의 혼란을 일으킬 만큼 아름다운 흑발에 벽안을 지닌 미혹의 사내가 여상히 웃으며 앉아있었다.

숨, 숨이 막혔다.

당장이라도 폐가 터질 것 같은 생경한 공포에 사로잡힌 이안은 그날.

“제, 제……!”

그릇된 환경에서 올바른 신념으로 쌓아온 원리원칙보다, 날것 그대로의 생존본능이 얼마나 더 강한지 몸소 깨달았다.

“제, 이상, 형, 은.”

“……?”

“호, 호엘리, 반……!”

* * *

[초월자인 내가 너보다 먼저 죽으면, 밀리타.

내 무덤에는 무화과를 가져다줘.

쓴 초콜릿도 좋고.

술은 맥주나 럼주보다는 포도주가 좋…….]

제인이 꼬깃꼬깃한 마법 양피지에 부들거리는 팔로 써 내려간 짧은 유서는 ‘포도주가 좋’에서 끊겼다.

“힘이 남아 있나 보군.”

루가 자리를 비운 틈에 유서를 작성 중이던 제인은 그것마저 빼앗긴 게 서러워 눈물이 핑 돌았다. 줘, 이 자식아.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뱉어지지 않았다.

목이 말라서 잠긴 데다가 말해봤자 돌려받지 못할 게 뻔했다.

며칠이 지난 거지? 이틀? 나흘?

시간 개념은 없는데 식사 시간은 꼬박꼬박 잘도 돌아왔다. 그 와중에 루가 해주는 요리가 어찌나 맛있는지 며칠 만에 살이 포동포동하게 오르고 야근으로 찌들어있던 피부와 머리카락에도 윤기가 돌았다.

“안 되지, 제인.”

루는 가지고 온 은쟁반을 협탁 위에 올려두고 그녀가 쓴 유서를 팔랑팔랑 흔들었다.

“너는 나랑 오래오래 살아야지.”

오래오래 살긴. 그런데 그렇게 죽일 듯이 짓눌렀어?

원망스러운 눈으로 올려다보자, 루가 눈꼬리를 예쁘게 좁히며 다가왔다. 그리고 귓가에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나는 널 다치게 하지 않아.”

그의 말에 제인은 복장이 터졌다.

틀린 말이 아니라서.

정말 이러다 까딱하면 죽겠다 싶을 정도로 몰렸었던 것 같은데, 그녀의 몸에는 붉은 울혈 외에는 이렇다 할 자국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어디라도 좀 다쳐야 생색이라도 내고 아픈 척, 불쌍한 시늉이라도 해보겠건만, 지나치게 아름답고 간교하기 이를 데 없는 데시안은 그럴 여지조차 내어주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제인으로서는 여러모로 답답한 상황이었다.

“널 다치게 하는 건 내가 아니라.”

일순, 공기가 비틀리면서 온도가 뚝 떨어지는 감각에 제인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그녀의 사랑은 ‘그 사건’ 이후로 감정 기복이 유난히 오락가락했다.

“다른 인간이었지 않나?”

그의 손가락이 닿을 듯 말 듯 제인의 허리를 쓸어내렸다.

“여기 말이지.”

“…….”

제인의 복장이 재차 터졌다.

이것 또한 틀린 말이 아니라서.

실로 ‘그 사건’ 당시, 이안이 넘어지면서 그의 밑에 깔렸던 제인은 허리를 삐끗했다. 하지만 곧장 세실에게 치료받은 터라 지금은 후유증 없이 말짱했다.

그런데도 루는 다쳤던 허리 부근 언저리를 색정이 가득 묻어나는 손가락으로 닿을 듯 말 듯 만지고 있었다.

“그렇게 널 다치게 한 인간을, 넌.”

“…….”

“죽이지 말라고.”

해서 더 죽이고 싶었던 걸 정말 모르는 걸까.

루는 잠시 말을 끊어냈다. 그때를 생각하니 또 머리가 뜨끈해졌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그는 ‘이상형이 호엘리반’이라는 말만 수십 번 중얼거리던 남자를 찾아내서 눈을 파내고 몸에 뚫린 구멍마다 피가 줄줄 새도록 만들어서 천천히 죽게끔 하고 올까, 생각했다.

그러자 제인이 얼굴을 찡그리며 잔뜩 잠겨버린 목소리를 겨우 짜내었다.

“나쁜 생각하는 얼굴인데.”

루가 낮은 웃음을 터트렸다.

이 작고 예쁜 인간은 종종 당연한 말을 해서 그를 웃게 만들곤 했다.

“그럼.”

그는 쥐고 있던 마법 양피지를 바닥에 툭 던지듯 놓았다. 이내 나른한 미소를 흘리며 제인의 턱을 들어 올렸다.

“늘 하지.”

제인의 머릿속에 경고가 울렸다.

이거,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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