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죽음까지 독점하려는 악마에게 (145)화 (145/168)

145.

제인은 홀로 이동의 문을 걷고 있었다.

라트올이 열어준 문이었다.

-제가 열어주는 건 여기까지예요. 이 이상은 그레데엘므에게 계시받은 당신에게 달렸어요. 루에게 가는 마음이 진심이 아니면 입구는 열리지 않을 거예요.

-입구요?

-루가 봉인된 곳은 동굴이에요. 그 앞에 있는 나무 정령들이 입구를 열어줘야 동굴이 있는 곳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그래요.

라트올의 말을 상기하는 사이 제인은 이동의 문 끝에 와있었다. 바깥으로 사뿐하게 내려가는 동시에 이동의 문이 자연스럽게 닫혔다.

제인은 주변을 쓱 둘러보았다.

앞에는 거대한 나무들로 길이 막혀있었고 뒤로는 인적이 느껴지지 않는 수풀길이었다.

동굴은 물론, 동굴 비슷한 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제인은 사방이 가로막힌 곳에서 입구를 찾으려 했다.

그때 우지끈거리는 기괴한 소리가 들리면서 땅에서 진동이 일었다.

곧이어 땅이 흔들리고 단단하고 질긴 무언가가 끊어지는 소리의 정체가 드러났다.

“!”

가로막혀 있던 거대한 나무들이 땅속 깊숙이 박혀있던 뿌리를 드러내며 자리를 이동하고 있었다. 뿌리가 성인 남자보다 더 크고 굵은 탓에 땅이 엄청나게 흔들렸다.

제인이 중심을 잃고 넘어지려 할 때였다.

그녀는 기우뚱 넘어지려는 자세 그대로 서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그녀의 양어깨의 옷자락을 숲의 새들이 물고 있었다.

“착한 새들이네.”

제인은 정정이 필요한 느낌이 들었다.

나 죽으라고 온 새들인데 착한 건 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 사이 땅의 요동이 가라앉았다.

제인이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러다 발밑으로 밀려오는 그림자에 멈칫거렸다. 꼭, 거대한 물고기 떼가 연상되는 움직임과 형상이었다.

고개를 슬쩍 들어 올린 제인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멍하게 보며 할 말을 잃었다.

하늘 위로는 끝이 보이지 을 정도로 수많은 새들이 나무가 이동하면서 열린 길을 향해 일제히 날아가고 있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제인은 저도 모르게 크게 웃으며 감탄했다.

“와, 최고의 발버둥이야!”

그녀는 새 떼들의 그림자를 따라 나무들이 내어준 길로 계속해서 걸어갔다.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죽음을 향해 걷는다는 게 실감이 났다.

이동의 문을 열어주던 라트올은 마지막까지 그녀에게 말했다.

-죽어 줘요. 꼭.

그렇게 말하는 그를 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일 라트올이 인간이었다면 이 길을 걷는 건 그였을지도 모르겠다고.

사랑의 종류는 다양하고, 그는 루를 맹목적으로 따랐기에.

언뜻 웃음이 나왔다.

하마터면 이런 호사를 빼앗길 뻔했어.

호사.

제인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웃음을 머금었다.

동시에 가벼운 물음이 딸려왔다.

이 죽음이 호사라면, 이전까지 목숨을 잃을 뻔했던 순간들은 무엇이었나.

가볍게 이어진 질문이건만 다리에 추를 매단 느낌이 들었다. 보폭이 좁아지면서 걷는 속도가 느려졌다.

“아아…….”

제인이 작게 탄식했다.

그녀에게 자기 죽음은…… 귀하지 않은 것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가장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은 것 또한 제인, 자신이었다.

생명의 무게감을 몰랐던가?

모른다고 하기에는 약제사 때부터 셀 수 없이 많은 죽음을 봐 온 그녀였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의 슬픔과 아픔, 상실감을 가까이서 목도 했다.

그러니 오히려 타인의 목숨이 가지고 있는 무게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왜일까.

제인은 언제나 자신의 목숨을 허투루 여겼다.

독으로 자학을 일삼던 날들 가운데 목숨이 위태로웠던 것만 해도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뿐일까.

마드리안 교황이 겁박했을 때, 루에게 자신의 절망을 뺏기지 않겠노라 단언했을 때, 제9 탑에서 주저 없이 몸을 던졌을 때.

그리고 몽유병으로 바다 한가운데에 빠진 걸 깨달았을 때.

모든 순간마다 자신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제인의 잿빛 눈동자가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그럼, 나는 어째서 내 목숨을 그렇게 가볍게, 쉽게 여겼나.

-제인, 한 사람의 죽음은…….

언젠가 하임이 했던 말이 귓속을 어지러이 헤집었다.

-그 사람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망가뜨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상처 입었는지 겉으로는 알 수 없어.

제인의 발걸음이 완전히 멈춰 버렸다.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천천히 병들고, 때로는 죽어가기도 해.

이어서 조용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작고 동그란 어깨가 말리고, 등이 아래로 떨어지면서 들썩거렸다.

침음 사이로 서글픔이 밀려들어 왔다.

“나는…….”

알고 있었던 거다.

내 죽음이 누군가의 슬픔도, 고통도 되지 않으리라는 걸.

아주 오래전부터.

* * *

결국, 새끼 고양이는 죽었다.

하임은 길가에 쓰러져있던 고양이를 봤을 때부터 이미 손을 쓰기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세실이 잠깐이라도 살려 놓은 게 기적이었다.

그냥 길가에 버려두면 되는 것을 굳이 데려왔다.

이건 모두 고양이 잘못이었다.

그의 눈에 띈 고양이 잘못이었다. 연약하게 태어난, 어미를 잃거나 버림받은, 그렇게 죽어버린 고양이 잘못이었다.

죽은 고양이를 안아 든 하임이 세실에게 꾸벅 인사한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세실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 가요?”

“묻어 주러요.”

“어디에 묻으려고요. 여기 지리도 잘 모르면서.”

“…….”

“아니면 다시 절뚝거리기 시작한 그 병신같은 다리로 묻을 곳을 찾아서 돌아다니려고요? 그것참 보기 좋겠네요.”

겉옷을 챙긴 세실이 그를 지나쳐서 현관문을 열었다.

“따라와요.”

세실이 하임을 데려간 곳은 인적 드문 동산이었다.

하임이 땅을 파고 고양이를 묻는 동안 세실은 그곳에서 약간 떨어진 널찍한 바위에 앉아 있었다.

등을 돌리고 파탐을 세 개비쯤 피우고 있을 때 하임이 옆에 앉았다.

두 사람은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인이…….”

먼저 말문을 연 건 하임이었다.

그는 제인의 이름을 부르고 나서도 한참을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겨우 내뱉었다.

“……우는 걸 처음 봤어요.”

하임이 제인을 데려온 게 열 살이었다.

그리고 십일 년을 곁에 있었다.

그 긴 시간 동안 그는 정말로 그녀가 우는 걸 본 적이 없었다.

한 번도.

“그 애가 우는 걸 보고서 깨달았어요. 나는 그 애가 울지 않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잠시 입을 다문 하임의 목울대가 꿈틀거렸다.

“없다는 걸요.”

제인이 세실을 찾아와 연민을 알게 한 것에 대해 원망을 쏟던 그날.

하임은 처음 알게 되었다.

제인이 울 수도 있구나.

저 아이의 몸에 있는 수분이 눈물이 될 수도 있구나…….

하임은 제인이 자라면 자랄수록 다이애나가 더 그리워지곤 했다. 그녀의 시간은 영영 멈춰 버렸는데 아이는 무럭무럭 커가서.

그의 미움을 먹고, 잘도.

그렇게 제인이 자랄수록 미움도 커져만 갔다.

하임은 자신에게 물었다.

정말 미움뿐이었나.

돌이켜 보면 애정도 느리게 자라고 있었다.

하지만 커져만 가는 미움 아래에서 그늘진 애정은 연약하고 더디게 자라서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왜 몰랐을까. 너는 기껏해야 열 살이었는데. 어린아이였는데.

하임은 찌푸린 얼굴로 품에서 담배를 꺼내 피웠다.

그가 고요하게 말했다.

“……제인이 당신 같은 사람 손에서 자랐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었겠죠.”

“글쎄요.”

세실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뭘 키우는 건 별로라서.”

어릴 적부터 셀 수도 없이 많은 동물을 치료해 주고 다녔던 그녀였으나 키울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어떤 동물이든 다시 살아갈 힘이 생기면 원래 살던 곳으로 보내주었다. 생명을 치유하는 것과 삶을 함께하는 건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었다.

세실은 제인을 처음 보았을 때가 생생했다.

몸은 독의 잔해로 엉망진창인 데다 마음의 문은 폐허와 다름없는, 이제 겨우 스무 살 남짓한 여자아이를 보자니 막막하기만 했다.

대체 어떤 새끼들이 이렇게 만들었나 싶었다.

-어릴 때부터 학대당한 건가요?

-그런 표현은 어울리지 않아. 자학이었으니까.

자학?

제인의 몸속을 봤다면 누구도 쉬이 수긍하지 못할 터였다. 아니, 해서는 안 되었다. 그 몸은 살아있는 게 기적이었다.

세실이 말했다.

“그렇지만 적어도 독의 잔해가 범벅인 몸으로 살게 두진 않았겠죠. 그건…….”

이어지는 목소리에 적대감이 묻어났다.

“방치고 학대니까.”

“…….”

“그래서 당신을 처음 봤을 때부터 한 대 후려치고 싶었어요.”

말을 잇던 세실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미간을 꾹꾹 눌렀다.

“제인이 당신을 데려와 달라고, 그때 다리를 한 번 봐줬으면 좋겠다고 했을 때 제가 물었어요. 그 새끼 보면 내가 한 대 칠지도 모르는데, 괜찮겠니? 라고요.”

“…….”

“그 녀석이 딱 한 마디 하더라고요.”

담배를 쥔 하임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귀까지 막았어야 했다.

그다음 말까지 들어서는 안 되었다. 그건, 정말로 자신이 괴물이 되는 말이었다.

“저한테 소중한 사람이에요.”

하임은 목울대가 비틀리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소중한 사람이래요. 당신이. 그 녀석 몸이 독으로 너절해질 때까지 뭘 했는지도 모를 당신이, 자기는 너무 소중하대.”

목구멍 밑으로 무언가가 뜨겁게 끓었다. 몇 번을 삼키고 또 삼켜도 삼켜지지 않았다.

“그 녀석이 그러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을 한 대라도 치겠어요? 못 치지.”

“…….”

“걔가 착해서 그런 말을 했을까? 당신이 알게 모르게…….”

세실도 잠시 말을 멈췄다.

이어서 작게 욕을 하며 다시 입술을 떼었다.

“손톱만큼이라도 마음을 내준 적이 있으니까 그렇게 말한 거라고요.”

도무지 삼켜지지 않는 슬픔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얼굴을 가려도 가려지지 않는 슬픔이었다. 온 마음을 젖은 솜처럼 만드는 울음이었다.

“제인은 그런 애예요.”

세실은 그의 손에서 짧게 타들어 가는 담배를 가져와 끄고는 자신의 휴대용 재떨이에 넣었다.

“우린 절대로 못 이겨, 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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