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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까지 독점하려는 악마에게 (142)화 (142/168)

142.

프시오가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

그사이 마드리안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콜드리센의 마법사들이 테라얀 로디테의 피가 섞인 당신의 마법술식을 밝혀내는 것쯤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프시오가 조용히 생각했다.

그녀는 밀리타가 마법 양피지로 이 정보를 알려주기 전까지만 해도 콜드리센의 마법사들이 저처럼 망명을 떠나서 행방이 묘연해졌으리라 짐작했다.

그러나 교황청 지하에서 콜드리센 출신의 흑마법사들을 봤다는 정보를 듣는 순간 페브리아의 결계가 이해되었다.

호엘리반조차 오랫동안 풀어내지 못했던 결계였다. 애초에 한두 명의 마법사가 만들 수 있는 결계가 아니었던 거다.

그런 결계를 구성할 정도의 마법사들이라면 자기의 마법술식을 추적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을 터.

다만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었다.

마드리안은 말렌의 마나를 구속하기 전부터 프시오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만약 콜드리센의 마법사들이 프시오의 마법을 추적해서 마드리안이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면 그건 언제, 어느 마법이었을까.

그때 마드리안이 프시오의 생각을 끊어냈다.

“프시오. 저는 오래전부터 당신의 마법술식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술식이…… 며칠 전에 페브리아에서 또 발견되었습니다.”

“!”

마드리안의 모략을 눈치챈 프시오의 눈동자가 미약하게 흔들렸다.

마드리안이 숨죽여 말했다.

“페브리아 시가지 중앙 분수대에서 말입니다.”

프시오는 제인의 말이 맞았음을 실감했다.

이 여자에게는 어떤 명분도, 빌미도 중요하지 않다. 무엇이든 유리한 방향으로 물꼬는 트는 재주가 상대를 속수무책으로 만든다.

“프시오. 페브리아의 교황청에서는 당신을 제국민의 그림자를 훔친 테러를 범한 핵심 인물로 간주하여 국제법 소송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마드리안이 다소 위압적인 어조로 말을 이었다.

“증거는 명백하기에 유죄로 판결되는 즉시 당신의 국적인 엘마뉴엘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할 예정입니다.”

펠드툰이 이를 으드득 갈았다.

“……협박입니까.”

마드리안은 조금도 흔들림 없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대답했다.

“정보나 자재를 얻는 데에는 가능하면 회유와 절도를 추구하지만, 상대와 시기에 따라서는 겁박과 협박 또한 훌륭한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하!”

펠드툰이 노골적으로 불쾌함을 드러내자, 프시오가 그의 팔목을 쥐었다. 그리고 창밖을 힐끗 쳐다보았다.

아직이야.

조금 더 기다려야 해.

그때, 마드리안이 초연하게 말했다.

“얼마 전, 페브리아에서 오랫동안 유지되어 오던 마법 결계가 무너졌습니다.”

그와 동시에 두 사람의 반응을 살폈다.

마법 결계라는 단어에 동요하지 않는 두 사람을 본 마드리안은 그들이 결계의 존재는 물론, 무너진 상태를 이미 알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미소 지었다.

역시, 이들이 그림자 실종 사건과 관련 없는 게 아니었군.

마드리안 교황은 표정을 정돈하고자 차를 한 모금을 마시고 내려두었다.

“아무것도 없이 다리를 처음 짓는 일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천재지변으로 인해 어렵게 지은 다리가 무너졌다 한들, 처음 지을 때만큼 힘이 들까요.”

하지만 마저 털어내지 못한 미약한 웃음이 그녀의 입술을 적셨다.

“다리를 짓는 설계와 자재, 인력, 시간만 있으면 몇 번이고 다시 지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무너진 원인을 연구해서 보완까지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기 마련이죠.”

마드리안의 눈이 더 예리하게 빛났다.

“전보다 더 강하고, 더 단단하고, 더 흔들림 없이 말입니다.”

프시오는 어째서 제인이 마드리안 교황을 몰아붙이기 위해 겹겹이 계략을 쌓았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마드리안처럼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능력이 뛰어난 자에게는 힘을 가득 실은 한 방이 아니라, 조금씩 갉아 먹듯이 다가가야지만 무너뜨릴 수 있다는 걸 직접 상대하면서 체감한 것이리라.

일순, 마드리안이 나직이 미소 지었다.

“무너진다는 건 그런 겁니다.”

그 미소에 약간의 교만이 베여 나왔다. 언뜻 봐서는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절제된 교만이었다.

“그렇기에 이 상황이 제게는 전혀 위기가 되지 않는 겁니다. 제 손에는 설계가 있고, 인력이 있고, 시간이 있으니 말입니다. 필요한 건 오로지 자재입니다.”

자재.

프시오가 마드리안의 의중을 빠르게 읽어냈다.

“그 자재라는 게, 드래곤의 마석인가 봅니다.”

“예, 그렇습니다.”

“……확실히 소송보다 훨씬 준비하기 쉬운 일이겠군요. 하지만 교황님.”

프시오가 잠시 말을 멈추고 마드리안을 직시했다.

입가에 미소를 살짝 걸친 채.

“번지수가 틀렸습니다.”

그녀의 한마디에 사위가 서늘하리만치 고요해졌다.

마드리안의 미간이 가늘게 좁혀졌고, 펠드툰 역시 흔들리는 눈으로 프시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프시오의 시선은 오직 창가를 향해 있었다.

그것도 꽤 노골적으로.

일순, 프시오의 귓가에 제인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프시오, 드릴 말씀이 있어요.

제인은 그날, 프시오에게 마드리안의 내면에서 본 것들부터 그녀와 독대할 때 틈을 보이면 안 된다는 것까지 단단히 일러주었다.

그리고…….

-당신은 저와 밀리타에게 좋은 어른이에요. 세실에게는 든든한 친구고, 호엘리반에게는 자랑스러운 제자이자 사랑하는 연인이죠. 잊지 마세요. 당신은, 프시오 로디테는, 우리가 사랑하는 자부심이라는 걸요.

제인의 말이 프시오의 마음에 뭉근하게 퍼졌다.

-우리의 계획은 빈틈없고, 당신은 프시오 로디테예요. 그러니까…… 그 여자를 꺾고 오세요. 제 몫까지 확실하게.

프시오가 엷게 웃었다.

창가에 시선을 고정한 채, 정말 완벽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하면서.

“교황님, 저는 지금 쉬운 일을 상당히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 프시오 로디테는 소기의 목적이 있으면 원하는 바는 반드시 얻습니다.”

펠드툰이 프시오의 시선을 따라갔을 때였다.

청명한 푸른 하늘 너머로 무언가가 페브리아를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아직은 작은 점과 같은 크기였으나 펠드툰은 그게 무엇인지 바로 알아챘다.

펠드툰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저건……!

프시오가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림자 실종 사건의 배후 세력은 저와 엘마뉴엘이 될 수 없습니다. 이미 그 범인은 정해져 있으니까요.”

프시오와 펠드툰의 시선을 따라간 마드리안은 초점을 잡기 위해 전보다 더 미간을 좁혔다. 그러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무언가를 확인했는지 입술이 슬쩍 벌어졌다.

프시오가 말했다.

“저는 저 족속들을 개 같은 거지새끼들이라고 부릅니다. 교황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마드리안이 다소 느릿하게 중얼거렸다.

“……쓰레기.”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는 심경이 가감 없이 드러나는 세 글자였다.

프시오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좋습니다. 지금 이 시각 부로 앙디스는 페브리아 국민의 그림자를 훔친 테러도 모자라 결계를 무너뜨리고 습격까지 감행한 거지 같은 쓰레기 새끼들이 되는 겁니다.”

프시오가 입꼬리를 위로 당겼다.

“제가 그리 만들 예정이니까요.”

교황청 창밖에는 앙디스인들이 불법으로 규정된 야생 드래곤을 타고 날아들고 있었다.

펠드툰은 하마터면 제 이마를 치며 웃음을 빵 터트릴 뻔했다.

내 아들도 앙디스인이다, 요 녀석아!

웃음을 꾸역꾸역 삼킨 그의 얼굴에 유쾌함이 번져갔다.

그사이 앙디스인들이 빠르게 교황청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이후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공격 태세를 갖추리라.

그럼에도 프시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꼿꼿하게 앉아있었다.

그녀의 평온한 태도에 펠드툰은 바깥에 호엘리반이 주둔하고 있음을 알아채고는 낄낄거리고 싶은 걸 참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때 프시오가 가방에서 서류 봉투를 꺼내더니 안에 들어있던 서류 뭉텅이를 마드리안 교황 앞으로 밀어 넣었다.

“교황님께서는 저에 대해 잘 아시는 듯하니, 간소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마법 계열은 연금술이며 이목을 끄는 이벤트에 능합니다.”

이어서 정돈된 자세로 서류를 가리켰다.

“구상한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습니다. 직인만 찍어 주시면 하단에 제시된 시나리오대로 완벽하게 구현해 드리겠습니다.”

* * *

드호아망의 어느 식당 안.

“아, 배부르다.”

말끔히 비운 그릇들을 앞에 두고 교양있는 모양새로 입을 닦아낸 제인이 손을 뻗었다. 이어서 마주 앉은 루를 보며 익살맞게 턱을 치켜들었다.

“가자, 재미있는 거 구경시켜 줄게.”

“……이것보다 더?”

루가 말을 덧붙였다.

“지금 네 언행보다 더 재미있을 수 있나?”

어딘가 얕게 가라앉은 루의 웃음 섞인 물음에 제인이 말간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물론.”

* * *

마드리안은 말이 없었다.

그저 서늘한 이채가 서린 에메랄드 눈동자를 천천히 아래로 떨어뜨렸다. 이어서 서류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바깥에서는 이미 앙디스인들의 폭격이 시작되었다.

교황청 건물이 흔들렸다.

프시오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정갈한 자세로 앉은 채, 공격의 여파에 흔들리다 못해 흘러넘치는 찻잔을 들어서 한 모금 마셨다.

하지만 조금도 젖지 않았다.

“제 능력이 의심되신다면, 교황님.”

공격의 강도가 거세지고 있었다.

“앙디스에서 폭주하던 드래곤의 화신이 거대한 빛의 장막이 쏟아지면서 사라졌던, 지금까지도 회자 되는 그 일화가.”

건물이 또 한 번 크게 흔들렸다.

프시오는 여전히 담담하게 이어서 말했다.

“제 선에서 처리한 사건이라는 걸 말씀드리면 될까요.”

“…….”

“술식 잔여는 아직 남아 있을 테니 증거는 명백할 겁니다. 추적하셔도 좋습니다.”

“…….”

“아니면 이미 추적하셨을까요.”

마드리안은 여전히 고요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표정이었다.

바깥에서는 교황청 직속 기사들이 방어를 위한 공격을 쏟아 냈으나 결계가 무너진 그들에게 공중전은 난이도가 상당한 전투였다.

방어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건물 안에서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침묵이 이어졌다.

“교황님께서는 제 역량이 어디까지인지 알고 싶으신가 봅니다.”

프시오는 마드리안 교황의 굳게 다문 입술을 보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곧이어 마드리안 교황의 속눈썹이 잘게 떨려왔다.

“마물 정화, 도와드리겠습니다.”

* * *

한편, 그 시각.

시계탑 위에 여유롭게 앉은 호엘리반은 건너편 교황청 건물이 무너지지 않게, 그러나 공격당하고 있다는 건 확실히 체감할 수 있도록 교묘한 방어 마법을 걸고 있었다.

기분 좋게 웃으면서.

“하하, 쿠드칸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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