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죽음까지 독점하려는 악마에게 (132)화 (132/168)

132.

교황청 건물 곳곳에 안개 마법을 깔아 둔 프시오는 건물 꼭대기에 덩그러니 앉아 신호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어둑한 밤하늘은 잠잠하기만 했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결계를 그만큼 빨리 구속했는데 신호가 왜 이렇게 느리지?

사용하는 방법도 알려줬는데…….

이전에 연습 삼아 몇 번 시켰을 때도 밀리타와 제인은 마법 폭죽 쓰는 법을 곧잘 따라 했다.

“……설마.”

문득 든 생각이 현실이 아니길 바라는 듯, 그녀는 잠시 이마를 짚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바로 서둘러 교황청 위층부터 빠르게 훑으며 제인과 밀리타, 카이 일행을 찾아다녔다.

계획대로라면 프시오가 말렌의 마나를 구속하고 안개 마법을 펼치는 사이, 제인 일행은 결계의 근원을 구속하고 마드리안의 위치를 찾아서 마법 폭죽을 터트려야 했다.

그건 실종 사망서가 발행된 두 사람을 최대한 마드리안에게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더불어 마드리안이 어떤 술수를 숨기고 있을지 몰랐기에 마법을 배운 지 오래되지 않은 그들이 상대하기에는 위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특히 밀리타는 지속적인 염탐을 통해 마드리안의 동선을 꿰고 있었다. 그러니 아직까지 폭죽을 터트리지 않고 있단 건…….

“직접 상대하겠다는 거야!”

프시오가 커다란 빛의 돔을 발견한 건 그들을 찾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빛의 돔은 짙은 물안개에 가려져서 다른 이들에게는 안 보이는 게 천만다행일 정도로 휘황찬란했다.

저 돔 안에 제인과 마드리안 교황이 있으리라.

계획에서 어긋난 일이었다.

저걸 위해 제인이 마법 폭죽도 쓰지 않고 마드리안 교황을 상대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프시오는 화가 날 정도로 기가 막혔다.

그때였다.

“저주가 풀어졌다는 게 맞았군.”

걱정이 앞섰던 탓에 루의 기척을 눈치채지 못한 프시오가 적대감이 여실하게 드러난 눈으로 루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뭐 하고 계십니까.”

“예쁜 짓하는 중.”

루가 즐겁게 웃으며 마드리안의 목걸이를 보여주었다.

“훔치고.”

이어서 제인이 있는 빛의 돔을 느슨하게 가리켰다.

“망보고.”

“…….”

“이 정도면 개나 다름없지 않나 싶어.”

“그렇다면 부디 그 개가 주인을 물지 않아야 할 텐데요.”

“그게 아니지, 프시오.”

창가에서 사뿐히 내려온 루가 느릿느릿하게 걸어왔다. 그는 프시오의 코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뒷짐을 진 채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너부터 물지 않길 바라야지. 제인과 너무 가까워지고 있잖아? 그것도 누구보다 나를 경계하는 네가 그러니.”

제인을 향해 넘실거리는 집착이 프시오의 앞을 가로막았다.

“과연, 내 기분이 좋을까.”

루를 물끄러미 보다가 프시오가 말문을 열었다.

“……원래 그런 겁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루의 표정에 프시오가 말을 덧붙였다.

“질투라는 게 말이죠.”

루가 정말 우스운 얘기라도 들었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내가, 너를?”

“네. 당신이, 저를.”

“……질투를? 그냥 죽이고 싶은 게 아니라?”

“네, 죽이고 싶을 만큼 질투하나 봅니다. 당신이 저를요.”

“…….”

“그나저나 아무래도 좀 기다려야겠군요.”

프시오의 시선이 빛의 돔으로 향했다.

“제가 훔칠 게 아직 저 안에 있으니.”

* * *

마드리안의 가장 너절한 문 안에서 쏟아지던 빛이 사그라들었다.

그곳에 그레데엘므가 서 있었다.

그레데엘므가 왜?

제인은 머리가 멍해졌다.

땅바닥에 박힌 듯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저 강물처럼 흘러가는 장면들을 바라볼 뿐.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그레데엘므 앞에 일렬로 서 있었다. 곁에 있던 사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천칭자리로 태어난 아이들 중에서 가장 총명한 아홉 명입니다.

그레데엘므는 한 명씩 눈을 맞추며 아이들을 살폈다.

아이들은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운 그를 보다가 일순 형용하기 어려운 두려움을 느끼고 울음을 터트렸다.

딱 한 명.

에메랄드색 눈동자를 가진 아이만이 울지 않았다.

-이 아이.

그레데엘므가 울지 않는 아이를 가리키자 젊은 두 남녀가 법석을 떨었다. 그들의 행색은 척 보기에도 궁핍함이 곳곳에 묻어 있었다.

사제가 그들을 그레데엘므 앞으로 안내했다.

그레데엘므가 명료하게 물었다.

-부모?

-네, 네! 저희가 저 아이 부모입니다!

남자가 금덩어리라도 손에 쥔 것처럼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레데엘므가 그들에게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갔다.

-너희 아이가 내 앞에서 울지 않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부모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확신에 찬 미소를 짓다가 다시 그레데엘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목소리는 흥분을 띠었다.

-그야 다, 당연히 저희 아이가 천사님께 선택받았기 때문이죠!

-네, 맞아요! 선택! 선택받은 거죠!

기나긴 침묵이 이어졌다.

평범한 이라면 견디기 힘들 만큼 괴로운 정적이었다.

에메랄드색 눈을 가진 아이의 부모는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함을 느꼈다. 하지만 굴러 들어온 복을 찰 수 없다는 일념 하나로 혀를 깨물며 인고의 시간을 버텼다.

마침내 그레데엘므의 입술이 떨어졌다. 그의 손끝이 울지 않는 아이에게로 향했다. 이어지는 물음이 부모를 당혹스럽게 했다.

-사랑해?

-예……?

아이의 부모는 그의 물음에 어리벙벙한 눈으로 되물었다. 가난한 집에 아이들만 여섯이었다. 그중 셋째인지 넷째인지 하루가 멀다고 헷갈리는 아이를 포함하여 어떤 아이도 사랑으로 여겨본 적이 없었다.

사랑?

가난에 사치가 아닌가?

그들은 그저 아이들이 어서 커서 집안에 보탬이 되길 바랐고, 보탬이 되지 않는 아이는 쓸모가 없다는 말을 매일같이 했다.

여자가 눈치를 보며 마지못해 대답했다.

-예에…….

-사랑이란 무얼까.

-그게…….

운은 띄웠으나 그 뒤로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레데엘므는 충분히 기다려준 뒤, 마지막으로 더 물었다.

-사랑을 나누는 법은?

-…….

아무런 감정이 드러나지 않던 그레데엘므의 얼굴에 한 줄의 문장이 떠올랐다.

너희는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그레데엘므가 고개를 위로 젖혔다. 그러다 곧 에메랄드색 눈동자를 가진, 이제 겨우 다섯 살이 된 아이에게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이름.

아이는 동그랗고 큰 눈을 위로 떴다.

반짝이는 동공에 두려움과 호기심이 가득했다.

-……마, 마드리안입니다.

-마드리안.

그레데엘므가 엷게 웃었다.

-아낙시오니아께서 네게 말씀하시는구나. 이 땅에서 신의 대리자가 되라고. 그것도, 신과 같은 대리자.

아이의 부모가 크게 기뻐했다.

그들은 그레데엘므를 향해 몇 번이고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레데엘므는 사제에게 손톱만 한 유리병 하나를 건네주며 아이가 스무 살이 되는 해에 열어서 손목에 떨어뜨려 주라고 말했다.

-이 땅을 사랑하겠다는 맹세와 함께.

사제가 경건하게 인사하자 그레데엘므는 소리 없이 그대로 사라졌다.

집으로 돌아온 마드리안은 그날 저녁, 맛있는 요리를 한껏 먹었다. 마드리안은 마치 처음 있는 일처럼 눈을 크게 뜨고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 넣기 바빴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반년이 지날 때까지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부모는 납득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신에게 선택받은 아이가 있는 집이었다.

그런데 어찌 변함없이 가난할 수 있단 말인가? 황금과 보석이 넘치고, 비단과 음식이 끝이 없어야 하는 게 마땅하거늘!

그들은 뒤늦게 깨달았다.

마드리안이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는 이렇게 지내야 한다는 것을.

부모는 사제를 찾아갔다.

사제는 아낙시오니아님이 하늘에서 그대들을 지켜 줄 거란 말만 하며 아이의 부모가 원하는 금전적인 도움은 한 푼도 주지 않았다.

아이의 부모는 금덩이인 줄 알았던 게 돌멩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에 분개했다.

부모는 변해갔다.

마드리안이 벌을 받는 날이 잦아졌다.

하지만 그건 사실 원래대로 돌아갔을 뿐이었다.

아이만 여섯인 그 집은 애초에 밥벌이에 큰 도움이 되지 않으면 저녁마다 두들겨 맞았다. 부모는 소창을 둘둘 말아 입에 물리고 겉에는 표가 나지 않는 곳만 골라서 손찌검했다.

맞을 때 조금이라도 우는 소리를 내면 그날은 감자 한 알도 얻어먹지 못했다. 마드리안은 언제나 흠씬 두들겨 맞는 것보다 맞고 나서 굶는 게 더 곤혹스러웠다.

그러니 마드리안이 그레데엘므의 눈을 보고 울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했다.

울면 굶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매타작이 이어지던 어느 날, 평소처럼 밥벌이를 제대로 하지 못한 아이들을 마구잡이로 때리던 여자가 악다구니를 썼다.

-가난도 지긋지긋해요!

구석에서 마드리안의 배를 발로 차던 남자가 반쯤 돌아간 눈을 하고서 여자의 머리채를 잡고 따귀를 때렸다. 입 안이 다 터지도록 맞은 여자는 벽에 기댄 채 웅얼거렸다.

-유리병…….

-이년이 뭐라는 거야? 처맞더니 맛이 갔지!

남자가 한 번 더 손을 들었을 때였다.

여자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남자의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천사가 사제에게 준 유리병을 훔치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헛된 희망에 눈이 먼 눈동자는 더 이상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사채까지 써가며 고용한 심부름꾼에게 교황청에 있는 손톱만 한 유리병이 무엇인지 설명하며 훔쳐 오도록 의뢰했다.

며칠 후, 심부름꾼은 그레데엘므가 사제에게 주었던 유리병을 훔쳐 왔다.

남자는 여자에게 알아서 하라며 사채를 쓰고 남은 돈으로 도박장에 가버렸다. 여자는 조용히 유리병을 열어 보았다. 이름 모를 꽃 향이 풍겼다.

-마드리안, 여기 앉아 봐!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마드리안이 겁에 질린 듯하면서도 언뜻 기쁜 얼굴로 여자에게 다가와서 앞에 앉았다.

부모는 마드리안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 거의 없었고, 매질할 때는 더더욱 없었다.

그러니 마드리안, 하고 부르는 그 소리가 무서운데도 좋은 것이었다.

여자는 마드리안의 가느다란 손목을 거칠게 잡아끌며 꽃 향이 나는 묘약을 떨어뜨렸다.

그러자 꽃 향이 온 집안에 훅 퍼졌다.

여자는 두 눈을 끔뻑거렸다.

이게 끝인가?

-참, 맹세해야지.

여자가 마드리안의 손목을 재차 강하게 끌어 잡았다. 많이 먹지 못해서 또래 아이들보다도 훨씬 가냘픈 마드리안은 갈대처럼 휘청거렸다.

-너는 이제부터 페브리아를 사랑해야 해, 마드리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