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죽음까지 독점하려는 악마에게 (111)화 (111/168)

111.

루는 몹시 즐거운 얼굴로 그녀의 표정을 감상했다.

“재미있겠군.”

제인이 킬킬거리며 그렇지? 라고 말했다. 그러다가 곧 웃음이 사그라들었다. 이내 냉소에 가까운 얼굴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리고 여기.”

루가 가만히 그녀의 뒷말을 기다렸다.

“그 여자의 여길 건드려 보려고.”

그는 제인이 미치도록 사랑스러웠다.

그녀의 생각이, 표정이, 태도가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다.

저에게 마드리안을 죽여달라고 한다면 당장이라도 그래 줄 것을 제인은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품에 안긴 인간은 결코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으리라.

쉽고 간단한 죽음은 벌이 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므로.

그러니 살아있는 동안의 고통을 위해 제 손으로 직접 망가뜨리고 싶은 것이다.

이 얼마나 지독하게 사랑스러운 인간이란 말인가.

루는 그녀를 품 안에서 뼈가 으스러지고 살이 터지도록 짓이기고 싶은 욕망을 간신히 억눌렀다.

그저 다정하게 끌어안으며 조심스러운 손길로 쓰다듬어 주자 품에 안긴 제인이 숨결 같은 목소리를 내었다.

“네 몸에서 나는 향기…….”

“…….”

“……너무 좋아.”

제인은 조금 얼떨떨했다.

눈 깜짝할 새에 침대 위에 눕혀진 제인은 루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받아내는 중이었다.

그는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것도 아무 표정 없이.

제인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닫고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있었다.

눈을 피하면 안 된다는 직감이 그녀의 머릿속을 빼곡하게 채울 때쯤, 뭔가 평소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쩐지 그에게 여유가 사라진 듯한…….

“잘 맡아.”

루의 말에 제인의 생각이 끊겼다.

그는 제 손바닥을 손톱으로 죽 그었다.

“이게 내 냄새니까.”

곧 손바닥을 타고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삽시간에 달콤하고 농염한 향이 방 안에 가득 찼다.

“!”

위험해.

제인은 본능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초점이 흐려지면서 입에 침이 고여갔다. 의식이 어질어질할 정도로 달콤한 향은 야릇한 감각을 일깨웠다.

잠시.

아주 잠시 정신을 잃은 듯했다.

문득, 루의 손을 잡은 채 허겁지겁 그의 피를 핥고 있는 자신을 인지했다. 피를 얼마나 먹은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달큼한 피와 혓바닥 아래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침을 삼키며 허둥거렸다.

“아……. 아, 미안……. 나도 모르게…….”

“괜찮아.”

루는 나른하게 제 손을 핥았다. 피가 멈춘 손바닥은 천천히 지혈되고 있었다.

그에 비해 제인은 아직 어지러운지 제 입술에 손등을 대고 멈춰서 쌕쌕 숨을 쉬었다.

루는 제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예뻤어.”

“…….”

“지금도 예쁘고.”

이어서 제인의 손등을 잡아서 쓸어내리고 그녀의 입가에 묻은 제 피도 마저 핥아서 닦아주었다.

그러자 제인은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루가 웃었다.

“숨.”

루가 그녀의 입 안에 손가락을 넣고 살짝 벌어지도록 했다.

“숨 쉬어야지.”

그러자 막혔던 숨이 훅 터져 나왔다. 루가 토닥토닥 안아 주며 착하네, 라고 말했다.

제인은 루가 몹시 낯설었다.

피 냄새 때문도 아니었고 그가 변한 것도 아니었는데도.

한 달이 넘도록, 두 달 가까이 제인은 정신이 나가 있었다.

그동안 루는 제인을 색정적으로 만진 적이 없었다. 끊기고 조각난 기억을 아무리 뒤적거려 보아도 만지면 부서질까, 안으면 깨어질까 하는 애틋함과 슬픔과 두려움이 전부였다.

자신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본래의 모습이 낯설 만큼.

제인은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저도 모르게 말을 툭 내뱉었다.

“……미안해.”

“…….”

“정말 미안해.”

그는 다소 충격과 상심이 현현한 낯빛을 띠었다.

“내 냄새가 마음에…….”

루는 차마 말을 갈무리하지 못했다.

“그거 아니, 아니야. 아닌데…….”

제인이 다급하게 말했으나 그녀 역시도 뒷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루의 얼굴에 더 짙은 음영이 덮쳐왔다.

그는 살면서 자신의 냄새를 맡은 누군가가 울거나 사과한 기억이 없었다. 더군다나 제인의 눈물은 기쁨에 찬 것이 절대로 아니었다.

슬프고 아픈 것이었다.

제인이 자신의 냄새를 맡고 이런 식으로 반응을 보일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던 터라, 적지 않게 충격을 받고 목석처럼 굳어져 버렸다.

설마.

그 빌어먹을 박하 향이 더.

루의 사고는 거기서 멈췄다.

그 사이 제인의 머릿속은 새하얘지고 있었다. 단순히 좋다고 말하기에는 냄새를 맡은 순간 느꼈던 육감적인 감각이 매우 불순했다.

그 강렬한 불순함 때문에 ‘얼마 전 네 모습이 마음이 아프고 슬펐다.’라는 애틋한 감정으로 연결해서 자신의 눈물을 설명할 재주가 없었다.

하지만 뭐라도 말하지 않으면 오해를 단단히 할 듯싶었다.

굳어 있던 루가 음습하기 짝이 없는 실소를 터트렸을 때였다.

제인의 머릿속이 빨개졌다.

안 돼,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해.

“그게 네 냄새라면…… 나는…….”

제인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하게 인지하기 어려웠다.

“널 가둬버릴지도 몰라.”

그녀의 말에 루의 푸른 동공이 부풀어 오르듯이 흔들렸다.

제인은 횡설수설 말을 이어갔다.

“다른 사람들은 맡을 수 없게 가둬버릴지도 몰라. 나만 보고, 만지고, 맡고 싶을 것 같아. 죽을 때까지 나만. 그런데 그건…… 그건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뒤늦게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버린 제인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마침표를 찍었다.

“징그럽잖아.”

“…….”

루가 제인의 두 손목을 잡고 침대 위로 가볍게 눌렀다.

손목이 잡히자 루와 마주 보는 걸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제인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는 더없이 기쁜 표정으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다음에.”

“……어?”

“날 가둬주는 호사는 다음에.”

제인은 지금 자신이 한 말을 루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만약 제대로 이해했다면 그는 미친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게 아니라면 아닌 대로 미친 게 확실했다.

그때 기쁘게 미소 짓던 그가 안타까운 듯이 말했다.

“널 두고 가기가 끔찍하게 싫지만.”

그가 긴 한숨을 토해내다가 제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미련 가득한 목소리를 내었다.

“내일부터 며칠간 집을 비울 거라서…….”

제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어디가?”

“명계와 연옥.”

그녀는 인간이 살아서는 따라갈 수 없는 곳이라는 걸 알자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며칠씩이나? 무슨 일로?”

붙잡힌 손목을 바둥거리며 물었으나 소용없었다. 루는 제인의 목덜미에 차고 느린 숨을 내쉴 뿐, 입도 뻥긋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에게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캐묻던 집요한 존재였다.

제인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졸렬해.

그녀는 손목의 자유를 포기하고 바둥거리기를 멈췄다. 그리고 마음속 깊이 우러나오는 야유와 비난을 삼키며 화제를 돌렸다.

“보고 싶어서 죽으면 어떡해.”

“명계에서 만나겠군.”

“와, 그거 무지무지 반갑고 좋겠다…….”

루는 키득거리며 웃다가 제인의 얼굴 곳곳에 가볍게 입술을 누르고는 눈을 맞추었다.

“그동안 호엘리반과 작당해서 재미있게 놀고 있어. 심심할 틈이 없게.”

“나쁜 짓하고 놀 건데 걱정도 좀 해.”

“걱정?”

루는 그런 걱정을 왜 하지? 라는 얼굴로 무감하게 말했다.

“네가 다치면, 너랑 놀던 그 녀석은 죽어.”

* * *

그 시각, 프시오의 집.

밀리타는 홀로 옥상 난간에 걸터앉아 있었다. 사막의 밤은 언제나 아름답지만 오늘은 유난히 별빛이 깨끗하게 반짝이는 듯했다.

별을 바라보는 밀리타의 귓가에 프시오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밀리타. 당신은 그림자로 죽음만을 보는 게 아닙니다. 생과 사를 모두 봅니다.

프시오의 말대로 밀리타는 생과 사의 경계를 보았고, 그 경계는 몹시 정교했다.

죽음이라는 운명이 시작되면 그때부터 그림자에 실금이 가기 시작했으며 운명에 가까워질수록 부서져 내리다가 죽는 순간 완전히 깨져버린다.

-그리고 오늘 당신은, 백 명을 살린 겁니다.

살린 겁니다.

밀리타에게는 너무나 낯설고 뜨거운 말이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 서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녀가 한 것은 고작 실험에 쓰일 피를 내어준 것이 전부였다.

-정말로, 정말로 고맙습니다.

겨울의 끝.

밤바람이 밀리타의 눈물을 훑으며 스쳐 갔다.

밀리타는 양 손바닥을 펼쳐 보았다.

지금껏 이 손에 얼마나 많은 피를 묻히고, 얼마나 많은 숨을 거두고, 얼마나 많은 그림자를 산산조각 내어 왔던가?

손바닥에는 붉은 핏자국이 아닌 생소할 만큼 투명한 눈물만이 떨어지고 있었다.

모든 죄가 씻겨 나갈 수는 없다.

그럼에도 밀리타는 구원받은 기분이었다.

천천히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고여있던 서글픔이 막힘없이 흘러나오는데도 목구멍에는 무언가가 막혀있었다.

그때 그녀의 머리 위로 따뜻한 담요가 덮였다.

카이였다.

카이는 담요를 덮어쓰고 몰래 울던 어린 밀리타에게 그러했듯이 그녀를 조심스레 안아 주었다.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 주었다.

어두운 밤.

별이 빛났고, 밀리타가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어릴 적과 같이 카이의 품에서.

* * *

호엘리반은 겨울이 끝나기 전에 프시오의 계획이 차질 없이 준비되길 원했다. 그리고 그녀가 해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지금까지 그녀에게 실망했던 적이 없으므로.

학부생 시절부터 동료 교수가 되기까지 언제나 기대 이상을 보여준 그녀는 이번에도 악착같이 맡은 일을 해내었다.

하지만 누군가 그녀의 계획이 정말 완벽한 승리의 패가 맞느냐? 묻는다면 호엘리반은 그렇다고 단언할 수는 없었다.

그저 프시오가 이만하면 최선을 다했다고 여겨주길 바랄 뿐이었다. 그녀 스스로 그렇게 여기는 순간이 오면 그는 곧바로 전쟁에 돌입할 예정이었다.

프시오가 놓치고 있고, 호엘리반이 남겨두었던 구멍에 딱 맞은 퍼즐 조각을 제인이 가지고 오기 전까지는.

현금보관증서.

그것은 페브리아와 연합국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증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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