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죽음까지 독점하려는 악마에게 (98)화 (98/168)

98.

그날로부터 제인은 자주 숨이 막혔다.

시작은 죄책감이었다.

제인은 이제 일곱 살이 아니었다.

다이애나가 저로 인해서 죽었다는 사실이, 그 진실을 숨기고 살아간다는 현실이 피부에 와닿자 죄책감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쌓여갔다.

그렇게 쌓여가던 죄책감은 혼자 있을 때면 숨이 턱 막히는 호흡 곤란으로 발현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태가 악화되었다. 단순히 숨이 막혀오는 증상에서 밭은 숨을 수십 번 쪼개어져 뱉게 되었다. 속이 메슥거렸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죄책감은 점점 원망이 되었다.

왜.

왜 나를 살렸어?

왜 그렇게 죽어서 숨도 못 쉬게 해?

왜 나에게 이런 죄책감을 줘?

왜, 왜!

원망은 무엇을 먹고 자라는지 빠르게 커갔고 제인을 집어삼켰다.

제인은 그녀의 모든 것을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그녀의 다정한 웃음, 곁에 있어 주던 모습, 처음 보육원에 봉사하러 왔었던 날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하나하나 그녀를 탓하고, 원망하고, 비난했다.

비난은 끝이 없었다.

비난은 거짓말처럼 증오가 되었다.

증오는 자신을 구해주었던 사람의 가장 약한 부분을 찾아내었다.

제인은 병약했다던 그녀의 말을 떠올렸다.

-재발할 위험이 커서 조심해야 하긴 해.

어쩌면.

어쩌면 그날, 그 여자가 살았어도…….

<이제 기억나?>

제인은 환영의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눈앞의 장면은 일제히 사라졌고, 대신 제인의 목을 조르는 환영이 만족스럽게 웃고 있었다. 제인은 환영을 똑바로 마주했다.

그것은 괴물이었다.

제인이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자기 안의 괴물.

<어쩌면 그날, 그 여자가 살았어도.>

괴물이 과거의 무의식을 그대로 이어갔다.

“!”

제인은 듣고 싶지 않다는 듯 몸부림쳤다.

괴물을 향해 그만두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입만 벙끗거려질 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건 목이 졸려서가 아니었다. 벙어리가 되었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제인은 소리치지도 못하고 버둥거렸다.

그러나 곧 빠져나갈 수 없다는 무력감이 일었다.

무력감은 공포로 변했고, 괴물의 입가에 머물던 미소만 더 번져나가도록 만들었다.

<나 때문이 아니라 병이 재발 되어서.>

제인은 괴물에게 그만두라고 애원하고 싶었다. 하지만 괴물은 이를 드러낸 채 미소를 지으며, 한 글자씩 또박또박 힘을 주었다.

<어차피 죽었을 인간 아냐?>

괴물이 말갛게 웃었다.

마음이 산산이 부서져 간다.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다.

“……인!”

관문을 넘지 못하고 눈을 떠버린 제인은 마치 바닷속에 있는 것처럼 귀가 먹먹했다.

턱에 줄줄 흐르는 것이 눈물만은 아니라는 것을, 제인은 세실의 표정과 그녀의 붉은 손바닥을 보고 알았다.

“제인! 입 벌려! 젠장, 빌어먹을!”

* * *

제인이 망가져서 왔다.

제인이 망가지자 루의 시간도 망가져 버렸다.

시계를 깨고 부수어서 망가진 시간을 고칠 수 있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시계를 다 찾아서 산산조각 냈을 터였다.

관문을 넘지 못하고 온 그날.

세실은 기절한 제인을 안고 루의 집에 왔다.

제인의 입에는 재갈이, 옷에는 갈변한 피의 흔적이 있었으며 손과 발은 묶여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행색에 할 말을 잃었던 루는 굳어져 있던 것도 잠시, 곧바로 제인을 안아 들었다.

제인을 조심스럽게 침대에 눕힌 후에야 그는 세실을 돌아보았다. 그녀의 얼굴색 역시 좋지 않았다. 힘겹게 말문을 열었으나 목소리는 무척 가라앉아 있었다.

“혀를 물었어요. 바로 치료 해둬서 지금은…… 괜찮아요.”

그녀는 정신없이, 생각나는 대로 이어서 말했다.

“자해나 자살 시도를 할 수도 있어요. 의식적인 게 아니라서 당분간 잘 때는 재갈을 물리고 손과 발을 묶으세요. 주변에 날카로운 도구 같은 건 다 치워주시고…… 포크 같은 식기도 안 돼요.”

말을 잇던 그녀는 잠시 이마를 짚었다.

이윽고 몸을 뒤적거리며 파탐을 하나 꺼내서 피웠다.

“식사는…… 밥을 먹어도 게워낼 확률이 높아요. 억지로 먹이지 마세요. 일단 가지고 있는 물약은 전부 챙겨 왔으니까 심하게 게워내면 밥은 먹이지 말고 물약으로 영양 보충해주세요.”

세실은 삼 일에 한 번씩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서 돌아갔다. 물론 아무래도 자신이 데려가는 게 좋겠다고 했으나 루가 승낙하지 않았다.

제인은 꼬박 나흘간 잠에서 깨지 않았다.

루는 나흘 내내 달이 지면 밤이 되고, 해가 뜨면 아침이 온다는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토록 바지런한 제인이 눈을 뜨지 않는데 태양이 뜨다니.

그럴 수가 있나?

나흘 내내 루의 시간은 하루 같았고, 영원 같았다.

나흘째 되는 날.

눈을 뜬 제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재갈을 풀어도 말을 걸어도 입을 뗄 줄 몰랐다. 전에 없이 루의 낯빛이 어두워지자 제인은 종이에 무언가를 적어서 보여주었다.

[미안. 목소리가 안 나와.]

그러면서 배시시 웃었다.

하지만 루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게 너무 낯설어서 돌이켜 보니, 그녀가 웃을 때 그가 웃지 않은 적이 없어서였다.

관성에 어긋나는 감각이었다.

잠에서 깬 제인은 그동안 지켜봐 왔던 어느 때보다도 고분고분했다. 재갈을 물리면 물리는 대로, 손과 발을 묶으면 묶는 대로, 씻겨주면 씻겨주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보름이 지났다.

제인이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세실의 말은 반은 틀리고 반은 맞은 듯했다.

제인은 자해나 자살 시도는 하지 않았으나 식사를 하고 나면 그녀 말대로 전부 게워내기 일쑤였다.

“이렇게 토해서 어떡하지.”

루가 등을 쓰다듬으며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자, 제인이 또 웃으며 대답했다.

“으응, 역겨워서 그래. 내가 역겨워서.”

“…….”

“하하, 농담.”

제인은 잘 웃었고, 또 잘 울었다.

웃음은 가짜인데 울음은 하나같이 진짜였다.

욕조에서 몸을 담근 채로 울었고, 부엌 한편에 웅크려서 울었으며, 물약을 복용하다가도 울었다. 그리고 종종, 무언가를 향해 사정하듯이 흐느끼며 빌었다.

“잘못했어요…….”

루는 말문이 막혔다.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 외에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제인.”

“제가 다…… 잘못했어요. 제 잘못이에요.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용서…… 용서……, 아아……. 바라지 않을게요…….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제인, 그만.”

루는 제인이 유리처럼 깨지고 부서져서 영영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았다.

그쯤, 세실은 무의식의 지배로 자해나 자살 시도를 충동적으로 하는 기간은 지났으니 재갈은 물리지 않아도 된다고 일러주었다. 하지만 한동안은 잘 지켜보라고 덧붙였다.

제인을 바라보는 세실의 시선에 괴로움이 가득했다.

며칠이 더 흘렀다.

루에게는 여전히 모든 시간이 하루 같았고, 영원 같았다.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제인이 또 그렇게 울던 날.

루는 이제 제인이 유리가 아니라 얼음처럼 느껴졌다. 울고 또 우는 것이 부서질 뿐만 아니라 얼음처럼 녹아서 사라져 버리려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서지거나 녹아내리는 얼음.

그때 루의 귓가에 전에 자신이 뱉었던 말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망가지라지.

독으로 제 몸을 자학하면서 망가뜨리던 제인의 밤들을 알고 있었다. 그때보다 더 망가질 수 있을까 싶었다. 그랬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몸과 마음이었다.

도대체 인간이, 어떻게 그보다 더 망가질 수 있다는 말인가?

-망가지라지.

오만했다.

그에게 제인은 시간이었다.

살아가는 모든 시간이자 망가지면 제 삶이 무너져버리는 시간.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제가 다 잘못했어요…….”

루는 제인이 낯설었다.

망가진 시간 속에서 낯선 제인을 응시하던 그는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적어도 그때의 제인은 독과 해독의 용량을 제어하는 의지와 이성과 이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현실을.

루가 자신의 오만과 제인의 상실을 비참하리만치 체감하는 동안에도 그녀는 침실 구석에 웅크린 채 계속해서 빌고 울었다.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그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

루는 제인의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한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만.”

바닥에 눈물을 쏟아내던 제인의 눈동자가 천천히 위로 들렸다.

“네가 이러면, 나는 제인.”

루의 얼굴은 무감했다.

강압적이고 고압적으로 말하던, 그녀에게 익숙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애처롭게 들릴 만큼 낮게 잠겨있었다.

“나는 너를 현혹하게 돼.”

“…….”

“너를 현혹하고 싶지 않아.”

“…….”

“그러니, 내가 널 현혹하게 하지 마. 제발.”

“…….”

“너마저 그러면, 나는…….”

그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가슴에 무언가 꽉 막힌 것이, 목구멍까지 차고 올라왔다. 제인의 눈물을 닦아 주지도 못하고 그저 그녀의 입을 막을 뿐이었다.

제인은 그의 잠긴 목소리를 고요하게 바라보다가 느리게 손을 들었다.

거칠고 부르튼 손이 향한 곳은 그녀의 입술을 막고 있는 그의 차가운 손이 아니었다.

그의 얼굴, 그의 눈, 그의 눈물이었다.

* * *

제인은 그날 이후로 울지 않았다.

더 자주 웃었고, 밥을 먹어도 게워내지 않았다. 루는 제인에게서 한 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함께 느긋한 낮잠을 잤다. 햇살 좋은 날에는 따뜻하게 옷을 입고 집 근처를 산책했으며 종알거리며 농담도 했다.

그러나 멍하게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건지, 아니면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 건지 알기 어려웠다.

그녀에게서 욕망이나 욕구가 전혀 읽히지 않았다. 루는 그럴 때마다 제인의 이름을 불렀다. 제인이 방긋 웃었다. 루는 허무한 웃음을 물었다.

홀릴 필요가 없다.

그녀는 이미 그에게 홀린 것만큼이나 껍데기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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