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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까지 독점하려는 악마에게 (67)화 (67/168)

67.

해산물…….

생각해보니 루는 집에서 다양한 요리를 했으나 해산물 요리는 한 적이 없는 듯싶었다. 또 단골집이라고 데려갔던 음식점에서도 연어구이와 감바스를 시켜 먹었다.

라트올 말대로 해산물은 남이 해주면 먹는 음식이 맞는 듯했다.

그렇게 식료품 가게에 와서 죽은 물고기들의 동태 같은 눈깔을 말없이 노려보길 몇 분.

멀뚱히 서서 보기만 하자 옆에서 생선을 고르던 아주머니가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뭐 해 먹으려고, 아가씨?”

“아……. 거기서부터 잘못됐구나. 어쩐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아주머니는 음침하게 중얼거리는 제인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제인이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연어구이 좋아하던데…….”

“연어 찾는구나? 저쪽에 토막 난 생선 보여, 아가씨? 저게 연어야.”

“아.”

제인은 곧바로 매대 안쪽에서 생선을 손질하고 있던 점원을 불렀다. 그녀는 값을 치르면서 포장을 부탁하고 다시 멀뚱히 서 있었다.

아주머니는 그런 그녀가 신경 쓰이는지 다시 말을 걸었다.

“연어구이 할 줄 알아? 우리 집에도 아가씨 또래인 딸이 있거든. 걔도 요리라곤 하나도 할 줄 몰라.”

“불에 구우면 되죠. 구이니까.”

제인의 당당한 대답에 아주머니의 얼굴에 걱정이 드리워졌다.

“어떻게 굽게?”

점원이 포장된 연어를 건네주었다. 제인은 어정쩡한 자세로 연어를 받아들고는 낙담했다.

“굽는 방법이 따로 있나요……?”

“아이구.”

안 되겠다 싶었는지 아주머니는 제인을 데리고 식료품 가게 안을 돌아다니며 연어구이 재료를 하나씩 골라서 담아주었다. 버터, 후추, 파슬리, 마늘, 그리고 소스 재료까지.

제인은 아주머니가 중간중간 설명해주는 연어구이 요리법을 기억하느라 머리가 핑그르르 돌았다. 마지막에 살짝 뿌려서 먹을 레몬까지 다 고르고 나서야 아주머니는 손을 놓아주었다.

제인이 말했다.

“저 사실, 이런 요리 처음 해봐요…….”

“그래 보였어, 아가씨.”

아주머니는 호호 웃었다.

그리고 한 번 맛있게 만들어 보라며 제인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고마워요. 말씀해 주신 요리법대로 잘해볼게요. 망칠까 봐 좀 걱정되긴 하지만…….”

“괜찮아. 처음인데 망치면 어때.”

“망치긴 싫은데.”

제인이 작은 목소리로 이어서 말했다.

“……을 담을 거라서요.”

아주머니가 뭐라고? 하며 되물었다.

그러자 제인이 머쓱하게 목덜미를 만지며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음요.”

* * *

루의 집 뒤뜰.

잔뜩 인상을 쓴 제인이 루에게 말했다.

“넌 전반적으로 나한테 해로워.”

“……데시안이 인간에게 이로우면 되나. 그래도 영문을 모르겠군.”

뒷짐을 지고 있던 루는 허리를 살짝 숙여서 제인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속눈썹이 떨리는 게 보일 만큼 가까이.

그가 느슨하게 말을 이었다.

“고분고분하게 굴었는데 말이지.”

고분고분.

놀랍게도 사실이었다.

시장에서 돌아온 제인은 식사를 준비할 때까지 산책 좀 하고 오라며 루를 밖으로 내보냈다. 처음 해보는 요리인데 그가 기웃거리면서 빈정거릴 생각을 하니 끔찍해서였다.

루는 고분고분하게 뒤뜰로 나와서 바람을 쐬고 있었다.

그랬는데도 제인이 다짜고짜 와서 네 존재가 해롭다고 인상을 써대니 그로서는 장단을 맞춰 주기가 난해했다.

한편, 제인은 금방이라도 닿을 것처럼 가까이 다가온 루의 얼굴에 괴로웠다.

그녀에게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다.

식사하러 들어오라고 말하러 왔더니 뒤돌아 서 있는 그의 모습에 또 심장이 두근거리는 게 아닌가?

저녁 식사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그의 품에 안기고 싶은 욕구가 일자 짜증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왜 볼 때마다 더 좋아지는 건데? 언제까지? 얼마나 더? 그리고 사람 심장이 이렇게 계속 뛰면 죽는 거 아냐?

“특히 여기, 진짜 해롭다고.”

제인은 곤혹스러운 얼굴로 그의 손을 잡아서 자신의 왼쪽 가슴 부근에 갖다 대었다.

그녀의 심박수에 루는 나른한 미소를 띠었다.

천천히 입술을 벌린 채 제인에게 더 다가갔다. 제인의 입술도 살짝 벌어지려던 찰나였다.

“침실에서 하세요.”

작업실로 향하던 라트올이 심드렁하게 그들을 지나쳐 갔다.

제인은 자리에 박힌 듯이 굳어 있다가 킬킬거리는 루의 손을 잡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만 웃어!”

* * *

데코토들은 깊은 좌절감에 빠져있었다.

이 집의 유일한 인간 여자의 눈에 띄지 않게끔 숨어 지내는 그들은 부엌 사이사이 몸을 숨기고 한숨을 폭폭 내쉬었다.

난장판이 된 부엌을 마주한 루도 속으로 그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인사를 건넸다.

고생 꽤 하겠군.

루의 시선이 조리대와 개수대를 지나쳐서 식탁 위로 향했다. 언뜻 명계에서 봤던 것 같은, 아무튼 뭐 그런 게 놓여 있었다.

“…….”

그의 낯빛이 어두워지는 걸 본 제인이 달래듯이 자리에 앉혔다.

“먹이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앉아만 봐. 응?”

루는 내키지 않는 얼굴로 앉아서 음식이라고 하기에는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잠시 보다가 다른 곳으로 시선을 쓱 돌렸다.

제인이 그의 앞에 있던 접시를 더 밀어 넣어주며 방긋 웃었다.

“이거 뭐게?”

루는 대답이 없었다.

제인이 뻔뻔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연어구이.”

“4세기를 살아오면서.”

그가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처음 보는 무언가라고 생각했는데…… 연어구이였군.”

“응. 나도 살면서 이런 건 처음 봐.”

제인은 연어구이의 탄 부분의 벗겨내고 속살을 파서 한 입 먹었다. 그리고 아주머니가 해주신 말씀을 떠올렸다.

-어머. 마음을 담을 거라니 귀엽다, 아가씨. 그래서 더 망치기 싫었구나?

-네. 잘하고 싶어요.

-마음이라는 게 그래. 소중한 마음일수록 한 번에 전달되지 않을 때가 많더라고. 그러니까 아가씨, 완벽하게 전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

-……그래요?

-그렇다니까. 그리고 망쳤다는 생각이 들어도 버리지 말고 한 입 정도는 먹어봐.

제인이 대답을 머뭇거리자 아주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마음을 담았다면 망친 요리도 마음의 일부분 아니겠어?

탄내를 풍기는 연어구이는 퍽퍽하기 그지없었다.

루가 데려갔던 가게의 촉촉한 연어구이처럼 부드럽지도, 감칠맛이 나지도 않았다.

“내 첫 요리야.”

“…….”

제인의 시선은 접시를 향해 있었다.

“……그리고.”

넘치는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전하면 닿기나 할까.

“내 마음이자…….”

그렇게 애처로웠던 마음이 엉망진창인 연어구이 속에 담겨있었다.

“너를 사랑한다는 뜻이야.”

몇 번이고 삼킨 말이었다.

고작 한마디에 담기지 않는 마음이라서 입 밖에 내기 싫었던 말이었다.

“너를 사랑해.”

세실은 사랑하는 마음을 꼭 사랑한다는 말로만 전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알려주었고, 우연히 마주친 아주머니는 한 번에 완벽하게 전하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쳐주었다.

탄내가 진동하는 부엌.

보기만 해도 요란스러운 개수대와 조리대.

형체도 알 수 없게 타버린 연어구이.

그 속에서 마음을 고백한 제인은 사랑한다는 말이 더 이상 가혹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한 번이 아니라 열 번, 스무 번, 그 이상 셀 수 없이 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고 싶어졌으니까.

빌어먹을 그림자 같은 의심을 달고서라도.

그때 루가 탄 부분을 도려내지도 않고 한입 크기로 잘라서 입에 넣었다.

한 입, 두 입, 계속해서.

제인의 잿빛 눈동자에 당혹과 의아함이 깃들었다.

“루……?”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연어구이를 먹었다.

그 모습에 제인이 뒤늦게 손을 내저으며 만류했다.

“그만 먹어. 보여주려고만 했던 거지 억지로 먹이려던 거 아니야.”

제인은 루가 연어구이에 손도 대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당연했다. 그는 흉한 것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 데시안이었다.

제인은 그저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서투르고 형편없지만 그래도 너를 생각하는 내 마음이야, 라고.

그러나 그녀의 만류에도 루는 손에서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지 않았다. 접시에 있던 걸 반 이상 먹고 나서야 그다운 말로 말문을 열었다.

“첫 요리니까.”

“……어?”

“처음은 무엇이든 아름다운 법이니까.”

이어서 단호하게 말했다.

“두 번은 하지 마. 절대로.”

루는 그 말을 끝으로 고상한 태도로 식사를 이어갔다.

그에 반해 제인은 타지 않은 부분만 골라 먹은 후, 접시를 옆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식탁에 엎드려서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너는 믿어? 내 마음.”

“그럴 리가.”

“…….”

“데시안은 아무것도 믿지 않아. 그래서 기대도 실망도 없지.”

제인은 제 마음이 가여워졌다.

저는 물론, 상대도 믿지 않는 사랑이라니.

“믿는 척이라도 해봐.”

“거짓말이라도 하라는 건가?”

“너한테 홀딱 반한 인간에게 주는 배려 같은 건 없어?”

“언제든 안겨도 좋아.”

식사를 마친 루는 평상시처럼 깨끗하게 비운 접시와 식기를 개수대에 넣었다.

그러는 동안, 루의 말에 굳어버린 제인은 팔을 포개어 얼굴을 묻었다. 그러나 붉어진 귀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너무 좋고, 너무 개 같아.”

* * *

지하 작업실 안에서 라트올은 녹니스의 상태를 유심히 살폈다.

반액체 상태에서 불순물이 말끔히 제거된 녹니스는 아주 작은 구슬 모양으로 맑고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 주인님, 일 열심히 하셨네.”

때마침 식사를 끝낸 루가 작업실로 들어왔다.

라트올이 녹니스를 가리켰다.

“이거 전부 다 이번에 명계로 갈 물량 맞죠?”

“그래.”

“정제랑 마무리까지 하셨네요. 그건 제가 하게 두셔도 되는데.”

루는 대답이 없었다.

라트올은 녹니스 저장고 문을 닫으며 일어섰다.

“추가 입고해야 할 마석이 있어서 목록 정리해 뒀어요. 시간 나실 때 확인해주세요. 당장 급하게 필요한 건 없어요.”

루가 느긋하게 목록을 훑어보는 동안, 라트올은 세공할 준비를 하며 곁눈질로 힐끔거렸다.

“이쯤이면 찾아가실 줄 알았어요.”

그레데엘므에게요.

차마 내뱉지 못한 뒷말이 목에 생선 가시처럼 걸렸다.

다시 본채에서 지내는 루의 생활에 해방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 라트올은 조금 불안했다.

제인에게 접근했다는 사실에 그토록 분해할 땐 언제고 그는 무서울 정도로 얌전하게 지내고 있었다.

마치 폭풍전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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