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죽음까지 독점하려는 악마에게 (55)화 (55/168)

55.

세실은 제인이 가진 마나에 비해 체력이 매우 저질이므로 우선 마비력 조절과 체력 증진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을 담든 그릇이 튼튼해야 해.

그러면서 자신의 가르침을 교육이 아닌 수련이라고 지칭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제인은 수련을 빙자한 고문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루도 빠짐없이 했다.

처음에는 마법을 배운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게 고도의 집중력을 통해 마비력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웠다.

생소한 감각이라 쉽지 않은 듯했으나 여러 번 반복하다 보니 감이 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체력 증진을 명목으로 무산소와 유산소 운동을 병행했다.

제인의 지옥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세실은 생전 처음 보는 불투명한 기구들을 가지고 와서 제인에게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안타깝게도 그게 수련을 빙자한 고문의 출발 선상이었음을 제인은 알지 못했다.

수련은 매일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마비력을 활성화한 몰입 상태에서 고강도 운동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그렇게 되면 고통이 둔감해져서 기초체력보다 더 많은 운동을 지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근육이 파열되거나 관절이 탈구되고 접질리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세실은 거실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있다가 자기 능력을 가감 없이 사용하며 제인을 회복시켜 주었다.

여기에서 회복이란 응급처치 개념이었기에 통증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고통스러우면 마비력을 더 올려.

바로 그게 마비력 조절과 체력 증진 수련의 핵심이었다.

수련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사람이 유지할 수 있는 몰입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므로, 제인 또한 자주 집중력이 흐트러졌으며 동시에 마비력의 통제가 무너졌다.

통증이 밀려드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럴 때마다 제인은 고통에 몸부림쳤다.

지금처럼.

“……윽.”

제인이 짧은 신음을 내뱉으며 쓰러졌으나 세실은 개의치 않고 그녀의 등허리를 발로 툭 쳤다.

“몰입해.”

제인은 뇌가 녹는 기분에 허덕거렸다.

머릿속은 몰입하기를 거부하는 듯 먹먹했고 몸은 전신에 탈력감이 들었다. 이대로 까무룩 기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때 세실이 인심이라도 쓴다는 듯이 말했다.

“마지막이다. 몰입해.”

마지막.

제인은 이를 으드득거리며 네발로 기는 모양새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죽을힘을 다해 몰입했다. 팽팽 돌아가는 머리는 과부하에 걸린 것 같았으나 육체적 고통은 사그라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오늘은 여기까지.”

그 한마디에 제인은 모든 걸 놔버리고 싶은 심정으로 다시 쓰러졌다.

몸의 고통이 스멀스멀 느껴지려던 찰나 세실은 응급처치해둔 곳들을 말끔하게 회복시켜 주었다.

그제야 제인은 몸의 긴장이 풀어져서 제대로 숨을 쉴 수 있었다.

몸은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근육 곳곳이 팔딱팔딱 뛰는 느낌이 들었다. 고통은 가셨으나 그 잔상이 몸에 계속 남아있는 느낌이었다.

천장이 지옥문으로 보였다.

제인은 세실의 제자가 된 이후부터 이 짓을 매일 반복하고 있었다.

내일도, 모레도 계속되겠지.

끔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제인은 실소를 터트렸다.

내가 고통스러워하고 싶지 않다니. 편안함을 원하다니.

“쪼개는 거 보니 더 할 만한가 봐.”

세실의 말에 제인이 조그맣게 킬킬거렸다.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죽을 수도 있어요. 할까요?”

“……일어나, 새끼야.”

제인은 곧장 몸을 일으켰다.

누웠을 때는 천근만근처럼 느껴졌던 몸이 용수철처럼 가볍게 튕겨 올라왔다. 단 며칠이었으나 수련 강도가 상당해서인지 그녀의 몸은 눈에 띄게 탄탄해져 가고 있었다.

세실은 파탐을 피우며 물었다.

“집에서 책은 읽고 있니.”

그녀는 제인을 제자로 받아주던 날, 스무 권이 넘는 마법서를 주면서 한 달 안으로 한 권당 한 장씩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오라는 말도 안 되는 과제를 주었었다.

미친 여자가 틀림없다.

제인은 그렇게 생각했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구태여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저 간결하게 대답하며 소파에 올려져 있던 수건으로 땀을 훔쳐냈다.

“네.”

세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프시오 만나기로 했다면서.”

“점심때 잠깐 뵙기로 했어요.”

“그럼 하루 쉬어.”

제인은 잘 못 들었나 싶어서 눈을 크게 뜨고 세실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파탐을 끈 세실이 신문을 집어들고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내일 쉬라고. 몸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시간도 필요해.”

어떡하지? 너무 좋은데.

제인이 거친 콧바람을 내쉬며 기쁜 기색을 어렵사리 숨기고 있는데, 예상 밖의 말이 이어졌다.

“내일 생일이기도 하니까.”

“생일요?”

세실이 툭 뱉듯이 무심하게 말했다.

“루.”

* * *

제인은 훈련을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몸부터 씻었다. 침실로 들어온 그녀의 눈동자에 잠든 루가 들어앉았다.

그녀는 종종 그의 존재가 이 세상 만물의 변칙처럼 느껴졌다. 공들여 빚어낸 듯한 흰 피부와 흐트러진 검은 머리카락의 대비에서 흐르는 우아한 아름다움은 가히 흉포하기까지 했다.

그는 언제나 제인의 시선을 속절없이 빼앗았다.

지금도 그러고 있지 않은가.

제인은 헛웃음을 털어내며 조심스레 침대 끝에 앉았다.

이내 세실이 한 말을 떠올렸다.

-생일 맞을 거야. 호엘리반이 빼먹지 않고 챙겨줘서 알아.

-호엘리반은…….

루와 어떤 사이죠?

하마터면 그런 물음이 튀어나올 뻔했다.

당사자도 아닌 사람에게 그런 걸 묻는다는 게 퍽 떳떳하지 않은 기분이라, 제인은 말을 돌렸다.

-호엘리반은 생일을 어떻게 챙겨줬는데요?

-케이크와 포도주, 그리고 꽃을 보냈어. 매년.

* * *

푸른 빛이 가시지 않은 새벽녘.

창살에 갇힌 소스키엘이 정신 나간 얼굴로 입이 찢어지게 웃으며 엔니오를 향해 발악하고 있었다.

“네가, 네가, 네가 죽으면 돼!”

산발이 된 머리.

총기를 잃은 눈동자와 퀭한 눈 밑.

새파랗게 질린 낯빛.

엔니오는 형편없는 몰골의 소스키엘을 지그시 보았다. 그리고 만취한 그가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그날을 재차 떠올렸다.

-로안나의 사랑은 가짜야. 사랑의 묘약에 걸린 가짜. 저주라고.

그러고서 불쑥 바닥에 주저앉아 고래고래 고함치며 울부짖었다. 로안나 곁에 있어야 할 사람은 저주로 묶인 엔니오가 아니라 자신이라는 말과 함께.

어릴 적부터 로안나를 연모해왔던 소스키엘은 일찌감치 아버지의 계략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권위에 맞설 정도로 강인한 청년은 못되었기에 모든 상황을 관망할 수밖에 없었다.

엔니오는 소스키엘의 말을 믿지 않았었다.

자신들의 사랑이 묘약 때문이라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술주정에 지나지 않은 허상이라 여겼다.

그러나 소스키엘은 달랐다.

한 번 열린 판도라 상자는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열리기 쉬웠다. 로안나를 가지고 싶었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다면 아무도 갖지 못하길 바랐다.

소스키엘은 로안나에게 모든 진실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죄책감을 들쑤셨다.

-그건 사랑이 아니야. 환각일 뿐이야. 로안나. 아, 착하고 여린 로안나. 사경을 헤매고 계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렴. 일리치 부인이 너를 얼마나 예뻐하셨니? 네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딸이었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다시 예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어. 내 손을 잡아.

어머니와 가문을 등졌던 모든 게 묘약 때문이라니.

소스키엘의 말에 로안나의 몸과 마음이 휘청거렸다. 이윽고 그가 알려준 대로 사랑의 묘약을 제조한 조향사가 있는 드호아망으로 갔다.

그리고 끔찍하게도 그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로안나는 여전히 엔니오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 마음이 진실한 사랑인지는 확신할 길이 없었다.

세상 누구보다 사랑하는 이를 믿을 수 없는 로안나는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겪었다.

그렇게, 그녀는 그 누구도 원망하지 못한 채 스스로 드호아망의 강물에 뛰어든 것이었다.

그때 소스키엘이 다시 창살을 잡고 흔들며 목청을 높였다.

“죽어! 제발 죽어!”

엔니오는 조용히 그가 갇힌 공간을 훑어보았다.

소스키엘의 아버지인 잔 백작은 평소 점잖고 교양있는 행동거지를 우선시했으나 선을 넘는 자에게는 극악무도한 성미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게 가족이라 할지라도.

그래서였을까.

그의 저택 안에 있는 음습한 지하 감옥이 어색하지만은 않았다.

소스키엘을 만나러 오기 전.

엔니오를 앞에 둔 잔 백작은 자신의 졸렬한 계략에 관하여 미안함이나 죄책감이 없어 보였다.

해야 할 일을 했고, 그로 인해 제 자리를 찾았다는 태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구태여 긁어 부스럼을 만든 아들의 경솔함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했다.

유감.

엔니오는 그 순간 신에게 빌었다. 부디 저자를, 그리고 저자의 아들을 당신이 주신 손으로 죽이지 않게 해달라고.

그때 잔 백작이 관용을 베풀 듯이 말했다.

-원한다면 묘약을 만든 조향사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겠네.

엔니오는 더 이상 말아쥘 틈도 없는 주먹을 더욱 힘껏 쥐었다.

그리고 끓어오르는 감정과 달리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먼저 소스키엘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권유하지 않는다네. 그 녀석은 미쳤어. 그대와 그대의 아내에게 위해를 가할까 싶어 가두어 두었으니 더는 염려치 말게나.

-……지금 제가, 염려하는 걸로 보이십니까?

잔 백작은 날 선 시선으로 엔니오를 지그시 응시하더니 시종들을 향해 눈짓했다.

그렇게 잔 백작의 시종들을 따라서 지하 감옥에 막 들어 온 참이었다.

창살을 잡고 소리를 지르던 소스키엘은 이윽고 미치광이처럼 자신의 품을 뒤지더니 단검 하나를 꺼내어 엔니오에게 내밀었다.

“죽어, 제발.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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