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죽음까지 독점하려는 악마에게 (51)화 (51/168)

51.

좀처럼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지 못했던 제인이 오래전부터 생각해오던 것이 있었다.

손만 내밀면 닿을 만큼 가까이 있더라도 마음이라는 건 사실, 태양과 달의 거리만큼 멀고 아득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루.”

앉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그와 마주 섰다.

“고양이가 너야?”

“글쎄.”

루의 단조로운 대답이 낙엽처럼 바스락거렸다.

“인간들은 믿고 싶은 대로 믿던데.”

너라고 다를까.

그가 슬쩍 웃으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가만히 서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제인이 조용히 이마를 짚었다.

독으로 자학하면서도 기어코 살아가던 제인의 머릿속에서는 종종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지곤 했다.

너는 왜 아직도 살아있는 거야? 그렇게까지 살고 싶어?

그때마다 제인은 독의 고통에 몸부림치며 숨을 토해낼 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런 그녀에게 발버둥 치는 것들은…….

위로였다.

어떻게든 살려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이 살아있는 것도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니까 절박함을 관망하는 유희 따위가 아니었다.

제인은 사람 냄새가 배지 않도록 소매를 끌어 잡고 참새를 조심스레 들었다. 곧바로 집에 들어와서 식탁에 내려놓고 장갑 낀 손으로 찬찬히 살폈다.

다행히 부러진 게 아니어서 얼마간 고정만 시켜주면 회복이 될 듯싶었다.

제인은 다리를 고정할 만한 걸 찾다가 성냥갑을 찾아냈다. 성냥 머리 부분을 잘라 꺾인 다리에 대고 회복될 수 있도록 소창을 잘라 둘둘 감아주었다.

참새가 몸을 바르르 떨었다.

기절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제인은 검지 끝으로 조심스레 새끼 참새의 정수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장갑을 낀 탓에 촉감이 느껴지지 않았으나 참새는 눈에 띄게 안정을 찾아갔다.

-네가 받았던 연민이 그리 유난스러운 게 아니라는 거야.

“…….”

약제사로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들을 치료해주었던 제인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하필이면 지금에 와서야 세실이 원하는 답을 알 것 같았다. 그간의 시간이 야속하게 느껴질 만큼 늦은 깨달음이었다.

한편으로는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 약제사라는 직함은 그녀에게 수단이자 도구에 불과했다.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그리고 하임과 함께 궁정에서 지내도 되는.

“제인.”

부르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돌아보자 단정한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루가 서 있었다.

“연민은 그런 곳에다 쓰는 게 좋아.”

그는 가까이 다가와서 제인의 은색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마치 어린아이에게 칭찬해주는 듯한 투로 말하며.

“너 자신에게 쏟아내는 것보다, 훨씬.”

* * *

내일부터 시작되는 안식년으로 인해 짐 정리가 끝난 세실의 연구실에는 큰 상자들이 듬성듬성 놓여 있었다.

프시오는 창문 앞에 서서 조용히 바깥으로 시선을 두었다. 가을의 끝자락에 접어드는 하늘은 유독 청명했다.

곁에 있는 세실은 파탐을 손에 든 채 말이 없었다.

“로안나 씨 말이야.”

먼저 말문을 튼 것은 프시오였다.

“혼수상태 증상과 사랑의 묘약은 관련이 없는 거야?”

세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스스로가 깨어나길 거부하고 있어.”

“……그래.”

“신체적으로는 모두 정상이야. 문제는 그녀에게 내재 된 무의식이 현실을 직시하는데 강한 저항감을 보인다는 거지.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희귀한 유형이라 치료할 수 있는 정신계 치유 마법사가 없다는 거고.”

프시오는 창문에 등을 기대었다.

“오늘 퇴원할 예정이라고 하던데, 그래도 돼? 물약만 주기적으로 처방받기로 했다면서.”

“너한테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담당 치유 마법사는 할 만큼 했어. 계속 입원해도 의식이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으니 퇴원하는 게 맞아.”

“내가 그들을 도와줄 방법이 있을까.”

세실은 말없이 파탐의 꽁초를 버리고 하나 더 입에 물었다.

프시오가 슬쩍 웃었다.

“네 침묵은 유난히 슬프네. 아프고.”

“프시오. 정신계 치유 마법사가 아닌 이상 도울 방법은 없어. 그래도 마음이 불편하다면 차라리 의식이 돌아왔을 때를 대비해서…….”

세실이 한숨을 흘리며 말끝을 맺었다.

“사랑의 묘약을 제조한 마법사를 찾아봐.”

“찾고 있어. 하지만 쉽지 않네. 제인이 설명해 준 모습은 본 모습이 아닐 수도 있고. 게다가 그 정도 고위 마법을 쓸 줄 아는 마법사라면 우리가 모를 리 없잖아.”

세실은 부정하지 않았다.

며칠 전, 로안나의 담당 치유사는 세실에게 묘약의 저주에 대한 검사를 부탁했다.

검사는 무려 이틀이 꼬박 걸릴 정도로 오래 걸렸다. 고위급 마법보다 더 난해한 술식이었다.

세실은 기실 그런 술식은 처음 보았다. 하지만 그녀였기에 그나마 이 정도로 술식을 근접하게 해석한 것이었다.

“그래도 계속 찾아봐. 이상한 게 한둘이 아니야. 내가 봤을 때 그 사랑의 묘약이라는 거, 시중에서 판매하는 제품이 아니거든.”

세실이 피로감에 젖은 표정으로 목을 주무르며 말했다.

“드호아망 어디에서도.”

* * *

“이 세상에 존재하는 데시안들은 전부 잔악함을 가지고 있어요.”

라트올은 길가의 노점상 앞에 놓인 버섯 바구니에서 양송이버섯 한 뭉텅이를 집고 요리조리 살폈다.

제인이 물었다.

“그건 루도 마찬가지겠죠?”

“네. 하지만 특이한 유형이긴 해요. 근거 있는 잔악함이랄까.”

옆에서 송로 버섯 향을 맡던 제인이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예를 들면 자기 소유물을 훼손한다거나 계획을 방해한다거나요. 루의 잔악함에는 항상 이유가 있어요.”

드물게 예외가 있긴 하지만…….

라트올이 그 말을 작게 흘리는 사이 제인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유가 있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라트올은 대답 대신 몇 가지 버섯을 종류별로 가리키고 계산했다. 상인이 건네주는 버섯이 든 봉지를 품에 안고 나서야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데시안은 인간에게 고통을 주고, 망가뜨리고, 타락시키는 행위에 이유를 붙이지 않아요. 그게 그들의 존재 이유고 본능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루는 확실히 별종인 거죠.”

“그럼 별종처럼 구는 이유는요?”

“게을러서요.”

“……?”

잔악함과 게으름의 상관관계라니.

제인은 라트올과 함께 있는 동안 지었던 표정 중에서 가장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그녀의 시선에서 루는 나름대로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더욱 의아했다.

하지만 그의 규칙적인 생활 방식과 근무 태도가 라트올의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관리와 잔소리로 빚어졌다는 사실을 제인이 알 리 만무했다.

라트올은 무심한 태도로 이어서 설명했다.

“루는 험악하고 거친 것보다는 나태와 권태를 즐기고 탐미적인 것에 몰두하는 편이에요. ”

“게으른 것 같진 않던데. 요리도 매일 하잖아요.”

라트올은 속으로 뜨악했다.

루가 얼마나 태만한 존재인지 안다면 요리하는 행위와 성실함을 직결하지 못할 텐데.

어이없다는 말투가 자연스레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데시안이나 메 데시안이나 모두 음식을 섭취하지 않아도 돼요. 극단적으로 말해서 식사는 생존에 불필요한 행위라고 봐도 무방해요.”

제인은 황당한 눈으로 그의 품에 든 버섯 봉지를 흘겨보았다.

그러자 라트올이 명료하게 대답했다.

“식탐이라는 욕구가 있을 뿐.”

“아.”

제인이 대번에 고개를 끄덕이자 라트올이 다시 말문을 열었다.

“이해가 빨라서 좋네요. 루는 식탐에 미적인 경향까지 더해서 요리하는 과정부터 식사 자체를 즐기는 거예요. 아주 세세한 부분의 색과 모양을 보고, 냄새를 맡고, 맛과 식감을 음미하면서.”

“사람으로 치면 미식가?”

라트올이 보기에 루의 식사는 그것보다는 훨씬 고차원적인 행위였으나 더 깊이 설명하기가 귀찮았기에 대충 주억거리고 말았다. 이어서 그녀가 이야기를 꺼낸 주제로 되돌아가서 정리해 주었다.

“한마디로 잔악함을 드러낼 때가 아니라면 권태롭게 있거나 아름다운 것을 탐닉하는 데시안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제 생각을 해봐요.”

그가 명랑하게 물었다.

“다리 꺾인 참새가 아름다우면 얼마나 아름답고, 루의 심기를 건드렸다면 얼마나 건드렸겠어요?”

이윽고 과일 가게에 들어선 라트올은 상인에게 어제처럼 사과 한 봉지를 부탁하고 다른 과일들을 설렁설렁 둘러보았다.

“고의로 다리를 꺾지 않았을 거라는 말이죠?”

“그렇죠.”

그때였다.

석류도 몇 알 골라낸 라트올이 허리를 펴고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웃었다. 어쩐지 기만이 묻어나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당신, 내가 한 말을 모두 믿어요?”

약간의 정적이 이어졌다.

그러다 곧, 제인이 고개를 저으며 픽 웃었다.

“그럴 리가요.”

라트올의 얼굴에 묻어있던 기만이 볼품없어질 만큼 가소로운 웃음이었다.

“당신을 언제 봤다고 믿겠어요.”

“불신을 되게 당차게 한다.”

“서로 초면인데 신뢰하고 그러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성심성의껏 대답해 줬는데?”

“그걸 믿냐고 간 보듯이 떠본 것 같은데?”

“…….”

서로를 고깝게 보는 모양새가 되자 과일 가게 주인이 힐끔거리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말다툼이 벌어질 것 같은 상황이 불편하면서도 흥미로운지 둘의 주변을 의미 없이 맴돌았다.

제인이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런데 믿고 싶어요.”

손을 내리고 얕은 숨을 내쉰 그녀가 나직하게 말했다.

“당신 말고, 당신이 한 말요. 루에 대한 것들.”

* * *

그 시각, 드호아망의 어느 술집.

남자 다섯이 문을 잠그고 테이블 위에 쌓인 보석들을 나눠 가지고 있었다.

한 남자가 낄낄거렸다.

“라라테를 바꿔치기 한 건 신의 한 수였어.”

“암, 그렇고말고!”

다들 그의 말에 동조했다.

그렇게 보석에 정신을 팔고 있을 때였다.

일순, 드리워진 햇살을 가리는 그림자에 다들 반사적으로 고개를 틀었다.

“!”

어디로 들어온 건지 떡 하니 앞에 서 있는 불청객을 발견한 남자들이 질겁하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뭐야,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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