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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까지 독점하려는 악마에게 (39)화 (39/168)

39.

제인의 병실 면회를 마친 프시오는 호엘리반과 마주 앉았다.

접대실 식탁 위에는 프시오가 좋아하는 음식과 과일, 술 등이 잔뜩 차려져 있었다.

호엘리반은 그녀가 특히 좋아하는 포도주를 따라주었다.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네.”

“대답이 마음에 안 들어. 못 지내길 바랐는데.”

포도주를 한 모금 마신 프시오가 다시 대답했다.

“못 지낸 걸로 하겠습니다.”

“응. 그 대답이 좋겠어.”

호엘리반이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드호아망 소속 우체부 하나가 울면서 관둔 건 알고 있어? 그 우체부가 메로코 진액에 트라우마가 있는 건 대체 어떻게 알고.”

프시오는 분명 그에게 경고했었다.

한 번만 더 집으로 편지를 보내면 드호아망의 우체부가 우체통에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게 만들어주겠노라고.

경고를 무시한 건 호엘리반이었다.

“제 탓하지 마세요. 당신이 고집부리지 않았다면 다 큰 우체부가 울면서 관둘 일은 없었을 겁니다.”

“안 먹히네.”

“제인을 건드리지 않을 것 또한 알고 있으니 알량한 협박도 그만두세요.”

“그것도 안 먹히고.”

호엘리반은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프시오의 접시에 생강 소스를 얹은 양갈비구이를 덜어주었다.

“역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게 좋겠네.”

“…….”

“프시오, 돌아와.”

“거절하겠습니다.”

“너만큼 뛰어난 연금술 교수가 없어. 메킨지 교수의 변신 수업을 참관했는데 여전히 뱀의 비늘 모양이 전부 똑같더라니까.”

호엘리반이 나긋하게 이어서 말했다.

“비늘 크기에 편차가 있으면서 휘어져야 미학적이라는 걸, 그렇게 일러주었는데도.”

호엘리반의 화려한 명성은 드호아망의 최연소 집권자, 혹은 마탑주라는 위치에만 한정된 게 아니었다.

세기의 천재.

연금술 마법의 독보적인 명인.

그런 수식이 당연한 그는, 프시오에게 죽을 때까지 완벽하게 따라잡을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프시오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호엘리반의 화려한 명성 이면에는 재능도 재능이지만 그의 집요한 구석이 큰 몫을 차지한다는 것을.

나뭇잎 하나를 만들어내어도 특유의 질감과 실낱같은 잎맥 하나까지 소름 끼치게 똑같이 구현했다.

재능과 나태함은 공존하기 쉬우나 그의 집요함은 날이 갈수록 무뎌지기는커녕 송곳처럼 날카로워져만 갔다.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자그마치 열일곱에 드호아망 마탑의 최연소 정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그와 동갑내기인 프시오는 그해, 그의 제자가 되었다.

호엘리반의 가르침은 기함을 토해낼 정도로 악랄했지만, 프시오는 악착같이 따라갔다.

많은 학생이 환멸 하면서 도망쳤다.

유일하게 남은 프시오마저도 매일 밤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언덕배기의 강을 이룰 만큼 눈물을 쏟아냈을 때쯤, 모두가 프시오를 주목했다.

제2의 호엘리반이 나타났다며 그녀의 연금술 마법을 극찬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프시오는 호엘리반의 능력에 가까워질수록 그의 경지를 따라갈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체감하곤 했다.

포도주를 마신 프시오가 차분하게 말문을 열었다.

“마탑에 계신 교수님들의 역량을 과소평가하지 마세요. 충분히 훌륭하신 분들입니다. 더군다나 뱀의 비늘 같은 건…… 다른 사람들은 돋보기 가지고 눈알이 빠지도록 봐도 모르는 부분이지 않습니까.”

호엘리반은 그게 무슨 상관이지? 라는 얼굴로 웃었다.

“내가 알잖아.”

미학을 추구하는 완벽주의.

그것이 지금의 호엘리반을 만들어 준 것이었다.

프시오 역시도 그것만큼은 부정할 생각은 없었기에 더는 메킨지 교수님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녀의 접시가 비워진 걸 본 호엘리반은 치킨 소테를 덜어주며 말했다.

“돌아오면 원하는 대로 연봉 협상해줄게. 보육원마다 후원하던 금액, 계속 유지하느라 힘든 거 알아.”

소테를 자르던 프시오의 손이 멈췄다.

호엘리반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마탑의 높은 연봉에 맞추어져 있던 후원금을 홀로서기로 충당하기에는 버거웠다. 금액을 낮출까도 고민했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만큼은 해 보고 싶었다.

그녀가 루를 거북해하면서도 검은 새의 마법을 걸어주었던 이유 또한 바로 그 때문이었다. 호엘리반의 의뢰를 받고 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시기에 유독 현금이 모자랐다.

그녀는 입맛이 뚝 떨어졌다는 듯이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 포도주를 마셨다.

“제가 후원하는 보육원은 대부분 전쟁고아가 모여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마탑의 인력으로 전쟁을 준비하면서 저더러 돌아오라고 하는 게, 가당키나 합니까.”

호엘리반은 그녀의 포도주잔을 채워주었다.

“전쟁을 치르고 나면, 너랑 결혼할까 해.”

“하.”

“아무래도 겨울이 좋겠지. 너는 추운 겨울을 싫어하니까 곁에 있고 싶어. 물론 네가 스스로 건 저주에서 풀려나야 하겠지만.”

“적당히 해.”

채워진 포도주잔이 단박에 비워졌다.

“호엘리반. 네가 나를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지 알아?”

“거절은 내가 당하고 있는데, 왜 네가.”

아주 잠깐 말을 멈춘 호엘리반은 미소를 잃지 않으며 이어서 말했다.

“비참하다는 거야.”

웃고 있어서 더 씁쓸한 얼굴이었다.

프시오는 그에게 넌더리가 난다는 듯이 더 화를 내었다.

“몰라서 물어? 내 아버지가 전쟁으로 수많은 전쟁고아를 만들어냈어. 나를 포함해서 말이야. 그 사실이 얼마나 날 옭아매고 있는지 너도 알잖아. 그런데 네가 어떻게 전쟁을 일으키려 할 수가 있어.”

“매일 같이.”

호엘리반이 힘을 주며 다시 말을 이었다.

“매일 같이 앙디스인들이 페브리아에 노예로 팔려 가고, 그들은 끊임없이 내게 전쟁을 종용해.”

“…….”

“내가 앙디스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

“아마 내가 죽거나, 아니면 내 손으로 그들을 모조리 몰살하거나 하지 않는 이상 계속될 거야.”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있다면 말해줘.”

프시오도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각국에서 금지된 드래곤의 마석을 채취하려던 앙디스인들은 그들의 화신을 깨우면서 눈 깜짝할 새에 드래곤들의 습격을 받았다.

그렇게 앙디스라는 이름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려던 찰나, 페브리아가 보호라는 명분으로 앙디스에 들어와서 그 땅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이후 앙디스인들은 자신들의 땅을 되찾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게다가 드래곤의 마석을 재취하려던 일로 주변국들마저 앙디스를 외면하는 터라, 땅을 온전하게 되찾기 위해서는 전쟁 말고는 어떠한 협상의 여지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다.

흥분을 가라앉힌 프시오가 천천히 말했다.

“전쟁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그들과 그들의 땅을 되찾으려 할 의사가 있다면 나도 같이 생각해 볼게.”

“그 생각, 내 옆에서 해.”

호엘리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가 필요해. 내 곁에 있어.”

그리고 프시오의 곁에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올려다보았다.

“돌아와.”

* * *

다음 날.

제인은 병실 창문에 머리를 박듯이 대고 바깥을 보고 있었다.

“핍.”

제인의 부름에 부엉이가 푸드덕 날아서 그녀의 어깨에 앉았다.

어젯밤, 제인은 부엉이에게 ‘핍’이라는 이름을 새로 지어주었다. 호엘리반의 말대로 부엉이는 꽤 영특했다.

그녀는 창문을 활짝 열면서 말했다.

“루에게 전해. 나는 떠들썩한 드호아망의 축제 따위에 절대로 관심이 없다고.”

핍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인은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말했다.

“절대로, 절대로 관심이 없다고.”

이번에는 반대편으로 갸웃거리는 핍의 모습에 제인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반어법부터 가르쳐야 하나.”

그때.

제인의 등 뒤에서 박하 향이 풍겨왔다.

고개를 바짝 든 그녀가 바로 돌아서려 했으나 뒤에서 그녀를 안아 드는 팔이 더 빨랐다.

핍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병실 안의 선반 위로 날아가 앉았다.

“그런 걸 가르치는 것보다.”

다 들었구나.

제인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귓가에 루의 달콤한 음성이 닿았다.

“네가 솔직해지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아무리 되짚어봐도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루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뭐든 좋으니 솔직해져 봐. 예를 들어서 축제에 가고 싶다거나, 내게 안기는 게 좋다거나, 아니면 보고 싶었다거나.”

아마도 마력으로 이동의 문을 열고, 들어 온 것이리라.

이 빌어먹을 데시안은 언제 어디서든 사람이 드나드는 문으로 들어온 적이 없었다.

“내가 몇 번이나 문으로 들어오라고 했는데!”

제인이 울컥하면서 몸을 돌렸다.

그러나 루는 그대로 제인을 다시 안았다. 나긋한 목소리와 함께 허리를 감은 그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잠시만 이렇게 있지.”

그의 얼굴이 제인의 목덜미로 파고들었다. 박하 향이 기분 좋게 퍼져 나왔다. 그가 풍기는 향에 거짓말처럼 한껏 돋았던 성질이 가라앉았다.

“닷새 만이군.”

루는 스르르 포옹을 풀었다.

그리고 제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건강해 보이기도 하고.”

“……세실이 내일이면 퇴원해도 좋다고 했어.”

“그래. 보호 마법을 걸면 내 거처에 데려가도 문제없을 거라고 하더군.”

“퇴원하면 바로 네 거처로 가?”

그가 가까이 다가왔다. 손가락 한 마디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서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이 숨이 막히도록 아름다웠다.

“너만 좋다면.”

제인은 숨 쉬는 걸 잊는 사람처럼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노크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녀는 루를 가볍게 밀치고 침대로 가서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달음박질이라도 한 듯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은 사정없이 쿵쾅거렸다. 도통 자제가 되지 않는, 불쾌하기 이를 데 없는 감각이었다.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의아하다는 듯한 세실의 물음에 루가 빙글 돌아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바쁜 일도 마무리됐고, 호엘리반과 선약이 있어서 온 김에.”

“그렇군요. 그런데…….”

세실이 흐린 눈으로 제인을 보며 물었다.

“저 꼴통 왜 저러고 엎어져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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