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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Mad About You(1) (7/13)

7. Mad About You(1)

이렇게 날이 차고 낮의 하늘이 아름다울 때 즈음이 매년 유연의 생일이었다. 계절이 아름답게 익고 풍성한 은행잎이 샛노랗게, 단풍잎은 생생하게 붉게 물들 때. 날은 찬데 세상의 색은 유연과 같이 따뜻해 보이는 즈음.

준오는 이맘때가 좋았다. 가을 가득한 거리 아래 유연이 재잘재잘 자신을 바라보고 웃으며 걷는 게 잘 어울리는 계절이라서. 그 애의 밤색 머리칼마저 모두 가을 같아서. 영감들과 라운딩을 갔다가 회사에 들러 잔업까지 하고 온 준오가 제집 앞에 주차했다. 어깨엔 이미 세상의 모든 피곤이 올라와 있는 느낌.

잡다한 인테리어까지 모두 끝났지만 이상하게 이사를 하고 싶지 않았다. 혼자 쓰기는 과하게 크기도 하고 단독 주택이라 관리도 힘든데. 결혼 계획이라도 있으면 모르겠지만, 그냥 회사 근처의 펜트하우스를 구매하는 편이 당연히 맞는 결정이었을 텐데.

주현의 옆집이 매물로 나왔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제가 사겠다고 해 버렸다. 집에서는 드디어 결혼을 할 생각이 든 거냐고 묻지를 않나,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서도 귀찮은 일투성이였다.

종종 유연을 위층으로 불러내 카탈로그와 아이패드 자료를 보여주고 마음에 드는 가구 골라서 표시하라 심부름을 시켜 놓고는, 간식을 차려 주었다. 막상 본인은 본인 방으로 들어가 작곡이나 했고.

완성된 집에 들어가서야 깨달았다. 아, 이건 무슨 반유연 하우스도 아니고. 유연은 딱히 사치하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평생 좋은 환경에서 잘살던 아이니 기본적인 취향이 고급스러웠고, 완성된 인테리어 또한 아늑하고 수려했다.

낮에 문을 열면 선려한 감각의 집다운 집이 펼쳐졌다. 딱 반유연 같은 볕이 내리쬐는 집. 상냥함이 깃드는 공간. 업자도 조명 공사까지 다 완료되면 꼭 포트폴리오용 사진을 찍게 해 달라고 빌듯이 부탁했으니 뭐.

다만 남자 혼자 사는 집은 아니었다. 이 집은 남자 혼자 사는 집이라기엔 뭔가 극명한 온도 차이가 있었다. 분명히 자신도 마음에 드는 집인데, 이상하게 준오 본인 혼자 들어가서 살기는 꺼려지는 집이었다.

그렇다고 결혼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세를 주기에도 너무 아까웠다. 정말 이상한 애물단지가 된 것이다. 몇 달만 두고 보다가, 들어가서 살던 세를 주던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주현의 집에 살면서 주차만 집 앞에 했다. 나는 주차장을 쓰려고 이 거액을 투자했던가. 이미 차고엔 제 다른 차를 두 대 정도 넣어 두었다.

그렇게 주현의 집 2층으로 가는 길, 문 앞에 두 인영이 보였다. 남자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여자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저런 몸 선을 가진 여자는 유연뿐이니까. 게다가 유연의 집 앞에서. 그러니까 그녀가 아닐 리가 없지.

대학 시절에 유연을 쫓아다니며 집 앞에 데려다주던 모지리들을 떠올리며 가만히 지켜보았다. 기분은 썩 좋지 않았지만 저 아이도 연애할 때가 되기는 했지. 그러니까 가만히 서서 지켜보았다.

금방 들어가겠지. 나중에 너 웬 남자랑 문 앞에서 연애하는 거 봤다고, 주현이가 말하던 기블리가 걔야? 하며 놀릴 생각이었다. 그 정도 차 끌고 다니는 놈이라면 적당히 돈도 있겠다, 키도 훤칠해 보이겠다. 좀 짜증은 났지만 이제 곧 금방 집으로 들어갈 테니까. 그런데…….

두 인영의 입술이 닿는 건 순식간이었다. 말리거나, 다가가거나, 제지하거나 뭐 그렇게 할 수도 없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머리가 고장 난 것 같았다. 게다가 딱히 유연이 저지하지도 않는 것으로 보였다. 누가 볼 때는 그냥 뭐, 평범한 연인들의 키스신처럼. 한창 좋을 때의 그런 모습일 텐데.

그러나 지켜보는 자신의 머리는 잠시 정지되었다가 곧, 열이 올라 터질 것 같았다. 뭐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달려가서 당장 멱살을 잡아 유연의 곁에서 떼 내고 싶은 마음과 네가 뭐라고 그딴 소리를 하냐 싶은 마음이 상충되어서. 가을밤의 아스팔트 위에 발목이 묶인 느낌이 들었다.

무슨… 씨발. 신발 밑창이라도 녹은 건가. 왜 발은 안 움직이고 머릿속은 터질 것 같지. 왜 저 새끼 목덜미를 잡아서 당장 반 죽여버리고 싶지. 평생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 머리와 몸에 녹진하게 녹여 들어가, 그저 서서 그들의 키스가 끝날 때까지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유연의 손에 입을 맞추고 들리지 않는 작은 말을 나누는 것까지 모두.

유연이 집으로 들어가고, 남자가 차를 향해 걸어 나왔다. 마치 집과 집 사이 결계라도 쳐져 있는 듯 움직이지 않고 그를 지켜보던 준오에게 남자가 다가왔다. 차로 들어가지 않고 자신에게로. 남자가 점점 가까이 다가올수록 준오도 그가 누구인지 인지할 수 있었다.

“준오 형, 오랜만이야.”

“그러게, 오랜만이네…….”

우리 유연이, 오빠 말 지지리도 안 듣지. 혼내줘야겠네. 화를 속으로 삼키는데 기우가 회사에서는 볼 수 없었던 특유의 호전적인 웃음을 지었다. 반유연한테는 이런 표정 보여준 적 없을 테지. 이 살쾡이 같은 새끼.

“오랜만에 형 동생 관계로 보는 건데, 조금 민망한 모습 보여준 것 같네?”

“민망할 것까지야, 애들이 잠깐 스쳐 가며 인사할 수도 있는 거지. 어차피 잠깐 그러다 말 텐데.”

어차피 너네들 얼마나 만나서 놀겠니, 하는 비아냥을 알아들은 기우가 한껏 미소 지었다.

“응, 얼마나 가는지 지켜보고, 나중에 축의도 하고 그래야지. 내가 얼마나 집요한 인간인지 알잖아, 형. 유연 씨랑 친할 테니 나중에 유연 씨 쪽 하객석에 앉아도 아무 말 안 할게.”

미친놈이 터진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지껄이고 있었다. 누구 마음대로. 누가 누구랑.

“나 만난다고 자꾸 혼내지 말고. 유연 씨가 형한테 들키면 혼난다고 얼마나 걱정하는지. 피곤해 보이는데 잘 들어가. 친척 모임 때 보자.”

기우가 돌아서 자신의 차로 향했다. 만연한 늦가을 날씨에, 외투도 걸치지 않고 서 있는데 머리만 잘라 사막에 띄워 놓은 것같이 부글부글 끓었다. 겨우 발걸음을 옮겨 집으로 향했다. 이 분노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우리 고양이, 많이 혼나야겠네. 아주 많이.

<2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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