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노을이 내리는 시간
준오의 출국이 열흘 정도 남았다. 하루하루가 너무 좋고 불안하고 괴롭고, 여름철 해지는 노을처럼 오만 가지 색을 띤 마음이었다. 몸을 붙어먹을수록 그가 더 좋아졌다. 여자는 자면 잘수록 상대가 좋아지는 호르몬이 나온다고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정말인 듯했다.
이 사람이 없으면 이제 어쩌지. 다 각오하고 해달라고 했던 거라 생각했는데. 자신의 각오는 여름날 아이스 팩처럼 물렁했다. 처음만 그렇게 단단하고 시간이 지나면 종이팩 위까지 다 젖어서, 그냥 물이 되고 만다.
이젠 그의 것으로 해달라고, 원한다고 졸라도 절대 넣어주지 않았다. 쾌감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라 강준오를 원해서 졸랐지만, 계속 다른 방법으로만 사정하는 그가 점점 더 미웠다.
하다 보면 정신이 나가서 몰랐지만 결국 깨닫게 되었다. 그만큼 붙어먹었어도 키스조차 한 적이 없다는 것을. 관계할 땐 숨 막히게 다정하면서, 안고 있을 땐 유연을 녹여낼 듯한 눈을 하고 바라보면서, 단단한 벽을 세우는 남자.
정자 아래서 흐느껴 울던 날이 낳은 질투의 결과는, 감당할 수 없는 크기로 부풀어 오른 마음이었다. 언제 이렇게 커져버렸는지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감내해야 한다. 자신이 조르고 또 졸랐던 마음이었다. 지금의 유연이 할 수 있는 어느 밤, 어느 새벽 갑자기 찾아온 그에게 자신을 내주고 안겨 흐느끼는 일뿐이었다.
짝사랑이란, 정말로 무력한 마음이구나. 힘이 없는 열정이구나. 닿지 않는 열기였구나. 그럼에도 지금은 그저 자신을 다 내어 태우는 수밖에.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홀랑 타 자신이 사라질 것 같았다. 인어공주의 거품은 아름답기라도 할 텐데. 내가 타고 난 재 가루는 그가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 * *
다이어리에 하나씩 엑스가 생겼다. 이제 삼 일 남았다. 사실 써 두지 않아도 알고 있다.
내일은 출국 전 마지막으로 준오와 저녁 약속이 있었다. 새로 생긴 호텔의 프렌치 코스를 예약해 두었다고 했다. 가기로 했던 레스토랑의 봄 메뉴는 결국 우리가 붙어먹느라 먹지 못했구나.
1학기는 이미 종강했지만 준오는 매일 학교 사무실로 출근했다. 짐 정리를 해야 했으니 본가에도 다녀오느라 여전히 바빠 보였지만, 그래도 요샌 한숨 돌렸겠지.
밸런타인데이의 일 이후로 유연은 그가 일하는 곳에는 가지 않았다. 대신 평일엔 학교 도서관에 갔다. 우연히 얼굴이나 한 번 더 봤으면, 그런 생각을 하며 요 며칠 같은 과 은지와 함께 도서관에 출석 도장을 찍었다.
오늘도 도서관에 들렀다가 은지와 함께 집에 가는 길을 걸었다. 보라색 노을이 온 천지에 내리는 시간이었다.
“은지야, 노을 진짜 예쁘다. 하늘 녹아내릴 것 같아.”
“헐. 이런 걸 반유연이랑 보고 있다니…. 우린 언제쯤 남자 친구랑 노을 보면서 자기야, 해보…. 음?”
은지가 갑자기 말을 하다 말고 주차장의 커다란 인영을 보며 말했다. 언제 지나가며 마주치기라도 할까, 기대하던 그 사람이었다.
“저기 경영대 강준오 선배 아냐? 이야, 키가 크니까 멀리서 봐도 딱 알아보겠네. 너네 오빠랑 베프라고 그러던데… 유연이 너랑도 친하다 그랬지?”
“아, 응. 오빠만큼은 아니고, 그냥 뭐 그럭저럭.”
문득 우리는 얼마만큼 친한 걸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드는 찰나, 실루엣만 봐도 늘씬하게 잘빠진 몸매의 여자가 준오가 탄 차 문을 열고 조수석으로 들어가 앉는 것이 보였다. 그때 그 여자일까.
“저 여자 누군지 몸매 장난 아니다. 역시 끼리끼리 만나네.”
어쩐지 그날의 트라우마가 노을처럼 유연의 몸 안으로 쏟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주차장으로 향해 있던 고개를 앞으로 돌려 모르는 척 걸었다.
잠깐 할 얘기가 있나 보지. 친구겠지. 안 보는 게 낫겠지.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니지. 눈앞엔 노을도 없이 아득하게 흔들리는 아스팔트의 바닥만 보인다.
부르르르, 은지가 전화를 받는 소리가 난다. 여보세요. 응응. 잠시 걸음을 멈춘 그녀를 따라 유연의 몸도 멈춰 있다. 삐- 이명이 들렸다. 얼이 빠져 다시 노을을 멍하니 보던 유연이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결국 세이렌을 돌아보는, 폭풍 이는 바다의 어리석은 선원처럼.
멀찍이 불이 켜진 차 안의 두 인영이 겹쳐진 모습이 보였다. 아, 다시 고개를 돌렸다. 보지 말았어야 했다. 어리석기도 하지.
하늘의 노을이 바닥으로 침몰하여 어두워진 건지, 이미 진작에 모두 빛을 잃은 건지 분간할 수가 없다. 어쨌거나 어둠이었다. 눈가에 눈물이 한가득 차올라 길도 잘 보이지 않는다. 바닥도 자신도 휘청여 금방이라도 아스팔트 바닥으로 붙잡혀 들어갈 것 같다고 생각했다.
휘청이게 아름다운 보라색 석양 내린 저녁의 끝은, 깊이도 모르는 암흑이었구나. 그저 이렇게 깜깜한 석탄 같은 밤이었구나.
* * *
짐도 다 정리해 보내고, 트렁크도 싸 두었다. 오늘은 빨리 정리해서 들어가 쉬고 내일 유연을 만나고 싶었다. 좋은 것 좀 먹이고 가려고 더 악착같이 일했다. 더 자신을 쪼아서 더 먹이고 갔다면 좋을 텐데. 그 몸에 홀랑 빠져 유연의 단내 나는 아래만 발라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여자와 이렇게 자주 붙어먹은 건 처음인데, 그게 하필 주현의 동생이라는 게, 제가 열심히 단걸 사다 먹인 고양이라는 게 마음에 들진 않았다. 서로 떠나면 허전하겠지.
어리니까 저 없을 때 또 얼마나 많은 놈팡이들이 달려들까. 멀쩡한 새끼를 만나야 할 텐데. 하…. 되지도 않는 생각이 나는 게 웃기지도 않았다. 내가 제일 미친 새끼지, 그래.
주차장으로 가는 길 노을이 깊었다. 갑자기 유연이 생각나 ‘반고양 노을 봐’ 하려다 다시 핸드폰을 내렸다. 연애질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지랄이야. 미친 새끼. 돌았네, 씨발.
그냥 차 안에서 담배나 한 대 피우고 가려는 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조수석 문이 열리며 웬 여자가 들어와 앉았다. 동기인 유라였다.
“뭐 하는 거야, 너 지금.”
요염하기로 말 많은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대체 왜 이러나 싶었다.
“너 며칠 뒤에 출국한다며.”
“그렇긴 한데, 그게 이렇게 갑자기 차 안으로 쳐들어와서 말할 얘기야?”
“강준오. 나 OT 날부터 너 쫓아다녔어. 너 그거 모르진 않을 거야. 너한테 고백하는 애들 줄줄이 차이는 거 보면서 그래, 너 뻔히 아니까. 나중에는 그냥 가끔 네 즐길 거리로 안기고라도 싶어서. 그렇게 참고 참다가 몇 달에 한 번씩 너랑 잠만 잤어. 한 사람이랑 자주 하는 것도 싫어하는 거 아니까, 진짜 서너 달씩 반년씩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면서. 그랬어. 너한테 한번 안기려고…….”
그랬던가. 깊이 생각해 본 적 없어서 잘 모르겠다 싶었다. 그리고 그녀의 순정이라 하기엔 여러 선배, 동기들과도 만나는 걸 알고 있는데.
“밸런타인데이 날 너 그렇게 갑자기 나가고, 그 이후로 아는 척도 안 하고. 물론 나랑만 안 한 건 아닌 것 같았지만. 그러고 어떻게 이렇게 가? 어떻게 인사 한마디 안 하고 갈 수가 있어?”
인사를 안 한 건 너뿐만이 아니라고 말하려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유라의 입술이 다가와 붙었다. 순식간이었다. 이게 대체 뭔가 멍하니 있다 붙은 얼굴을 떼 거리를 만들었다. 유라의 눈매에 고인 눈물이 한 방울 볼을 가로질러 흘러내린다. 하, 이게 무슨 봉변인가 싶었다.
“오유라.”
짜증과 화가 가득한 목소리에 유라의 몸이 긴장으로 굳어졌다.
“네가 나만 봤다고 말하기엔 창수 선배랑 빈 강의실에서 오빠 더 깊이 쑤셔 달라고 꺽꺽 우는 것도 두어 번 봤고.”
놀란 유라의 눈이 커졌다.
“강우가 너랑 사귀고 첫 여행 간다고 하는 것도, 연지가 너한테 진수 뺏겼다고 애들 앞에서 술 먹고 내일 죽을 듯이 우는 것도 봤는데. 그런 네가 OT 때부터 나만 봤다고 하기는 좀 무리가 많지 않을까?”
그 요염한 눈도 손도 부들부들 떨렸다. 눈물이 한두 방울 더 떨어졌지만, 마음이 동하진 않았다.
“나가, 나 지금 바빠. 예전엔 즐거웠다. 앞으로는 나 아는 척하지 마.”
별안간 모욕을 잔뜩 먹은 유라가 치를 떨며 나가더니 차 문을 부서질 듯 닫았다. 준오 역시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를 빼 집으로 갔다.
제 덕분에 생긴 나비효과가 얼마나 큰지 모르겠지. 고마워해야 할지 덕분에 번뇌에 빠지게 되어 괴롭다고 해야 할지. 그 와중에 유연이 눈물 고인 얼굴로 준오 오빠라고 부르는 열띤 얼굴이 떠올라 아랫도리가 불뚝 솟아올랐다.
욕이 절로 터져 나온다. 정말 가지가지 하는 날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샤워하며 유연을 빼내려고 노력했지만 다시금 솟아오르는 열기에 담배를 물었다. 지금이 열일곱 사춘기도 아니고 대체 뭐 하자는 모양인지. 요샌 이해되지 않는 일투성이였다.
* * *
내일 만나야 하는데, 밤새 그렇게 눈물이 났다. 뭘 기대했을까 나는. 알고 있었는데. 요새 곁에 아무도 두지 않는 것을 보면서, 정신없이 바쁜 그를 보면서 안심했었나 보다.
그래도 제가 뭔가 좀 더 특별할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들. 그 촘촘하게 바쁜 틈을 쪼개고 나와 자신을 뽑아 먹을 듯 헤집어 안는 사람에게 작은 기대 따위를 품은 제가 하찮고 가소로웠다.
유연은 그에게 고백하지 않았다. 사귀는 사이가 아닌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미는, 정당하지 않은 배신감을 견딜 수가 없어 꺽꺽 울다가, 내일 만나고는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모르니 더 이상 눈이 붓지 않기 위해 눈물을 또 참았다가. 그런 긴 밤을 지새웠다.
그 와중에도 내일 그를 만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하찮게 만드는 사람을 어쩌면 마지막으로 만나는 날이니 예쁘게 보이고 싶었다. 눈물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내며 옷과 신발을 골랐다.
내일 자신이 원 없이 예뻐서, 준오의 기억에 그 모습 그대로 남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진창인 머릿속이 끝도 없이 서럽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눈이 왜 이렇게 부었어.”
데리러 온 제 차에 유연이 앉자마자, 얼굴을 살핀 준오가 말했다. 아침부터 숟가락을 얼려 삼십 분을 얹고 있었는데도, 몇 시간을 내리 울어버린 눈이 다 가라앉지 않았다. 곧 있으면 저녁인데도 여태 개구리처럼 부어 있는 눈이 야속했다. 두 시간을 열심히 꾸며 머리도 말고 화장도 열심히 하고 옷도 신경 써서 입었는데.
“어제 슬픈 영화 보다가 자서 그래.”
넥타이까지 하진 않았지만, 그는 웬일로 셔츠에 정장 바지까지 다 입고 있었다. 대충 입어도 시선이 가는 사람인데, 이렇게 입고 있는 걸 보니 차 안의 공기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런웨이라도 가버릴 것 같은, 오늘따라 더 잘생긴 그의 얼굴을 곁눈질로 보면서 역시 어제 울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밉고 또 멋있어서, 오늘따라 더 좋아서 가슴이 쿵쿵 울렸다. 어쩐지 오늘이 최후의 만찬 같은 생각에 둘 다 그다지 말이 없었다. 결국 참지 못한 유연이 몰래 옆을 힐끔거리자 준오가 말했다.
“왜.”
“그냥 운전 잘 하나 봤어.”
“잘생겨서 본 거 아니고?”
“정신 차려. 저기 빌딩 앞에 박힌 돌이 오빠보다 잘생겼거든?”
“아, 저 빌딩 앞에 다비드 조각상 있었지.”
어이가 없다. 하여간에 저 잘난 건 알아 가지고. 입술이 저절로 삐죽거리자 준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왜 울었어.”
“슬픈 영화 봤다니까.”
“슬픈 영화 뭐 봤는데. 나 모레 출국하는 영화?”
“그건 신나는 영화고. 비행기 뜰 때 나 춤추고 있을 거니까 아래 내려다봐.”
그러게, 그것만으로 슬픈 영화인데. 그가 차 안에서 다른 여자랑 키스하는 것까지 봤더니 비극도 추가되었다. 사실은 준오가 너무 미워서 성질을 부리고 싶다. 화를 내면서 그 여자는 누구냐고 하고 싶었다. 너 더럽다고 꺼지라고 화를 내던 어느 날처럼.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은 그를 보는 마지막 날이고, 언제 볼지 모르지만 준오는 오늘의 자신을 몇 년간 기억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렇기에 원망도 미움도 다 삼켜내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오늘은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하루. 어젯밤, 보내고 나면 다 잊겠다고 다짐했다.
특급 호텔의 야경이 좋았다. 날이 맑아 저 멀리 남산타워까지 보였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되어 결의와 긴장감이 느껴지는 직원들이 코스가 나올 때마다 열심히 요리 설명을 해 주었으나 다른 때만큼 잘 들리진 않았다.
사실은 마음이 꽉 메여 음식이 넘어가지 않았지만 제가 잘 먹는 걸 준오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 있기에 디저트까지 마지막 남은 힘을 내어 잘 먹었다. 코스 요리에 와인 페어링까지 추가해서 먹었더니 점점 달큰하게 취해 눈앞의 남자가 야경과 함께 더 많이 반짝거렸다.
그동안 준오와 먹으러 나오면 데이트 코스 레스토랑에 가도 남매가 먹는 느낌이 났었는데, 오늘은 남자와 먹는 기분이 들었다. 이 밤이 아마도 오래오래 잊히지 않겠지. 끓는 마음을 외면하며 강준오를 보내는 밤, 얼굴께에 올라온 와인과 함께 자꾸 코끝이 찡해지는 것을 애써 눌렀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며 대리를 부르려나, 하고 있었는데 계산을 마친 준오가 잠시 통화하고 오겠다며 로비에 유연을 앉혔다. 몇 분 있다 돌아온 그가 엘리베이터의 내려가는 버튼이 아닌 올라가는 버튼을 눌렀다.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방 잡아 놓은 거 체크인했어. 너 그날 새벽에 소리 못 지른 거 많이 억울해하길래 편하게 실컷 소리 지르라고.”
하여간에 곱게 말하는 법이 없지. 당황하며 흘겨보고 있는데 어느새 열린 엘리베이터에 카드 키를 대더니 최상층 버튼이 눌렸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마자 유연의 허리가 뒤에서 끌어안기고 준오의 코와 입이 목덜미에 닿아 내렸다. 유연의 허리를 터질 것같이 단단한 것이 쿡쿡 찔러온다.
이래서 밥 먹는 내내 어떻게 참았을까. 올라가는 수 초간 이 작은 밀실의 공기가 터져버릴 것 같다. 정신없이 방에 들어가자마자 창밖에 수놓인 야경을 볼 틈도 없이 유연을 안으며 남은 손으론 원피스 스커트 아래를 헤집는 준오를 말렸다.
“씻고… 잠깐만, 잠깐만……. 응?”
겨우 말리고 샤워 부스 안에 들어가 뜨거운 물을 맞으며 취한 정신을 깨우려는데 그가 욕실 안으로 성큼 들어왔다. 당황하는 저는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이 욕실 벽에 밀어붙여 목이고 가슴이고 물고 빠느라 정신이 없다. 신음하다 고개를 내리니 조각 같은 커다란 나신이 무릎을 꿇고 앉아 유연의 다리 한쪽을 그의 어깨에 걸쳐 올리곤 아래를 빨고 있었다. 물소리도 흐느끼는 소리도 어떤 것도 멈추지 않는 긴 밤이 시작되었다.
* * *
샤워 부스에서 유연을 뒤돌려 세워놓고 음부 아래의 허벅지에 비벼 한차례 빼낸 준오가 방으로 나왔다. 몸을 씻겨 준다기엔 그저 붙어먹음에 가까웠지만. 비누 거품 묻힌 손에 전신이 희롱당해 탈진한 유연이 욕실을 나와 소파에 앉았다.
준오가 드라이어로 유연의 긴 머리를 말려주었다. 머리를 만져주는 익숙한 손길이 기분 좋았다. 그가 얹은 손바닥에 예전에 그러했듯 머리를 비볐다. 그 모습에 입꼬리를 스윽 올린 그가 유연의 앞자리에 앉았다.
유연이 몸을 일으켜 가운을 벗고 준오의 앞에 서자 아름다운 나신이 드러났다. 굴곡 있는 예쁜 몸에, 그새 빨려 울긋불긋해진 색깔의 동그랗게 올라붙은 가슴, 한 줌의 허리에 커다란 골반을 보고 있자니 바로 앞섶이 부풀어 올랐다. 유연이 올라선 부분에 손을 뻗어 꺼덕거리는 성기를 두 손으로 잡고 바닥에 무릎 꿇어앉았다.
“너 지금 뭐 하는… 읍.”
그녀의 안에 들어와 주지 않는 유연의 개가 오늘도 울고 있었다. 손으로 위를 쓰다듬으니 바짝 일어서 유연에게 알은체를 한다. 어쩜 흉물스럽게 생겨서 침도 질질 흘리고 있는데 왜 사랑스러워 보일까. 유연의 손바닥에도 침을 잔뜩 뱉어 미끈해진 손바닥으로 위를 둥글게 헤집어 주다가 귀두에 입을 쪽 맞췄다.
“얘가… 나 좋아하는 것 같아. 그치.”
대답할 새도 없이 유연이 혀를 날름거리며 귀두를 삼켰다.
“미친…….”
위만 물렸는데도 성기가 터질 것 같았다. 유연이 물고 혀를 굴리며 사탕이라도 빨듯 입을 크게 벌려 쫍쫍 빨았다. 당장 머리를 눌러 목젖까지 처박게 하고 싶지만 애써 이성을 유지하며 유연을 바라보니 눈을 올려 뜬 그녀가 귀두를 머금은 채 말했다.
“가르쳐줘, 오빠….”
“하… 씹… 아이스바 빨듯이 입에 물고 깊게 넣었다 뺐다 반복해 봐.”
요망한 고양이가 뿌리와 아래 몸통을 두 손으로 꼭 잡고 입 안으로 넣었다 뺐다 왕복하며 열심히 빨고 있다. 서툴기 그지없는데 유연이 앞에서 제 걸 빠는 걸 보고 있자니 당장이라도 싸서 입에 넣어주고 싶었다.
너무 커서 괴로운지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반도 다 넣지 못한다. 이렇게 야하고 예쁜 게 또 있을까. 서툰 혀와 손놀림에도 좆이 거대하게 팽창해서 터지기 직전이었다. 사정감이 몰려와 유연의 얼굴을 급하게 붙잡아 입에서 성기를 꺼냈지만, 어떻게 손쓸 새도 없이 사정액이 유연의 목과 얼굴에 그대로 뿌려졌다.
“미안해. 내가 못 참았어. 눈에 안 들어갔어? 얼른 닦아 줄게.”
미안해서 죽을 것 같은데 유연의 하얀 볼과 도톰한 붉은 입술에 제 정액을 뿌리고 있는 게 또 꼴려서 미칠 것 같았다. 있는 줄도 몰랐던 자신의 소유욕이 낯설어 견딜 수가 없다. 얼굴도 손도 몸도 다 제 것으로 하고 싶은 정신 나간 기분이 참담했다.
“흐읏!”
준오의 얼굴 위에 유연을 앉혀 아래가 물렁해질 때까지 빨았다. 히끅거리며 그만하라는 말에 도망가지 못하게 손으로 허벅지를 감고 혀를 세워 구멍에 끝도 없이 반복해 밀어 넣었다. 싫다고, 혀 그만 넣으라고 울먹이던 유연은 절정이 가까워지자 준오의 코에 음핵을 비비며 질 입구를 혀에 더 깊이 박아 내렸다.
경련하며 가던 그녀가 준오의 입 안에 주르륵 자신의 것을 또 흘려보냈다. 입과 얼굴이 유연의 음액으로 칠해지는 게 자신도 이해할 수 없이 기분 좋았다. 절정과 수치심이 함께 오른 유연이 몸을 덜덜 떨어 흐느꼈다.
다시 눕혀 음핵에 혀를 붙이고 손가락도 같이 넣어 쑤시니 엉엉 울다가 몸을 떨고 가고 또 가는 모습이 못 견디게 사랑스러워 잠시도 가만두고 싶지 않았다.
유연을 자신의 배 위로 올라오게 해 경련하는 음부를 벌려 그 사이로 꺼떡거리는 제 것을 끼어보았다. 겹친 부분이 흡사 커다란 소시지 빵 같은 모양이었다. 갈라진 빵에서 소시지에 시럽을 아래위로 끝도 없이 발라 댔다.
“오빠, 흐윽, 넣어줘… 제발 넣어주세요. 흑, 아흑, 준오 오빠 거 넣어주세요.”
온몸에 성감이 올라 이성을 잃은 유연이 울면서 빌었다. 죽자고 그녀를 몰아붙이는 와중에도, 넣고 나면 비행기표도 버리고 남을 것 같아 이를 악물고 듣지 못한 척 유연의 골반을 잡아 위아래로 빠르게 움직였다.
유연이 깔고 앉아 배에 붙어 선 기다란 성기에 그녀의 애액이 끝도 없이 흘러 복부까지 철썩거렸다. 성기를 올라타고 있는 유연의 허리가 휘청거리자 그대로 엉덩이를 찰지게 여러 번 때렸다. 볼기를 맞을 때마다 움찔거리는 입구가 성기에 그대로 전해졌다. 히끅거리는 와중에도 성실하게 허리를 움직이고 있는 유연의 클리토리스에 손을 대고 동그랗게 굴려 주었다.
“준오 오, 빠. 안 돼, 아흑, 아, 아, 아!”
엉덩이를 흔들며 넋이 나가 겹쳐진 음부를 덜덜 떨며 경련하는 와중에, 그가 차 안에서 키스하던 인영이 눈앞에 떠올랐다. 달싹이는 하반신에 기분이 좋아 눈물이 나고, 그가 나 아닌 여자와는 키스하던 모습이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정신이 혼미해진 입가엔 침까지 흘렀다. 밉다. 너무 미워서 견딜 수가 없다. 너무 좋아서 견딜 수가 또 없다. 닿아 있는 몸과 닿지 않는 마음이 애달프고 고달픈데 아래는 흥건해서 더 비참했다. 악마가 깔아 놓은 나락 같았다. 준오가 동시에 배 위에 희멀건 것을 죽죽 쏘아 올렸다.
온몸이 애액과 정액에 절어 시트가 축축해질 때까지 밤이 멈추지 않았다. 준오는 이대로 그녀를 녹여 가져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기절한 그녀를 뒤에서 붙잡고 꼭 안아 자신의 몸에 감았다. 자신의 냄새가 진동하는 그녀의 목덜미를 깨물었다. 먹어도 먹어도 목마름이 해갈되지 않았다. 몇 번을 절정해 지쳐 물먹은 옷가지처럼 늘어진 그녀가 이젠 미동도 없이 숨만 쌕쌕 삼키다 잠이 들었다.
“…….”
새벽이 돼서야 정신이 들었다. 유연이 자신을 품에 안고 잠들어 있는 준오에게 몰래 입을 맞췄다. 그저 어린아이 같은 버드 키스인데, 온몸의 숨이 멈추는 기분이었다.
여러 번을 거듭해서 시달린 몸이 시큰거리는 와중에도 자신의 사랑이 눈앞에 반짝반짝 빛났다. 다른 여자와 키스하던 그에게 따지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며 머리카락을 쓸어 귀 뒤로 넘겨주었다. 작게 속삭여 말했다.
“좋아해. 오빠가 다른 여자랑 붙어먹어도 좋아해. 오빠가 나 안 좋아해도 좋아해.”
다시 조심스럽게 입술 위에 입을 올려 맞췄다.
“그래도 약속했으니까 전부 다 잊을게.”
눈도 코도 입술도 얼굴도 머리카락도 그 무엇 하나 잊지 않도록 담았다. 그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으며 다시 잠이 들었다.
“잘 잤어?”
“……응.”
아침에 깨어나니 준오가 눈을 떠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그가 정신없이 휘청이는 유연을 데리고 이그제큐티브 라운지에서 아침을 먹였다. 스크램블과 양송이 수프를 받아오고 유연이 좋아하는 자몽 주스를 가져와 올려주고는.
먹일 때만 세상 다정하지. 그 다정함이라도 아기 새처럼 살뜰히 받아먹으려 열심히 스크램블을 야금야금 집어넣었다. 그러면 또, 그가 삼킬 듯 바라보았다.
하고 나면 항상 게스트 룸으로 돌아가거나 자신을 방에 올려놓거나 했으니 같이 밤을 보낸 건 어쩌면 처음이었다. 밉고 사랑스럽고, 이제 만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목이 멘다. 집에 데려다주는 길,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착하니 내일 배웅은 나오지 말란다.
“얼른 들어가서 쉬어. 배웅은 주현이가 할 거니까 너는 오지 마. LA 도착하면 메시지 할 거야. 끼니 거르지 말고.”
차에서 내린 유연은 그렇게 사랑이 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무너져 내려 끝도 없이 그저 울고만 싶었지만, 지방의 부모님 집에 간 주현이 돌아올 시간이 멀지 않아 눈물을 참았다. 바야흐로 여름이었다.
* * *
밤의 테라스로 나가 받지 못한 사랑 대신 열대야를 삼켰다. 잠이 오지 않는다. 하루째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침대 위에 누워만 있는 유연을 바라보던 주현이 걱정스레 말했다.
“…그 새끼 배웅 가지 말고 내 동생 봐야 할 것 같은데.”
“나 진짜 괜찮아. 오빠 다녀와. 응?”
안쓰러운 눈을 하고 파리한 유연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최대한 빨리 돌아오겠다며 주현이 차를 끌고 나갔다. 다른 동료들도 환송하러 두어 명 나가 있다고 들었다. 화장실을 가서 거울을 보니 삐쩍 곯은 몰골에 눈은 팅팅 부어서, 정말 엉망인 모양이었다. 진짜 못 봐주겠구나, 나.
다섯 시 이십 분 비행기라고 했다. 어쩔 줄을 몰라 책상 앞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급하게 아무 옷이나 입고 모자를 눌러쓴 후 결국 택시를 잡았다.
“인천공항까지 가주세요.”
택시 아저씨는 이게 무슨 로또인가 하는 표정이었다. 헉헉거리며 공항을 뛰어 게이트 주변을 돌고 또 돌다가 멀리서 익숙한 인영을 발견했다. 주현과 친구들의 환송을 받으며 게이트로 들어가는 준오가 보인다.
그가 아쉬운 건지 뒤를 한번 돌아보고 잠시 멈췄다가, 이를 악무는 듯 애를 써 다시 고개를 돌려 들어간다. 가는구나. 그래도 마지막 모습 봐서 다행이구나 하고 모자를 눌러쓰고 이십 분째 눈물범벅으로 멍하게 공항 의자에 앉아 있는데, 주현이 다가와 차가운 녹차병을 툭 내밀었다. 내가 결국은, 여기 올 줄 알고 있었나 보구나. 우리 오빠는.
집으로 돌아올 때는 주현의 차에 타 마음껏 울면서 돌아왔다. 주현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이 기침 같은 사랑이 티가 나지 않을 리가 있나. 차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가는 길, 주현이 유연의 어깨를 감싸 안아 어깨동무를 하고 어깨를 툭, 툭 토닥여 주었다. 다 지나가리라는 듯이.
첫사랑이었다. 그렇게 유연의 첫사랑이 다른 땅으로 갔다. 유연은 그가 잘 도착했다고 보낸 메시지를 받자마자 그의 번호를 차단했다. 키스도 삽입도 해 주지 않고 내 전신을 발라 먹던 그 남자가 이제 이 나라엔 없구나.
어떤 이들에게 첫사랑은 독약과 같은 것이어서 2학기 개강 전까지 유연은 시체와 다름이 없이 지냈다. 한껏 걱정하던 부모님도 서울 집에 올라와 매일 유연을 돌보며 직접 음식을 만드실 정도로.
유연이 그나마 정신을 차리게 된 건 그가 떠난 지 한 달쯤 지나서였다. 자신에겐 언제나 자애로운 오빠가, 전화로 준오에게 버럭 화를 내는 것을 듣게 되었다.
“강준오, 이 처갈아버릴 새끼야. 내가 당장 LA로 날아가서 너 죽여 버릴 거야. 뭔 짓을 했길래 애가 너 가고 먹지도 못하고 자다 깨다 울고만 하고 있어? 일이고 뭐고 다 엎어 때려치울 거야. 동업자는 이제 다른 사람 알아봐…!”
그 모습을 본 후 유연은 그날부터 미음이 아닌 밥을 먹기 시작했다. 많은 것을 함께하며 대리직을 맡은 주현이 없으면 그가 많이 곤란해지리라. 새벽에 몰래 대부분의 것을 토해 내긴 했지만, 다음 날도 저녁밥을 먹고 다시 웃었다. 그러면서도 같이 밥을 먹던 주현에게 간절하게 말했다.
“오빠, 나 괜찮아. 그러니까 일 그만두지 마. 사이좋게 지내, 응?”
그녀에게 남았던 스무 살은, 더운 계절을 지나 겨울까지 가득 아팠다. 이젠 제가 너무 좋아하는 사랑은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서러우니 이젠 남의 사랑만 오독오독 받아먹으리라고. 그 겨울, 그렇게 마음을 차곡차곡 얼렸다.
스물한 살도, 스물두 살도 얼린 마음이 다 풀리진 않았지만, 어느 순간 그 살얼음 낀 냉기도 몸에 익어 사실은 이제 이게 비로소 자신이 아닐까 생각했다.
* * *
유연이 연애를 시작하게 된 건 스물셋 즈음이었다.
냉기를 감고 바스러진 표정으로 응대하는 유연에게 누구도 제대로 집적일 수 없었다. 마음의 시림을 어디 뱉을 곳이 없었고 그런 일이 있었다고 차마 다 말할 수 없어서. 아무에게도 마음이 가지 않아서 어쩌다 보니 큰 의지를 가진 것도 아닌데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다. 과 톱은 한 번밖에 못 했지만 차석 정도는 유지할 수 있었다.
처음 해본 연애는 새로웠다. 나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사람. 자신을 보기만 해도 얼굴이 벌게져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 봉사 점수를 따기 위해 들어갔던 대학교 연합 동아리에서 만난 그는 새침하고 냉정한 유연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일 년이 넘게 쫓아다녔고, 나중엔 점차 유연도 마음을 열었다.
준오만큼의 매력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점차 안정되는 마음을 느껴 그걸로도 좋았다. 사귄 지 일 년 반 정도, 권태기가 올 때쯤 너는 나를 사랑하진 않는다며, 그가 신입생과 눈이 맞은 복학생이 되어 떠나기 전까지 그럭저럭 잘 만났다.
졸업 후 유연은 반년간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유연의 어머니는 그렇게까지 열심히 안 살아도 되는데 너무 열심히 산다고 하셨다. 어쩌다 과 톱까지 했냐면서. 너네 오빠가 준오와 죽자고 벌이는 사업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물론 말만 그렇고 엄청 기뻐하시며 유연에게 방학 동안 유럽 여행이라는 포상을 선사하셨다.
부모님이 얼마나 열심히 밤낮으로 일하셨는지 안다. 금은방 정도였던 가게를 얼마나 고생해서 고급 혼수로 유명한 주얼리 브랜드로 올려놓으셨는지 남매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성실함과 어머니의 감각이 이뤄 낸 결과였다.
원래 지방 유지의 딸이었던 엄마는 부유한 친정을 뒷배로 두고 계셨다. 그러니 자식들에게 못 벌 것 같으면 건물 하나 줄 테니 월세나 받으며 살라고, 돈 있으니 결혼도 꼭 안 해도 된다고 하셨다.
그럼에도 타고난 듯 이 악물고 일하는 게 천성으로 보이는 오빠나 유연은 감사한 마음으로 거절했다. 그래도 들으면 언제나 마음이 든든했다.
휴학 한 번 없이 지쳐 있던 유연은 해외에 머무르며 취업 준비를 하다가 어느 대기업 통신사의 하반기 공채에 합격했다. 서비스 기획 팀 신입 사원이 되어 동기와 두 번째 연애를 하고, 이 년간의 연애 후 또 이별했다. 사람을 홀리는 얼굴을 가지고, 사실 너는 사랑을 할 줄 모른다는 말을 또 듣긴 했지만 그건 그냥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그렇게 보통의 스물여덟, 대리 진급을 앞둔 반유원 사원이 되었다. 썩 나쁘지 않은 인생이라 생각했다. 여기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