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 해피엔딩 (31/31)

C. 해피엔딩

“으음…….”

“……아. 나 때문에 깼습니까?”

“응, 근데 기분 좋으니까 더 만져 줘요.”

“미안합니다.”

“괜찮다니까. 나 거기 좋아요. 더 만져 줘.”

“여기요?”

“응…….”

“…….”

“귀도 만져 줘요…….”

“……여기, 점 있는 거 압니까?”

“귓불?”

“네. 뒤편에 있습니다. 작아요.”

“눈도 좋네. 그게 보여요?”

“당신 몸에 있는 건 다 잘 보입니다.”

“와……. 사랑의 힘은 물리 법칙도 이기나요…….”

“……그냥, 잘 보입니다.”

“그래요……. 나 졸려요. 그런데 기분 좋으니까 잠들 때까지 계속 만져 줘.”

“네, 계속 만져 드릴 테니까 주무세요. 아직 새벽입니다.”

“응. 네드도 잘 자요.”

쪽.

후기&트리비아

“안녕하세요, Lee입니다.”

“이 소설은 후기를 이렇게 써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 명이라 저와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걸 깨닫고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페이지 수를 확인하시고 대체 후기가 얼마나 긴 건지 당황하실 여러분들을 위해 미리 말씀드리면, 외전이 100원이고 후기는 공짜입니다. 원래 나태에는 외전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후기를 쓰고 싶은 나머지 이런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후기 덕분에 없었을 외전을 쓰게 된 셈이죠.

트리비아를 싫어하는 분들은 여기서부터 전부 나태와 관련되었거나 관련되지 않은 잡담이니 패스하기를 추천드립니다. 이 기다란 잡담은 여러분이 100원 주고 외전을 샀더니 덤으로 딸려 온 이상한 것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나태한 이성애자의 종말을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본편을 읽으신 분들이 여기까지 도달하실지 의문이네요. 꿀벌이 멸종해도 지구는 공전해야 하니 저도 독자님들이 여기까지 오시든 안 오시든 제 길을 가야겠지요.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면 정상입니다. 저도 모르겠으니까요.

나태는 저에게도 굉장히 실험적인 작품이었기 때문에 끝없이 잡담을 쓰고 싶었는데 이미 소설만으로도 말이 많잖습니까? 거기다 후기까지 말이 많으면 쟤는 대체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건가 싫어하실까 봐 후기를 썼다가 지웠다가 짧게 썼다가 길게 썼다가 했는데 막판에 묘안을 떠올렸습니다. 원래는 본편에 짧은 후기를 넣고, 그 글자수를 뺀 다음 가격 책정해 달라고 부탁드렸었는데 그냥 후기를 분권해서 외전을 좀 쓰는 게 낫지 싶더라고요. 본편에 들어가기에는 쓸모없는 잡담이 많기도 하고요. 이 생각은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에 떠올렸기 때문에 주문이 많은 요리점으로 편집부분들을 귀찮게 해 드렸습니다. 정말 죄송하네요. 진심입니다. 글자로 쓰면 죄송함이 잘 전달되지 않네요. 서글픈 일입니다.

나태는 처음 연재 사이트에서 연재를 시작했을 때, 당연히 출간을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일단 저는 제가 쓰는 게 뭔지도 헷갈렸거든요. 쓰는 동안 이건 소설일까, 희곡일까, 시나리오일까, 꽁트 스크립트일까 계속 고민했습니다만 제일 비슷한 게 레제 드라마였습니다. 소설처럼 읽히는 걸 목적으로 한 희곡. 저야 문과적 소양이 부족한 편이다 보니 정확히 정의 내릴 수 없겠지만 딱히 정의 내릴 필요가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세상이 천편일률적이면 재미없으니까요. 이상한 사람이나 이상한 작품도 한두 개쯤 있는 편이 버라이어티하고 좋지 않습니까? 아니면 어쩔 수 없고요. 사실 출간 작업 하면서도 계속 고민하긴 했습니다. 제가 무슨 소릴 들을까 봐 같은 게 아니라, 음, 나태가 생태계의 황소개구리 역할을 하지 말았으면 하는 걱정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냥 무념무상입니다. 모든 것은 되어야 하는 형태로 되는 거니까, 나태도 자기가 들어야 할 평가를 들으면서 살아가겠죠. 하나의 작품으로 세상에 공개되어 있는 한.

이상한 일이긴 합니다만, 소설 집필하는 입장에서 따졌을 때는 나태처럼 대사만 쓰는 것보다 서술을 넣은 일반적인 형식으로 쓰는 게 훨씬 쉽고 편합니다. ‘말’을 제외한 모든 감각, 시각, 촉각, 후각 같은 걸 간접적으로 표현해야 하니까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굳이 말로 꺼내지 않는 부분은 입으로 말하지 않으려고 하면, 한정된 조건 속에서 스토리 진행에 필요한 정보를 어떻게 대사만으로 암시하고 전달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차라리 서술로 보조 가능한 게 훨씬 쉽고 편하더라고요.

이 사실을 깨닫기까지 서술 없는 작품 하나를 완결 냈다는 건 제가 멍청하다는 증거일 수도 있겠습니다.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 보기 전에는 모르는 멍청함이겠죠. 하지만 그건 괜찮습니다. 경험으로 배운다고들 하니까 저도 경험으로 배운 셈 치겠습니다. 어쨌든, 전 아마 앞으로 나태 같은 글을 또 쓰지는 않지 싶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는데, 일단 쓰기 어렵고 두 사람의 성격과 공간적 배경과 가정 환경 같은 게 전부 맞물려서 단 두 사람으로 대부분의 스토리 진행이 가능한 이야기에만 쓸 수 있는 형식이더라고요. 둘 다 수다스러우면서 대화가 끊기지 않게 진행 가능한 배경을 공유해야 하고요. 그런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할 다른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으니 저의 실험 정신은 여기서 끝납니다.

또다시 웃기는 일입니다만, 나태는 처음부터 대사만 쓰려고 한 건 아니었습니다. 저는 나태 쓰기 전까지 세상에 레제 드라마라는 형식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 연재 시작했을 때 서술이 있는 인트로 부분까지 썼습니다. 텔레비전의 꽁트 같은 걸 생각하면 소도구나 무대 배경 등으로 보여 주는 설정이 인트로였죠. 이어지는 1화를 쓰면서 대사를 쭉쭉 썼는데, 쓰고 보니까 서술이 별로 없더라고요. 네드랑 새미가 너무 말이 많았어요. 다 쓰고 보니 1화에 서술이 단 한 줄이었고, 2화부터는 아예 사라졌습니다.

저도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써 보니까 안 이상하고 이야기가 진행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렇게 끝까지 서술 실종 상태로 썼습니다. 쓰면서 정말 즐거웠습니다. 원래 글을 빨리 쓰는 편이긴 한데 나태처럼 즐겁고 유쾌하고 빠르게 쓴 글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워낙 코메디를 사랑하다 보니 대부분의 소설에서 스토리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만담 주고받기가 등장하곤 하는데, 나태는 그 ‘만담 주고받기’가 모든 것인 이야기였으니까요.

제가 나태 쓰기 전에 연재한 글이 〈할리우드 스캔들〉이었는데, 사실 나태를 이렇게 쓰게 된 원인이 그 소설에 있었습니다. 〈할리우드 스캔들〉은 ‘할리우드 시리즈’의 연작입니다만, 앞서 출간한 시리즈들이 스토리에 중점을 둔 서술 중심의 이야기였던 것에 비해 〈할스〉는 제 안에서 시리즈의 쉬어 가는 이야기 같은 느낌으로, 러브 만담 코메디같이 지금껏 절제했던 개그 욕망을 터트린 소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걸로도 만족을 못 했죠. 아무래도 메인 스토리가 있는 소설을 쓰면 제가 원하는 것처럼 계속해서 만담만 주고받을 순 없거든요. 〈할스〉는 시리즈 다른 작품에 비하면 대사가 많고, 시트콤에 가까운 소설이었지만 소설적 완성도를 생각해서 결국에는 포기한 개그 씬이 많았고 결국 저는 〈나태한 이성애자의 종말〉로 욕구를 해소하려 듭니다.

그렇게, 모든 드립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드립만으로 이어 가는, 만담이 아이덴티티인, 그냥 코메디인, 그런데 BL인 이야기를 쓰게 됐습니다. 나태가 탄생할 수 있었던 건 할리우드 스캔들 덕분입니다. 거기서 밸런스 맞추느라 못 쓴 게 아쉬워서 손가락 쪽쪽 빨다가 못 참겠다 하면서 쓴 거라서요. 사실 읽는 독자분들 입장에서는 둘 다 더럽게 말 많고 시끄럽고 시도 때도 없이 서로를 말로 쳐 대는 놈들이 나오는 똑같은 계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의 마음은 제 작품으로 예를 들면 〈원 모어 퍼킹 타임!〉이 30퍼센트, 〈데드라인 할리우드〉는 20퍼센트, 〈할리우드 스캔들〉 50퍼센트, 〈나태한 이성애자의 종말〉 90퍼센트 정도입니다. 개그 욕구를 얼마나 발산했는지입니다. 100퍼센트 개그 발산하며 쓰고 싶은 걸 늘 참습니다. 소설은 꽁트 대본이 아니니까요. 그걸 아는 인간이 이렇게 쓰냐고 하신다면 대답할 말이 없군요. 스토리랑 상관없는 드립은 참으려고 노력하는데 노력한다고 마음먹은 대로 다 되는 거면 세상에 실패라는 단어가 필요 없었겠죠. 물론 예정보다 개그가 많아졌다고 실패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고요. 그냥 나름대로 참으려고 노력도 하고 조절도 해 보고 그렇게 살아간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다시 나태 이야기로 돌아가면, 저의 아메리칸 조크에 대한 사랑은 결코 식지 않는 피닉스의 뭐시기 같은 겁니다. 죽어도 죽지 않고 꺼도 다시 붙나 봅니다. 그런데 대사밖에 못 썼기 때문에 새미와 네드의 개그는 영국 스타일에 가까웠습니다. 비아냥거리고 비꼬고 둘러말하고 그런 점에서요. 미국은 좀 더 직설적이고 바보 같은 느낌이 있는데 둘 다 엘리트에 머리 쓰는 타입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저는 〈덤 앤 더머〉 같은 개그 스타일도 싫어하진 않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잔인한 풍자 코메디를 좋아해서 만화를 보는 편인데 한국 정서에는 안 맞는지 제가 사랑하는 것들은 소수의 마니아층에게만 인기가 있더라고요. 〈사우스 파크〉 같은 거요. 저는 너무 좋아한 나머지 회사 동료들 모아서 상영회도 하고 DVD도 모으고 있습니다. 일본 친구들도 별로 안 좋아하더라고요. 〈심슨 가족〉도 좋아하는데 〈패밀리 가이〉는 별로고, TV 시리즈로는 〈IT 크라우드〉를 좋아해서 이것도 DVD 박스 가지고 있고, 〈빅뱅 이론〉도 좋아해서 블루레이 박스 가지고 있습니다. 시즌 8까지. 〈알파 하우스〉 같은 정치 코메디도 좋아하는데 시청률 때문인지 시즌 2에서 잘려서 블루레이 가지고 이따금 돌려 봅니다. 〈알파 하우스〉를 사랑합니다. 그런데 불편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공화당 상원 의원 코메디거든요. 그 외에도 일본 코메디 만화 중에 〈더 월드 오브 골든 에그스〉라는 게 있는데, 〈푸콘 가족〉을 2D화해 놓은 것 같은 비주얼의 진짜 이상한 게 있거든요. 이것도 좋아해서 DVD 모았는데 〈우사빗치〉같이 귀엽고 잔인한 블랙 코메디도 좋아하고 〈해피 트리 프렌즈〉 같은 것도 좋아하고 그렇습니다. 저는 스플래터 블랙 코메디는 대부분 좋아하기 때문에 국가도 안 가리고 장르도 중구난방하고 특별히 통일성 없이 다 잘 주워 먹습니다.

제 개그가 취향이신데 거기서 더 하드코어한 스플래터까지 수용 가능하시면 제가 추천한 작품들이 괜찮을 겁니다. 전부 하드코어하진 않습니다. 일부는 잔인하지 않은 대신 정신 나간 정치인이나 정신 나간 너드 같은 게 메인이거든요. 기본적으로 불편한 코메디가 많기 때문에 익숙지 않으시면 기분 나쁠 수도 있으니까 꼭 엄청 추천한다는 건 아니고, 그냥 세상에는 이렇게 다양한 코메디가 존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전 스탠딩 코메디 같은 것보다 스토리텔링된 시리즈물을 더 좋아해서 만화나 TV 시리즈를 좋아합니다. 메인이 코메디인 것들이 좋죠. 다른 메인 요소가 있는데 거기 코메디가 가미된 건 별로거든요. 다만 제가 좋아하는 코메디적 웃음이 터지고 날아가는 과격한 것도 있지만 시추에이션 자체나 아이러니함, 사회 문제 같은 걸로 쓴웃음을 만들어 내거나 웃어야 할지 웃으면 안 될지 애매한 블랙 코메디도 굉장히 좋아해서 정말이지 남에게 추천하기 어려운 작품들뿐이네요. 그나마 〈빅뱅 이론〉과 〈사우스 파크〉가 대중적입니다.

언제나 목마른 오타쿠다 보니 언어도 안 가리고 작품 국적도 안 가리고 그냥 막 가져다 봅니다. 재밌는 건 다 좋아해요. 코메디처럼 웃기는 재미있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냥 제가 잘 모르는 제3의 집단에 관심 가지고 관찰하는 게 취미라 다양하게 좋아합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제일 많이 보는 게 다큐멘터리고요. 제 DVD장은 다큐멘터리로 미어터집니다. 아마 레어한 절판본도 많을 겁니다. 특히 패션계 다큐는 시중에 나온 건 거의 다 가지고 있지 싶습니다. 이상한 점은 그런 걸로는 의외로 소설을 안 쓴다는 겁니다. 소설 쓰려고 보는 게 아니라서인 것 같긴 한데, 그냥 흥미로워서 모으고 보고 그렇구나 끄덕끄덕하면서 지나가는 게 더 많습니다.

제일 최근에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나온 시리즈물인데 〈Lock down〉이라는 미국 감옥 내부 이야기 다큐멘터리 DVD 모아서 보고 있는데 재밌습니다. 이거 말고 그냥 제일 좋아하는 다큐는 디스커버리에서 나온 베어 그릴스의 〈인간VS자연〉인데, 제가 이 사람이 치는 영국식 드립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보고 있습니다. 제 소설 안의 영국식 드립 좋아하는 분들게 강력 추천합니다. 오지 탐험―서바이벌―이라서 징그럽고 지저분합니다. 먹으면 안 될 것 같은 것―그러나 식용 가능―들을 많이 먹으니까 조심하시고요. 아마존 특별판 DVD 엄청 싸요. 여기 빠져서 베어 그릴스 출신 영국 육군 특수 부대인 SAS에 들어가 〈브라보 투 제로〉―걸프전 당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전 SAS 대원의 저서― 읽고, 〈노 이지 데이〉―네이비 씰의 오사마 빈 라덴 암살 작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씰 대원의 저서― 읽고 〈Ultimate force〉―SAS 부대가 주인공인 영국 TV 시리즈― DVD 구해서 사 보고 더 이상 만족스러운 작품을 찾을 수 없어져서 거기서 끝난 기억이 나네요. 저는 사실 픽션보다 에세이와 다큐를 좋아합니다. 보통 현실이 더 흥미로우니까요. 픽션은 놓치는 부분도 많고. 제가 흥미롭게 느끼는 디테일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런 건 발견하기 전까지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니까 많이 보고 뭐가 다른지 뭐가 같은지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려고 더듬이를 세우고 삽니다. 안테나인가요. 뭐든 상관없겠죠.

제 코메디에 자주 등장하는 종교 이야기를 하면, 사실 전 불가지론적 무신론자입니다. 종교를 싫어하거나 부정하는 쪽은 아니고, 그냥 사람 관찰이 재밌는 것처럼 그 한 부분으로 재밌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살아가는 데 하등 쓸모없는, 몰몬교의 혼전 섹스는 삽입하고 안 움직이면 OK고 그 행위를 ‘Soaking’이라고 한다든지 사이언톨로지라는 수상한 사이비 종교가 문제라는 등의 이야기 같은 걸 기억해 둡니다. 따져 보면 제가 몰몬과 사이언톨로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사우스 파크 때문이고 유대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할리우드 덕질 때문이고 천주교나 개신교―사실 이 두 가지의 차이를 잘 아는 건 아닙니다―는 그냥 숨 쉬듯이 존재하는 것 같아서 스테레오 타이핑으로 자주 등장하니 조금씩 들어오는 정보를 기억하게 됐는데, 기본적으로는 다 잘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쓰면서 틀리지 않으려고 제가 아는 게 맞는지 확인도 하고 나름대로 주의하는 편입니다. 또 예민한 부분이기도 하고요. 기본적으론 호기심과 어느 정도의 흥미, 애정을 기반으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관심 없으면 아예 언급도 안 할 테니까요.

그 외에도 제가 가지고 있는 코메디 원칙 같은 게 있긴 한데 글자로 쓰긴 어렵네요. 예를 들면 ‘게이 농담을 할 수 있는 건 게이인 캐릭터뿐이다’, ‘유대인은 유대인을 욕해도 된다’, ‘부자나 권력자는 까도 된다’ 같은 게 있겠습니다. 세세하게 들어가면 그 소재별로 디테일하게 신경 쓰는 게 많은데 당연히 저는 읽는 분들이 웃어 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쓰는 거라서 인물 설정부터 시작해 코미컬한 상황이나 대화 전반적으로 읽으며 불쾌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편입니다.

다만, 제 취향 자체가 껄끄러울 수 있는 블랙 코메디를 좋아하다 보니 그 주의를 기울이는 노력이 이상한 방향이 되었죠. 예를 들면 가족들의 목을 따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새미는 인간쓰레기니까 주변 사람들이 새미를 공격해도 상쇄 효과로 딱히 새미가 가엾거나 당하는 게 불쌍해 보이지 않는 종류인데, 이런 것도 말로 설명하면 어렵네요. 그냥 블랙 코메디를 어느 정도 중화해 전달하기 위한 밸런스 패치를 언제나 고민하며 쓴다는 이야기입니다. 수위를 낮추고 싶지는 않으니까 전체적으로 쓰레기 평준화를 하는 편입니다.

나태 같은 작품을 쓰게 만든 저의 지극한 코메디 사랑을 끝없이 늘어놓고 싶은데 희박한 양심이 그만하라고 하네요. 갑자기 생각나서 이것만 말하면, 사실 전 단체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야구든 축구든 풋볼이든요. 개인전은 좋아합니다. 단식 테니스 같은 거. 단체전은 별로고 스포츠 자체도 굳이 따지면 썩 좋아하진 않는데 소설 쓸 때는 왕왕 넣습니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스포츠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재미있어서요. 사실 기본적으로 저는 뭘 좋아하는 것보다도 뭘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게 있습니다. 예를 들면 톨킨 작품은 적당히 괜찮은데 톨키니스트는 재밌어 보인다거나. 이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도 제가 왜 그런 식으로 좋아하는지 잘 모르거든요.

새미랑 네드 이야기는 쓰려고만 하면 끝없이 만담만 시켜도 될 것 같아서 적당하다 싶은 곳에서 일단락했습니다. 책의 여백이 부족하므로 옮기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하면 너무 페르마 따라 한 티가 날까요. 나겠죠. 괜찮습니다. 외전은 그냥 생각난 걸 썼는데 쓰고 보니까 또 더 쓰고 싶고. 늘 그렇지만 저는 모든 이야기를 끝없이 쓸 수 있기 때문에―만담만 하니까― 얘들이 계속 수다 떨게 만들고 싶은 한편, 저도 힘드니까 이쯤에서 그만둬야지 싶기도 하고. 끝이란 참 복잡한 겁니다.

원래 새미네 패밀리와 네드의 인사 자리에서 벌어진 이야기나 약혼식 에피소드 같은 것도 쓰고 싶었는데 그 부분은 등장인물이 많아서 일단 포기했습니다. 이 형식으로는 세 명 이상이 등장하면 아무리 특색 있게 써도 머릿속에 들어오게 딱딱 나누기가 어렵더라고요. ‘새미 : 안녕, 친구들?’ 같이 이름을 붙이지 않는 이상은요. 이름 붙이긴 싫으니 일단 패스입니다.

이 친구들 이야기 쓰는 게 재밌어서 더 쓰고 싶긴 한데 일단 세상에 내보내 놓고 소설로 받아들여지나 좀 지켜본 다음에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만약에 그런 이야기를 쓴다면 외전이라기보다는 시즌2를, 둘이 연애하는 동안의 이야기와 결혼하고 네드가 마피아 패밀리에 편입, 어둠의 사업가가 되는 이야기 같은 걸로 써 보고 싶네요. 쓰지도 않으면서 말은 잘하죠. 일단 얘를 세상에 내보낸 다음 생각하기로 하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요즘은 전자책에선 후기가 사라져 가는 추세인 모양입니다. 저도 2년 전에 출간했던 작품들이 후기가 더럽게 길어서 들은 말이 있기 때문에 좀 고민하다가, 이렇게 분리형 후기를 선택해 봤습니다. 쓰고 보니까 영양가 있는 이야기는 아니라 여전하고 징하다 싶네요. 하지만 저는 책 사면 후기를 늘 즐겁게 읽습니다. 즐겁게 읽은 책에 한해서요. 그러니까 나태를 즐겁게 읽은 분들이 이 후기를 즐겁게 읽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영화로 따지면 코멘터리라기보다는 메이킹 특전 영상 같은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특전은 그냥 주는 거면 뭐든 다 좋아하기 때문에 저는 그런 게 길수록 좋아합니다.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나으니까요. 그냥 주는 거면.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상한 점이 많은 작품을 선택해 주신 여러분들께 언제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겠습니다. 여러분이 이 책을 읽으면서 한 번이라도 웃으셨다면 저는 성공한 인생입니다. 물론 안 웃으셨다고 제 인생이 실패하진 않겠지만요. 어쨌든 웃어 주셨으면 좋겠네요.

마지막으로 여러분들께 부탁이 있다면, 이 소설은 좀 이상하다 보니 저도 읽어 주신 분들이 어떻게 읽으셨나 궁금해서 좋은 이야기든 그렇지 않은 이야기든 가감 없이 적어 주고 가시면 정말로 감사할 것 같습니다. 사실 전 어머니와 아버지를 들먹이는 유의 이야기만 아니면 독자님들의 소설에 대한 감상은 다 즐겁게 읽습니다. 내용이 어떻든 읽는 것 자체가 재미있으니까요. 저는 다른 사람 의견 따라 제 사고방식이나 행동 양식이 바뀌는 사람은 아니라서 어디까지나 흥미 본위로만 읽거든요. 또 저와 제 소설은 같은 자아를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좀 치셔도 제가 타격을 입진 않으니까 걱정 없습니다. 다른 소설에선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데, 나태는 아무래도 100퍼센트 코메디&대사다 보니 읽으신 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셨을지 궁금하네요. 사실 제일 궁금한 건 대사밖에 없는 씬을 읽은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셨을까인데 너무 노골적이네요. 하지만 여러분도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씬이 대사밖에 없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즐길 수 있기는 할까……. 뭐 그런 것들이요. 제가 썼지만 참 이해할 수 없네요. 세상은 불가해한 것들이 더 많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겠죠. 다 쓰고 보니 길고 장황하게 때려 달라는 부탁을 하는 변태 같네요. 부탁의 좋은 점은 안 듣고 거절해도 된다는 점일 겁니다. 여러분도 그래 주세요. 저도 그렇게 삽니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의 자유 의지를 존중하는 삶을 삽시다. 그럼 헛소리는 이쯤 하겠습니다. 아, 마지막으로 네드가 새미보다 연하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웃음과 무운이 함께하기를.

― 장래 희망 웃음 테라피스트, 수다쟁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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