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 쉬운 남자
“뭐야, 진짜 살림을 차렸잖아? 아예 여기 들어와서 사는 건가?”
“오래간만입니다, 렉스. 네, 아무래도 같은 건물에 집이 두 채면 왔다 갔다 하기 귀찮으니 제 집은 정리하고 자기 집으로 들어오라기에…….”
“하기애, 펜트하우스가 제일 넓긴 하지.”
”네. 그리고 서류는 준비해 뒀습니다. 가지고 나올까요?”
“에디! 가족 모임 이례로 처음인데 그렇게 나오면 섭하지. 잠깐 들어가서 차라도 한잔하는 건 어때?”
“일단 들어오시죠.”
“오, 진짜 깨끗한데? 새미는? 집 안에 있을 텐데 왜 얼굴도 안 비쳐?”
“아직 잡니다. 이 시간엔 안 일어나서 그냥 내버려 뒀습니다.”
“잘했어. 깨워 봤자 복장 뒤집어 놓는 소리만 지껄여 대겠지. 그건 그렇고, 그 녀석 생활 패턴은 여전하네. 둘이 어떻게 잘 지내나 봐?”
“샘이 지내기 어려운 사람은 아니니까요.”
“흠.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지만 객관적인 시선으로 따져서 새미 걔가 데리고 살기 쉽지는 않잖아?”
“그……, 렇습니까?”
“아. 그래. 그쪽도 살짝 문제가 있었지. 하기야, 걔한테 청소하라고 시키는 게 아니라면 오히려 수발 들어 주는 대로 하나도 거절 안 하고 전부 받아먹으면서 잘 지낼 만한 놈이긴 해.”
“뭐……. 비슷하긴 합니다.”
“사실 걔 옆에서 오래 버틴 사람이 별로 없거든? 새미가 좀 그렇잖아. 반반해서 잠깐 가지고 놀긴 나쁘지 않지만, 데리고 산다고 생각하면……. 끔찍하지. 제 손으로 하는 것도 없으면서 자기 싫은 건 죽어도 안 하려고 들어요. 아주 사람 환장하게 만든다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꼭 살아 보신 것처럼 말합니다……?”
“……그야 당연히, 형제니까?”
“아. 네. 그러고 보니 그랬죠. 너무 안 닮아서 그만…….”
“저기, 나도 새미 같은 거랑 묶이고 싶지 않거든? 꼭 전 애인 쳐다보듯 하지 말아 주겠어?”
“죄송합니다.”
“됐어. 서류는?”
“말씀하신 건 검토 끝냈습니다. 저번에 통화로 이야기했던 것처럼 기밀 문제도 있고 결정권자가 애매해지니 전문 경영인이라는 형식으로 절 고용하는 편이 나을 듯싶은데, 시기는 조율해야 합니다. 병원 일이 있으니까요.”
“우리도 졸속으로 진행해야 할 만큼 급한 건 아니니까 그 정도야 문제없지. 돈한테도 그렇게 전달할게.”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이것만 챙겨 가면 되나?”
“네. 그리고 다음부터는 직접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람을 시켜도 되고, 또 팩스라는 게 있으니까요.”
“아니, 이번엔 그냥 내가 궁금해서 오겠다고 한 거라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렇습니까.”
“새미가 누구한테 정착한다니까 신기해서. 걔 이 넓은 펜트하우스에서 몇 년이나 혼자 처박혀 살았는지 알기나 해? 진짜 경악할 수준이었거든.”
“다소 경악스러운 사람이긴 하죠.”
“어쨌든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다행이긴 하네. 우리도 이제 한 가족인데, 크리스마스나 추수 감사절 아닐 때도 애 데리고 가끔 놀러 와. 어머니랑 아버지도 내심 기대하고 있어.”
“가끔 찾아뵙겠습니다.”
“그럼 가 볼게. 새미 깨면 안부 전하고.”
“아, 렉스. 그…….”
“응?”
“그게…….”
“뭔데? 어디 은밀하게 조지고 싶은 새끼라도 있어?”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대체 당신들 형제는 왜 사고가 금세 그런 곳으로 튀는 겁니까?”
“뭐?! 새미 그게 너한테 사람 조져 준다고 해?! 그 게으른 놈이?!”
“……지금 놀라야 할 포인트가 그 부분이 아니잖습니까.”
“그래서, 뭔데?”
“그게……. 혹시 샘의 주량이 얼마나 되는지 압니까?”
“술 말이야?”
“네. 이따금 같이 마시는데 한 번도 취한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얼마나 마셔야 취하는 건지 궁금합니다.”
“왜? 걔 취하게 만들어서 뭐 하려고?”
“아, 아무것도……. 딱히 뭔갈 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냥, 취하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괜히 의심스럽게 왜 말을 더듬고 그래? 뭐, 걔의 생태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긴 하지. 근데 걔 술로 취하게 만들려면 밤새도록 들이부어야 하니까 괜히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병원 끌고 갈 거 아니면 그냥 포기하는 게 좋을걸.”
“그 정돕니까?”
“어. 우리도 궁금해서 취할 때까지 마시게 만든 적 있는데 취하는 꼴 보기 전에 쓰러져서 구급차 부르고 난리 났었잖아.”
“…….”
“그냥 취한 모습이 보고 싶은 거면, 차라리 약 같은 걸 구해다 술에 타.”
“네?”
“약 타라고. 마약. 아니면 둘이 즐기기엔 발정제 같은 게 좋나? 필요해? 구해 줄까?”
“……아뇨, 됐습니다. 범죄를 저지르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주사 같은 게 궁금했던 것뿐이라서요.”
“나 참. 그게 왜 범죈데?”
“그, FDA의 승인을 받지 않은 약을 몰래 타는 건 일반적으로 따졌을 때 범죄 행위가 된다고 생각합니다만……?”
“아니, 누가 몰래 타래?”
“네? 몰래 타는 게 아니면 어떻게,”
“새미 보는 앞에서 약 집어넣고 이거 좀 마셔 달라고 부탁해. 걘 그런 거 거절 안 해.”
“…….”
“진짜야. 한번 해 보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