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4/31)

안녕, 그리고 물고기들은 고마웠어요.

So long, and thanks for all the fish.[111]

“샘, 반지는 제가 준비해도 됩니까?”

“갑자기 무슨 반지요?”

“일단은 약식으로나마 약혼반지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차피 당장 결혼할 건 아니잖습니까?”

“아, 그렇긴 하죠. 그런데 지금 거기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어째서입니까?”

“난 당분간 네드한테 목매다는 척하느라 바쁠 예정이거든요.”

“……네?”

“생각을 해 보세요. 만약에 내가 벌써 네드를 함락했다는 걸 알게 되면 그 귀찮은 치들이 과연 날 내버려 둘까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를 따져 보면 그럴 것 같기는 합니다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목매다는 척을 하겠다는 말씀입니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면 맨해튼에서 제일 잘나가는 병원 경영자를 패밀리에 데리고 갈 테니까 진득하게 기다려 보라고 통보해야죠.”

“그것참, 사실인 듯 거짓말인 듯 애매한 표현이로군요.”

“어차피 내가 남자를 데리고 가면 돈 자리는 물 건너간 거니까 급할 것도 없고요.”

“남자가 배우자면 돈이 될 수 없습니까?”

“글쎄요? 그런 법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전례가 없으니까 모르겠네요. 하지만 된다고 해도 하기 싫어요. 동성 배우자를 가진 돈이라니. 그 마초 세계에서 1년만 목숨 부지해도 대단한 걸걸요?”

“동성애자인 게 목숨까지 걸어야 할 일이라니, 21세기에 그래도 되는 겁니까?”

“너무 상처받지 말아요. 네드가 정상이고 마피아 사회는 비정상인 거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질 거예요.”

“확실히 그렇기야 합니다만.”

“우리 패밀리 안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보다는 보수적인 패밀리의 표적이 될 확률이 높은 것뿐이에요. 마피아라는 이름에 오물을 던졌느니 뭐니 꽥꽥대겠죠. 그 단어가 원래 더러웠다는 건 생각도 못 하는 머저리들이니까요.”

“그럼 당신 가족들은 내가 남자라는 건 걸고넘어지지 않는 겁니까?”

“당연하죠! 설마 그런 걱정을 하고 있었어요?”

“그야……, 얼마 전까지 약혼녀도 있었던 사람이고, 또 마피아에, 가톨릭이니까요. 보통은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페이스 타임으로 고해 성사 하는 걸 보고도 그런 사소한 걸 걸고넘어질 거라는 생각을 했다니, 네드도 참 대단하네요.”

“……고해 성사를 페이스 타임으로 했습니까?”

“그럼 온라인 고해 성사가 어떻게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신성 모독적이라 당황스럽군요…….”

“괜찮아요. 내 가족들 중에는 내가 살아 숨 쉬는 것 자체가 신성 모독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런 말까지 들었으면서 고칠 생각을 않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 보면 대단한 것 같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까 네드는 모르죠? 내가 싫어하는 신부 놈의 비밀.”

“새미, 당신은 하다못해 신부님의 비밀까지 캐고 다닙니까?”

“그건 제가 캐고 다닌 게 아니라서 대답하기 어려운데, 일단 들은 다음 네드가 판단해 볼래요?”

“뭡니까, 그 비밀이란 게?”

“제가 싫어하는 신부 놈은 제 형이에요.”

“……네?”

“마흔두 살이지만 아직도 〈스타워즈〉를 보죠.”

“……뭐라고요?”

“레고도 수집해요. 한정판에 눈이 돌아가는 걸 보면 주님의 가르침을 얼마나 무시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요. 한정판이라니까요? 네드도 밤새 충혈된 눈으로 이베이[112]를 쳐다보면서 경매가를 가지고 주님을 외쳐 대는 꼴을 보면 종교에 대한 불신이 생길 거예요. 저런 것도 어린양으로 품어 준다는 점에서 주님의 자비로움을 깨닫기 위한 존재라고 한다면 나름대로 납득 가는 구석은 있지만요.”

“…….”

“아, 물론 저는 신부 놈의 존재를 주님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신부 놈이 그 모양인 게 주님의 잘못은 아니니까요. 그걸 낳아다 키우기까지 한 내 부모님 잘못이라면 모를까.”

“……그렇군요.”

“어쨌든, 전 그놈이 싫어요. 참고로 나한테 존재 자체가 신성 모독적이라고 한 건 신부 놈이 아니라 조지나예요. 가족들이 나만 보면 주님을 찾는다고 했잖아요? 그 대표 격인 신실한 첫째 누이죠.”

“그렇게 신실한 가족 사이에서 당신 같은 사람이 태어난 것도 그렇고, 그렇게 신실한 가족이 마피아 가계라는 것도 그렇고, 정말이지 세상에는 놀라운 일이 가득한 것 같습니다.”

“그렇죠? 사실 난 인간적으로 자립하지 못하고 자꾸 주님을 찾는 게 나쁜 거라고 생각하긴 해요. 종교는 어디까지나 마음의 평안을 얻는 데 도움이 되는 거지, 짜증 나는 동생을 매도하는 데 이용하기 위해 존재해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짜증 나는 동생이라는 자각이 있는 건 둘째 치고, 가족들에게 매번 주님을 찾게 만드는 쪽이 나쁘다는 생각은 안 하는 겁니까?”

“네. 바쁜 주님을 괴롭히는 건 내가 아니라 그 사람들인걸요.”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습니다.”

“어쨌든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겠죠? 네드는 내 가족들에 대해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어차피 그 사람들은 네드가 뛰어난 경영자기만 하면 여자든 남자든 거인족이든 소인족이든 상관 안 할 거거든요. 사실 남자에 거인족쯤 되면 아주 좋아할 거고요. 세 보이니까요. 다들 마초이즘에 찌들어 있거든요. 누가 마피아 아니랄까 봐.”

“잘 알았습니다. 당신 가족은 대체로 당신에 대한 평가가 박하고 당신 인생을 어떻게든 뒤틀고 싶어 하기 때문에 남자와 사귀고 결혼까지 하겠다는 게 굉장히 즐거운 일일 거라는 뜻이로군요. 이해했습니다.”

“과연, 내가 고른 남자답네요. 완벽해요!”

“칭찬 같지 않은 칭찬 감사드립니다.”

“천만에요.”

“하지만 새미, 그래도 반지는 사고 싶은데 우리끼리 끼는 것도 안 됩니까?”

“몇 달 뒤에나 효용이 생길 약혼반지를 굳이요?”

“아직 작업 중이라는 거짓말로 몇 달씩이나 시간을 끌 생각이었습니까?”

“그야, 가능한 한 늘어지게 사는 게 제 목표다 보니……? 핑계도 좋겠다, 최대한 길게 누리는 게 좋잖아요?”

“그렇습니까…….”

“뭐, 반지가 그렇게 가지고 싶다면 사 오세요. 손가락에 금속 하나쯤 추가된다고 불편할 것도 없을 텐데요, 뭘.”

“감사합니다. 당신 손에 잘 어울리는 걸로 고르겠습니다.”

“마음대로 하세요. 아, 그건 그렇고 네드.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나중에 가족들한테 네드를 커밍아웃시킬 생각인데 괜찮아요?”

“……게이라고 말입니까? 그건 너무 당연하고 새삼스러워서 커밍아웃 거리도 아닌 것 같습니다만. 절 아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고, 또 병원 사람들도 모두 알고 있고, 아마 환자들 중에도 아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아뇨, 그거 말고. 강박증요.”

“아…….”

“가족들이 귀찮게 굴면 네드가 감금해서 못 나간다고 할 수 있잖아요? ……와, 생각하면 할수록 좋은데요? 어때요? 어차피 한 가족이 되는 거고, 명절 정도는 만나야 할 텐데 서로 알고 있는 편이 편하지 않겠어요?”

“제 강박증까지 본인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용하려 드는 면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만……,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로군요. 그것도 크게 비밀로 하고 있는 건 아니니 괜찮습니다.”

“좋아요!”

“그럼 당분간은 이렇게 지내는 겁니까? 그, 연애하는 것처럼 지냅니까?”

“‘하는 것처럼’이 아니라 연애죠.”

“……좋습니다.”

“알아요, 나도. 네드가 나 좋아하는 거. 그러니까 인생까지 맡겨 준 거잖아요?”

“그렇기는 하죠.”

“그럼 모쪼록 내 평생을 잘 부탁할게요.”

“저야말로.”

Outro. EVER AFTER

몇 달 뒤.

“네드,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요.”

“……그건 별로 도움이 되는 조언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겨우 가족들이랑 만나는 것뿐인데요?”

“당신 가족은 칼을 들고도 온건한 내 가족과 달리 칼로 무시무시한 짓을 하는 족속들이잖습니까?”

“그렇게 따지면 내 가족이 든 건 칼이고 네드네 가족이 든 건 메스잖아요? 용도가 다른데요?”

“……토할 것 같습니다.”

“마피아들이라 비위생적일까 봐요?”

“긴장 때문입니다!”

“하긴, 미래의 배우자의 가족과 첫 대면을 하는데 더러워서 토했다고 하면 아무래도 듣기 좋지는 않죠?”

“계속 이 지경이면 더러운지 깨끗한지 상상할 여유도 없을 것 같습니다…….”

“큰일이네요. 이제 곧 도착인데 진정제라도 먹을래요?”

“……차에 진정제를 구비하고 있습니까?”

“아뇨, 진정 효과가 있는 마약인데요.”

“…….”

“한 대 말아 피울래요?”

“……누가 마피아 아니랄까 봐, 이런 데서까지 꼭 티를 내야 합니까?”

“네드. 생각을 해 봐요. 내가 아티반[113]이나 자낙스[114] 같은 걸 처방받아서 들고 다닐 리는 없잖아요? 테라피스트를 찾는 것도 귀찮아서 여기까지 왔는데?”

“저는 본인 가족을 만나러 가는데 그런 걸 권하는 당신의 신경 줄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구시렁대지 말고 큰 소리로 말해요. 필요해요, 안 필요해요?”

“……됐습니다. 그냥 심호흡이나 하겠습니다.”

“라마즈 호흡 해도 괜찮아요.”

“긴장밖에 낳을 게 없다고 언젠가 말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군요.”

“지금은 다른 것도 낳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설마 지금 한 그거, 야한 말입니까?”

“그럼요. 우리 엄청 해 댔는데, 그 정도면 애가 생길 수도 있는 거 아닐까요?”

“아시겠지만, 전 남자고 임신은 신체 구조학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나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인과 관계를 따지면 애는 제가 아니라 당신이 낳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렇긴 하네요. 그럼 애 생길 때까지 열심히 씨 뿌려 봐요. 내가 허락해 줄게요.”

“왜 갑자기 이야기가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네드가 쓸데없이 긴장하니까 그런 거죠.”

“또 제 탓이로군요.”

“확신은 없지만 지구 온난화, 기아, 전쟁, 전염병, 모든 게 네드 탓일 수도 있어요.”

“새미, 당신은 당신 배우자가 죽어 마땅한 빌런이 되는 게 그렇게 행복합니까……?”

“행복하기보다는 즐겁죠.”

“……네, 뭐, 알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그런 사람인 거.”

“아, 다 왔네요.”

“…….”

“뭐 해요, 얼른 내리지 않고서?”

“……안 내리는 거 아닙니다. 안전벨트가 절 붙잡고 놔주지 않는 것뿐입니다.”

“네드, 얼굴이 파래요.”

“긴장해서 그렇습니다.”

“프랑켄슈타인도 아니고 왜 파래지는 거예요? 하얘지는 걸로도 충분하잖아요.”

“아주 많이 긴장해서 그럽니다.”

“어쩔 수 없네요. 내가 손잡아 줄까요?”

“……네.”

“그럼 손잡고 같이 들어가요.”

“……그것참 고맙습니다.”

“뭘요. 이제 정말로 부부가 될 건데 이 정도를 가지고.”

딩동.

“엄마, 아빠, 나 왔어요!”

- 나태한 이성애자의 종말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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