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23/31)

프로포즈 성공

“하아, 하…….”

“……하. 샘, 새미……? 괜찮습니……,”

“이 결혼 물러요.”

“……네?”

“내가 씨발, 몇 번이나 살살 하라고 말했잖아요?”

“네?”

“천천히 하라고도 했고, 잠깐 멈추라고도 했고, 이상한 것 같으니까 떨어져 보라고도 했어요.”

“네, 저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시키는 대로 했던 것 같…… 습니다만?”

“…….”

“당신이 시키는 대로 천천히, 멈췄고, 떨어졌습니다.”

“…….”

“……아주 잠깐이었지만.”

“네드, 혹시 발정기 짐승이에요?”

“…….”

“그런 게 아니면 설명이 안 되잖아요.”

“……그,”

“변명하지 마세요. 일단 우리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걸로 해요. 이런 걸 어떻게 평생 버티라는…….”

“걱정 마세요, 새미. 다음번엔 반대로 하면 되는 거니까요. 그럼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을 겁니다. 당신은 똑똑하니까 이제 어떻게 하는 건지 알게 됐잖습니까? 게다가 싫어하지는 않으셨잖습니까?”

“확실히 그렇기는 하지만. 이건 내 생각이랑 너무 다른데요? 좋은 건 좋은 건데, 너무 하드한 것 같기도 하고…….”

“저는 좋았습니다. 정말로요.”

“……그래요?”

“네.”

“뭐, 그렇다면야……. 일단 난 너무 피곤해서 자야겠어요. 설마 나한테 또 샤워하고 오라는 건 아니겠죠?”

“걱정 말고 주무세요. 제가 해 드리겠습니다.”

“……뭐라고요?”

“주무시면 제가 알아서 씻겨 드리겠습니다.”

“아……, 네…….”

“좋은 꿈 꾸세요.”

“힘들어서 못 꿀 것 같지만, 네. 노력은 해 볼게요.”

불편을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109]

“안녕, 네드?”

“일어나셨습니까?”

“네. 그런데 생각보다 몸이 찌뿌뚱하네요.”

“아, 씻고 싶으신 거면 제가 옮겨 드리겠습니다. ……씻겨 드릴까요?”

“됐어요. 내가 네드처럼 일어나자마자 샤워하고 싶어 하는 사람 아닌 거 알잖아요?”

“…….”

“불만 있어요? 어제 힘들어 죽겠다는 사람 욕실에 빠트려서 개 목욕시키듯 해 놓고서, 안 씻는다니까 불만이 막 솟아나요?”

“……그런 거 없습니다.”

“다행이네요. 그건 그렇고, 네드.”

“네.”

“혹시 마사지 같은 거 할 줄 알아요? 근육통 푸는 거요.”

“배운 것까지는 아니지만 아마 가능할 겁니다.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있으십니까?”

“허리가 종잇장처럼 접히고 다리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아크로바틱[110]해졌는데 안 불편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음, 불편을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하면 허리랑 허벅지 좀 주물러 줘요. 되게 땅기고 안쪽이 아릿해요.”

“네. 최대한 조심해서 하겠습니다만 아프거나 불편한 곳이 있으면 말해 주세요. 주의하겠습니다.”

“그럴게요.”

“그럼 허리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그러세요. 앗, 차가……. 네드, 손에 뭐 발랐어요?”

“네, 바디 오일을 좀……. 불쾌합니까?”

“아뇨, 오히려 좋은데요? 좀 차가운 것만 빼면.”

“하다 보면 금세 따듯해질 겁니다.”

“아……. 거기, 좋아요.”

“…….”

“음……, 하아. 조금만 더 밑에요.”

“여기 말입니까?”

“네. 아, 더 세게 해도 괜찮아요. 꼼지락거리면서 더듬지만 말고 힘줘서 근육통을 좀 풀어 봐요.”

“……억울하군요. 열과 성을 다해서 마사지하고 있는 사람을 음흉한 취급 하시다니.”

“음흉하단 말은 안 했는데요.”

“…….”

“그런데 네드, 나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뭐든지요.”

“이제 나 안 더러워요?”

“네?”

“이렇게 막 만져도 되는 건지 궁금해서요. 사람이 한 번 잤다고 이렇게 확 바뀔 수가 있는 거예요? 뭐, 자기 전에 네드가 씻겨 놨으니까 네드 논리로 따지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하지만.”

“아. 그렇다기보다는…….”

“보다는?”

“……당신한테 더렵혀지는 건 불쾌하지 않습니다.”

“……네?”

“애초에 정말로 깨끗하고 더러운지보다는 심리적인 문제라고 했잖습니까? 미지의 비위생적인 것들에 대한 공포라고요.”

“그랬죠?”

“당신이 미지의 더러움을 품고 있어도 괜찮다는 겁니다. 날 더럽게 만드는 원인이 당신이라면 그다지 무섭거나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으니까.”

“…….”

“새미, 왜 당신답지 않게 입을 다무는 겁니까?”

“그냥……, 나도 나지만 네드는 참 중증이구나 싶어서요.”

“과찬입니다.”

“칭찬으로 들린다면 다행이고요.”

“…….”

“……하아.”

“…….”

“……음, 좋아요. 거기, 좀 더 세게 해 주세요.”

“…….”

“네드.”

“……네.”

“와……. 네드, 보기보다 파렴치한 거 본인도 알죠?”

“그, 이건 불가항력이라……!”

“마사지 좀 해 달라고 했더니 사람 몸을 더듬어 대다가, 예고도 없이 혼자 세우기까지 하면 어떡해요?”

“억울합니다…….”

“대체 뭐가 억울한데요? 남의 허리 위에 올라타서 좆을 빳빳하게 세우고 억울할 게 뭐가 있어요?”

“시키는 대로 마사지만 했잖습니까! 게다가 예고하고 세우는 편이 훨씬 파렴치한 것 같습니다만……!”

“그 파렴치한 자지를 내 허리에 막 비벼 대는 건 안 파렴치한가요?”

“비빈 게 아니라, 마사지를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닿은 것뿐이잖습니까?”

“아니, 네드는 어제 그렇게 해 놓고 질리지도 않아요? 아직도 서는 게 신기하네. 난 세우라고 해도 못 세울 것 같은데.”

“……그게 질리는 남자도 있습니까?”

“분위기 파악 좀 해요.”

“정말 마사지만 할 겁니다. 이건, 제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괜한 걱정 하실 필요 없습니다.”

“네드, 보기보다 뻔뻔하네요? 이제 그래도 되는 사이다 그거예요?”

“인생을 팔았는데 이 정도도 못 하면 어떡합니까?”

“나 참. 내가 된다고 했으면 마사지 말고 다른 것도 하려고 했나 봐요? 해 쨍쨍한 아침부터?”

“지금은 아침이 아니라 늦은 오전입니다.”

“네드, 나 집에 총 있거든요?”

“파렴치한 짓을 하면 쏠 겁니까?”

“아뇨, 하지만 개머리판으로 두들겨 팰 수는 있겠죠.”

“그 정도라면 시도해 볼 만한 것 같습니…….”

“그냥 쏠게요.”

“……얌전히 마사지만 하겠습니다.”

“내 위에 올라타서 혼자 비비다 싸면 각방 쓸 거예요.”

“네, 네. 주의하겠습니다.”

해피엔딩

“신기하네요.”

“뭐가요? 브런치 먹는 내 얼굴이요?”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음, 아니, 생각해 보니 맞는 것도 같군요. 그것도 포함해서 그렇습니다. 당신이 여기서 브런치를 먹고 있는 것도 그렇고, 우리가 어제 한 일도, 아침을 함께 보낸 것도, 또 앞으로 벌어질 일들 전부가요.”

“신기할 것까지야. 원래 인생이란 게 예측할 수 없어서 의미가 있다고들 하잖아요? 설마 네드의 인생은 내일의 페이지에 어떤 이야기가 쓰일지 모조리 예언되어 있는 거예요?”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신과 접점이 생길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신기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린 같은 건물에서 3년이나 살았잖습니까? 전 그 긴 시간 동안 지나가는 당신 얼굴을 몇 번 구경한 게 다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에는……, 이렇게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지금 외출하는 날 구경씩이나 했다는 고백을 하는 건가요?”

“그냥 스쳐 지나갔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처음 계약서에 사인할 때도 내 얼굴에서 눈을 못 뗐던 것 같은데요?”

“그건……, 불가항력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요. 네드의 세상에는 너무 많은 불가항력이 존재하죠.”

“그렇지 않습니다. 굳이 따지면, 내 인생의 불가항력은 당신 하나 정도밖에 없습니다.”

“좋은 현상이네요. 불가항력을 더 늘리지 않도록 노력해 줘요.”

“노력까지 할 것도 없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이 흔한 것도 아니고.”

“내가 특출하게 잘생긴 건 사실이죠.”

“……네, 뭐.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 비열하고 뻔뻔한 데다 터무니없기까지 한 청혼을 승낙하진 않았을 테니까요.”

“저런, 네드. 너무 자책하지 말아요.”

“자책이라기보다는……, 그런데 새미 눈에는 제가 자책하는 걸로 보였습니까?”

“아니요. 그냥 해 본 말인데요.”

“……그렇습니까.”

“네. 제가 사람 마음을 읽는 건 아니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네드는 좀 행복해 보이기까지 하는데요? 정신적 충격이 커서 그런 게 아니라면 지난밤이 심하게 만족스러웠던 것 둘 중의 하나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

“후자인가 보네요. 그럴 수도 있죠. 역사 속 유명한 영웅들도 미인에 빠져서 나라니 삶이니 하는 중요한 것들을 망치곤 했잖아요? 하물며 네드같이 역사에 이름조차 남기지 못할 하찮은 인간이 어떻게 그 대단한 힘을 거절하겠어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다소 비극적으로 느껴지기는 하는군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서도 내 손으로 골랐다는 것까지 포함해서.”

“하하. 하지만 비극적인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잖아요? 왜,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들 하니까요.”

“하지만 새미, 당신 인생은 가까이서 봐도 희극입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건지 잘 모르겠는데요?”

“당신의 인생에서는 단 한 번이라도 비극이었던 흔적 같은 걸 찾아볼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흠. 그러니까, 네드 눈으로 봤을 땐 내 인생이 웃기다는 거죠?”

“굳이 따지면 어디서 웃어야 할지 종잡을 수 없는 희극 같기는 합니다.”

“그런 건 반칙이에요. 웃기지 않으면 희극이 아닌 거죠.”

“망한 희극도 희극은 희극이니까요.”

“나한테 인생을 팔아 놓고 내 인생은 망했다고 말하는 거예요, 지금?”

“……이야기가 그렇게 됩니까?”

“당연하죠. 네드 인생은 이제 내 건데, 내 인생이 망한 인생이면 네드도 망한 거 아니겠어요?”

“그렇군요. 사실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습니다.”

“인정해 버리면 어떡해요…….”

“하지만, 뭐. 그렇게 나쁘진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괜찮습니다. 인생 정도야 좀 망가져도.”

“그건, 날 볼 때마다 행복해져서인가요?”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네, 아무래도 그 이유인 것 같네요.”

“본인 감정을 추측형으로 말하는 건 좋은 습관이 아니에요.”

“그럼 이렇게 해 두죠. 저는 당신을 볼 때마다 불가항력을 느낍니다. 그게 싫지 않습니다.”

“그 단어를 사랑이나 행복으로 바꾸면 네드의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 될걸요?”

“성공하든 실패하든 상관없습니다. 그건 이미 당신 겁니다. 어떻게 가지고 놀든 원하시는 대로 하세요. 대신 난 당신을 받았으니까.”

“……알겠어요. 네드 마음대로 해요.”

“새미?”

“또 왜요?”

“혹시나 싶어서, 정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쭤보는 것뿐입니다만…….”

“뭔데요?”

“설마, 방금 쑥스러워한 겁니까?”

“……내가요?”

“그렇습니다.”

“내가, 쑥스러워했다고요?”

“뭐, 아니라도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잘 안 되시면 제가 해 드릴 테니까 나이프 이리 주세요. 너무 오래 구워서 질겨졌는지 잘 안 잘리더군요.”

“네드 마음대로 하세요…….”

“네, 저도 그럴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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