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화 (20/31)

빅 브라더[99]

“음. 네드, 이 요리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들어요?”

“생각보다 먹을 만한 것 같습니다만. 당신 게 이상하면 제 걸 드셔 보겠습니까?”

“아뇨, 맛이 문제가 아니라……, 이 깃발 말이에요. 대체 왜 포타주[100]에 이런 걸 띄우죠? 좀 무섭지 않아요? 칵테일도 아닌데 쓰러진 깃발이 둥둥 떠다니는 거요. 이 데이트가 무너져 내리는 걸 형상화한 걸까요?”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하얀 깃발은 항복의 의미라고 하잖습니까?”

“항복이라면, 우리 중에 누구 하나는 항복할 거라는 예언 같은 그런 거요?”

“제가 꽂은 게 아니다 보니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범인은 로즈일 거예요. 타일러는 내 요리에 장난칠 만한 담력이 없거든요.”

“미관상 좋아 보이진 않지만 어쨌든 데코레이션 같은 거 아니겠습니까? 다른 용도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네드, 이걸 보세요.”

“평범한 부라타[101] 요리 같아 보입니다.”

“아니, 접시를 봐요. 소스로 글자를 썼잖아요.”

“…….”

“아무래도 숫자를 숨겨 놓은 것 같은데요?”

“……착시 아닙니까?”

“꽃잎마다 911 이라는 숫자가 적힌 게 착시라고요?”

“다른 의미가 있을 수도 있죠…….”

“911에 전화하라는 것 외의 다른 의미요?”

“저한테 그렇게 따지셔도, 제가 쓴 게 아니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렇긴 하죠. 로즈가 한 짓이니까 아마 다잉 메시지 같은 걸 거예요.”

“다잉 메시지는 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죽기 전에 쓰는 메시지입니다.”

“그러니까 하는 말이에요.”

“……혹시 그녀가 곧 죽을 예정입니까?”

“글쎄요. 거기까진 모르지만 요즘 분노 조절에 실패해서 우울해진 탓에 이런 짓을 저지른 것 같긴 하네요. 혼자 죽는 것보단 남이 도와주는 게 쉽잖아요? 로즈는 날 이용하려고 한 거라고 볼 수 있겠네요.”

“새미, 겨우 음식 가지고 장난친 것 정도로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건 당신의 포용력 넓은 주님도 용납해 주시지 않을 것 같습니다.”

“흠. 알겠어요. 어차피 농담이었어요.”

“정말 농담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정도는 예상했으니까 괜찮아요. 내가 데이트 상대를 데리고 가겠다고 미리 말해 버렸으니 쓸데없는 호기심을 발휘할 거라고 생각했죠.”

“쓸데없는 호기심의 발휘는, 말하자면 이 작위적으로 로맨틱한 분위기나, 요리에 글자를 쓰는 것 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죠. 아마 여기서 끝나진 않을 것 같네요. 내 생각에, 저 바보들이 뭔가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는 모양이라서요.”

“그런 것 같기는 하더군요.”

“……설마, 네드한테 벌써 뭔갈 했나요?”

“행동을 했다기보다는 말을…….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 생각에 저분들은 우리가 하는 게 데이트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는 했습니다.”

“이게 데이트가 아니면 뭐란 말이죠?”

“글쎄요. 어떤 사람들의 눈에는 납치, 감금, 협박 비슷한 걸로 보일 수도 있겠죠.”

“네드, 나한테 그런 짓을 하고 싶었어요?”

“아니, 지금 이 상황에서 범인이 어떻게 제가 됩니까? 전 그런 짓 안 합니다.”

“그럼 누가 범인인데요? 설마 헬렌?”

“당연히 당신이겠죠. 저 사람들은 당신이 나한테 나쁜 짓을 할 거라고 생각하니까 도와주려고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내가 왜 네드를 납치하는데요?”

“그야, 나한테 얻고 싶은 게 있으니까?”

“아니, 그러니까 왜 네드의 인생을 가지려고 네드를 납치할 필요가 있냐 그거예요.”

“……네? 제, 뭘 가지시겠다고요?”

“이렇게 쳐다보면서 ‘주세요’라고 말만 하면 덥석 내줄 게 뻔한데, 제가 쉬운 길을 두고 어려운 길을 갈 리가 없잖아요.”

“아, 아무리 그래도 인생은……, 그렇게 쉽게는 드릴 수가…….”

“나 주면 안 돼요?”

“그, 안 된다기보다는…….”

“나 되게 가지고 싶은데.”

“…….”

“가지고 싶어요, 네드 인생.”

“……그런 얼굴로 쳐다본다고 줄 수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인생은. 게다가 대체 뭘 달라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인생이 대체 뭡니까?”

“아하. 주고는 싶은데 방법을 모르시는 거구나?”

“…….”

“걱정 말아요. 내가 천천히 가르쳐 줄 테니까.”

“…….”

“네드, 이건 야한 이야기 아니었는데요.”

“……조명 때문입니다. 조명이 붉어서 붉어 보이는 겁니다.”

“알겠어요. 이러다 음식 다 식겠어요. 일단 먹고 이야기해요.”

Heartless proposal[102]

“평화롭고 좋네요. 이렇게 보면 뉴욕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신기하다니까요.”

“그건, 평소에는 뉴욕을 나쁘게 생각했다는 뜻입니까?”

“뭐. 좋게 보진 않고 있죠. 전 거만한 동부인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거든요.”

“당신도 뉴욕 출신 아니었습니까?”

“그렇긴 하죠. 하지만 네드도 알잖아요? 동부 엘리트로 뉴욕에서, 그러니까, 어퍼 이스트 사이더로 사는 게 어떤 건지.”

“그 점에는 저도 동감합니다. 어퍼 이스트 사이드가 디즈니 월드 같은 곳은 아닌 건 확실하니까요.”

“하하, 난 디즈니 월드도 별로 안 좋아하는데. 네드의 즐겁고 행복함의 기준은 참 귀엽네요.”

“……보편적인 기준을 든 것뿐입니다.”

“왜요? 네드가 디즈니를 좋아할 수도 있는 거죠.”

“디즈니 안 좋아합니다.”

“그래요? 유감이네요.”

“어째서 제가 디즈니를 좋아하지 않는 게 유감일 수 있습니까?”

“네드는 꿈과 희망이 가득한 사람인 것 같아서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말은 태어나서 처음 들어 봅니다.”

“그래요? 다들 네드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는 건 아니고요?”

“당신도 저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고 있죠.”

“그 한 가지가 뭔지 물어봐도 됩니까?”

“날 좋아한다는 거.”

“…….”

“앗, 네드! 저기 좀 보세요!”

“……새 말입니까?”

“네, 붉은꼬리매예요. 내일 좋은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저게 붉은꼬리매라는 건 대체 어떻게……, 그보다 붉은꼬리매한테 그런 미신이 있습니까?”

“저도 몰라요. 하지만 멋있으니까 보면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요?”

“당신이라는 사람은 정말이지, 모든 말을 생각 없이 뱉고 보는군요…….”

“게다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도 근사하고 좋잖아요. 나랑 데이트하길 잘했죠?”

“내 집은 이 아래 층입니다. 집에 있어도 거의 비슷한 경치고요.”

“네드, 혹시 전 남친이 데이트에서 분위기 깨는 소리 하지 말라고 화낸 적 없어요?”

“…….”

“있을 줄 알았어요. 사람이 늘 그렇게 맞는 말만 지껄이면 미움받아요. 가끔은 하얀 거짓말도 할 줄 알아야 하는 거라고요.”

“그 말에는 동감하지만, 당신에게 듣고 싶은 충고는 아닙니다.”

“나는 맞는 말뿐만 아니라 거짓말도 많이 하는데요?”

“그런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뭐, 사실 난 그런 네드도 좋아요. 재미있으니까요.”

“사람을 대놓고 흥밋거리로 여기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루한 것보단 재밌는 게 좋잖아요?”

“그렇게 따지면 그렇긴 하지만…….”

“하지만 같은 건 없어요.”

“정말 얄미운 사람이로군요.”

“하하, 그런 말도 자주 듣죠. 아, 잔 비었네요. 이번엔 뭘로 따라 줄까요?”

“전 슬슬 취기가 도는 것 같아서 더 이상 마시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만……, 대체 당신은 얼마나 더 마시려는 겁니까?”

“난 아직 말짱한데요? 설마 여기서 그만 마시겠다는 건 아니겠죠?”

“혼자서 위스키 두 병을 스트레이트로 비워 놓고 더 마시겠다는 소리를 하는 겁니까?”

“이 정도로 누가 취해요?”

“……평범한 인간들은 다 취합니다. 피와 살로 된 간을 가진 인간들이요.”

“내 간도 피와 살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그쯤 마셨으면 혈관에 피 대신 알코올이 흐르고 있다고 해도 믿길 정도입니다만…….”

“그래도 혼자 마시면 심심하니까 같이 마셔요. 내 와인 저장고에 도수 약한 것도 많아요.”

“당신 직원들이 힐끔거리는 통에 신경이 쓰여서 취하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아, 내 귀여운 직원들! 걔들 아직 퇴근 안 했어요?”

“바 뒤에서 자기들끼리 우중충한 술 파티를 벌이고 있더군요.”

“볼일 다 봤으니까 퇴근하랬더니……. 하여튼 누가 전직 마피아 아니랄까 봐 더럽게 말 안 듣고 사람 귀찮게 하는 친구들이라니까요.”

“저분들이랑 많이 가깝습니까?”

“그런 게 궁금해요?”

“그냥, 스스럼없어 보여서 신기했습니다.”

“글쎄요. 가깝다고 하면 가까운 사이겠죠? 다들 나보다 먼저 패밀리에 있었고 내가 태어난 뒤에도 줄곧 패밀리에 있었으니까요.”

“가족 같은 겁니까?”

“내가 말하는 패밀리와 네드가 생각하는 가족은 아마 다른 거겠지만, 어떤 면에 있어서는 네드가 생각하는 가족보다 끈끈한 부분도 있어요. 혈연보다도 진하고, 또 상상 이상으로 잔인할 때도 있으니까요.”

“전 들어도 잘 모르겠습니다.”

“괜찮아요. 평생 살면서 마피아 같은 족속들이랑은 스쳐 지나가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니까요.”

“그, 당신을 비난하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나도 알아요. 사실 내 직원들이 내 사생활에 그렇게 적극적으로 끼어드는 편은 아니에요. 옛날부터 봐 온 게 있다 보니 내 일에 참견하는 게 멍청한 짓이라는 걸 알거든요.”

“……그러면, 이번엔 왜들 저러는 겁니까?”

“아무래도 최근에 리즈 일이 있었으니까 신경 쓰는 거 아닐까요?”

“전 약혼녀분 말입니까?”

“네. 저 친구들은 내가 리즈를 만난 뒤로 안정됐다고 생각한 모양이라서요. 그도 그런 게, 리즈는 완벽했거든요.”

“그건, 그녀에게 마음이 있었다는 뜻입니까? 가령, 당신이 없다고 한 진심이라든지?”

“하하,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럼 뭡니까? 그 완벽하다는 건.”

“리즈는 조건이 완벽했어요. 우리 가족과 리즈 가족은 어떤 형태로든 결합해야 했거든요.”

“조직 말입니까?”

“네. 굳이 나여야 하는 건 아니었지만요. 렉스와 리즈는 옛날부터 서로 싫어했어요. 렉스는 패밀리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고요. 돈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니까요. 리즈도 마찬가지예요. 두 사람한테 거부권은 없었죠.”

“그런데 왜 당신이 약혼을 하게 된 겁니까?”

“그게, 그때 돈[103]과 언더 보스[104], 그리고 카포레짐[105]들이 죄다 날 다음 대 돈으로 앉히고 싶어 했어요. 난 그러고 싶지 않았고요.”

“그건, 마피아적으로 생각하면 굉장히 좋은 자리가 아닌 겁니까?”

“돈이 되는 거요?”

“네.”

“글쎄요. 내 꿈이 〈대부〉의 주인공이었다면 그랬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보시다시피 내 인생의 최우선 사항은 안락하고 나태한 삶이라서요. 그 자리는 절대로 안락하진 않죠. 나태할 여유도 없고요.”

“부와 권력을 얻을 수는 있었을 텐데요?”

“그런 건 내 손으로도 충분히 가질 수 있는데요?”

“……그렇습니까.”

“그래서 난 렉스와 거래했어요. 렉스 대신 리즈와 약혼하는 대가로 자유를 얻었죠. 우리 형제들은 돈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얻은 특권에 대한 희생을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고, 내 입장에서 리즈와 결혼하는 것 정도야 별반 어려운 일도 아니었으니까요. 난 그걸로 만족했어요.”

“결국 차이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말이에요! 난 리즈가 설마 렉스를 감수할 정도로 날 싫어하게 될 줄은 몰랐다니까요?”

“……7년 동안 그 짓거리를 해 놓고도 이렇게 될 줄 몰랐다는 겁니까?”

“네. 리즈는 어릴 때부터 정말, 저어어엉말 렉스를 싫어했거든요. 그래서 가족들이 날 다시 끌고 가려고 하는 거예요. 의무는 버리고 자유만 홀랑 집어 간 야비한 놈이 되어 버렸으니까. 렉스가 날 두들겨 패고 간 것도 같은 이유고요.”

“그것참……, 당신다운 이야기로군요.”

“어쨌든, 덕분에 내 평탄했던 인생이 복잡해진 거예요. 리즈한테 차여서 내 인생을 패밀리에 저당 잡히게 생긴 꼴이라고나 할까요?”

“당신 같은 남자를 보스 자리에 올리려는 자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겁니까?”

“그럼요. 네드는 마피아의 보스가 되는 조건이 뭐라고 생각해요?”

“글쎄요……? 리더십이나, 카리스마 같은 겁니까?”

“야비함, 비열함, 잔혹함, 냉혈함, 누굴 믿고 누굴 믿지 말아야 할지 구분하는 판단력, 그리고 혈연.”

“……그 보스라는 자리, 다소 충격적일 만큼 당신에게 걸맞은 직업이로군요.”

“맞아요. 내가 원하지 않는다는 것만 빼면요.”

“당신이라면 훌륭하게 해낼 것 같습니다만…….”

“하기 싫다니까요.”

“……그런 문제입니까.”

“그런 문제예요. 그래서 말인데, 네드.”

“네.”

“우리 거래할래요?”

“어떤 거래 말입니까?”

“네드의 인생을 나한테 주세요.”

“또 그 인생 이야기입니까?”

“그러면 대가로 나를 줄게요.”

“……네?”

“에드먼드도 와이트 가문의 반항아잖아요? 안 그래요? 닥터 가문의 유일한 덴티스트 CEO?”

“…….”

“난 바람 같은 거 절대로 안 피워요. 리즈랑 약혼한 뒤에는 다른 여자랑 눈도 안 마주쳤거든요. 뭐, 그게 딱히 정절을 지키려고 했던 건 아니었지만요.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남자랑도 문제없이 되는 것 같고요.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요?”

“그건 대체 무슨 이상한 자기 어필입니까……?”

“패밀리에서 몇 가지 사업체를 합법화하면서 몇몇 트러블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어요. 네드처럼 뛰어난 경영인을 원하지만 우린 신뢰 문제 때문에 사람을 막 가져다 쓰진 않거든요. 그래서 먼저 사업 합법화를 끝낸 리즈의 패밀리와 혈연 동맹을 맺어서 대대적인 사업 양지화를 노리고 있었던 거고요. 네드가 나랑 결혼하기로 하면, 리즈네 패밀리에 기대지 않고도 새로운 가족 경영인이 생기잖아요? 게다가 네드는 남자니까 난 충분히 패밀리를 위해 희생한 셈이고, 다시 돈의 후계자로 물망에 오를 일은 없어지겠죠.”

“그러니까, 지금 제 인생을 바쳐서 당신의 인생을 지키겠다는 말입니까?”

“바로 그거예요!”

“…….”

“솔직하게 말해 두자면, 난 네드와 결혼하는 게 그렇게까지 간절하진 않아요.”

“먼저 제안해 놓고 그것참 뻔뻔한 고백이로군요…….”

“여기서 달콤한 거짓말을 늘어놓는 건 그다지 현명한 생각이 아니잖아요? 게다가 내가 뜬금없이 네드한테 진심으로 좋아한다고 말했어도 어차피 안 믿었을 거 아니에요?”

“……그렇긴 합니다만.”

“나는 눈앞에 편리한 방법이 보여서 한번 손을 뻗어 보고 있는 것뿐이에요. 그걸 받아들일지 말지는 네드가 정하면 되는 거고요.”

“새미, 내 면전에 대고 편리한 방법이라는 말까지 해 놓고 긍정적인 대답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겁니까? 내가 그렇게 쉬워 보여요?”

“아뇨. 사실 전 아무 생각 없어요.”

“……하.”

“리즈가 혼자 늙어 뒈지라고 했을 때 굉장히 혹하긴 했지만 가족들이 날 어떻게든 이용해 먹으려 들 테니 그건 불가능하니까 어림도 없고……. 리즈 말대로, 여자보다 남자가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순간 네드가 나타난 거예요. 마침 내 얼굴이 이상형이라는 남자가요.”

“…….”

“만약에 네드가 내 제안을 거절한다면 더 매달리지 않고 물러날게요. 네드와 나는 이걸로 끝인 거죠.”

“…….”

“뭐, 사실 시작한 것도 없지만요.”

“……제가 당신의 제안을 거절하면, 이 자리가 마지막이라는 뜻입니까?”

“그렇죠. 난 의미 없는 사람과 의미 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

“게다가 얼마든지 다른 옵션을 찾을 수 있고요. 알죠? 난 잘생기고 돈도 많아요. 게다가 머리도 좋고,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데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만큼 비열하기까지 하죠.”

“…….”

“하지만 눈앞에 이렇게 쉬운 방법이 있으니까 한 번은 찔러볼 거예요. 네드도 이해하죠?”

“……하.”

“물론 인생을 파는 건 그렇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죠. 나도 이해해요. 그러니까 네드,”

“네.”

“나랑 자요.”

“……네?”

“자자고요. 잠자리. 섹스, 알죠?”

“지금 뭐라고…….”

“중요한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확신이 필요하잖아요? 결혼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걸 먼저 확인하고 결정을 내리는 건 굉장히 합리적인 것 같은데요. 아닌가요?”

“……새미. 당신은 지금 그 제안이, 저에게 몸을 팔겠다는 거나 다름없다는 건 알고 있는 겁니까?”

“하하, 네드도 참. 지금 난 당신 인생을 사겠다고 말했는데 그게 더 중요한 건가요?”

“……하지만,”

“그럼요, 당연히 알고 한 말이죠. 그럼 내 쪽에서 묻겠는데, 내 몸은 당신의 인생을 살 만큼 가치가 있을까요?”

“……그건,”

“직접 확인해 보고 싶지 않아요?”

“…….”

“그럴 줄 알았어요.”

“…….”

“그럼 같이 내려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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