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화 (19/31)

Don’t be melodramatic![96]

“정말 놀랍습니다.”

“그런가요? 평범한 라운지 바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뜻이 아니라, 이런 걸 개인이 소유하고 독점한다는 사실이 놀라운 겁니다.”

“비바 자본주의죠?”

“그렇게 뿌듯해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이런 날에 사람들이 복작거리는 곳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건 아주 좋은 일이잖아요. 네드도 모든 걸 비관적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일상의 사소한 것들에 기쁨을 느끼도록 노력해 보세요.”

“저는 비관적인 게 아니라 비판적인 겁니다. 그리고 이런 걸 일상의 사소함이라고 표현하면 모든 미국인들의 일상이 무너져 내려야 할 거고요.”

“모든 걸 일일이 멜로드라마틱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요.”

“제가 멜로드라마틱하게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정말 특이한 일이라는 걸 당신이 이해하는 날은 찾아오지 않을 것 같긴 합니다…….”

“그런가요? 아, 여긴 어차피 저만 드나드니까 웨이터나 웨이트리스 같은 사람은 없어요. 고용 안 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직접 자리에 찾아가야 하는데…….”

“…….”

“와우…….”

“새미, 당신은 대체…….”

“아니, 이건 나 아닌데요……?”

“……여기 진짜 멜로드라마가 있는 것 같습니다만.”

“……그러게요. 이런 건 예상 못 했네요.”

Like melodrama

“네드, 마시고 싶은 게 있으면 나한테 말해 줘요. 뭘 좋아하는지 가르쳐 주면 내가 추천해 줄게요. 아직 요리가 없으니까 일단 샴페인 같은 거라도 딸까요? 와인이든 샴페인이든 위스키든, 웬만한 라벨은 구비하고 있거든요. 수집 겸 사 모아서.”

“버젓이 바텐더가 있는데 왜 당신한테 추천을 받아야 합니까?”

“음. 안타까운 일이지만 내 바텐더들은 전직 히트맨[97]이라 속성으로 배운 칵테일 제조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거의 없어요.”

“히트……, 뭐라고요?”

“두 사람은 뛰어난 히트맨이었지만 뛰어난 바텐더가 될 수는 없더라고요.”

“……왜 그렇게 훌륭한 히트맨을 하필이면 바텐더로 이직시킨 건지 여쭤도 됩니까?”

“은퇴하고 펍을 운영하고 싶다더라고요.”

“펍과 바 사이에는 상당히 큰 간극이 있는 것 같습니다만?”

“여러 가지 일이 있었어요. 식사하면서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라서 요약해 드리자면, 내 바텐더들은 자신의 펍에 찾아온 손님의 대가리에 구멍을 뚫고 싶은 충동을 조절하는 데에 상당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죠.”

“거기에 마시러 간 손님은 대체 무슨 죕니까?”

“머리에 총알구멍이 나야 할 만큼 큰 죄는 아니겠지만 나름대로 죄를 저지르긴 했어요. 그리고 죗값도 치러야만 했죠. 결국 펍에는 우리 패밀리 사람들밖에 드나들지 않게 되었고, 두 사람은 그들의 보금자리가 마피아 전용 펍이 된 것에 진절머리를 내며 가게 문을 닫았답니다.”

“그리고 옮긴 직장이 이런 곳이라니…….”

“어차피 저 둘은 일하고 싶어서 펍을 차린 건 아니었어요. 그냥 은퇴하면 가게를 내고 싶다는 마피아식 로망 같은 거죠. 아니, 히트맨식 로망일지도 모르겠네요.”

“’히트맨’과 ‘로망’ 같은 단어를 한 문장에 쓰는 건 거의 문법적 오류 수준입니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지금은 둘이서 알콩달콩하게 손님이라곤 저밖에 없는 바를 운영하면서 만족하고 있잖아요?”

“그렇습니까…….”

“그리고 바텐더와 달리 쉐프는 굳이 주문 안 해도 먹을 수 있는 요리를 내올 거예요. 그녀는 아주 훌륭한 회계사였거든요.”

“쉐프가 아니라요?”

“회계사였죠. 하지만 사업 합법화 과정에서 과로로 몹쓸 병을 얻어서 이직을 원했어요. 물론, 이런 곳에서 제대로 된 이직 같은 게 가능할 리가 없다는 것 정도는 네드도 알고 있겠죠? 마피아잖아요. 우린 비밀 엄수를 굉장히 진지하게 생각하거든요.”

“병 때문에 회계사를 그만두고 쉐프가 됐다는 겁니까? 대체 무슨 병이기에…….”

“로즈의 병은 분노 조절 장애였어요. 테라피스트에게 혼자서 차분히 할 수 있는, 예를 들면 요리나 베이킹 같은 정적인 취미로 스트레스를 발산해 보는 건 어떠냐는 권고를 받았고요. 그래서 내가 이 자리를 제안했죠.”

“……스트레스 발산을 위해서 쉐프가 되라고 말입니까?”

“맞아요. 그래도 로즈는 꼼꼼해서 레시피대로 만드는 건 곧잘 해요. 무능한 바텐더와는 달리. 덕분에 내 바에서 인간이 먹어도 죽지 않는 평범한 식사를 할 수 있게 된 거죠.”

“그러니까, 결론은 당신의 디너 데이트에서는 훌륭한 요리가 아니라 먹어도 죽지 않는 요리가 최대치라는 뜻이로군요?”

“네. 하지만 옛날에 사람을 썰다 왔다거나, 뭐 그런 어두운 과거가 없는 쉐프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요?”

“충분…… 한…… 것…… 같습니다…….”

“네드가 따로 부를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일단 소개하자면, 바텐더는, 저기 있는 금발이 헬렌이고 방금 주방으로 들어간 주근깨가 프레디예요.”

“고용인을 금발이니 주근깨 따위로 지칭하는 건 노동법 위반 아닙니까?”

“존중을 담은 금발과 주근깨인걸요.”

“금발과 주근깨라는 지칭에 잘도 존중이 담겼겠습니다?”

“흠. 티가 많이 났나요?”

“안 났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게 충격적일 정도로 티 납니다. 최소한 이름 정도는 불러 주세요. 그들은 금발이나 주근깨가 아니라 사람이잖습니까?”

“하지만 네드, 생각을 해 보세요. 내 바를 이렇게 끔찍한 공간으로 만들어 놓은 고용인한테 보일 존중 같은 게 어디에 있겠어요? 정말 이게 무슨 꼴인지 모르겠네요. 모처럼 데이트를 나왔는데 일이 이렇게 돼서 미안해요.”

“아니, 뭐. 제게 사과할 필요까진 없는 거 같습니다. 저분들도 나름대로 당신을 생각해서……, 아마도……, 그런 게 아닐까요?”

“이 꺼림칙한 장미 꽃잎 길에, 양초를 켜 놓고, 테이블 주변에 하트 모양으로 부두교 의식의 악마 소환진처럼 만들어 놓은 게요?”

“보통 사람들은 이런 걸 로맨틱하다고 표현하잖습니까?”

“네드, 지금 농담하는 거죠? 차라리 테이블 주변에 하트 모양으로 벤자민 프랭클린을 뿌리는 게 로맨틱한 거 아닌가요?”

“글쎄요. 하트 모양으로 뿌린다고 지폐가 로맨틱해질 거라는 생각을 하는 머리로 ‘로맨틱’이란 단어를 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듭니다만.”

“아뇨, 네드. 저도 로맨틱이 뭔지 정도는 알아요.”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까?”

“네.”

“당신이 생각하는 로맨틱함이 뭔지 궁금하네요.”

“로맨틱이란, 티파니에서 산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는 거죠.”

“네?”

“맞잖아요? 아, 혹시 네드는 목걸이가 더 좋은 건가요?”

“……목걸이와 반지 중 뭐가 더 좋은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문제는 티파니가 아니라 당신 머릿속에 있다는 건 알겠네요.”

“흠. 좋아요. 나도 내가 로맨틱한 사람이 아니라는 건 인정해요. 하지만 이건…….”

“…….”

“……이건, 너무 끔찍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안타깝지만 그 점에는 동감할 수밖에 없군요……. 아무리 바닥이라지만 생화를 이런 식으로 흩뿌려 놓으면 어떡합니까? 진딧물이 기어 나올지도 모르잖습니까. 게다가 양초도 그렇습니다. 양초가 타면서 생기는 유해 물질을 우리가 전부 마셔야 하는 건데, 전등이 없는 것도 아니고 왜 이런 짓을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조금만 더 가까이 있었다면 도망쳤을 겁니다.”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진딧물에게서요?”

“네.”

“음. 제가 지적한 건 그 점이 아니긴 한데……, 어쨌든 끔찍하다는 점에 있어서는 우리 둘 다 같은 의견인 것 같네요.”

“동감합니다. 이런 지저분한 로맨틱함은 없는 편이 낫죠. 그런데 여긴 웨이터가 없으니 요리를 쉐프가 직접 날라 주는 겁니까?”

“아뇨. 나르는 건 주방 보조가요. 내 쉐프는 훌륭한 프랑스 미슐랭 쉐프처럼 요리에 대해 설명해 주는 타입이 아니거든요. 사실 그런 걸 할 만큼 훌륭한 솜씨도 아니고요. 대신 타일러라고, 이 바에서 제일 평범한 친구가 있어요. 잡일은 거의 그 친구가 하죠.”

“얼마나 평범한 친구인지 기대가 되는군요.”

“이런. 타일러는 정말 평범한데요? 아, 마침 오네요. 저기 보이죠? 트레이 끌고 오는 평범한 친구.”

“…….”

“저도 알아요. 타일러를 처음 본 사람들은 다들 놀라곤 하죠.”

“정말……, 놀라우리만큼 평범한 사람이로군요.”

“그렇죠? 덕분에 짭새들이 자주 가는 펍에 스파이로 보내곤 했죠. 타일러 얼굴은 아무도 기억 못 하거든요.”

“그렇습니까……?”

“네. 그건 그렇고, 역시 술 없이 시작하는 것도 그러니까 샴페인 한 병만 집어 올게요. 잠깐만 혼자 있어요.”

“그것까지 직접 가지러 가면 바텐더는 왜 부른 겁니까?”

“식사 끝나면 분위기 잡게 칵테일 만들어 내라고 하려고요.”

“……정말 당신다운 이유네요. 가는 건 좋은데, 요리가 온 뒤에 가는 게 낫지 않습니까? 제가 혼자 있으면 주방 보조가 곤란해하지 않을까요?”

“하하. 그럴 리가요. 오히려 좋아한다면 모를까.”

“좋아합니까?”

“그럼요. 타일러는 원래 나한텐 말 안 거니까 아마 네드한테도 말 안 걸걸요? 저 친구는 조심성이 많은 성격이거든요.”

“그러니까, 요는 당신 앞에서 함부로 입 놀렸다 무슨 일을 당할지 무서워서 입 닥치고 있을 만큼 주의 깊은 성격이니 당신이 데려온 나한테도 똑같이 굴 거라는 뜻입니까?”

“오, 예리한데요?”

“…….”

“네드는 드라이한 게 좋아요? 아니면 스윗한 거?”

“드라이한 게 좋겠습니다.”

“화이트, 로제?”

“로제.”

“좋아요. 나머진 내 취향대로 고를게요.”

“기대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니까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지는데요?”

“얼른 가지고 오기나 하시죠.”

“네, 네. 금방 올게요.”

죽음의 팬터마임[98]

“…….”

“…….”

“…….”

“…….”

“저, 이름이 분명 타일러라고 들은 것 같은데, 맞습니까?”

“……!”

“저한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도, 뭘 하고 싶으신 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

“……네?”

“……. ……, ……!”

“뒤를…… 쳐다보면……? ……혹시 감시 카메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하. 저것 때문에 절 방패막이로 삼은 겁니까?”

“…….”

“설마 말을 못 하십니까?”

“…….”

“할 줄 알면 그냥 말로 하시죠.”

“…….”

“저, 그렇게 갑작스러운 바디랭귀지를 시작하셔도 처음 보는 사이에서 알아듣기 여간 어려운 거 아닙…… 아, 그건 알겠네요. 그러니까, 주방에서? 제, 목을……? ……졸라 버리겠다고요? 주방에 계시는 분이 그렇게 전해 달래던가요?”

“……! ……!”

“흠. 그게 아니라? ……주방이 ……당신의? 목을 조르고 있고…… 문……? 와인 저장고? 아, 문이 아니라 거기 들어간 샘을 말하는 겁니까? 네, 샘이? ……당신 머리에……? 손가락……, 아니, 총을……?”

“……!”

“그러니까 정리하면, 주방에서는 당신 목을 조르려고 하고 샘은 당신 머리에 총알구멍을 뚫으려고 한다고요?”

“…….”

“……어쩌다가요?”

“…….”

“타일러, 한숨만으로는 뭘 어떻게 해 드려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

“네, 거기까지는 이해했습니다. 현재 생명의 쌍방향적 위협을 받고 있으니까 말을 못 하겠지만 한숨은 쉬신다 그거로군요.”

“…….”

“그래서, 저한테 하고 싶은 말은 뭡니까? 설마 당신을 도와 달라는 건 아니겠죠?”

“…….”

“그건 아니라고요? 그럼 뭡니까? 아. 또 시작하는 겁니까? 당신이? ……당신이, 저를, 도와주겠다고요?”

“…….”

“어떻게요? 저기 바닥에 깔린 진딧물을 치워 주실 겁니까?”

“…….”

“아닙니까? 그럼 지금 저한테 무슨 도움이 필요하죠?”

“…….”

“샘? 샘이……? 샘이…… 저를…… 미친 듯이…… 찌르려고…… 하면? 아, 샘이 저에게 해코지를 하면?”

“…….”

“주방? 네. 주방을 쳐다보고……? ……손 키스를 날리라고요?”

“…….”

“……샘이 저를 괴롭히고 있는 거라면 주방을 쳐다보고 손 키스를 날리면 도와주겠다는 뜻입니까?”

“…….”

“음.”

“…….”

“생각해 주셔서 감사드리지만, 마음만 고맙게 받겠습니다. 데이트 도중에 SOS 요청을 하는 일은 없을 것 같네요.”

“……?!”

“진딧물이 기어올까 봐 걱정되는 걸 빼면요.”

“…….”

“요리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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