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화 (18/31)

MAKE LOVE[92]

“네드, 직원들한테 연락 넣었어요. 6시에는 준비될 것 같아요. 다들 오래간만에 출근하는데 요리하는 법 같은 걸 잊어버리진 않았을까 걱정되네요.”

“그런 당연한 걸 잊어버릴 정도의 오래간만은 정확히 얼마 만을 말하는 겁니까?”

“글쎄요. 한 2년쯤?”

“그러니까, 2년에 한 번 가는 바를 위해 직원을 넷이나 고용하고 있다고요?”

“그것만을 위해 고용한 건 아니에요.”

“그럼 그 사람들을 어디다 또 씁니까?”

“아뇨. 다른 용도는 없어요. 사실 가족 사업 합법화하는 과정에서 할 일이 없어진 사람들을 내가 고용한 것뿐이라 꼭 일을 시키려고 데리고 있었던 건 아니기도 하고요.”

“……대체 이 건물에 마피아가 아닌 직원은 얼마나 되는 건지 궁금해지려고 합니다.”

“그야, 있을 만큼은 있죠. 하지만 청소랑 요리 같은 건 깨끗한 사람들이 해요. 그러니까, 위생적으로도 깨끗하고 뒤도 구리지 않은 사람들이요. 요리는 다른 호텔에서 빼 왔고 청소는 퍼실리티 서비스[93] 업체를 따로 인수해서 체계적으로 경영하고 있거든요. 그 업체도 매출의 80퍼센트가 이 건물에서 나오기는 하지만 엄연히 별개의 사업체예요.”

“퍼실리티 회사를, 임차 사업을 위해 따로 인수해서 경영하고 있다는 겁니까?”

“네. 재무 설계사가 책정한 월세가 생각보다 높았거든요. 거기에 납득이 갈 만한 높은 퀄리티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니까 그냥 직접 경영하기로 했죠. 네드만 해도 청소 조건 옵션으로 달고 추가 비용 내고 있잖아요? 그런 걸 평범한 청소 용역에서 일일이 지키고, 또 감시 감독까지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요. 차라리 업체를 인수하는 게 편해요. 일하는 만큼 돈 챙겨 주면 되니까.”

“그…… 렇기야 하겠습니다만.”

“평범한 로열 마케팅이에요. 기왕 어퍼 이스트 사이드 한복판에 건물을 가지고 있는데 비어 있는 것보다는 사람들이 들어와 사는 게 좋잖아요? 원래 집은 사람이 사는 게 제일 좋은 관리라고도 하고요.”

“듣고 보니 그렇기는 한데……. 전 가끔 당신이 정상적인 말을 할 때마다 혼란스러워집니다.”

“왜죠? 난 그렇게까지 이상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게다가 이상한 걸 따지기 시작하면 네드도 만만찮아요. 가족들이 다 닥터인데 혼자 덴티스트고, 다들 운동 싫어한다던데 혼자 쿼터백이고. 무슨 집안의 반항아 같은 거라도 되나 봐요?”

“대체 그건 또 어떻게 알아낸 겁니까? 누가 마피아 아니랄까 봐, 이제 뒷조사까지 하고 다닙니까?”

“마피아라서 뒷조사한 게 아니라, 이고르가 네드 소개해 줄 때 술술 불었는데요. 사실 너무 옛날 일이라 잊어버리고 있었지만요. 내 건물에 사는 덴티스트는 네드뿐이니까 아무래도 맞는 것 같아서 한번 찔러 봤어요.”

“이고르, 그 입 싼 자식이…….”

“게다가 네드는 강박증도 있고.”

“그건 이상한 점이 아니라 병입니다.”

“내 얼굴만 보면 헤롱대는 건 어쩔래요?”

“…….”

“그건 방법이 없죠? 테라피스트를 만나고 약을 처방받아도 해결 안 될걸요?”

“……그래서 지금 이러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긴 해요.”

“그래도 당신보단 덜 이상하니까 걱정 마시죠.”

“그렇다고 해 두죠, 뭐. 어쨌든, 오늘은 네드 덕분에 진탕 취할 수 있겠네요. 술을 마셔도 혼자 마시니까 좀 걱정돼서 잘 안 마시게 된 지 꽤 됐거든요. 혼자 맛있게 마시다 보면 알코올 중독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잖아요?”

“그런 것도 신경 씁니까?”

“그럼요. 내가 알코올 중독에라도 빠지면 얼마나 무서운 일이 생기는데요.”

“알코올 중독에 빠졌다는 사실 자체보다 무서운 일이 있습니까?”

“네. 네드가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내 가족들이 내가 방심하는 찰나를 노리고 있거든요.”

“왜 그런 걸 노립니까?”

“궁금해요? 들으면 후회할 텐데?”

“……그럼 됐습니다. 그보다 당신은 가톨릭인 주제에 토요일 밤에 진탕 취하고 다녀도 되는 겁니까? 주일 미사는 어쩌고요?”

“하하, 그런 걸 걱정하고 있었어요? 안 가도 괜찮아요. 주님은 주일 미사를 강요했지만 대신 못 나가는 경우에 해야 할 일을 정해 주셨으니까요.”

“설마 착하게 기도라도 드리는 겁니까? 아니면 또 가엾은 신부님을 괴롭혀서 회개하려고요?”

“그럴 리가요! 네드는 정말 극단적인 사람이네요.”

“그게 아니면 또 무슨 황당한 짓으로 상쇄하겠다는 겁니까?”

“선행을 베풀죠.”

“……네?”

“주일 미사에 못 갔을 때는 대신 착한 일을 하면 되거든요.”

“그게 정말인지는 둘째 치고, 당신한테 있어서 착한 일은 대체 어떤 일입니까? 사람을 죽이지 않는 일? 이웃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방적으로 사랑하는 일?”

“와, 네드.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

“그런 의미에서 내일은 이웃을 사랑하는 선행으로 주일 미사를 대신하도록 할게요.”

“…….”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랑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거예요. 네드도 그렇게 생각하죠?”

“닥치고 읽던 책이나 계속 읽으시죠.”

“그러죠, 뭐. 네드도 읽던 거 다 읽으면 말해 줘요. 난 책 읽을 때 방해해도 괜찮거든요. 나 다 읽을 때까지 기다리느라 못 일어나면 지루하잖아요.”

“그건, 정말 당신답지 않은 배려로군요. 전 괜찮습니다. 다 읽을 때까지 기다려도.”

“계속 이러고 있으면 다리에 피 안 통할걸요? 가끔 자세 바꿔 주는 게 좋아요.”

“정말로 괜찮습니다. 게다가 피가 안 통할 만큼 무겁지도 않고요.”

“네드, 물론 네드가 내 얼굴을 비이성적으로 마음에 들어 하는 건 알지만 다리의 의견도 존중해 주도록 해요. 허벅다리 위에 사람 머리를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올리고 있으면 보통은 저려요. 뇌와 두개골을 합치면 못해도 6파운드[94]는 나온다고요.”

“……알겠습니다. 다 읽으면 말하면 되잖습니까.”

“네, 그럼 읽던 거 계속 읽어요. 불만 있으면 다리랑 상의하시고.”

“……그러죠.”

뒷담화

“로즈, 오래간만.”

“오래간만이에요, 헬렌. 태닝했네요?”

“응. 여름 내내 남 프랑스에 있었거든. 타일러는?”

“아까 와서 재료 손질해요.”

“그럼 다 온 건가?”

“그러네요.”

“그건 그렇고, 로즈. 너 그 이야기 들었어?”

“무슨 이야기요?”

“샘이 이젠 남자한테도 손댄대.”

“저런. 누구 죽였어요? 드디어 감옥 간대요?”

“아니, 그런 거 말고. 이거 말이야.”

“……헬렌, 굳이 그런 천박한 수신호로 표현하지 않아도 뭔가 어울리는 괜찮은 단어가 있었을 것 같아요.”

“어떤 단어? 붙어먹는다? 쑤셔 박는다?”

“아뇨……. 그런 것도 말고요.”

“왜, 결국 데이트는 이거 하려고 만나는 거잖아?”

“그야 그렇지만……, 그럼 샘이 설마 여기에 데리고 온다는 거예요? 남자를?”

“프레디 말로는 그렇다는데?”

“남자를요?”

“그렇다니까?”

“……하. 왜 2년 만에 출근한 직장에서 상사의 커밍아웃을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충격적이에요.”

“로즈 네가 왜 샘 커밍아웃에 충격을 받아? 설마 너 샘한테 다른 마음이라도 있…….”

“미쳤어요? 누구 인생을 망치려고 그런 인간을 나한테 가져다 대요?!”

“미안. 혹시나 했지. 그럼 뭔데? 걔가 남자랑 만나든 여자랑 만나든 어차피 상관없잖아?”

“하지만 헬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샘이잖아요? 샘이, 남자랑?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해요?”

“뭐, 그렇긴 한데. 난 걔가 자발적으로 사람이랑 만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본인이 남자가 좋다는데 우리가 뭘 어쩌겠어?”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샘이 남자를 좋아해서 그 남자랑 만나는 거라고요?”

“……아닌가? 남자 안 좋아하는데 굳이 남자랑 만날 이유가 더 있나?”

“생각을 해 봐요. 샘이 ‘남자를’ 좋아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샘이 남자를 ‘좋아하는’ 게 문제라고요. 샘이? 누군가를? 좋아한다고요? 그럴 리가 없어요!”

“로즈, 샘도 인간인데 누군갈 좋아하는 감정 정도는 알겠지.”

“하지만 헬렌, 내가 30년 동안 관찰한 결과 그건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해요.”

“그렇게까지?”

“화학적으로도 불가능하고요.”

“왜? 걔도 돈 같은 건 좋아한 적 있잖아?”

“돈이랑 사람을 같은 선상에 놔야 한다는 시점에서 문제라고요, 헬렌…….”

“그럴 수도 있기야 하겠지만……. 샘도 나름대로 꽤 화려하게 연애하지 않았나? 다 옛날이야기긴 하지만.”

“아니요. 그건 걔가 화려했던 게 아니라 걔 주변이 시끄러웠던 거예요. 걘 자기 좋아하는 사람들 적당히 받아 주는 척해 놓고 나중에 등쳐 먹을 생각밖에 안 하는 개 같은 놈이라고요.”

“뭐, 맞는 말이긴 한데. 그래도 등쳐 먹는 쪽이 만족스러워한다면 우리가 끼어들 필요는 없지 않나?”

“지금 등쳐 먹히고 있는 가엾은 남자분이 샘의 실체를 반의 반의 반이나 알고 있을까요?”

“그거야 물어보기 전까진 모르는 거고.”

“가엾은 사람. 전 또 다른 희생양이 탄생하는 걸 지켜볼 수 없어요!”

“그래서 어쩌겠다고?”

“메시지를 보내야죠.”

“……어떻게?”

“도망칠 수 있을 때 도망치라고 말해 주는 게 같은 인류로서의 예의 아니겠어요?”

“음……. 인류니 예의니 하는 건 그렇다 치고, 샘이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는 앞에서 그러려고? 난 싫어. 샘 같은 거랑 척지면 찝찝해서 밤에 잠도 못 잘걸?”

“안 들키게 요리에 적으면 돼요.”

“……요리에? 뭘로? 소스로 편지라도 쓰게?”

“아니면 쪽지를 담은 포춘 쿠키[95]는 어때요?”

“샘한테 잘못 가면 어쩌려고?”

“그런 멍청한 짓은 타일러나 하는 거죠!”

“근데, 둘이 진짜 서로 좋아하는 걸 수도 있지 않아?”

“헬렌, 샘이 진짜 누굴 좋아하게 되느니 차라리 내일 지구가 망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그렇게까지?”

“헬렌도 알잖아요. 샘은 진짜, 진짜, 진짜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새끼라고요.”

“이기적인 새끼라는 건 인정하지만 알면서 반하는 쪽도 썩 편들어 주고 싶진 않은데…….”

“그러니까, 모르면 구해 줘야죠. 샘이 어떤 놈인지 모르고 반했으면 얼마나 불쌍해요?”

“뭐, 열심히 해 봐. 방해는 안 할게.”

“좋아요. 인류의 평화를 위해 노력해 보겠어요.”

“그건 그렇고, 나도 상대가 대체 어떤 남자인지 궁금하긴 하네. 어차피 샘의 번드르르한 외모에 속아 넘어간 골 빈 멍청이일 확률이 높겠지만.”

“아뇨, 외모가 아니라 돈일 수도 있어요.”

“돈은 아닐걸? 리즈를 봐. 세상엔 의외로 돈으로 안 되는 게 있다니까?”

“얼굴론 가능하고요?”

“샘 정도면 얼굴로는 거의 프리 패스지. 엄청나게 남다른 심미안을 지닌 게 아니고서야. 걔는 옛날부터 게이한테도 잘 먹혔잖아?”

“……그래도 리즈한텐 차였는데요?”

“그 얼굴과 그 돈으로도 견딜 수 없을 만큼 엉망진창인 게 샘이라는 인간이니까.”

“하. 빨리 6시가 되면 좋겠어요.”

“그러게. 나도 샘 같은 걸 고른 남자의 얼굴이나 한번 구경하고 싶기는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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