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
“아, 아픕니까?”
“손만 잡았는데 아플 리가 없잖아요. 차가워서요.”
“……꼭 일일이 그런 식으로 반응해야 합니까? 제가 아프게 한 건 줄 알고 놀랐잖습니까.”
“손만 잡았는데 아프면 그건 병이고요. 고무장갑이 차가운 걸 어쩌란 거예요?”
“라텍스 장갑입니다.”
“라텍스 고무장갑이죠.”
“저, 손가락 깍지 껴도 됩니까?”
“고무장갑이라 기분 나빠서 싫은데요.”
“……그러면 안 하겠습니다.”
“하지만 오늘만 너그럽게 봐줄게요. 대신 다음엔 꼭 벗고 해요.”
“…….”
“그런 것까지 끼고 그렇게 조심조심 만지면 만지는 느낌이 나긴 해요? 뭐, 느낌이야 나겠지만. 이런 건 피부랑 피부가 직접 닿는 게 중요한 거 아닌가?”
“아뇨, 전 이 정도가 딱 좋습니다.”
“욕심이 없으신 건지 많으신 건지 모르겠네요.”
“욕심은……, 별로 많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습니다만.”
“아뇨, 진지하게 물어본 거 아니니까 일일이 대답할 필요 없어요.”
“네…….”
“네드, 지금 내가 하는 말 알아듣고는 있어요?”
“네…….”
“만지니까 좋아요?”
“네……, 네?”
“됐어요. 표정만 봐도 다 보이는 걸 굳이 대답까지 들을 필요가 어디 있겠어요.”
“아니, 좋, 좋다는, 그런 뜻이 아니라……!”
“계속하세요. 그런데 네드 손가락 되게 기네요. 전에도 생각했는데 좀 쓸데없이 긴 거 아닌가요?”
“……손가락이 쓸모 있게 길 수도 있는 겁니까?”
“글쎄요. 하지만 그렇게까지 길어야 할 필요는 없잖아요? 손도 되게 크고. 괜히 기분 별로네요.”
“제 손의 크기와 당신 기분 사이의 상관관계는 뭡니까?”
“나도 남잔데 다른 놈 손이랑 대놓고 비교해서 작아 보이면 기분 나쁘죠. 내가 더 크고 싶으니까.”
“어릴 때부터 손 쓰는 스포츠를 많이 해서 그렇습니다. 제가 유난히 큰 편에 속하는 거니까 그렇게 기분 상해 할 필요 없는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내가 더 크고 싶어요. 그런 기분이에요.”
“그건, 아무래도 제가 어떻게 해 드릴 수 없군요.”
“그렇긴 하죠.”
“……그, 당신 손도 예…… 쁩니다. 이건 진심입니다. 얼굴에 어울리는 손이라고 생각합니다.”
“와……. 네드, 방금 그거 진짜 진정성 있는 칭찬이었던 거 알아요? 네드 입으로 얼굴에 어울리는 손이란 말 들으니까 내 손이 엄청 잘생긴 것처럼 느껴지네요.”
“사실이 그런 걸 어떡합니까?!”
“아니, 화낼 것까진 없고요. 그냥 신기해서요. 네드도 얼굴만 보는 건 아니었구나 싶기도 하고.”
“제가 무슨 외모 지상주의의 마지막 남은 오점도 아닌데, 정말로 얼굴만 보고 반할 리가 없잖습니까.”
“거의 그래 보이긴 하거든요?”
“외모 지상주의가 아니라……, 완벽한 이상형이라 그런 겁니다.”
“결론적으로 네드의 이상형이 되려면 나처럼 완벽하게 잘생겨야 한다는 거니까 외모 지상주의 맞잖아요?”
“당신은 자기 입으로 그렇게까지 말하면 양심이 아프지도 않습니까?”
“그럼요. 사실을 말하는 건데 왜 양심이 아파요? 이 얼굴로 평생 살아 보면 네드도 이해할걸요?”
“반박할 수 없다는 점이 짜증 납니다.”
“어쩔 수 없죠. 진실이니까. 그보다 네드, 내 손 되게 마음에 들었나 봐요? 이젠 곧잘 만지시네요.”
“……그것도 반박할 수 없어서 서글프군요. 솔직히 이 정도면 손 모델 같은 걸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정말 모형같이 예쁘네요.”
“그런 말도 자주 들어요. 나, 피아노 꽤 오랫동안 쳤거든요.”
“……네? 흰 건반과 검은 건반이 있는 그, 악기 말입니까?”
“네드는 그거 말고 다른 피아노를 알아요?”
“물론 없지만……, 피아노를 치셨다고요?”
“네. 게다가 썩 잘 쳤어요.”
“왜……, 어쩌다가 일이 그렇게……?”
“그렇게 이상할 일은 아니잖아요? 성가대에서 피아노 반주 했어요. 어릴 때는 어쩔 수 없이 주말마다 잡혀갔거든요. 게다가 아버지가 욕심이 많았어요. 노래를 하든지 반주를 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성직자로 만들려고 하잖아요. 난 수절하는 것도 싫고 노래 부르는 것도 싫어서 남은 걸 골랐죠.”
“정말 당신다운 이유로군요. 설마 가족 중에 성직자도 있는 건 아니겠죠?”
“왜요? 가톨릭에 관심 생겼어요? 내 기억으로 우리 주님은 동성애에 별로 관대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아닙니다. 그냥 모르고 살겠습니다.”
“하지만 시대는 변하는 법이니까요. 주님도 언젠가는 트렌드를 받아들이시겠죠. 더 많은 신도를 위해서라도.”
“정말이지, 본인의 종교에 대한 일말의 존중도 없는 사람이라 놀라울 지경입니다.”
“저만 그런 것도 아닌걸요.”
“그렇습니까…….”
“그런데 네드, 계속 그렇게 손만 만지작거릴 거예요? 마음의 준비도 했다면서 좀 더 과감하게 만져야 할 때가 아닐까요? 물론 전 손목이나 팔 따위에 과감하다는 말을 써야 한다는 것에 큰 유감을 느끼고 있어요. 그것도 꼭 고려한 뒤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 봐요.”
“……그럼, 조금만 위로 올라가겠습니다.”
“많이 올라와도 괜찮은데요. 내려가는 게 파렴치한 거니까요.”
“…….”
“아, 만질 때 참고하라고 말씀해 드리는 건데 전 손목은 별로 민감한 편이 아니에요.”
“……그렇습니까.”
“사실 손으로 만지는 것보단 다른 부위를 쓰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풋 잡 같은 건 성별 상관없이 괜찮을 것 같지 않나요?”
“…….”
“네드, 더 힘줘서 만져도 되는데요? 고무장갑 때문에 꼭 촉진받는 것 같아서 흥이 안 나잖아요.”
“하지만, 이렇게 부드러운데 힘줘서 만졌다 멍이라도 들면 어떡합니까?”
“좀 쥐었다고 다치고 멍들고 터지면 그게 인간이에요? 애벌레지.”
“당신은 이런 상황에서 꼭 그런 비유를 해야 합니까?”
“불만이면 열심히, 내 마음이 동하게, 뭔가 느껴지도록 노력해 보세요. 슬슬 지루해지려고 하잖아요.”
“…….”
“왜요? 자존심이라도 상하셨어요?”
“……그런 거 아닙니다.”
“거짓말. 자존심 상하면 좀 열심히 만져 보시든지요. 손 조금, 손목 조금, 팔 조금 꼼지락거리면서 어린애 장난 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예요? 재미도 없고 꼴리지도 않아요.”
“…….”
“기죽으라고 한 말이 아니라, 내가 정말로 좋으면 좀 더 적극성을 보이라는 뜻이에요.”
“저는 지금도 충분히 적극적인 겁니다…….”
“너무 좋아서 적극적이기가 힘들어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꼭 그렇지 않은 것만도 아니긴 하죠.”
“또 그런 식으로 말하시네. 내가 쉽게 갈 수 있게 도와줄까요?”
“어떻게……, 말입니까?”
“이렇게요.”
“……흣! 자, 잠깐……!”
“이렇게 딱 붙으니까 만지기 훨씬 쉬워졌죠?”
“비, 비, 비켜 주세…….”
“왜요? 내가 그렇게 무거워요? 그냥 좀 기댄 것뿐인데.”
“그냥 기댄 게 아니라 완전히 안겼잖습니……, 너무 닿습니다!”
“그럼 밀어내요.”
“……어떻게!”
“막 귀찮게 안겨 드는 사람 밀어낸 적 없어요? 그냥 떠미는 거죠.”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쳐다보는데 어떻게…….”
“하. 내가 쳐다보니까 못 하는 거라고요? 또 남 탓이시네. 좋아요. 그럼 안 쳐다볼게요.”
“……! 거, 거기다 얼굴을 파묻으면 어떡합니까?!”
“넓고 편하고 좋기만 한데요? 근데 좀 위험한 것 같긴 하네요. 네드, 심장이 너무 빨리 뛰는 거 아니에요? 이 정도면 거의……, 분당 180은 될 것 같은데?”
“그, 그러니까 빨리 비켜 주세,”
“저 운동 싫어해서 힘 별로 안 세요. 불쾌하면 알아서 밀어내세요. 근육 키워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쓰려고요?”
“……하지만!”
“하지만 같은 건 없어요. 싫으면 밀어내고, 아니면 그냥 즐겨요.”
“…….”
“네드, 그래도 911 불러야 할 만큼 심각할 때는 꼭 미리 말해 줘요. 나 네드 짊어지고 병원까지 뛸 자신은 없어요.”
“……그렇게까지, 심한 건, 아닙니다.”
“본인 심장 소리를 들었으면 그런 자신감은 못 가질 텐데……. 들려줄 수 없는 게 안타깝네요.”
“…….”
“계속 팔만 부여잡고 있지 말고 허리라도 감싸 안아 보는 건 어떤가요? 사실 좀 아파요.”
“…….”
“좋아요. 일단 나쁘진 않네요. 가족 아닌 남자 품에 안긴 건 처음인데, 의외로 괜찮아요. 아늑하기도 하고.”
“……그렇습니까.”
“그런데 확실히 몸이 딱딱하긴 하네요. 운동 되게 열심히 하나 봐요?”
“네…….”
“하기야, 풋볼 선수였다고 했으니까 운동 좋아하겠네요.”
“네…….”
“그래요. 지금 또 내 말 안 듣고 있죠?”
“네…….”
“알겠어요. 떨어지고 싶어지면 말해요. 그렇게 질색하다 갑자기 조용해지니까 좀 무섭잖아요.”
“아니요.”
“아니, 지금 떨어지고 싶냐고 물은 거 아닌데요. 떨어지고 싶을 때 말하라고요.”
“…….”
“…….”
“…….”
“……알아들었어요. 말 안 할 거라 그거죠?”
“……꼭 그런 건 아니었습니,”
“오늘 만지기는 여기까지.”
“…….”
“그런 눈으로 쳐다봐도 하루 내내 안고 있는 건 안 돼요. 불편하잖아요.”
“알겠습니다. 그럼 전 잠깐……,”
“어디 가요?”
“……잠깐.”
“잠깐이 장소예요?”
“…….”
“안 놀릴게요. 갔다 와요.”
“……네.”
“…….”
“…….”
“네드, 아무리 급해도 문은 닫아요. 소리 다 새요!”
쾅!
정신 차리세요
BE REAL
“새미, 무슨 책을 읽는 겁니까?”
“아. 나왔어요?”
“그거 제 책입니까? 처음 보는 것 같은데요. 〈아르테미스〉?[86] 그리스 신화의 신입니까?”
“맞아요. 달의 신. 내가 아마존에서 샀어요.”
“대체 당신은 아마존을 얼마나 좋아하는 겁니까?”
“좋아해서 쓰는 게 아니라 편리해서 쓰는 거죠. 미국 국민들이 월마트[87]에 가는 이유가 월 마트를 좋아해서는 아니잖아요?”
“그렇긴 합니다만……. 이 시커먼 게 달입니까?”
“네. 달로 이주한 지구인들 이야기예요. SF 소설이죠.”
“SF치고는 평범하네요.”
“평범하죠. 〈퓨처라마〉[88] 생각도 나고 재밌어요.”
“다들 왜 그렇게 달에 집착하는 겁니까? 발자국을 찍고, 깃발을 꽂고, 그걸로도 모자라서 이젠 책까지 쓰다니. 너무 끈질긴 것 아닙니까?”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우주 같은 거에 관심 가지는 너드랑 친해 본 적이 없어서. 하지만 요즘은 화성으로 옮겨 간 것 같기는 해요. 달은 단물을 다 빼 먹은 거 아닐까요?”
“……그 책은 재밌습니까?”
“음, 글쎄요? 재즈가 달에 금지 품목 밀수하는 장면까지밖에 못 읽었는데 흥미롭긴 해요. 달의 화폐 단위가 재미있거든요.”
“어떤 단위길래요?”
“지구에서 달로 물자를 옮기는 데 드는 무게 단위가 화폐 대신으로 쓰여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 1파운드의 밀가루를 달에 가지고 오고 싶으면 달에서 1파운드만큼의 가치가 있는 일을 해야 하는 거죠.”
“흠, 현명하군요. 확실히 우주에선 달러를 쓰는 것보다는 물물 교환을 하는 게 낫기는 합니다. 지금만 해도 우주 정거장[89]에 물자를 쏘아 올리는 데 어마어마한 세금을 낭비하고 있으니까요.”
“우주 정거장에 있는 NASA 직원들도 먹고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잖아요. 네드, 보기보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었네요. 무능한 우주인들이 마음에 안 드는 건 이해하지만, 식량 정도는 너그럽게 쏴 줘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당신한테 피도 눈물도 없단 말을 들으니까 묘하게 억울합니다.”
“위로주라도 드려요?”
“대낮부터 술을 마시자는 말입니까?”
“위로주에 술 말고 다른 의미도 있나요?”
“그런 뜻이 아니라 시간이…….”
“네드도 슬슬 새로운 시도를 해 보고 싶지 않나요?”
“술을 마시자는 게 썩 새로운 시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렇긴 하죠. 하지만 우리 둘이 같이 마신 적은 없잖아요? 네드도 술이 들어가면 좀 쉬워지지 않을까요?”
“뭐가 쉬워진다는 뜻입니까?”
“예를 들면, 만지기의 다음 단계라든지.”
“……그건, 술까지 마셔 가면서 시도해야만 하는 일입니까?”
“대체로 그렇죠. 여기까지 왔는데 다음 단계를 시도하지 않는 건 내가 네드에게 낭비한 시간과 의욕에 대한 모독인걸요.”
“할 수만 있다면 더 격렬하게 모독하고 싶습니다.”
“보통 취하면 솔직해지기 쉬워진다고들 하니까, 오늘 저녁엔 분위기 좋은 데서 술이라도 마시러 갈까요? 맛있는 술이 있는 좋은 바를 알거든요.”
“지금 밖으로 나가서 데이트를 하자는 겁니까……? 새미, 당신이……?”
“네.”
“저와 데이트를 하기 위해서 밖에 나가 주겠다는 겁니까?”
“뭐, 진짜 밖은 아니고요.”
“설마 당신의 유니버스에는 가짜 밖도 있는 겁니까?”
“내 유니버스에 있는 건 아니고 내 건물 안에 있죠.”
“……하.”
“내가 쓰는 층이 펜트하우스인데 그 밑 층이 비어 있잖아요? 거기에 나만 들어갈 수 있는 프라이빗 바가 있어요. 훌륭한 바텐더도 둘이나 있죠. 풀코스는 재료 준비가 필요하니까 어렵겠지만 쉐프와 주방 보조도 있어요. 기본적인 식재료는 다이닝에 매일 납품되는 데에서 일정 부분 위로 올라가니까 간단한 저녁 식사도 가능해요. 안타깝게도, 직원 넷이 하나같이 출근을 잘 안 하기는 하지만.”
“바텐더와 쉐프가 있는 프라이빗 바를 건물 안에 만들었다는 말씀입니까? 당신 혼자 쓰려고?”
“네. 참고로 바가 어디 있는지는 그 네 명과 청소 용역, 그리고 저밖에 몰라요.”
“……차라리 바를 개방하고 손님을 받는 게 어떻습니까?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이상한 낭비라 뭐라고 할 말이 없을 지경입니다.”
“고맙다고 하시면 돼요.”
“대체 이 이야기의 어떤 부분이 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도록 만드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만?”
“네드를 위해서 아무도 가지 않는 바를 만들었잖아요. 안전하고 깨끗한 곳이죠.”
“……절 위해 만든 거 아니잖습니까?”
“사소한 건 넘어가도록 해요. 게다가 바를 청소하는 사람들이 네드의 집을 청소하는 사람들이랑 같으니까 신뢰할 만큼 청결한 환경일걸요?”
“…….”
“네드가 마음에 들어 할 줄 알았어요. 그럼 오늘 저녁은 분위기 있게 센트럴 파크를 내려다보면서 진탕 취하고 무슨 일이 생기나 보는 걸로 할까요?”
“그건, 그러니까, 진짜 데이트를 하자는 겁니까?”
“그럼요. 그런데 세상에 가짜 데이트 같은 것도 있는 줄은 몰랐네요.”
“적어도 당신이 우겼던 저녁 식사 같은 건 데이트가 아니었을 겁니다.”
“아무렴 어때요. 그럼 내 직원들한테 오후 6시에는 열 수 있게 준비하라고 연락해 둘게요. 그 정도면 훌륭한 디너 데이트죠?”
“……놀랍게도 그런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얼빠진 얼굴이에요?”
“그, 당신이 나랑 데이트하려고 밖에 나간다고 하니까…….”
“밖에 나가니까?”
“……꼭, 진짜처럼 느껴져서요.”
“난 원래 진짜 사람이었는데?”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당신이 나한테 하고 있었던 것들 말입니다.”
“아하. 수작 거는 거요?”
“네, 뭐, 그렇게도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만…….”
“나도 그래요.”
“뭐가 말입니까?”
“남자랑 ‘진짜’ 데이트 하는 거 처음이라고요. 그러니까 네드가 리드해 줘요. 와, 네드의 리드. 라임까지 완벽하네요!”
“…….”
“저, 네드? 지금 내가 한 말의 어디에 얼굴을 붉힐 만한 요소가 있었는지 게이적으로만 납득 가능한 이유가 있는 걸까요?”
“어, 어, 없습니…….”
“뭔데요? 진짜 데이트? 처음? 리드? ……리드? 리드가 왜요? 혹시 야한 생각 했어요?”
“…….”
“모쪼록 잘 부탁해요. 첫 ‘진짜’ 데이트 ‘리드’ 하는 거.”
“……노력해 보겠습니다.”
하지 마
DON’T
지이이이잉.
“……으음.”
지이이이잉.
“…….”
지이이이잉.
“……전화받아, 머저리야.”
지이이이잉.
“이거 내 거야……?”
지이이이잉.
“내 거겠니?”
지이이이잉.
“……엉? 내 거 아닌데?”
지이이이잉.
“뭐야. 내 거네? 주말 새벽부터 어떤 미친놈이 전화질이야? 여보세요?”
[안녕, 헬렌?]
뚝.
“……씨발.”
“왜 그래, 헬렌? 누구 전화였는데?”
“돈[90]. 그런데 실수로 끊었어.”
“돈 전화를 그냥 끊었다고?”
“아니, 그쪽 돈 말고. 우리 고용주.”
“아……. 괜찮아. 급한 용건이면 알아서 또 걸겠지.”
“그건 나도 아는데…….”
지이잉.
[오후 1시는 새벽이 아님. - 하지 마DON’T[91]]
“또 샘이야?”
“어. 나보고 오후에 처자지 말래.”
“걔가 그런 말을 해?”
“대충 비슷한 말.”
“샘이야말로 이 시간에 일어나 있는 게 신기한데, 대체 무슨 일이길래…….”
지이이이잉.
“…….”
지이이이잉.
“……헬렌, 전화받아야지.”
지이이이잉.
“네가 받아.”
지이이이잉.
“하지만 헬렌, 그건 네 전화잖아.”
지이이이잉.
“넌 뒈질 때까지 내 고통을 나눠 가지기로 맹세했잖아.”
지이이이잉.
“뒈질 때까지 널 사랑하겠다는 맹세는 했지만 그런 건 한 기억이 없어…….”
지이이이잉.
“네가 받아, 새끼야.”
지이이이잉.
“여보세요, 헬렌 파웰 전화입니다.”
[안녕, 헬렌? 오래간만이네.]
“그러게요, 새미. 거의 2년 만인 것 같은데요?”
[그런데 너 어디 아파? 목소리가 왜 그래?]
“……새미, 나 헬렌 아니고 프레드예요. 30년을 알고 지냈는데 이제 목소리 정도는 알아들어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오, 프레디! 당연히 장난이지. 옆에 헬렌 있어? 헬렌한테도 안부 전해 줘.]
“진심으로 헷갈린 거 다 알거든요……. 무슨 일인데요?”
[오랜만에 바에서 저녁이나 먹을까 해서. 데이트처럼.]
“데이트도 아니고, 데이트처럼? 리즈랑 헤어졌다면서 벌써 데이트를 해요? 설마 돈 주고 사람까지 산 건 아니죠? 내 고용주가 그렇게까지 타락하진 않았으리라고 믿고 싶네요.”
[산 거 아니야. 얼굴로 꾀었어. 그런데 상대가 남자거든. 혹시 게이 바 같은 분위기로 준비할 수도 있어?]
“남자라고요? 당신이 남자랑 데이트를 해요?”
[그렇게 됐어. 나도 내가 품은 무한한 가능성이 놀라우니까 그렇게 놀랄 것 없고. 그래서, 분위기는?]
“아, 네. 그 게이 바 분위기란 건 대체 어디부터 지적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왜?]
“일단 평범한 바나 게이 바나 둘 다 바고요, 그 말 자체가 차별적으로 들릴 수 있거든요? 또 진심으로 게이 바 같은 분위기를 원한다면 바텐더한테 전화할 게 아니라 바에 게이인 사람들을 초대해야죠. 어떤 바를 게이 바로 만들어 주는 건 보통 다수의 게이 손님이니까요.”
[……오. 생각해 보니 그러네? 하지만 다른 사람은 초대 안 할 거야.]
“그럼 오늘 손님은 둘뿐인 거예요?”
[응. 그리고 내 데이트 상대가 결벽증이 있어. 그러니까 깨끗한 위생 상태를 어필하는 메뉴를 생각해 봐.]
“깨끗한 위생 상태를 어필하는 메뉴라니……. 세정제 색깔의 칵테일이라도 내놓으라는 건가요?”
[하하, 창의적인 건 네가 해야지. 나는 주문만 하는 거고. 기대할게.]
“확실히 맞는 말이지만 샘의 입에서 나오니까 긍정하기가 싫어지네요…….”
[6시에 시간 맞춰서 올라갈 거니까 그 전까지 준비 마쳐 줘. 아, 로즈랑 타일러한테도 6시 식사 가능하게 출근하라고 전달하고.]
“알겠어요.”
뚝.
“돈이 뭐래?”
“음. 오늘 6시에 올 거니까 출근하라는데?”
“그 재수 없게 생긴 게으른 새끼는 왜 고르고 골라서 주말에 나오라는 거야?”
“헬렌, 그 잘생기고 게으른 새끼는 우리가 2년에 한 번만 출근해도 연봉을 주는 좋은 새끼니까 조금쯤 포용력 있게 받아 주는 게 어떨까?”
“싫어. 내 포용력은 너한테만 발휘되는 한정판이야.”
“……나 로즈랑 타일러한테 연락하고 올게. 피곤하면 더 자. 시간 되면 깨울게.”
“응.”
“잘 자, 허니.”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