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화 (16/31)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

Life, the Universe and Everything[81]

“후.”

“네드, 그러다 잘못하면 라마즈 호흡법[82]까지 시작하겠어요.”

“시끄럽습니다. 지금 제가 낳을 수 있는 건 긴장밖에 없습니다.”

“긴장을 낳을 수 있다는 것도 어떤 의미에선 대단한데요?”

“정신 사나우니까 좀 닥쳐 주세요.”

“알겠어요. 그럼 마음의 준비가 끝나면 말해 주세요. 네드의 마음은 눈에 안 보여서 준비가 된 건지 아닌지 모르겠거든요.”

“쉿.”

“네.”

“…….”

“…….”

“…….”

“…….”

“…….”

“……네드, 아직인가요?”

“쉿!”

“…….”

“후, 준비 끝났습니다.”

“대체 어떤 마음을 준비한 건지 좀 궁금해지려고 하네요.”

“집중력 흐트러지니까 이상한 말 하지 말아 주시죠.”

“이번 의문은 굉장히 평범한 편이었다고 생각하는데요……?”

“마음 바뀌기 전에 빨리 시작합시다. 새미, 당신이 말 꺼냈으니까 먼저 하세요.”

“알겠어요. 그럼 손부터 만질게요. 전에는 네드가 일방적으로 내 손 만졌으니까 똑같은 라인에서 시작해 보죠.”

“…….”

“저기, 네드? 일단 손을 내밀어 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내밀었잖습니까.”

“팔이 3인치밖에 안 되는 것도 아니면서 왜 그래요? 설마 다리도 만져 달라는 무언의 요구인가요? 허벅지에 손 올리지 말고 테이블에 제대로 올려요.”

“하, 정말이지 요구가 많은 사람이로군요.”

“아니,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하는데, 이번 건 내 잘못 아니거든요?”

“올렸습니다. 얼른 끝내세요.”

“와……. 네드, 설마 다 벗고 침대에 올라가서도 눈 질끈 감고 누워서 얼른 끝내라고 할 거예요? 분위기 다 깨지게?”

“보통은 그 반대이긴 하지만, 일단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습니까?”

“반대라니요?”

“그야, 제가 왜 누워서 눈만 감고 기다립니까?”

“……네? 하지만, 둘 다 누워 버리면 어떡해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이해가 안 됩니다만……?”

“남자끼리는 둘 다 누워서도 가능해요? 하지만, 신체 구조상 누구 하나는 올라타야 할 텐데요? 보통 남자끼리 섹스하면 뒤에 넣는 거 아니에요? 거기밖에 넣을 곳이 없을 텐데?”

“……그러니까, 지금 당신은 본인이 올라탈 거니까 누워 있는 건 제가 될 거고, 눈만 질끈 감고 얼른 끝내라고 하는 사람도 저라는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 겁니까?”

“바로 그거예요!”

“…….”

“하지만 네드 말대로 그게 지금 중요한 건 아니죠. 아직 C도 못 했는데 벌써 Z를 걱정하면 뭐 해요.”

“…….”

“그런데 네드, 아직 시작한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떨어요? 괜히 나까지 긴장되게.”

“거짓말하지 마시죠. 긴장 안 한 거 다 압니다.”

“정말인데. 겨우 손 하나 내밀면서 벌벌 떨면 보는 사람도 신경 쓰여요. 아무리 나라도.”

“신경 쓰이는 거랑 긴장은 다른……, 읏!”

“저, 손가락 좀 만진 걸로 그렇게까지 놀랄 필요는 없지 않나요?”

“지, 지, 지금 잡지 않았습니…….”

“네, 잡았어요. 이젠 깍지 낄 거고요.”

“흡…….”

“손바닥 만질게요. 그냥 엄지로 문지르는 것뿐이니까 내가 전기톱이라도 들고 달려들기라도 한 것 같은 표정 좀 어떻게 해 봐요.”

“누, 가 그런 얼굴을 했다…… 고…….”

“마음의 준비 끝났다더니 순 거짓말이었네요.”

“이, 이, 이렇게 야하게 만지는 게 어디 있습니까?”

“이제부터 손목도 만질 건데요.”

“그렇게 빨리,”

“빠르긴요. 손이야 처음 만난 날에도 다 잡는 건데.”

“난 그런 방탕한 짓은 안 합니다!”

“손 가지고 방탕하다고 할 정도면 지금부터 하는 짓은 얼마나 심각하게 난잡한 건데요?”

“오, 오늘은 팔만 만진다고 했잖습니까?!”

“팔만 만질 건데요……. 마치 내가 다른 곳을 만졌다는 것처럼 말하지 말아 줄래요? 정말 만졌다면 모를까, 되게 억울하네.”

“……차, 차라리 빨리 끝내면 안 됩니까?”

“싫은데요.”

“왜……!”

“나도 이런 거 되게 오래간만이라 흥이 나서요. 네드,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건데 설마 버진인 건 아니죠?”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이 나이에!”

“손목 좀 만졌다고 이렇게 흥분하는 걸 보면 되게 의심되는데……. 일단 믿어는 줄게요.”

“그건 손목을 만져서가 아니라, 당신 얼굴이, 표정이……!”

“아하, 다른 사람한텐 안 이러는데 내가 만져서 흥분된 거다?”

“…….”

“하하. 이제 팔오금도 만질 거예요. 여기, 팔꿈치 접히는 안쪽, 알죠? 이 피부가 되게 부드럽고 예민하잖아요. 이렇게 누르듯이 문지르면 맥박도 느껴지거든요.”

“흐…….”

“음, 네드는 참 건강한 심장을 가졌네요. 축하해요.”

“잠, 깐. 조금 천천히……!”

“네드, 혹시 상완 삼두근이 어딜 가리키는 명칭인지 알아요?”

“사람이 말을 하면 듣, 는, 척이라도!”

“팔꿈치 위쪽에, 겨드랑이 쪽 말고 어깨랑 이어지는 팔 바깥 부분인데, 지금 내가 만진 곳이요. 덴티스트도 그 정도는 배우죠?”

“…….”

“와우. 팔도 빨개질 수 있었네요. 나 그렇게 세게 잡은 거 아닌데.”

“……흣.”

“왜 고갤 돌려요? 다시 나 봐요.”

“새미……!”

“쯧. 네드, 고개.”

“어, 어, 얼굴, 만졌……!”

“턱 좀 건드린 것 가지고 소란스럽게 굴지 말아요. 자꾸 고개 돌리니까 그런 거잖아요.”

“어, 얼굴은 약속에 없었잖습니까!”

“그랬죠. 그런데 내가 약속을 지키겠다고 했던가요?”

“……!”

“자꾸 귀엽게 굴면 뺨도 만지고 귀도 만지고 목도 만질 거예요.”

“읏……!”

“좋아요, 얌전하게 구니까 이렇게 예쁘잖아요. 계속 착하게 굴어야 해요?”

“눈이라도…… 감으면…… 안…… 됩니까……?”

“네드, 눈 감고 싶어요?”

“……네.”

“왜 감고 싶은데요?”

“…….”

“말하기 싫어요?”

“……네.”

“그럼 하지 마세요. 그런데 눈 감으면 더 힘들걸요? 보이는 게 없으면 다른 감각이 예민해지잖아요. 설마 그게 네드가 원하는 거예요?”

“뜨, 뜨고 있겠습니다!”

“그러세요. 그건 그렇고 네드, 속눈썹 되게 긴 거 알아요? 엄청 불쌍하게 떨리고 있어요. 눈가도 젖었고요. 혹시 지금부터 울 예정이에요?”

“흐, 누가, 운, 다고……!”

“아쉽네. 나 사람 울리는 거 되게 좋아하는데.”

“망할, 성격 한번…….”

“내 성격 별로죠? 나도 알아요.”

“알면, 반성의, 기색이라도,”

“반성하면 울어 줄 건가?”

“…….”

“이제 턱 놓을 테니까 고개 돌리지 말고 나 계속 보고 있어요?”

“……네.”

“숨도 쉬고요. 라마즈 호흡법이든 뭐든 상관없으니까. 안 웃어요, 그런 걸론.”

“거짓말…….”

“힘들면 좀 쉬었다 할까요?”

“……끝난 거 아니었습니까?”

“끝나긴요. 이제 네드가 나 만질 차롄데.”

“…….”

“힘들면 세수라도 하고 올래요? 열도 식힐 겸.”

“…….”

“얼른 갔다 와요. 네드처럼 착하게 기다리고 있을게요.”

“…….”

달칵.

“하지 말자는 말은 절대 안 한다니까?”

Protection[83]

“네드, 그 손은 뭐죠?”

“손입니다.”

“물론 그게 손이란 건 나도 알아요. 설마 그 손을 내 입 안에 쑤셔 넣으려고 그러고 온 거예요?”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하지만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는데요. 직업적으로도 상당히 신빙성 있는 추측이고요.”

“좀 더 열린 마음을 가져 보시죠. 단순히 위생을 위해서일 수도 있잖습니까?”

“이 집에 네드가 쏟아부은 돈을 생각하면 병원의 무균실만큼 위생적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게 추가로 필요하단 말인가요? 당장 벗어요. 욕실에 그런 걸 구비하고 있는 것부터 황당한데, 끼고 나오기까지 하다니. 정말 실망했어요.”

“못 벗습니다. 이건 덴티스트의 피부 같은 겁니다. 피부는 벗을 수 없는 거고요.”

“피부는 그렇겠지만 라텍스 장갑은 벗을 수 있어요.”

“자꾸 벗으란 말 하지 마시죠.”

“이번에는 네드가 그런 말을 하게 만들었잖아요.”

“남 탓 하는 버릇은 좋지 않습니다.”

“내가 가진 버릇 중에 좋은 버릇 같은 건 없으니까 괜찮아요.”

“그래도 못 벗습니다. 저한테도 보호 장비Protection 정도는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이 정도는 너그럽게 받아들이시죠.”

“네드, 그 말에 굉장한 오해의 여지가 있다는 걸 알고 하는 거예요? 심지어 같은 라텍스[84] 재질이기까지 하네. 역시 일부러 그런 거죠?”

“……그런 뜻으로 한 말 아닙니다!”

“그래도 벗어요. 라텍스 장갑까지 끼고 만져야 할 만큼 내 피부가 더러운 것 같아서 기분 나빠요.”

“더러워서가 아닙니다.”

“그럼 뭔데요?”

“……심리적 방어막이라고 해 두겠습니다.”

“그런 건 마음에나 둘러요. 심리적 방어막을 손에 둘러서 어떡하자는 거예요?”

“그럼 안 만질 겁니다.”

“그거 못 끼게 하면 안 만지겠다고요?”

“네.”

“세상에. 지금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더할 나위 없이 진심입니다.”

“네드, 나 보이죠? 샘포드 베넷이잖아요. 내가 너무 좋아서 만지고 싶어서 안달 냈으면서 이젠 안 만지겠다고요?”

“……안달 낸 적 없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어차피 제가 만지고 싶다고 하면 언제든 내줄 것 아닙니까?”

“와. 맞는 말이긴 한데, 5분 사이에 사람이 이렇게 뻔뻔해져서 돌아오다니. 욕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차가운 물로 세수하고 깨끗한 머리로 다시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차가운 물 금지예요.”

“……그건 또 무슨 억지입니까?”

“그 고무장갑이나 얼른 벗어요.”

“안 됩니다. 어차피 큰 차이도 없습니다. 진료 볼 때 끼는 거라 얇아요.”

“그건 나도 알아요. 하지만 네드, 라텍스 장갑을 끼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지는 건 너무 멍청해 보이잖아요.”

“사, 무슨, 누가 그런 걸 한다고……!”

“정말 당황스럽네요.”

“아니, 말 돌리지 마시죠! 지금 제가, 누구에게 뭘 한다고!”

“됐어요. 그렇게 싫으면 그냥 끼고 만져요. 손으로 복습부터 시작할래요? 그리고 이번엔 저번처럼 너무 빨리 끝내지 말아요. 혼자 앞서가지 말고 제대로 만지는 거예요?”

“……꼭 제가 비뇨기과적 문제를 가진 것처럼 이야기하지 말아 주시겠습니까?”

“그런 뜻 아니었는데요. 네드야말로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언제 조루라고 했어요?”

“…….”

“그럼 시작할까요?”

“그, 그렇게 갑자기 내밀지 마시죠!”

“알겠어요. 앞으론 일일이 예고하고 내밀게요. 그보다 이렇게 팔 뻗고 있는 거 불편하니까 좀 가까이 다가가도 될까요?”

“가, 가까이 오지 마…….”

“벌써 왔는데요.”

“…….”

“자, 시작하세요. 겁쟁이 라텍스 인간.”

대체로 무해

Mostly Harmless[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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