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 엔딩
“이건 불공평해요.”
“그게 아마 이 영화에 대한 감상 중에 가장 독특한 감상일 겁니다.”
“하지만 어떻게 결말이 이따위일 수가 있죠?”
“정확히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겁니까? 두 사람이 잘되고 아이도 낳고 우승도 하고 해피엔딩으로 끝났잖습니까? 원하는 베드씬도 나왔고요.”
“결국 리즈는 졌잖아요!”
“……그런 문제입니까?”
“말이 안 된다고요. 리즈가 지고 피터가 이기다니. 피터 그 자식은 와일드카드를 못 받았으면 출전도 못 했을 떨거지 주제에 남의 경기를 망치고 자기만 우승한다는 게 어떻게 말이 돼요?”
“물론 그 점에는 동의합니다만…….”
“영국 놈들의 자기 위로에 12.99달러를 낭비하다니!”
“물론 그 점에도 동의합니다만…….”
“77년 동안 홈그라운드에서 우승 못 한 주제에 이런 영화나 만들다니![60] 영국 놈들은 자존심도 없나요?”
“현실에서 못 했으니까 영화라도 만든 거 아니겠습니까? 저는 당신이 이 영화를 왜 그렇게 싫어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테니스에 관심 없으시다면서요?”
“이건 테니스 문제가 아니잖아요. 탑 랭커인 미국인 여자 선수를 몸으로 유혹해서 지게 만든 출전 자격도 없는 영국인 찌질이[61]가 챔피언십 트로피를 타 가는 걸 로맨스로 포장하다니. 대체 이게 무슨 로맨스란 말이에요? 만약 내가 리즈였다면 경기를 망친 피터 자식을 절대로 가만 두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 놈과 결혼하고 애까지 낳아 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요.”
“그, 보통은 그 부분이 로맨스의 핵심 아닙니까? 리즈가 피터한테 빠져서 경기를 망친 건 사실이지만 원래 컨디션 부조도 있었고, 그런 일들을 사랑의 힘으로 극복한다는 게 아름다운 결말…….”
“아니요. 사랑에 패배를 아름답게 만드는 힘 같은 건 없어요.”
“…….”
“사랑은 호르몬의 화학 작용으로 인한 일시적 착각에 불과하니까요. 리즈도 나중에 후회했을 거예요.”
“…….”
“아, 미안해요. 그렇다고 나에 대한 네드의 사랑을 의심한다는 건 아니었어요.”
“의심이고 뭐고, 애초에 당신과 나 그런 게 존재했던 적도 없습니다.”
“아직 사랑까지는 아닌가 봐요?”
“‘아직’이란 말은 가능성이 있을 때나 붙이는 겁니다.”
“그럼 잠깐 인격과 외모를 따로 떼서 생각해 봐요. 내 인격은 사랑하지 않지만 내 얼굴은 사랑하나요?”
“…….”
“그것도 아직 사랑까지는 아닌 건가요? 생각보다 벽이 단단하네요.”
“얼굴을 사랑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부터 정의해 보시죠.”
“좋아요. 그럼 네드가 리즈라고 가정해 봐요. 프로 선수인 네드가 내 얼굴을 너무 좋아해서 매일 그것만 보느라 훈련을 못 하고 중요한 경기에 졌어요. 그런데도 내 얼굴만 보면 화가 없어지잖아요? 그럼 그건 사랑……, 아니네요. 그런 건 사랑이라고 하면 안 되죠. 역시 이건 불공평해요.”
“쓸데없는 데 집착하지 말고 그냥 그런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끝내면 안 되는 겁니까?”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런 영화인 걸 어떡합니까?”
“그래도 안 돼요. 난 이렇게 노력하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 피터 저 새끼는 운 좋게 와일드카드를 받고 운 좋게 리즈 같은 여자를 만나서 운 좋게 우승까지 하고 정작 리즈는 졌다는 걸 참을 수 없어요. 기분 더럽잖아요.”
“그러니까, 당신은 노력해서 열심히 사는데 영화 속 등장인물이 거저먹는 게 기분 나쁘다는 점이 문제란 겁니까?”
“아까부터 그 말을 하고 있었는데요?”
“……하.”
“나처럼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이 결말 보고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성실함이……, 그러니까, 성실하게 살고 있는 게 지금 그 꼴입니까?”
“지금만 해도 네드의 옆에서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데요.”
“……그렇습니까.”
“휴, 도저히 안 되겠어요. 나 고해 성사 좀 하고 올게요.”
“네?”
“고해 성사요. 홈그라운드에서 77년이나 져 놓고 현실에 굴복하지 못해서 자국민이 이기고 남의 챔피언을 패배자로 전락시키는 영화를 찍은 영국 놈들에게 12.99달러를 적선한 건 너무 큰 죄예요. 아무리 몰랐다고 해도 회개가 필요하죠.”
“그러니까, 형제한테 손목을 잘릴 위협을 당할 때에도 건물 밖으로 도망치지 않던 사람이, 고작해야 영화 하나 때문에 외출을 한다는 겁니까……?”
“네? 그럴 리가 없잖아요. 나 안 나가요.”
“그럼 고해 성사는 어떻게 하겠다는,”
“요즘은 온라인 고해 성사도 받아 줘요.”
“……네?”
“잠깐 실례할게요. 예약 시간 비어 있나 확인해야 하거든요. 5분도 안 걸리니까 여기 잠깐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