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31)

OCD[34]

“오늘 밤에는 닥터 와이트의 강박증에 대한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어째서 제 병을 미스터 베넷과 쉐어해야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만?”

“미래를 위해 견적을 내 보려고요.”

“무슨 견적 말입니까?”

“그런 게 있어요. 정략적이고 전략적인 미래 계획의 일부 같은 거죠.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를 판단하기 위한 재료요.”

“대체 무슨 헛소립니까?”

“좋아요. 그럼 일단은 닥터 와이트가 알아듣기 쉽게 1주일을 같이 살기 위해 어떤 강박증인지 제대로 알아 두고 싶다는 걸로 해 둘게요.”

“그런 이유라면 됐습니다. 그냥 제가 조심하겠습니다.”

“그건 안 되죠. 여긴 닥터 와이트의 스윗홈이잖아요. 조심은 당연히 얹혀사는 내가 해야 하는 거잖아요.”

“괜찮습니다. 1주일 정도라면 참을 만합니다.”

“절 위해서라도 괜찮지 않아 주시면 좋겠는데요.”

“그렇게 말하니 더 싫습니다.”

“왜 그렇게 말하기 싫어하는 거예요?”

“내 테라피스트도 아닌 사람에게 증상을 설명할 이유가 없잖습니까? 말한다고 나아지는 것도 아닌데. 게다가 저는 원래 고치려고 테라피스트를 만나는 것도 아닙니다.”

“네? 고치고 싶지 않은데 테라피스트는 왜 만나요?”

“제 강박증을 고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등쌀이 귀찮아서 다니는 거죠.”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해 살아가는 삶이라니. 정말 가엾은 분이시네요.”

“보여 주기 위해 살아가는 삶의 모범적인 루트를 밟다가 정략결혼 상대에게 차이기까지 한 분께 듣고 싶은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그래서 저도 이번에는 잘해 보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뭘 잘해 보겠다는 말입니까?”

“그건 일단 닥터의 이야기를 들어 보고 생각할 예정이에요.”

“내 강박증 증상을요?”

“네, 닥터 와이트의 강박증 증상을요.”

“정확히 뭘 알고 싶은 겁니까?”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결벽증인지 강박증인지 하는 건, 그러니까, 대충 닥터 와이트가 깨끗한 걸 유난히 좋아한다는 뜻이겠죠?”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습니다만 결벽증은 강박 장애의 일종입니다. 강박 장애 안에 결벽증이 포함되는 거죠.”

“그 말대로면 닥터 와이트는 결벽증인 동시에 강박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렇게 됩니다.”

“그런데 왜 결벽증이 아니라고 우기시는 걸까요?”

“결벽증이 아니라 강박 장애라고 말하는 편이 삶이 덜 귀찮아지니까요. 결벽증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귀찮게 굽니다. 하지만 강박 장애라고 하면 다들 뭔지 잘 모르니까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죠.”

“그렇군요. 굉장히 설득력 있는 이유네요.”

“공감을 받았는데 기분이 더러운 이유는 뭘까요?”

“음. 아마 닥터 와이트가 삐뚤어져서 그런 거겠죠?”

“저는 가끔 당신이 정말로 맞는 말을 할 때마다 짜증이 납니다.”

“그럴 때는 내 얼굴을 보세요.”

“……그게 정말로 쓸모 있는 조언이라는 게 슬프군요.”

“자, 그럼 강박증 이야기를 계속해 볼까요?”

“좋습니다. 먼저 말해 두자면, 미스터 베넷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나는 깨끗한 걸 유난히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다른 강박 장애도 그런진 모르겠군요. 워낙 개인차가 크다 보니. 다만 저 같은 경우, 오히려 더러운 걸 참지 못해서 문제가 생기는 쪽입니다.”

“두 가지가 다른 건가요? 더러운 걸 싫어하는 거랑 깨끗한 걸 좋아하는 건 똑같은 증상 같은데.”

“다릅니다. 게다가 둘 다 틀렸습니다. 싫고 좋고가 아니라 못 참는 겁니다. 뭔갈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 자체는 병이 아니잖습니까.”

“아닌가요?”

“아닙니다. 예를 들면, 브로콜리를 싫어해서 안 먹는 사람에게 강제로 브로콜리를 먹인다고 죽는 건 아니잖습니까?”

“그렇죠.”

“하지만 브로콜리 알러지가 있는 사람에게 강제로 브로콜리를 먹이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아나필락시스 쇼크로요. 깨끗한 걸 좋아하는 사람은 말하자면 편식가입니다. 좋아하는 것만 골라 먹는 사람들이죠. 더러운 걸 싫어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건 기호의 문제죠. 하지만 더러운 걸 못 참는 사람들은 알러지 환자입니다. 억지로 참게 하면 문제가 생기죠.”

“……그 말은, 닥터 와이트는 더러운 환경에 놓이면 죽는다는 건가요? 그건 좀 심각한 것 같은데.”

“……당연하지만 그걸로 죽지는 않습니다. 내가 날파리도 아닌데 그렇게 쉽게 죽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면 뭔데요?”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깨끗한 걸 좋아하는 사람은 깨끗한 환경에서 기분이 좋겠죠. 더러우면 기분이 나쁠 거고요. 그건 단순히 기분 문제인 셈이죠.”

“거기까진 이해했어요.”

“하지만 더러운 걸 못 참는 사람은 깨끗한 게 당연한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더러운 상태에 놓이면 다양한 문제가 생기죠.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게 무너진 상태니까요.”

“문제라는 걸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면?”

“기본적으로는 불안하고 화가 납니다. 계속 신경 쓰이고요. 신경이 쓰이다 못해 다른 생각 자체를 못 하게 됩니다. 어떻게든 더러운 상태를 깨끗한 상태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밖에 안 드니까요. 머릿속이 텅 비고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지만 생각하기 시작하고,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순간 더 큰 문제로 발전합니다.”

“죽는 건 아닌 큰 문제요?”

“그렇습니다. 공황 발작이 오기도 하고 분노 조절에 실패해서 발작을 일으키기도 하고 자해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구체적인 증상은 때에 따라 다릅니다. 요는, 알러지와 비슷하게 그러고 싶어서 그렇게 되는 건 아니라는 거죠. 좋고 싫은 걸로 끝나는 귀여운 게 아니니까 병으로 분류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뭡니까?”

“닥터 와이트는 밖에 나가서 미지의 더러운 사람들이 요리한 음식을 먹거나, 미지의 더러운 사람들이 쓴 화장실을 같이 쓰거나, 미지의 더러운 사람들이 앉았던 자리에 앉아야 하는 상황에는 어떻게 대처하나요? 지금 한 말만 들으면 나가지도 못할 것 같은데요.”

“화장실은 가능하면 집에서 해결한 뒤에 나가고, 또 집에 돌아와서 해결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도 꼭 가야만 할 때는 거기서 뭔갈 만져야 할 때 손수건을 이용하죠. 의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손수건이 유용합니다. 또, 요리 같은 경우에는 바깥에 나갔을 때 어느 정도 타협을 합니다.”

“하지만 알러지는 타협 안 되는 건데요?”

“정신적인 알러지니까 정신과 타협하는 것도 가능은 합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나아지고,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건 아니지만요. 가끔 그게 안 될 만큼 심한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음, 어렵네요.”

“쉬운 거였으면 왜 테라피스트가 필요했겠습니까? 그냥 알아서들 치료했겠죠.”

“과연. 그 타협이라는 건 어떤 식으로 하는 건데요?”

“저 같은 경우에는, 다른 건 하는 수 없으니 손만 깨끗하게 유지하자고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다른 부위는 버리는 패라고 자기 세뇌를 하죠. 그래서 실수로라도 손에 뭔가 닿으면 굉장히 쉽게 불쾌해집니다. 빨리 씻어 내거나 살균 티슈로 닦아야 하죠. 손에 집중하는 대신 다른 부위에는 신경이 덜 쓰이니까 요리 같은 경우도 잘 넘길 수 있는 거고요. 특별히 눈에 띄는 문제만 없다면.”

“빨리 처리 못 하면 어떻게 되는데요?”

“어떻게 된다기보다는, 아무것도 못 하게 됩니다. 계속 더러운 손 생각만 나니까.”

“아하. 닥터는 굉장히 힘든 삶을 살고 계시는군요…….”

“글쎄요. 전 그냥 좀 깨끗하게 사는 것뿐이라고 생각해서 괜찮습니다.”

“이상한 데서 긍정적인 분이시네요.”

“미스터 베넷에게 듣고 싶은 말은 아닙니다만.”

“좋아요. 그럼 키스 같은 거는요?”

“……네?”

“미지의 더러운 입술과 혀에 손수건을 대고 키스할 수는 없잖아요. 손이 아니라 입술이라서 괜찮은 건가요?”

“갑자기 그건 왜 궁금한 겁니까?”

“음. 지적 호기심이라고 해 두는 편이 닥터 와이트를 안심시킨다면 그걸로 해 둘까요? 그래서, 키스는 어떻게 하시나요? 구강 청결제를 이용해야 하나요? 아니면 그건 그냥 해도 괜찮은 분류?”

“……자를 대고 그어 놓은 건 아니지만 허용 가능한 선이 있습니다.”

“키스만요? 아니면 사람이랑 접촉하는 것 전반적으로?”

“후자에 가깝겠네요.”

“그 선이란 건 어떻게 긋는데요?”

“보통은 제 기분 문제입니다. 이 사람은 괜찮다는 생각이 들면 어느 정도는 참아지죠. 가족과 만났을 때 끌어안는 정도는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지만 손을 잡는 건 안 된다든지. 내 식기에 다른 가족이 손을 대면 더 이상 그 식기는 사용할 수 없다든지. 또 사람을 만질 때는 제가 먼저 만지면 괜찮은 편입니다. 키스도 제가 먼저 하면 괜찮죠. 그러니 미스터 베넷의 얼굴도 치료할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대신 상대방이 절 만지는 건 거의 안 됩니다. 거기에 딱히 일정한 기준이 있는 건 아닙니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크게 달라지기도 하고요.”

“절 집에 받아 준 것처럼요?”

“그건 또 다른 문제입니다.”

“정말 문제가 많네요. 이번엔 뭐가 어떻게 다른데요?”

“미스터 베넷은 내 집에 맨몸으로 왔잖습니까.”

“그랬죠.”

“들어와서 깨끗하게 샤워했고, 내가 준 것만 걸치고 있으니까 괜찮습니다. 오히려 그래서 좋습니다. 그 상태가 제일 이상적인 상태거든요.”

“내가 닥터 와이트의 욕실에서 샤워하고, 닥터 와이트가 준 것만 걸치고 있는 상태가 이상적이고 좋아요?”

“…….”

“본인도 말해 놓고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죠?”

“…….”

“알았어요. 안 놀릴게요.”

“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밖에 나갔다 오면 다시 더러워지는 거니까 조심해 주시면 좋겠군요.”

“난 나가는 거 원래 싫어해서 안 나갈 거니까 문제없어요.”

“그것도 괜찮습니다.”

“대충 알아들었어요. 그거 외에 특별히 주의할 건 없나요?”

“글쎄요. 그 외에는, 음, 손을 자주 씻는 편이긴 합니다.”

“얼마나 자주 씻길래요?”

“생각날 때마다요.”

“언제 생각이 나는데요?”

“신경이 쓰이면 생각이 나죠.”

“정말 애매하고 불명확한 기준이네요.”

“어쩔 수 없습니다. 강박 장애는 전부 심리적인 건데 사람 수만큼 다르고 기준을 그어 놓을 수도 없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죠.”

“그러면, 만약에 내가 닥터 와이트의 손을 건드렸다고 가정해요. 그럼 나 때문에 더러워진 거니까 손 씻으러 갈 건가요?”

“보통은 그렇습니다만, 지금 미스터 베넷은 굉장히 이상적인 상태니까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닥터 와이트의 욕실에서 샤워하고, 닥터 와이트가 준 것만 걸치고, 닥터 와이트의 집에 있는 것만 만진 이상적인 상태라서요?”

“반복하지 마세요. 짜증 납니다.”

“안 할 테니까 대신 손 만지게 해 주세요.”

“…….”

“뭘 그렇게 기대하시기에 갑자기 얼굴을 붉히신 건진 모르겠지만 전 손만 조금 만져 보면 안 되냐고 물어본 건데요…….”

“……안 붉어졌습니다.”

“거울도 없는데 자기 얼굴 색을 확신하는 그 자신감, 10점 만점에 10점을 드리겠습니다.”

“안 붉어졌다고요!”

“네, 네. 알겠어요. 안 붉어졌어요. 하지만 손은 만져 보고 싶네요.”

“꼭 만져야 하는 겁니까? 왜 그런 짓을 하고 싶은 건데요?”

“그야, 가능하다면 만져 보고 싶죠? 약간의 호기심 같은 거?”

“남의 병으로 놀지 마시죠.”

“정 싫으면 싫다고 하세요. 그럼 안 만질게요. 편식이 아니라 알러지라면서요? 닥터 와이트 말대로, 내 가벼운 호기심 때문에 닥터 와이트의 날파리 같은 목숨에 지장이라도 생기면 큰일이니까요.”

“……사람을 날파리 취급 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만.”

“그래서, 싫다고요?”

“만져지는 건 싫습니다.”

“오. 다른 건 괜찮은가 봐요?”

“제가 미스터 베넷의 손을 만지는 거라면.”

“난 좋은데요.”

“……좋을 것까지야.”

“그럼 지금부터 만지실래요? 자요.”

“…….”

“왜 또 붉어지실까? 손 내민 것뿐인데 그런 식이면 나중엔 큰일 나시겠네.”

“……안 붉어졌습니다잖습니까.”

“알겠어요. 안 붉어졌어요.”

“씻고 시작하죠. 아무래도 씻어야겠습니다.”

“저기, 닥터 와이트? 집에 오자마자 샤워했던 거 기억은 하시죠?”

“그래서, 불만입니까?”

“아뇨, 뭐. 이유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신경 쓰인 거면 어쩔 수 없긴 하네요. 얼른 씻고 오세요. 손만 씻는 거 맞죠?”

“왜 보내려고 합니까? 미스터 베넷도 씻는 겁니다.”

“왜요? 내 손 깨끗한데요.”

“둘 다 확실하게 깨끗한 상태가 아니면 안 만질 겁니다.”

“휴……. 정말 가지가지 하시네요.”

“싫으면 그만두시든지.”

“알겠어요. 씻으러 가요. 사이좋게 손 씻으러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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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준비 다 끝났죠?”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네. 끝났습니다.”

“그럼 시작할까요?”

“…….”

“뭐 하세요? 얼른 만져 주세요.”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시죠.”

“어째서죠? 내 손을 만지고 싶다고 한 건 닥터잖아요?”

“말은 바로 하지 그럽니까? 만지고 싶다고 한 건 미스터 베넷이고, 제가 거절한 거 아닙니까?”

“그런 사소한 것까지 일일이 신경 쓰고 살면 정신 건강에 해로워요.”

“제 정신 건강에 가장 해로운 건 당신입니다.”

“알겠어요. 다 내 잘못이니까 얼른 만져 달라니까요?”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했잖습니까!”

“왜 노려보는 건데요?”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자꾸…….”

“저는 만져 달라고 했지 먹어 달라고 한 적이 없는데요. 거기서 갑자기 침을 삼키는 게 더 이상하다는 생각 안 해 보셨나요?”

“…….”

“미안해요, 닥터 와이트. 나도 마음 같아서는 손 하나쯤 드리고 싶어요. 내가 많이 귀찮게 군 건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저라도 손은 소중해서 어려울 것 같네요. 물론 닥터 와이트는 손 같은 거야 두 개나 있으니까 하나쯤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손은 두 개를 균형 있게 가지고 있어야 제대로 기능하잖아요? 저도 쉽게 포기할 수가 없네요.”

“……대체 누굴 식인종으로 만드는 겁니까?”

“아닌가요? 그럼 다행이고요.”

“하.”

“지금 그건 달콤한 한숨인가요? 아니면 제 혀를 뽑아 버리고 싶은데 불법이니까 못 하는 데 대한 아쉬운 한숨인가요?”

“전자는 그렇다 치고, 후자는 왜 그렇게 구체적으로 잔인한 겁니까?”

“그야, 자주 듣는 말이라서요?”

“만나는 사람도 없다면서 대체 누굴 상대로 혀를 놀리고 다니기에 그런 말을 자주씩이나 듣는지 모르겠군요.”

“가족들이죠, 뭐. 그쪽에서 알아서들 찾아오니까요. 게다가 명절에도 만나야 하고. 그건 그렇고, 혀를 놀린다고 하니까 저속하게 들리는 건 좋네요. 닥터 와이트는 금욕적인 인상이시면서 의외로 야한 말을 좋아하는 취향?”

“……미쳤습니까? 당신은 머릿속에 뭘 넣고 다니는 겁니까? 그 머릿속에 있는 문제를 전부 해결하고 나면 안이 텅 빌 것 같아서 무서울 지경입니다.”

“그래요? 그럼 다음에 한번 시도해 보세요. 닥터 와이트는 내 테라피스트잖아요? 내 문제가 곧 닥터 와이트의 문제죠. 뭐든 시도해 봐도 좋아요.”

“아니, 사양하겠습니다. 내 분야도 아닌 걸 진료하는 건 윤리 규정에 어긋나고 어쩌면 법에도 저촉될지 모릅니다. 무엇보다도, 어째서 당신의 문제가 내 문제가 됩니까?”

“미래 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요. 그런데 전 언제까지 손 내밀고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걸까요? 안 만져 주실 거면 오늘은 그만둘까요?”

“……만질 겁니다.”

“저, 닥터 와이트? 그건 만지는 게 아니라 건드리는 것 같은데요.”

“재촉하지 마세요. 천천히 단계를 밟아 나가야 합니다.”

“그냥 손 만지는 건데 무슨 단계씩이나…….”

“쉿. 정신 사납습니다.”

“네, 네. 분부대로 닥칠게요.”

“…….”

“…….”

“…….”

“…….”

“…….”

“…….”

“…….”

“…….”

“…….”

“음, 이제 슬슬 말해도 될까요?”

“쉿!”

“네…….”

“…….”

“…….”

“……하.”

“저기, 닥터 와이트? 아직 손가락 하나 얽은 것뿐인데요. 설마 머릿속에서 혼자 Z까지 나가신 건 아니죠? 그런 표정에 그런 식으로 이상하게 숨 쉬면 아무리 나라도 좀 걱정되거든요? 저도 남자를 상대로 Z까지 가는 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니까 혼자 너무 앞서 나가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라, 그, 당신이 먼저 만져 달라고 했으면서, 나, 난 그런 생각 안……!”

“아, 알겠어요. 알았으니까 내 손가락 좀 놔 봐요. 아프잖아요.”

“……죄, 죄송합니다.”

“잘 생각했어요. 닥터 와이트 때문에 부러졌으면 다 나을 때까지 두 달 정도 여기 눌러살 예정이었거든요.”

“…….”

“와, 진짜 너무한다. 숨소리까지 거칠어지면서 남의 손가락 가지고 꼼지락거릴 땐 언제고 눌러산다니까 얼굴 색이 확 바뀌시네?”

“……그, 본능적인 거부감에 그만.”

“나랑 같이 사는 게 그렇게 끔찍하단 말인가요?”

“그렇다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내 집에 눌러산다는 표현이 끔찍한 거죠.”

“변명은 잘하시네.”

“변명이 아니라 진심입니다.”

“뭐야. 그럼 내가 눌러사는 건 괜찮은 거예요?”

“…….”

“이럴 줄 알았어요. 불리하면 입부터 다물고 보죠.”

“그런 거 아닙니다.”

“입으로 부정한다고 사실이 달라지진 않아요. 됐으니까 계속 만지기나 하세요.”

“…….”

“안 만진단 소리는 또 안 하시지.”

“만져 달라고 매달리니까 어쩔 수 없이 만지는 겁니다.”

“그거 알아요?”

“뭘요?”

“지금 닥터 와이트가 스스로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거울이 있었으면 모르긴 몰라도 그렇게 자신만만한 거짓말은 못 했을 거라는 거.”

“……거짓말 아닙니다.”

“네, 네. 목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라서 매달리니까 어쩔 수 없이 만진다고 말하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믿어 드릴게요. 나는 관대하니까요.”

“자꾸 그런 식으로 짜증 나게 굴면 안 만질 겁니다.”

“와, 정말 너무한다. 시키는 대로 손도 씻었고 시키는 대로 얌전히 손만 내밀었는데 사실 적시 좀 했다고 토라지는 법이 어디 있어요?”

“토라졌다고 하지 마시죠. 기분 상한 겁니다.”

“알겠어요. 정말 닥칠 테니까 얼른 만져요. 이러다 손만 잡고 날 새우겠네.”

“……만지겠습니다.”

“제발 그래 줘요.”

“…….”

“…….”

“…….”

“…….”

“…….”

“……저, 닥터 와이트? 거긴 손이 아니라 손목인데요.”

“…….”

“이젠 아예 무시하기로 했어요?”

“…….”

“사람이 말을 하는데 쳐다도 안 보네.”

“…….”

“똑똑똑, 닥터 와이트?”

“…….”

“똑똑똑, 닥터 와이트? 똑똑똑, 닥터 와이트? 똑똑똑, 닥터 와이트?[35]”

“…….”

“저, 마음껏 만져도 되니까 중간에 숨 정도는 쉬면서 해요. 자기 집에서 숨 쉬는 거 잊어버렸다 질식사하면 묘비 문구가 얼마나 수치스러워지겠어요?”

“…….”

“그래요, 하기 싫으면 대답하지 마세요. 나 혼자 떠들게요.”

“…….”

“그런데 언제까지 만질 건지 닥터 와이트의 계획이라도 좀 가르쳐 주고 닥치면 안 될까요?”

“…….”

“나 그냥 여기서 잘 테니까 혼자 만질래요? 손 내밀고 있는 거 의외로 팔도 아프고 힘든데.”

“…….”

“와. 얼굴이 거기서 더 빨개질 수도 있었네요. 그러다 터지면 어떡해요?”

“…….”

“왜 갑자기 일어나고 그래요? 이제 다 만진 거예요? 그걸로 만족했어요?”

“……그, 잠깐.”

“아, 저런……. 얼굴 말고도 터질 것 같은 곳이 있었군요. 그것참 건강하시다고 칭찬을 해야 하는 건지, 파렴치하다고 비난을 해야 하는 건지…….”

“시, 시, 실례하겠습니다.”

“네, 아래위로 많이 힘들어 보이시는데 즐거운 자기 위로 하고 오세요.”

쾅!

“문은 좀 살살 닫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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