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31)

10분

“미스터 베넷, 아침입니다.”

“…….”

“식사하러 내려갈 시간입니다. 일어나세요.”

“…….”

“미스터 베넷, 자는 척하지 마시죠.”

“…….”

“매일 이 시간에 내려왔잖습니까?”

“…….”

“좋아요, 나 혼자 가겠습니다. 난 분명히 깨웠으니까 나중에 다른 말 하지 마세요.”

“…….”

“샤워 잊지 말고, 얼음찜질도 마찬가집니다.”

“…….”

“…….”

“…….”

“…….”

“…….”

“…….”

“…….”

“…….”

“…….”

“…….”

“…….”

“…….”

“…….”

“…….”

“…….”

“…….”

“……닥터 와이트, 아침 먹으러 간다면서 왜 거기 멀뚱히 서 있으세요?”

“그럴 줄 알았습니다! 역시 깨 있었군요! 음침하게 자는 척이라니, 믿을 수 없습니다.”

“닥터가 종알종알 시끄러워서 깬 건데요.”

“방금 10분 넘게 한 마디도 안 하고 있었습니다만?”

“네, 저도 한참 조용하니까 간 줄 알고 눈을 떴는데 놀랍게도 닥터 와이트가 10분 넘게 그 자리에 서서 입을 닥친 것뿐이더라고요.”

“…….”

“닥터 와이트야말로 거기 서서 음침하게 뭐 하고 계셨나요?”

“…….”

“할 말 없으면 나 조금만 더 잘게요. 요즘 일찍 일어나느라 피곤해서요.”

“…….”

“계속 나 구경하실 거면 말은 걸지 마세요. 잠귀 어두운 편이긴 한데 잠들 때는 아무래도 신경 쓰이거든요.”

“……영원히 잠이나 자시죠.”

쾅!

사소하고 무의미한 것

“정말 퇴근하자마자 샤워부터 하네요.”

“그렇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샤워하기 전에 저녁부터 먹으면 큰일이라도 생기나요?”

“네.”

“어떤 큰일일까요?”

“미스터 베넷은 상상도 못 할 큰일입니다.”

“닥터 와이트가 저보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는데요?”

“사람을 겉모습으로만 판단하는 건 안 좋은 버릇이죠.”

“알겠어요. 그건 그렇고, 닥터 와이트.”

“네.”

“나 오늘 일어나자마자 바로 샤워했어요.”

“그래서요? 칭찬이라도 해 달라는 겁니까.”

“네. 닥터 와이트가 시키는 대로 하는 모습이 대견하지 않나요?”

“대견하지 않습니다. 미스터 베넷은 누군가가 호흡을 할 때마다 대견하게 생각합니까?”

“흠. 일리 있는 의견이네요. 그건 그렇고, 점심은 냉장고에 있는 거 알아서 먹었는데 괜찮죠? 연락할 방법을 몰라서 그냥 먹었어요. 내가 굶주린 나머지 베개를 뜯어 먹는 걸 더 싫어할 것 같아서.”

“……베개를 뜯어 먹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니, 참 잘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머무르는 동안 열려 있는 방은 마음대로 들어가셔도 됩니다. 물건도 사용하셔도 상관없고요.”

“어? 결벽증은 어쩌고요?”

“강박증입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내 강박증은 모르는 더러운 것에 대한 공포라 괜찮습니다. 뭔지 알고만 있으면 대책을 세울 수 있으니까요.”

“아, 그건 내가 더러움의 원인이면 괜찮다는 뜻인가요? 설마 그것도 얼굴 어드밴티지?”

“퉁퉁 부은 얼굴에 대고 100퍼센트 솔직한 대답을 돌려 드리면, 아닙니다. 원래 그런 증상입니다.”

“그래요? 사실 결벽증인 사람 처음 봐서 어떤 건지 잘 몰라요. 깨끗한 걸 좋아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그럼 청소하는 사람들 드나드는 건 괜찮은가 봐요? 그것도 이미 아는 사람이라 괜찮은 건가요?”

“아니요. 괜찮은 사람이라 괜찮은 겁니다.”

“점점 더 어려워지는데요.”

“그 사람들은 청소를 위해 오는 거니까 문제없습니다. 입주할 때 계약서 썼잖습니까. 청소는 정해진 제품으로 정해진 방법을 사용해서 해야 하고 그 모든 걸 대신 관리해 주는 대신 한 달 렌트에서 5,000달러 추가한다는 조항요. 그쪽이 조항을 어길 시에는 내 쪽에서 피해 보상 소송을 걸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만? 설마 기억 못 합니까?”

“기억 못 하는 게 아니라 몰랐어요. 계약서 작성 같은 건 로펌에 맡겨 놔서 난 사인만 하거든요.”

“사인도 맡기지, 왜 그건 직접 한답니까?”

“내 이웃으로 누가 들어오는지 정도는 파악해 둬야 할까 해서요.”

“정말 사소하고 무의미한 것만 파악하시는군요.”

“정말 사소하고 무의미한 것들이 사실은 정말로 중요한 거라는 말도 있잖아요.[33]”

“어떤 멍청이가 그런 말을 합니까?”

“셜록 홈즈 시리즈 쓴 사람이요.”

“…….”

“일반적으로 똑똑한 사람이라고들 하던데 닥터 와이트는 역시 관점이 독특하시네요.”

“……전 추리 소설 안 좋아합니다.”

“하지만 같은 닥터잖아요?”

“20세기에 죽은 닥터와 제가 무슨 사이라고 알아야 한단 말입니까?”

“뭐, 사실 저도 그래요. 추리 소설은 별로더라고요. 저는 처음부터 전부 다 가르쳐 주는 게 좋아요.”

“별로라면서 그런 인용구는 왜 기억하는 겁니까?”

“리즈가 광팬이라서요.”

“전 약혼녀분 말입니까?”

“네. 아, 혹시 디너 데이트에서 전 여친 이야기는 꺼내면 안 되는 건가요? 게이 데이트적으로 따져도?”

“……게이, 뭐라고요?”

“실례. 리즈에 대한 건 이미 다 알고 계시니까 괜찮을 줄 알았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데, 뭐요?”

“디너 데이트요.”

“하! 일하고 돌아와서 내 집에서 내가 차린 저녁을 먹는 게 어떻게 데이트가 됩니까?”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일하고 돌아와서 자기 집에서 자기가 차린 저녁을 데이트 상대랑 같이 먹는 걸 데이트라고 부르던데요. 물론, 게이인 사람들의 데이트 문화에 차이가 있는 거라면 제 실언이에요. 사과할게요.”

“아니, 당신은 다른 데 먼저 사과해야 합니다.”

“알겠어요. 이번엔 뭐에 사과할까요?”

“내가 왜 당신 같은 놈이랑 데이트를 합니까?”

“음……, 날 좋아하니까?”

“…….”

“정정할게요. 내 얼굴을 좋아하니까?”

“……이런 건 결단코 데이트가 아닙니다. 스트레이트적으로도 아니고, 게이적으로도 아닙니다.”

“그렇게 딱 잘라서 말하면 좀 차별적인 것 같이 느껴지는데.”

“누가 먼저 시작했는데요?!”

“저요.”

“알면 입 다물고 먹기나 해요.”

“닥터 와이트, 그거 알아요?”

“뭔진 모르겠지만 부디 앞으로도 영원히 모르고 싶은 심정이군요.”

“하하, 재미있는 분이시라니까. 어쨌든, 닥터 와이트가 시킨 대로 입 다물고 있으려면 음식을 못 먹어요. 그러니까 입 다물고 먹기나 하라는 건 잘못된 문장인 셈이죠.”

“……잠깐 실례하죠.”

“닥터 와이트? 먹다 말고 갑자기 어딜 도망가는 거예요? 닥터 와이트? 닥터 와이트!”

“왜 따라오는 겁니까? 오지 마세요.”

“왜 그래요? 지금까지 우리 잘해 왔잖아요? 매일 아침 식사 때마다 내가 아무리 떠들어도 잘만 드셨으면서. 아침에는 되고 저녁에는 안 되는 이유가 있나요? 혹시 내 얼굴이 못나져서 그런가요? 이건 바로 고치기 어렵겠지만 다른 문제라면 내가 고쳐 볼게요. 일단 뭔지 들어 보고.”

“그러니까, 따라오지 말라잖습니까!”

“그러니까, 왜요?”

“화장실 가는 거니까요!”

“아하……. 그런 거면 진작 말씀을 하시지.”

“…….”

“볼일 보러 간다는 게 쑥스러워서 그랬어요? 다섯 살도 아니면서? 난 그런 거 신경 안 쓰는데.”

쾅!

“닥터 와이트, 아침에도 말하려고 했는데 기분이 별로라고 문을 시끄럽게 닫는 건 안 좋은 습관이에요!”

“닥치고 먹기나 해!”

“그럴게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