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31)

Family Issue[23]

“저, 며칠만 닥터네 집에서 신세 지면 안 될까요?”

“……큽! 콜록, 콜록!”

“저런. 커피를 그렇게 급하게 마시면 어떡해요. 더 급했다가는 코로 마시겠네.”

“콜록, 콜록, 콜록, 콜록, 콜록!”

“물이라도 마실래요? 내가 마시던 거긴 한데 한 모금밖에 안 마셨어요.”

“콜록, 콜록!”

“싫어요? 그럼 등 두드려 줄까요?”

“콜록!”

“그렇게까지 싫어하시면 어떻게든 두드리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데…….”

“……제기랄,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미친 소립니까? 내 집에서, 뭘 해요?”

“그러니까, 한 1주일 정도만? 어차피 침실도 남잖아요.”

“내 집에 침실이 차고 넘치든 남아돌든 미스터 베넷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우리가 무슨 사이라고요.”

“그렇긴 하죠. 아직 별 사이 아닌 건 사실이니까.”

“‘아직’ 대신 ‘영원히’라고 하시죠. ‘영원히’ 아무 사이 아닐 겁니다.”

“하지만 우리 사이에 오간 계약서가 있는데, 아무 사이 아닌 건 아니지 않나요?”

“임차 계약서를 주고받은 사이는 아무 사이 아닌 게 맞습니다. 제발 일반적인 감각으로 대화를 진행해 주시죠.”

“딱 1주일만요. 이렇게 부탁할게요.”

“이 건물에 남는 집 없습니까? 아니면 호텔에라도 가시든지요. 돈, 많잖습니까?”

“안타깝지만 남는 집은 없어요. 그리고 호텔에 가면 바로 들킬걸요?”

“누구한테 들킨다는 건지 진심으로 물어보고 싶지 않습니다만, 누구한테 말입니까?”

“글쎄요. 지금 내가 걱정하는 게 특정한 한 사람은 아니에요.”

“사람이 아니면 뭡니까? 단체입니까?”

“아뇨. 하지만 일종의 이익 집단이라고 볼 수는 있겠네요.”

“수수께끼 하려는 게 아니면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하시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당신 사정 같은 건 별로 궁금하지도 않습니다.”

“다행이네요. 저도 너무 많은 걸 묻는 사람은 귀찮거든요. 사실 제가 요즘 협박을 받고 있는데, 최대한 피하고는 있지만 곧 집 안까지 쳐들어 올 것 같아서 걱정이거든요. 대화가 통하는 상대는 아니라서.”

“……협박을 하는 게 아니라 당하고 있다고요? 당신과 대화가 통하는 상대가 더 적을 거라는 건 이해가 가지만 협박 부분은 확실히 의외입니다.”

“네. 저는 의외로 협박하는 것보다 당하는 일이 많아요. 다른 사람 협박하러 다니기엔 좀 게으른 편이라서.”

“그건 압니다. 그러다 약혼녀분께 차였죠.”

“바로 그 문제거든요!”

“그 문제라고 하시면?”

“그 약혼에 많은 게 걸려 있었거든요.”

“정말 하등의 설명도 되지 않는다는 걸 본인도 알고 하는 말이겠죠?”

“그게, 설명하기 좀 복잡해요. 가정사라고 해야 하나, 가족사라고 해야 하나.”

“내 집을 빌려줄지 말지 결정하는 입장에서 어떤 가정사인지 들을 권리가 있다고 봅니다만.”

“오, 납득 가는 이유면 들여보내 주려고요?”

“일단 한번 들어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내 약혼녀, 그러니까 리즈네 가족은 시칠리아 마피아[24]예요.”

“…….”

“우리 가족은 뉴욕 맙스터[25]고.”

“…….”

“약혼이 깨졌다기보다는……, 두 조직 사이의 동맹이 깨어진 거라고 봐야겠죠? 음? 닥터? 갑자기 왜 일어나시나요? 화장실이 급하신가요?”

“잡지 마시죠. 목숨이 위험하지 않은 새집 알아보러 갑니다.”

이상형

“이고르, 내가 이 집을 계약할 때 정신 나간 맙스터 주인이 있다는 설명은 못 들었던 것 같습니다만?”

[네드, 전화를 했으면 최소한 인사 정도는 해 주면 안 될까?]

“지금 재수 없으면 마피아 항쟁에 끼어들게 생겼는데 한가하게 인사나 하고 앉아 있을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뜬금없이 〈대부 트릴로지〉[26] 정주행이라도 했어? 갑자기 웬 마피아?]

“잡아뗄 생각 마시죠. 정신 나간 맙스터 집주인이 직접 자백했습니다. 요즘 시칠리아 마피아한테 협박당하고 있으니 안전한 내 집에 재워 달라는 미친 소리를 지껄이더군요. 그런 놈을 소개해 놓고 두 발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음. 무슨 일인지는 알겠어. 그런데 걔네 가족은 나도 무서우니까 두 발 뻗고 못 자게 만들어 줄 것처럼 말하지 말아 줄래? 그쪽은 진짜 두 발을 없애 버리는 족속들이라 진심으로 소름 끼친단 말이야.]

“빌어먹을! 그 헛소리가 헛소리가 아니었단 뜻이군요.”

[새미네 가족이 마피아라는 거?]

“전 약혼녀도 마피아라던데, 대체 뭐 하는 자식입니까?”

[뭐긴 뭐야, 평범한 정략결혼이지. 네 동생도 했잖아. 집안과 집안이 결탁해서 사랑 없는 결혼 생활을 강요하는 그거.]

“노리스는 평범한 사업가와 결혼했습니다. 어딜 마피아에 들이댑니까?”

[그거야 너네 집이 사업하니까 사업가랑 결혼한 거고, 걔네 집은 마피아 하니까 마피아랑 약혼한 거고. 끼리끼리 노는 거지.]

“젠장, 말도 안 되는 걸 꾸역꾸역 논리로 포장하지 마시죠. 집주인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으면 내가 이딴 저주받은 집에 기어들어 왔을 것 같습니까?”

[하지만 네드, 나는 집주인이 미래에 미칠 영향까지 예견하고 집을 소개할 수는 없어. 난 예언 능력이 없잖아.]

“웃기지 마십쇼. 전화 몇 통 돌리니까 싸이코로 유명한 자식이던데 어디서 사기를 칩니까?”

[진짜 일부러 그런 건 아니라니까? 새미가 싸이코라는 걸 부정하지는 않겠지만 걘 가만히 놔두면 정말 아무런 해도 없는 공기 중의 질소 같은 거였어. 애초에 새미 걘 1년에 한 번 정도밖에 집 밖으로 안 나와서 파혼당한 거라고. 그런 놈이랑 네가 엮인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잖아? 일단 밖으로 나와야 얽히는데?]

“지금 그 질소 가스에 질식사하게 생긴 사람 앞에서 잘도 씨불여 대는군요. 게다가 그 인간, 1년에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나옵니다.”

[두 번? 그건 또 뭐야?]

“추수 감사절과 크리스마스라더군요. 그런데 요즘은 매일 아침 내려옵니다. 내가 아침 먹으러 내려오는 시간에 맞춰서. 심지어는 내 집에 들어오려고 하고 있죠. 이 사달을 어떻게 해결해 줄 겁니까?”

[아니, 난 그냥 네가 집 찾는다길래 마침 좋은 부동산이 있어서 호의로 소개해 준 것뿐인데 3년 만에 전화해서 갑자기 해결을 하라고 하면 곤란하지…….]

“정말 순수한 호의였습니까?”

[……뭐, 약간의 재미를 기대하긴 했어. 근데 결국 3년 내내 아무 일도 없었잖아? 게다가 그때는 너도 새미 얼굴 보고 나중에 감사 인사까지 했잖아. 계약하고 나서, 너도 기억하지?]

“…….”

[게다가 네가 말한 그 더럽게 까다로운 조건까지 다 맞춰 줬잖아.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서 그만한 조건 잘 없어. 심지어 집주인이 네 취향이기까지 했는데, 넌 그냥 한 번 본 것만으로도 나한테 고마워해야 할걸? 걔 진짜 밖에 안 나가. 지나가다 막 볼 수 있는 흔한 게 아니라니까?]

“아무리 그래도 3년째에 큰 문제가 생긴 걸 무시하면 안 되죠. 결국 일부러 주선했단 뜻이잖습니까? 지금 내가 겪는 피해에 대해 아무런 책임감도 못 느끼는 겁니까? 그러고도 인간입니까?”

[못 느끼면 느끼게 만들어 줄 것처럼 말하지 말아 줄래?]

“느끼게 만들어 드릴까요?”

[야, 내가 요즘 무시무시한 협박을 너무 많이 들어서 진짜 이 나라를 뜨고 싶어진다.]

“하하, 설마 미국을 뜨면 내가 못 찾을 거라는 순진한 착각이라도 하고 있는 겁니까? 아, 생각해 보니 순진한 것보다 멍청하네요. 확실히 당신한텐 그 쪽이 더 어울립니다.”

[아니, 이건 진짜 내 잘못 아니라니까? 난 정말 순수하게 네가 찾는 조건에 새미네 아파트먼트가 딱 맞는다고 생각해서 추천한 것뿐이었어. 물론 걔가 주는 거 없이 잘생긴 것도 사실이고, 네 취향인 것도 사실이지. 근데 너도 리즈한테 차인 과정까지 다 들었다며? 걔 그때도 약혼 상태였고, 워낙 지독한 놈이라 다른 여자랑 만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데 남자는 고려 대상에 들어가지도 못했어. 그러니까 내가 무슨 의도로 주선을 했든 결국 넌 새미 발끝도 못 핥아 볼 운명이었어. 걔들 약혼이 좀 복잡해서 쉽게 깰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이 상황은 아무도 예상 못 했어. 새미가 갑자기 널 타깃으로 잡을 줄 누가 알았겠냐고.]

“그러니까, 결국 날 골탕 먹이려고 그 자식 얼굴을 들이밀어 본 거였다?”

[이 긴 이야기에서 너 듣고 싶은 것만 쏙 빼서 듣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네…….]

“평소에 잘했으면 의심받을 일도 없습니다.”

[이번엔 진짜야. 내 말도 좀 믿어 줘라……. 거기 입주하고 싶어서 대기 순번 뽑은 사람이 몇 더즌은 돼. 그 입지에 그 환경으로 돈을 쏟아부으면서 렌트 사업 하는 멍청이가 새미 말고 또 어디 있겠어? 인맥으로 뚫어 줬으니 고맙다는 인사를 들어도 모자란데 왜 협박을 들어야 하는 거냐?]

“하. 그런 위험한 놈을 소개해 준 개새끼가 입 뚫렸다고 자유롭게 지껄여 대는 게 몹시 비위 상합니다.”

[맹세하는데, 난 새미가 너한테 관심 가질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 그 반대라면 모를까!]

“지금 나더러 인간쓰레기가 취향인 머저리라고 폄하하는 겁니까?”

[아니, 네드, 그러니까, 매번 빳빳한 태도로 잘난 척만 하는 네가 짝사랑이라도 시작해서 골골거리는 꼴을 보고 싶었던 건 사실이야. 하지만 상대가 새미니 그렇게 안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니까? 나는 네가 원하는 대로 사생활 철저하게 보장되고 네 병원에서 가깝고 또 따로 사람 구하는 수고 없이 몸만 들어가면 다 해결되는 곳을 찾아다 준 것뿐이야. 어차피 호텔 아니면 거기뿐이었다고. 그런데 네가 그 괴상한 강박증 때문에 호텔은 죽어도 못 가겠다며? 물론 약간의 사적인 재미를 추구한 건 사실이지만, 그땐 너도 애인 있었고, 새미도 약혼녀가 있었으니까 내가 약간의 사심을 담은 게 무슨 상관이었겠어.]

“그래서, 내 새로운 문제는 무시하겠다?”

[바로 그거지! 우린 네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읊어 댄 망할 이상형인지 뭔지를 만나서 헤롱대는 꼴을 보고 싶었던 것뿐이라고! 누가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나!]

“놀라운 변명이네요. ‘우리’라는 걸 보니 단독 범행이 아니었다는 건데, 그 점도 흥미롭습니다.”

[…….]

“그러고 보니 저 남자, 우리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더군요.”

[……하하.]

“왜, 재학 시절에도 시도해 보지 그랬습니까? 같은 학교였는데.”

[그게, 새미가 너처럼 부지런히 학교를 다니는 성격은 아니었거든. 걔랑 넌 접점이 없었어. 억지로 끌어다 붙이는 것도 불가능했고.]

“지금 비꼰 겁니다. 쓸데없이 성실하게 대답하지 마시죠.”

[나도 반성하고 있어……. 가벼운 호기심으로 새미 같은 걸 네 인생에 붙여 놨다는 데 대한 자각도 있다고. 그럼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지 같이 생각해 볼까? 새미가 가족 이야기를 꺼냈으면 좀 심각한 것 같기는 하거든. 걔네 가족이 좀 유난한 구석이 있기도 하고…….]

“…….”

[……네드?]

“…….”

[네드? 어이, 네드?]

“…….”

[뭐야? 설마 말도 없이 끊은 거야? 하여튼 싸가지 없는 새끼라니…….]

“전화 안 끊겼으니까 계속 말해 보시죠. 싸가지가, 뭐라고요?”

[……하하, 네드 너처럼 예의 바른 사람이 내 주위에 드물지. 근데 갑자기 뭐야? 말이 없어서 끊긴 줄 알았잖아.]

“네, 갑자기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 바쁘면 끊어야지! 그럼 우리 통화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새미는…… 적당히 무시…… 하기 힘든 녀석이긴 하지만…….]

“그 샘포드 베넷이 내 집 문 앞에 앉아 있네요.”

[……이 시간에?]

“조만간 뵙죠.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네요.”

[야! 오지 마! 찾아오지 말라……!]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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