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31)

The Breakfast Club[11]

“미스터 베넷, 요즘 묘하게 자주 뵙는 것 같습니다?”

“네, 요즘 제가 꼭 피해야 할 사람들이 있어서 그렇게 됐네요.”

“보통 피해야 할 사람이 있을수록 밖으로 안 나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 사람들은 제가 원래 심하게 밖에 나가기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래서요?”

“그러니까 역발상을 하는 거죠. 내가 당연히 집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찾아가 봤자 난 여기에 있으니까 절대로 날 찾을 수 없는 거예요. 내가 집 밖에 있을 수도 있다는 상상은 못 하는 사람들이거든요. 창의력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죠.”

“지난번에는 분명 미스터 베넷의 입으로 이곳 또한 집의 일부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만?”

“하하, 그랬죠. 하지만 저는 굉장히 유연한 사고를 가졌거든요. 여긴 공용 구역이라는 닥터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어요. 그러니까 기술적으로 말하면 저는 지금 집 밖의 공용 구역으로 외출 중인 거라고 볼 수 있겠죠?”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미스터 베넷에게는 테라피스트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치료가 늦어질수록 힘들어지는 건 당신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걱정 고마워요. 하지만 닥터가 생각하는 것처럼 제 정신 건강에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랍니다.”

“미스터 베넷이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할 거라고 장담합니다. 그리고 제가 하는 건 걱정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 제가 피해를 입고 있기 때문에 권하는 거니까요.”

“피해라니요. 누가 서부 출신[12] 아니랄까 봐 과장이 심하시다니까.”

“……제가 서부 출신이라는 건 어떻게 아는 거죠? 태어나고 2년 뒤에 곧장 동부로 이주했으니 보통은 동부 출신으로 알고 있을 텐데요?”

“어? 입주하기 전에 이고르한테 이 건물 코옵 조건에 대한 설명 못 들으셨어요? 렌트 지불 능력과 범죄 이력 확인 때문에 간단한 뒷조사를 한다는 사전 계약서에 동의하셨을 텐데요?”

“아하. 그거라면 기억에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고르가 뒷조사를 해도 어차피 이 건물 운영 위원회 회장은 읽지도 않을 거라고 말한 것도 기억이 나는군요.”

“네, 그래서 제가 그걸 최근에 꺼내 읽었어요.”

“…….”

“내 건물에 닥터가 사는지 찾아보려고 오래간만에 서재에 들어갔죠.”

“그러니까, 당신은 3년 전의 계약서에 딸린 걸 이제야 읽었다는 뜻이로군요.”

“보통 그러지 않나요? 계약서는 ‘아무도 안 읽는 종이’라는 뜻이니까요.”

“계약서는 ‘계약이 성립되었음을 증명하기 위하여 작성하는 서류’라는 뜻입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괜찮아요. 제가 가진 단어의 의미적 문제는 계약서 하나뿐이 아닐 거거든요.”

“이해했습니다. 당신의 머릿속에서는 괜찮다는 단어의 정의에도 큰 문제가 있다는 뜻이로군요.”

“하하, 유머 감각이 뛰어난 닥터네요. 환자분들이 좋아하시겠어요.”

“계약서를 읽었다면 아시겠지만, 저는 환자를 진찰하지 않습니다. 닥터가 아니라 덴티스트고, 내 직업은 병원을 경영하는 CEO입니다.”

“세상에. 그럼 제 충치는 치료 못 해 주시는 건가요?”

“뭐가 됐든 이 건물 안에서는 치료 못 할 거라고 생각해 보지는 않았습니까?”

“그건 좀 안타깝네요…….”

“저도 당신의 정신 상태가 매우 안타깝습니다.”

“어쩔 수 없죠. 충치 안 생기게 잘할게요.”

“그런 문제입니까…….”

“아! 그러면 닥터를 위해 키친에 설탕을 덜 쓰도록 지시할까요?”

“그게 왜 절 위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절 위한다면 매일 아침마다 식사를 방해하러 내려오는 걸 그만둬 주시는 게 어떨까요?”

“그건 불가능해요. 제 건물에는 닥터가 한 명뿐이거든요.”

“…….”

“그건 그렇고 닥터, 제가 기억력이 별로 좋은 편은 아니라서 그러는데 한 가지 실례되는 질문을 해도 될까요?”

“입만 열면 실례를 저지르는 게 취미신 것 같은데 굳이 물어보기까지 하니까 무섭네요.”

“무서워할 필요까지는 없어요. 저는 동부 출신이긴 하지만 공격적이고 예민한 뉴요커들이랑 안 맞아서 보통 혼자 지내거든요.”

“무례한 데다 지역 차별적이기까지 한 발언이긴 합니다만 어느 정도 공감은 갑니다.”

“그렇죠? 저도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랐지만 이 동네 친구들이 가끔 무서워요.”

“뭐, 서부에 비해 확실히 날카로운 분위기긴 하죠.”

“그런데 닥터는 꼭 동부 사람 같아요.”

“……그게 하려고 했던 실례되는 질문입니까? 공격적이고 예민하다는 거요?”

“그럴 리가요. 이건 질문이 아니라 평서문이잖아요.”

“이것보다 더 무례한 말을 하겠다는 뜻입니까?”

“네.”

“해 보시죠.”

“닥터는 혹시 소수 성애자신가요?”

“……네?”

“남자분을 성애의 대상으로 삼는 남자분이신가요?”

“뭐라고요?”

“혹시 단어가 부적절했다면 사과드릴게요. 제가 소수 성애자 친구는 없어서 어떤 게 적절한지 잘 모르겠거든요. 사실 전 친구가 몇 명 없는 거긴 하지만요.”

“확실히 친구는 없어 보입니다만…… 갑자기 그런 건 왜 묻습니까?”

“그게, 제가 기억력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얼마 전에 외출하고 들어오는 길에 닥터와 남자 친구분을 목격한 것 같거든요.”

“평범한 친구일지도 모르잖습니까?”

“아하…….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혹시 요즘은 평범한 친구랑 혀 섞는 키스도 하나요? 제가 사람을 잘 안 만나고 다녀서 유행에 뒤처지는 편이라서요.”

“……안 합니다.”

“역시 그렇죠?”

“일단 답변을 드리자면, 네, 저는 동성애자입니다. 여기 살고 있으니 근처에서 그 자식과 키스했을 수도 있죠. 하지만 마지막으로 남자와 사귄 건 2년 전이었습니다. 혀 섞는 키스라니, 언제 적 이야기를 하는 겁니까? 게다가 얼마 전이라니.”

“2년 전이면 얼마 전이죠.”

“대체 마지막으로 외출한 게 언제기에 2년에다 최근이라는 말을 씁니까? 확실히 3년간 여기 살면서 당신 얼굴을 거의 본 기억이 없기는 하지만……. 아니, 생각해 보니 지나가다가 볼 법도 한데 정말 두 번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네요. 설마 지난 3년 동안 두 번밖에 나오지 않은 건 아니겠죠?”

“설마요! 아무리 저라도 가끔은 나가죠.”

“가끔이라고 하시면……?”

“반년에 한 번 정도?”

“…….”

“아무래도 추수 감사절과 크리스마스는 피하기 어렵다 보니 두 번은 꼭 나가거든요.”

“저, 추수 감사절과 크리스마스는 축하하는 명절이지 피해야 할 명절이 아니었을 텐데요?”

“저와 닥터는 명절에 대한 정의가 다른 것 같아요.”

“명절뿐만 아니라 닥터에 대한 정의도 다른 것 같습니다. 너무 많은 정의가 다르다 보니 옥스포드 사전이라도 옆구리에 끼고 대화하고 싶네요.”

“저런. 구글 번역기를 켤까요?”

“됐습니다. 구글이 외계어를 번역해 줄 것 같진 않으니 관둡시다. 그래서, 내가 게이인지 아닌지 궁금한 이유가 뭡니까?”

“아직 모르겠는데요. 그냥 닥터 얼굴이 그때 그 남자랑 닮았다는 게 떠오른 것뿐이라서요. 그래서 미리 실례되는 질문을 해도 되냐고 물었잖아요?”

“다른 게이한테 그런 식으로 물으면 한 대 얻어맞을지도 모릅니다.”

“닥터도 때리고 싶으면 한 대쯤은 때리세요.”

“……네?”

“요즘 주기 같아서요. 며칠 전에도 시원하게 얻어맞아서 한 대 정도는 더 맞아도 될 것 같아요.”

“……혹시 맞는 걸 좋아하는, 그, 변태 같은 겁니까?”

“아뇨, 저도 제가 무례했던 건 아니까요. 게다가 깔끔하고 좋잖아요. 없던 걸로 만들 수 있으면.”

“사양하겠습니다.”

“왜요?”

“때리기 싫은데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제가 당신과 달리 문명인이라서겠죠.”

“그런 이유가 아닐 텐데요.”

“왜 갑자기 말꼬리를 잡습니까?”

“그냥, 이고르가 했던 말이 생각나서요.”

“그 새끼는 입이 싼 편이죠. 대체 어떻게 아는 사입니까?”

“나랑 이고르는 같은 대학 나왔어요.”

“…….”

“그런데 닥터도 같은 대학 출신이잖아요.”

“…….”

“제 얼굴, 좋아하시죠? 마음에 든다고 한 거 알아요. 계약할 때 보고 나에 대해 캐묻고 다녔다는 것도 기억나는데요.”

“……이고르 그 새끼가 말했습니까?”

“네. 이고르 그 새끼는 옛날부터 TTM이었거든요.”

“트라이나이트로톨루엔[13] 말입니까? 확실히 확 날려 버리고 싶은 놈이긴 합니다만.”

“아니, 그건 TNT고요. 그거 말고 TTM. Talking too much. 스카이프 안 해요? 거기 나불거리는 이모티콘이 걔랑 똑같이 생겼어요.”

“그것참…….”

“잘 어울리는 별명이죠?”

“그러네요. 하지만 얼굴 좀 생겼다고 으스대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미스터 베넷의 성격은 얼굴로 커버 가능한 정도를 뛰어넘었습니다.”

“정말인가요?”

“네.”

“내 얼굴에 대고 맹세할 수 있어요?”

“…….”

“우리 내일 아침에 또 볼까요?”

“…….”

“오늘도 즐거웠어요.”

“……즐거웠다니, 그거 진심입니까?”

“하하, 당연히 인사치레죠.”

“당장 꺼지세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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