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9)

#8.

섹스 없는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새벽이었다.

서로가 너무 지친 나머지 다른 때보다 일찍 잠에 들었던 그들은 눈 떠보니 푸른 빛 새벽을 맞이해야 했다.

토독토독.

남아있던 늦여름의 아슬아슬한 온기마저 다 가져가고 없애겠다는 다짐으로 가을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호텔 방의 창문에 맞닿는 가을비의 소리에 연우는 귀를 기울이면서 가만히 명상에 잠겨있었다.

‘이렇게 또 머리 아픈 일상을 시작하기 전에 너를 안고 싶어.’

원래부터 비밀이 많은 그였지만 이제는 정말 하나하나가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 되어버린 연우는 태준이 현실 도피처라도 되는 것 같이 느껴졌다.

“태준아.”

저도 모르는 잠결에 그의 품 안에 안겨서 잠자고 있던 태준은 그의 다정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응?”

쪽.

그의 프렌치 키스였다. 태준은 무슨 일인지 먼저 그의 와이셔츠를 먼저 풀어헤쳤다. 와이셔츠를 벗기고 나서는 그의 위로 올라가서 바지 위로 제 아랫도리를 천천히 문질렀다.

‘무슨 일이지? 리드를 다 하고.’

“오늘은 천천히 해야겠지?”

“앞으로 출산 전까지 쭉 천천히만 해요. 나 힘들어.”

“응… 알겠어. 너 하자는 대로 할게.”

태준은 더 밑으로 내려가더니 그의 볼록해져서 터질 듯한 바지춤에 입을 갖다 대더니 오물오물거리며 먹는 시늉을 냈다. 그의 눈치를 살피며 바지 버클과 지퍼를 입으로 풀어 내렸다. 그는 두 팔을 머리 뒤로 놓고 태준과 종종 눈을 마주치며 저를 흥분시키는 모습을 고스란히 감상하고 있었다.

그의 브리프를 보고는 저의 샤워 가운도 벗어서 어깨 위에 걸쳐놓았다. 태준은 그의 브리프 위로 제 성기를 맞대고는 연신 문지르기 시작했다.

“으응, 으응-.”

태준의 목표는 그의 브리프가 제 애액과 정액으로 젖을 때까지 문지르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일찍 목표에 도달 중이었다.

“맞대기만 하는 건데 왜 그렇게 느끼는 거야?”

“들어올 게 상상되니까 좋아서요.”

“훗.”

태준이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그도 화답하듯 태준의 성기 쪽으로 불룩한 브리프를 적극적으로 가져다 댔다. 둘의 교합이 조금 안 맞자 태준은 미약하게나마 짜증을 냈다.

“내가 움직일 거니까 가만히 있어요, 오늘은.”

‘적극적인 오메가야.’

그는 드물게 보는 태준의 적극적인 모습에 감동해서 더 열렬히 감상해주기로 했다. 브리프가 둘의 애정 어린 액체들로 범벅이 되자 태준은 브리프를 내리고 우람하게 솟아있는 그의 성기를 보고 강아지처럼 혓바닥으로 요리조리 핥았다.

‘내 젖가슴이 더 덜렁거리면서 잘 보이게 움직여야지.’

태준은 열심히 그의 성기를 핥아주기 위해 앞뒤로 몸을 움직이는 척하면서 출렁거리는 젖이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 걸치고 있던 샤워가운을 아주 자연스럽게 어깨 밑으로 흘려 내렸다. 태준의 방법이 통했는지 그는 계속해서 태준의 가슴 쪽을 바라보며 성기에서 쿠퍼액을 정신없이 흘려댔다.

후룹후룹.

태준은 계속해서 쿠퍼 액을 뿜어내는 그의 성기를 놀리기라도 하듯 두 입술을 음경에 갖다 대고 오리 주둥이 모양으로 만들어 페니스 아래부터 위로 쿠퍼 액만을 빨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줬다.

‘좆에서 무슨 물을 분수같이 싸대네, 우리 남편.’

갑자기 오도카니 앉아서 거무스름한 그의 성기를 가만히 바라봤다.

“왜? 부인?”

‘남편, 부인. 호칭 저렇게 부르는 거 너무 스윗하잖아.’

기분이 좋아져서 한번 ‘씩’ 웃음을 보인 태준은 그가 좋아하던 태준의 평상시 애무 방식 그대로로 성기를 자극해주기로 했다. 촉촉해지고 팅팅 불은 알을 잡으며 살살 공기놀이를 하듯 달래줬다. 동시에 쿠퍼액을 내뱉고 있는 요도 구에 혀끝을 깔짝깔짝거렸다.

움찔.

그는 저릿한 느낌이 오는지 가만히 머리 뒤로 놓고 있던 두 손을 갑자기 앞으로 빼더니 태준의 머리로 가져다 놓았다. 태준은 그의 반응에 화답한다는 의미로 귀두의 경계라인을 따라 혀끝을 바짝 세워 빙그르르 돌렸다.

“으읏, 음-.”

‘스트레스 받을 때 이렇게 더 예민해하던 것 같던데.’

태준이 마스터한 애무 코스대로 거의 매번 페니스를 자극해줘도 매번 반응은 조금씩 달랐다. 거의 매번 그가 만족스러워한 코스였기에 시행하고 있는 것이지만, 아버지에게 임무를 받거나 하는 등의 특정 스트레스 상황에 주어지면 특히 더 예민하게 반응해서 더 좋아하는 것 같아 보이는 그였다.

‘안색까지 안 좋은 걸 보면, 확실히 어제부터 무슨 일이 단단히 있던 거야. 도대체 무슨 일일까.’

태준은 의문을 품으며 서서히 입속으로 페니스를 잠식해갔다. 페니스를 입에 넣게 되는 동시에 태준은 다리를 더 벌리며 침대 시트에 자신의 성기를 비볐다.

‘아, 이건 매번 먹을 때마다 너무 맛있단 말이야.’

태준의 성기 속으로 페니스가 들어가고 있는 것 마냥 입과 성기는 일심동체가 되어 침과 애액을 각자 다량으로 분비를 해서 침대 시트가 눈에 띄게 젖어갈 정도였다. 축축해진 시트를 태준은 젖게 하다못해 뜨겁게 데울 기세로 페니스를 더더욱 깊숙이 받아 들여갔다.

‘뜨거워, 내 몸이 또 뜨거워지고 있어.’

태준의 주특기인 목구멍까지 받아들이는 펠라는 불가능해 보였다.

‘요즘은 배 때문에 잘 못 하겠어.’

“지금 이 자세로 목 안까지는 못 넣어요.”

갑자기 입을 떼고는 끈적이는 태준의 침과 그의 애액으로 늘어진 거미줄 같은 실을 번들거리는 입술 밑으로 주욱 늘어뜨리며 그에게 말했다. 그 모습도 연우에게는 황홀했다.

‘이유식 열심히 먹던 애가 입가에 온갖 것들을 묻힌 것 같네. 그 이유식이 내 액이라니.’

“예뻐. 알 빨아줘.”

그의 번들거리는 음경을 계속 손으로 왔다갔다 거리고 있던 태준은 고개를 숙여 그의 알을 물기 위해 밑으로 향하다가 또 멈칫했다.

“이 자세에서는 알도 못 빨아요.”

“훗.”

저 웃음이 귀여운 대상을 볼 때 짓는 웃음인 것을 태준은 알고 있었다.

‘내가 귀여운 거야. 그런데 오늘 아무리 봐도 썩 좋은 컨디션인 것 같이는 전혀 안 보이네 정말로.’

태준은 갑자기 그의 얼굴을 마주하러 몸 위로 점점 기어 올라갔다. 침과 쿠퍼 액으로 얼룩진 입술은 닦지도 않은 채로였다. 미세하게 슬슬 떨어지는 그 액들을 입술에 그대로 단 채로 그의 얼굴 앞까지 다가가서 얼굴을 마주했다.

‘뭐 하려는 거지? 왜 저렇게 섹시해진 입술로 나를 가만히 보는 거야?’

평상시 같으면 그가 이러자는 둥 저러자는 둥 태준을 움직이는 대로 이들의 섹스가 진행되었을 공산이 컸다. 그러나 오늘은 좀 달랐다.

쪽, 찌익.

‘그렇지. 이렇게 애액들이 늘어나 줘야지.’

그는 늘어나는 애액의 거미줄을 따라가며 바라보다가 태준의 입술에 시선이 머물렀다.

“응? 섹시한데?”

그는 태준의 머리를 한 손으로 가지고 와서는 제 입술과 태준의 입술을 맞댔다.

쭈웁, 쭈웁.

태준의 입술에 묻어있던 애액들을 먼저 흡입하는 그였다. 태준의 빠알간 입술이 몰랑몰랑한 젤리들처럼 그의 입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오기를 계속해서 반복했다. 그 모습이 꼭 잉꼬새 부부가 부리를 마주하며 사랑을 나누는 모습 같았다. 간질간질하게 전해지는 척수의 느낌에 태준의 아래는 또 적셔지기 시작했다.

“사랑해주세요.”

한참을 서로 입술을 비비다가 태준이 문득 얼굴을 떼고 그에게 부탁했다. 그에게 아무래도 고민이 많은 것 같음을 직감적으로 섹스 하는 내내 느껴 온 태준은 그의 머리를 양 손으로 다정하게 잡은 채로 부탁한 것이었다.

‘당신이 무슨 고민이 있든 간에 나랑 있는 동안, 나를 안는 동안만큼은 그 생각들을 잊게 만들고 싶어요.’

“당연히 항상 사랑해드리지요, 우리 마누라.”

태준의 심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태준이 다정하게 바라봐줘서 연우도 그에 상응하게 다정하게 봐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또한 태준을 애틋하게 바라봤다.

쓰윽.

태준의 머리를 잡던 손은 내려와서 태준의 등을 지탱시켰다. 척수만 간질간질하던 태준이 피부도 간질간질해옴을 느끼고는 살짝 떨었다.

낼름.

태준을 거의 눕힌 상태에서 입술을 핥는 그였다. 그와 동시에 그의 손은 태준의 남성기로 가 있었다. 그는 태준의 조금 벌어진 입술 안으로 혀를 침범시키고 고른 앞쪽 치열을 쭉 고르게 혀로 매만져봤다.

‘남성기를 이렇게까지 만져준 적이 없는데. 오늘 꽤 오래 만져주네?’

“음.”

항상 키스하면서는 여성기를 위주로 애무해줬던 연우였지만…. 역시 오늘은 달랐다. 그가 계속해서 태준의 남성기를 자극하는 통에 남근에서 쿠퍼액이 이렇게 많이 나온 적은 처음이었다. 그 탓에 그가 아무리 다디단 키스를 진행시켜가도 태준의 신경은 제 남근에 더 많이 집중한 상태였다.

‘사랑해, 유일한 나의 편. 나의 짝. 나는 남자로서의 너를 제대로 좋아해 줬었나 싶어. 여자로서의 너만을 좋아해준 건 아니었나 싶어.’

기나긴 남성기 애무와 키스가 끝나고 그는 태준의 아래쪽으로 내려가 남성기를 입안에 담았다.

‘어머! 이게 무슨 일이야!’

순간적으로 화들짝 놀란 태준은 누워있던 자리에서 더 올라가면서 그를 자연스레 살짝 밀어냈다. 놀란 토끼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태준의 모습에 그는 웃지도 않고 진지하게 태준의 골반을 저와 가까운 곳으로 다시 당겨와 태준의 남근을 입안에 넣었다.

“으음-.”

그의 것에 비해서는 턱없이 작은 사이즈인 태준의 물건이었지만 그는 그것을 너무나도 소중하게 입안에 넣고 핥아줬다. 태준이 임신을 하면서 여성화가 더 많이 진행된 몸인지라 남근의 사이즈는 예전보다도 더 작아졌다. 그의 큰 입안에 넣으면 겨우 입 동굴의 중간쯤을 조금 넘을 정도였다.

부르르.

태준은 여태 연우의 남근을 빨아주기만 해봤지 그에게서 제 남근을 빨려본 기억이 없었다. 그에게서뿐만 아니라 민혁에게서도 펠라를 받아본 적은 없었다. 그는 태준의 페니스를 입안에 다 넣은 채로, 제 혀로 그것을 살살 감싸주기도 하고 위아래 왔다갔다 거리면서 쓰다듬어주기도 했다.

‘무슨 이유에서든 상관없어요. 굳이 내가 먼저 묻진 않을게요. 왜 이렇게 달라졌는지는. 다만 나를 이렇게 사랑해주어서 고마워요.’

임신으로 인해 둥근 배 밑으로는 제법 휘어진 태준의 등이 보였다. 두 팔을 위로 하고 고개는 뒤쪽으로 젖히며 제대로 즐기고 있었다.

“아응-.”

남근으로 느껴보는 제대로 된 첫 쾌감에 태준은 전율을 느꼈다. 그는 태준의 귀엽게 붙어있는 알을 지분거리며 아담한 남근을 위아래로 본격적으로 빨아줬다. 자신이 태준에게 받아온 펠라처럼 빨아줬다. 꼭 그대로 돌려주고 싶어서였다.

“하아, 하아.”

‘이런 느낌이구나. 이런 느낌에 남자들이 펠라를 좋아하는 거였구나.’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이며 열심히 빨아대는 그의 머리통을 잠깐 본 태준은 묘한 기분에 휩싸이며 행복했다. 그리고 절정은 찾아왔다.

찌익.

연우는 태준이 제 입안에 싸놓은 태준의 정액을 남김없이 다 입안에 모았다. 비릿한 향이 났지만 제 정액이 더 많이 비릿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냥 입안에 물고 있었다.

‘사랑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태준이 사정을 해버린 것에 대해 미안해서 연우에게 사과하려고 재빨리 그를 본 순간이었다.

베.

그는 입을 벌려 태준의 하얀 정액이 한가득 고여 있는 자신의 혀를 보여줬다. 태준은 처음 보는 광경에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너무나도 행복했다.

꿀꺽.

그는 태준이 선물해 준 태준의 씨를 모두 삼켜버리는 걸 보여줬다. 그리고는 태준을 바라보며 기분 좋은 웃음을 보여줬다.

“비릴 텐데….”

“괜찮아. 네 건 다 맛있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서.”

태준은 고마움의 보답으로 몸을 일으켜서 그에게 진한 키스를 선물했다. 오래가지 않아 태준을 다시 눕히고 그의 사정을 위해서 태준의 질 안에 물건을 밀어 넣었다. 사정을 마치고 난 그는 태준과 나란히 누운 상태에서 또 키스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행복해하는데, 이제야 너의 가치를 정말로 알게 되어서, 이제야 그에 맞게 너를 안아주게 되어서 미안했어. 고마워. 나의 사랑, 유일한 내 편.’

다음 날.

지이잉.

[민 의원님]

핸드폰에 보이는 상대의 이름을 보고 침을 한번 삼키는 민혁이었다.

‘무슨 일이시지?’

“네, 의원님. 이선호입니다.”

“자네, 혹시 태성건설에 좀 넣어놓은 돈이 있나?”

“네, 태성건설에만 아마 지분이 한 5% 정도는 됩니다.”

“그래?”

“네, 의원님. 무슨 일로 물어보시는 건지요?”

“자네 혹시 그래도 같은 집안인데 뭐 들은 건 없었나?”

“아무 것도 들은 게 없습니다, 의원님.”

“흠, 강남 재건축의 80%를 태성건설에 일임하겠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말이야, 그건 알지?”

“네, 알고 있습니다, 의원님.”

“임원석 장관 세력이 태성건설에 시공권을 넘기는 기일을 자꾸 미루고 있다나 봐.”

“그렇습니까?”

“낌새가 이상해서 알아보니, 임원석 장관이 위장 이혼한 첫째 부인 집안한테 결국에는 시공권을 넘길 것 같다고 하더라고.”

“뭐라고요?”

“임원석 장관이 이혼한 건 줄 알았는데, 그 첫째 부인이랑 작성한 이혼 서류가 없대. 거짓 이혼이라는 거지. 그런데 첫째 부인 집안이 일본에서 건실한 건설업을 경영하고 있다지 아마?”

민혁은 그 악랄한 인간이 왜 태성그룹과 결혼 계약을 맺을 생각을 하게 된 것인지에 대해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 들었다.

“네, 그렇군요. 의원님.”

“음, 태성건설 주가를 올려서 돈 떼먹고, 실질적인 사업은 위장 이혼 상태인 첫째 아내네 집안이랑 진행할 예정인가 봐.”

민혁은 어이가 없는 나머지 썩은 미소를 짓게 됐다.

‘임원석 장관, 욕심이 정말 한도 끝도 없는 인간이구만. 감히 내 집안을 그렇게나 호구로 보다니.’

한편으로는 그럴 수나 있는 파워를 가진 임원석 장관에 대해 일말의 시기심이 이는 민혁이었다. 민혁은 예나 지금이나 결코 야망이 없는 사내는 아니기었기에.

“네, 의원님.”

“그래서 언젠가는 대주주들의 돈을 한꺼번에 회수해야 할 타이밍이 와야 할 듯해. 물론 자네 것도 포함해서 말이지.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그 대주주들의 계좌를 관리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서.”

“그렇게 하는 게 가능하겠습니까? 의원님.”

“이미 사인 다 받아놨어. 자네가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모조리 빼주게.”

“네, 알겠습니다. 의원님.”

민혁에게 큰 결정권이 주어지게 되어 직접적인 보복을 해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과 막중한 책임감이 민혁을 지배했다.

“후! 어서 이 전쟁이 끝나기를. 당장 오늘이라도.”

예당기업 부사장실.

“기자님, 뿌리세요.”

연우는 어제 하루 동안 기자를 섭외해 태준의 강간 녹음본을 전달해줬다. 그리고 오늘, 언론 보도를 결심했다. 태준과의 진정한 사랑을 나눌 줄 알게 된 이유에서였을까.

‘이제는 정말로 평화로워지고 싶어.’

“이 지긋지긋한 악연들, 이제는 다 끊어내고 싶다.”

그날 밤 9시.

“9시 뉴스 속보입니다. 태성그룹의 차남, 이민준 태성 반도체 사장이 동생인 이태준 군을 강간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뉴스 보도에는 녹음본이 그대로 송출되고 있었다.

지이잉.

[이민준]

민혁의 일상용 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형, 이거 도대체 뭐야! 형제끼리 이러기 있어?”

‘이건 또 무슨 신박한 지랄이지?’

샤워하고 나오느라 뉴스를 차마 보지 못했던 민혁은 동생이 미쳤나 싶었다.

“무슨…?”

“9시 뉴스에 지금 보도되고 있는 거! 그거 형 아니면 고발할 사람이 있냐고!”

문제의 심각함을 알게 된 민혁은 얼른 TV를 틀었다.

“9시 뉴스에 뭐가 나오는데?”

“내가 이태준 강간했다고! 그거 왜 만천하에 알리는데! 일부러 주가 폭락시킬 일 있어 지금? 당신이 왜 나한테 이딴 짓을 하는 거냐고!”

사태파악이 되고 있는 민혁은 낮에 인수 받은 계좌들이 생각났다.

‘타이밍이 아주 일찍 왔구나!’

하지만 도가 지나치게 민혁에게 열폭을 하고 있는 민준이었다. 민혁은 이런 것 저런 것 다 따지지 않고 일단 형에게 기어오르고 있는 동생으로서의 민준만을 야단치고 넘기기로 했다.

“형보고 당신이 뭐야 당신이! 너 이 새끼가 그날도 그렇더니 지금도 야마가 돌아서 미쳤구나 이게 진짜. 너 인마 제정신이야 네가?”

“하, 시발 진짜 사태파악 못 하는 새끼는 너네요. 진짜.”

“뭐라고? 넌 만나면 그날이 죽는 날인 줄 알아 새끼야.”

“태성건설에 시공권 안 넘겨줄 거야, 임원석 장관이! 그걸 우리 아빠가 알고는 저쪽 민 대표 쪽으로 손을 갈아타야 하나 생각 많이 했었어!”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알고 있었다는 거네?’

민혁은 다시 차분히 예의 없는 동생의 이야기를 들어줬다.

“그래서 이태준보고 임원석 대표 집안에 있을 겸 스파이 노릇 좀 해달라고 아빠가 여름에 찾아갔었는데! 그 새끼가 아빠를 외면했다니까! 그 중요한 시기에 말은 좆도 안 들었다고, 그 새끼가 먼저!”

“그래서 그게 네가 걔를 강간한 건 무슨 상관인데?”

“그래서 벌을 준거지 나는! 시발 진짜 그 집 시집까지 임연우 그 새끼 액받이만 진짜 하면 된다고 생각한 거라니까 그 년은! 그럴 거면 결혼 계약이라는 소리를 왜 하겠냐고! 지가 필요할 땐 스파이 노릇도 좀 하라고 결혼시킨 건데 못 알아 처먹잖아, 그 년이!”

태준이보고 년, 년 거리는 민준이 영 못마땅한 민혁이었다.

‘너 같은 새끼한테 형제라고 깊은 우애를 바란 건 아니지만 진짜 인간 말종이다. 이민준.’

화가 나서 스스로도 욱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굉장히 차분하게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그래서 동생한테 강간한 거라고?”

“어! 그 년이 내 동생인지 아닌지는 일단 상관이 없고! 그 집 가서 액받이나 하는 거 좋아하는 년이면 내 씨도 받아보라고 벌 준거일 뿐이야. 일 제대로 안 할 거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지.”

탁!

듣자듣자 하니 못하는 말이 없는 제 동생에게 역겨움을 느꼈다.

“인간이 머리 좋다면서 생각하고 사는 게 진짜 저것밖에 안 되는 게 말이 되나.”

저런 수준의 민준에게 밀려 태성그룹의 경영권을 놓친 과거가 더 민망해졌다. 계속 속보를 띄우고 있는 뉴스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저거 어떻게 취소시켜보라고 전화한 거겠지만 미안한데 사람 잘못 봤어.’

다음 날 아침 8시 50분.

주식 장이 열리기 전에 만반의 준비를 했다. 대주주의 계좌와 비밀번호들이 적혀있는 리스트를 그대로 뽑아 놨다.

아침 9시.

태성 건설의 대주주들의 돈을 모조리 빼냈다. 그들의 평균 수익금은 3,000억. 미션을 완료한 민혁은 굉장히 산뜻한 기분이었다.

“민 의원님, 돈 다 찾았습니다. 시세 차익은 계좌당 평균 3,000억 정도씩 돌아갈 것 같습니다.”

민 의원에게 기쁜 마음으로 전화를 했다.

“오, 하하. 고마워요. 안 그래도 지금이 괜찮은 타이밍일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말을 안 해도 이렇게 알아서 잘 해주니.”

“별 말씀을요, 의원님.”

“음, 잘하면 이번에 시세 차익 얻은 그 대주주들이 자네가 태성그룹 경영권을 다시 얻는 데에 크나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자네, 그거 원하던 거 아니었나?”

차마 대놓고 얘기하지는 못한 진정 어린 욕망. 그게 민혁을 움직이게 한 것은 맞았다.

‘역시 정치를 오래 해 오신 분 답군. 나도 모르게 척척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만드셨다니.’

민혁은 연우가 그 녹음본을 민 의원에게 넘기고 민 의원이 언론에 뿌린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어찌 알고 있든 간에 뭐 상관은 없었다. 민혁은 민 의원의 능수능란한 세력다툼 스킬에 감탄했다. 그 스킬에 놀아난 한 마리의 말이 된 것 같아 씁쓸하게 웃긴 했지만. 그런 민 의원이 이제는 자신의 편이었다. 그 든든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맞습니다, 의원님.”

“후하하.”

“의원님, 의원님의 유연한 처세술에 제가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민혁은 활짝 웃으며 눈앞에도 없는 민 의원을 향해 굽실거렸다.

“그래, 일단 일이 다 처리되고 나면 내가 자네를 태성그룹 후계자로 올려주고 태성그룹이 다시 강남 재건축 건을 일임할 수 있도록 힘 써주지.”

“아유, 감사합니다. 민 의원님.”

“그래서 말인데.”

“네, 의원님. 말씀만 하십시오.”

“우리 이참에 다 터뜨리지. 일단 예당기업의 자본금도 태성건설 주식 안에 계속 있을 건데, 그쪽이 지금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을 거란 말이지. 안 그런가, 이 지사장?”

“맞습니다. 의원님. 매우 큰 타격입니다.”

“이참에 임원석 장관을 아예 독에 빠진 쥐로 만들어버리자고.”

민혁은 눈이 동그래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일들이 빨리 진행되고 있었다.

‘모든 것을 터뜨리자는 건가.’

“비리들을 까발리길 바라십니까?”

“응, 자네의 경영권이 어느 정도 손에 들어올 수 있던 타이밍에 자네가 일을 해냈으니. 나도 내 당선이 어느 정도 손에 들어올 수 있는 이 타이밍에 다 해내야겠어.”

“아! 도와드리겠습니다, 의원님.”

민혁은 이제 모든 것을 끝낼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였다. 민혁에게는 새로운 시작이 필요했다.

‘태준이는 나중에 생각할 문제야.’

명예욕, 출세욕이 다시 이전에 태성그룹의 경영권 후계자로 내정되어있을 동안만큼이나 크게 업그레이드되어 있는 민혁이었다.

다음날 아침.

“속보입니다. 주식회사 예당기업이 창립 예정 중이던 예당 아트홀에 임시 등록되어있는 아티스트들이 전원 감금 생활 중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들이 예당기업에 의해 감금 생활을 하게 된 시간은 평균적으로 무려 2년가량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아침 뉴스 속보와 함께 포털사이트 인기 검색어 10위까지를 장악하게 된 예당기업의 감금 사건이었다.

“이들의 신원을 확인해본 바에 의하면 이들의 공통점은 얼굴 없는 화가로 활동하고 싶어 하던 유명 아티스트들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이들이 감금생활을 당하면서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 예당기업의 비자금을 만들어주는 수단이었다는 소식들과 이들 중 정신과적인 문제로 인해 치료를 받아야 할 아티스트들도 전원 해당된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예당기업 부사장실.

전화가 폭주하고 있는 부사장실의 모습. 그 전화들을 하나하나 다 받아내고 있는 연우였다.

‘확실히 적들이 많았어. 이 사람들 우리 집안 비리들 다 알고 있었으면서 왜 지금 다들 모른 척하고 이렇게 화들을 내는 거야.’

평생 살면서 남에게는 잘 안 들어봤던 욕들을 이날 다 듣게 된 연우는 체력이 심각하게 빠진 상태였다.

“참아야지. 참아야 새 시작을 어떻게든 나중에 해보지!”

조용.

전화가 어느새 뚝 끊겼다.

‘무슨 일이지?’

띠리링-

“네, 예당기업 부사장, 임연우입니다.”

“부사장님, 비서실입니다.”

“네, 말씀하세요.”

“임원석 장관님께서 방금 전에 예당기업을 부도처리 했다고 합니다.”

“네?”

전화를 끊고 연우는 아무 말도 못 한 채로 의자 위로 드러누웠다. 상당히 어이가 없어하는 모습이었다.

‘부도 처리… 어떻게 나한테 한마디 상의도 없이….’

쎄한 느낌이 든 연우는 아버지에게 당장 전화를 걸어봤다. 전화번호가 바뀌었다.

‘나는 오늘 아버지에게 버림을 받았다.’

버려진 느낌이 강력하게 들었지만, 너무 큰 충격이어서 그런 건지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미래였던 건지 의외로 덤덤해졌다.

“이제 난 외부인이 되는 건가.”

한편 태성그룹 컨벤션 홀.

박살이 난 태성건설의 주가 때문에 주주총회를 소집하게 된 태성그룹이었다. 민준과 태성그룹의 회장도 자리해 있었다. 천억 원이 넘게 투자해놓았던 주주들은 모두 돈을 찾아가고 이 자리에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크나큰 태성그룹의 컨벤션 홀에는 그보다 낮은 투자액을 넣어놓고 피를 본 주주들만 앉아있었다.

“아니, 지금 이걸 도대체 어쩌자는 겁니까!”

“태성건설에서 강남 재건축한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그게 다 거짓이었어요?”

“언론에 거짓을 말해서 투자 유치한 거면 이건 명백한 사기혐의 아닙니까?”

깽판을 치고 있는 소액 주주들이었다. 갑자기 태성그룹 회장의 비서가 달려 들어왔다. 회장에게 귓속말을 했다.

“지금 제1주주가 이선호라는 이름으로 되어있다고 합니다.”

“뭐라고?”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치다가 정신 차리고 다시 비서가 말하는 것을 듣는 회장이었다.

“이선호라는 분이 이사회에서 경영권 논의를 요구하십니다.”

“경영권?”

최근 민혁의 사태와 예당기업의 사태를 너무나도 당연히 알고 있던 태성그룹의 회장은 그 요구에 일단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저녁, 태성 그룹의 이사회가 열리는 태성 그룹의 컨퍼런스룸.

이사회에는 주주총회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원래의 대주주들이 들어와 앉아있었다. 그 대주주들이 곧 이사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선호라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야?”

태성그룹의 회장과 함께 이 자리에 도착하게 된 민준은 자신의 비서에게 물어봤다.

“키메라 한국지사장이라고 합니다.”

“키메라? 우리 엄마 회사에서 왜….”

쿠웅.

민혁이 등장했다.

“안녕하십니까, 키메라 한국지사장 이선호입니다.”

민준의 표정은 썩어갔다.

‘잘못하면 뺏기겠네. 이 자리….’

선호는 자신 있게 들어와서 말했다.

“이렇게 다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항간에 떠들썩한 사건과 관련해서 경영권자를 새로 뽑는 것이 어떨까 해서 의견 여쭙기 위해 이사회 소집 요청을 드렸습니다.”

“장남 이민혁 군 아니십니까?”

이사진 중 하나가 손을 들어 선호에게 물어봤다. 선호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네, 제 본명은 이민혁이 맞습니다.”

이사진은 다들 놀람 반, 다른 경영권 계승자가 아직 건재하다는 기쁨 반으로 웅성거렸다.

‘이민혁으로 컴백한 걸 환영해.’

민혁은 스스로에게 축하를 해줬다.

“저는 그동안 키메라에서 한국지사장으로 활동해왔습니다. 우리 태성 그룹의 더 밝은 미래를 위해서 키메라와 인수합병을 진행할까 합니다. 제가 경영권을 맡아도 되겠습니까?”

이사회의 결과는 만장일치였다. 민혁은 민준의 울그락불그락거리는 표정을 보며 통쾌하게 컨퍼러스룸을 나왔다. 민혁은 기쁜 마음으로 민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민 의원님? 정말 감사합니다. 태성그룹을 제가 돌려받았습니다.”

“알고 있네. 정말 잘됐어. 허허. 역시 똑똑하단 말이지. 자네, 마지막 한 발이 더 남은 것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습니다. 마저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날 오전.

[부도난 예당 기업, 노예 시장 오메가들의 유즙으로 음식을 만들어]

한국의 대표 신문인 대한신문 1면에 정면으로 등장한 예당 기업의 충격적인 속보가 연일 등장했다.

“임원석 장관은 사임하라!”

“사임하라! 사임하라!”

이날부터 임원석 장관의 사임과 관련된 데모 운동과 함께 오메가들의 인권 향상 운동이 일어났다.

일주일 뒤.

“오메가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태성그룹도 함께 조사하라!”

“조사하라! 조사하라!”

오메가 인권 존중 운동은 전국적인 운동으로 거대하게 성장했다.

연우와 태준의 신혼집, 1층 가족실.

화이트로 되어있는 1층 가족실에는 따뜻한 아이보리색의 카펫이 깔려있고 초록색 풀들이 나 있는 큼직한 화분들이 발코니 쪽에 몇 개 놓여있다. 하얀색의 소파와 탁상, 그리고 그 맞은편 벽에 꽉 차게 걸려있는 TV가 보였다.

“요즘 일어나고 있는 오메가 인권 운동의 시발점인 전 예당 기업의 실소유자이자 대선주자인 임원석 문화부 장관이 사망했다는 소식입니다. 임 장관은 오늘 오전 11시에 자택에서 나와 오늘 오후 4시경 인근의 뒷산에서 밧줄로 목을 매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타살의 혐의는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연우는 태준과 함께 신혼집에서 칩거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혼란스러운 나날을 겪고 있던 연우는 어차피 회사도 부도난 판에 어딜 나가봤자 기자들이 득달같이 달라붙어 물어뜯을 게 분명한 나날이었다.

‘악마가 죽었다.’

연우는 아버지의 사망 소식에 일말의 슬픈 감정이라도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너무나도 담담한 자신에, 아니 오히려 더 자유로움을 느끼는 제 자신에게 조금의 연민이 느껴졌다. 그렇게 스스로가 힘들었음을 비로소 느꼈다.

툭.

주저앉은 연우에게 태준이 다가와서 말없이 보듬어줬다. 많이 불러온 배 때문에 그다지 가깝게는 안아주지 못했지만.

한편 민혁의 키메라 한국지사장실.

똑똑.

“들어오세요.”

서연이 무슨 일인지 말끔한 검은색 정장과 커리어우먼들이 신을 법한 검은 구두를 신고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꾸벅.

서연은 민혁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고맙다고 저러는 거지?’

민혁은 서연의 달라진 모습에 놀라며 그녀를 위에서 아래로 훑어봤다.

“무슨 일이에요? 이렇게 말쑥하게 차려입고 오고?”

“앉아도 되나요?”

씩.

디테일하게 공손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웃음이 다 났다.

“네, 앉아요.”

“저… 저희 오빠 살려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민혁은 괜히 마음이 숙연해졌다.

“당연히 거기서 나와서 살아야 하는 사람이었잖아요. 그쪽 오빠 말고도 다른 아티스트들도요. 그리고 나한테 그렇게까지 감사할 필요도 없어요. 나는 태성그룹을 다시 손에 넣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내가 그쪽 오빠를 위해서 한 일이기보다는 순전히 나를 위해서 한 일인 거죠. 그러니까 그렇게 안 감사해도 돼요.”

“저희 오빠 지금 정신과 병동에 입원해있어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랑 공황장애 진단받고 입원해서 잘 치료 받고 있는 중이에요.”

“잘됐네요. 쾌유를 빌어요.”

민혁은 고개 떨구고 우는 듯한 그녀의 모습을 측은하게 바라봤다.

“진심으로요.”

그녀에게 자신의 손수건을 챙겨주는 민혁이었다. 그의 손수건을 전해 받은 그녀는 손수건과 그를 번갈아 봤다.

“우리 계약 끝났으니 줄 게 있어서 보자고 했어요.”

그의 말에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끝까지 내 이름을 지켜줘서 고마워요.”

연우가 그녀에게 줬던 반지를 꺼내 드는 그였다. 그걸 받아드는 그녀의 눈에는 연우가 자신에게 준 반지와 ‘키메라 한국지사장 이선호’라고 적힌 명패가 함께 보였다.

“임시우는 살인방조죄, 인권유린죄로 감방에 징역 17년형 받게 했고, 내가 마약하던 죄는 없던 걸로 덮어줬고, 연우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집어넣으려면 집어넣을 수 있겠지만, 협의를 봐볼 생각이에요.”

“이태준… 때문에요? 당신의… 동생?”

그는 사실 태준에게 많은 자신감이 남아있지는 않게 된 상태였다. 태준의 측은지심 많은 성향을 알고 있기에, 연우네 집에 무자비한 폭격을 가한 그는 태준이 자신을 예전만큼 가까이하려고 할까 싶었다.

‘일이 생각보다도 너무 일사천리로 빠르게 많이 진행되어버렸어. 태준이고 뭐고 앞으로는 어떻게 손써볼 수도 없을 만큼.’

“음… 겸사겸사요. 서연 씨가 나한테 경영권을 잡을 수 있을 만한 결정적인 도움을 줬었어요. 그건 알죠? 감사해요.”

“아니에요. 해주신 은혜에 비하면….”

“임연우도 그만한 역할을 해줬거든요. 그리고 잃은 것도 굉장히 많고요. 아무튼 그 반지 드렸으니까 우리 계약도 여기서 끝을 내는 걸로 하죠. 정말 감사했습니다.”

일어서서 악수를 청하는 그를 따라서 일어서는 그녀였다. 그의 손을 맞잡을까 하다가 결국에는 손을 잡지 않았다.

팅, 툭.

그녀가 돌려받은 반지를 그의 책상 위에 굴려놓더니 싹 밀어서 아래에 있던 작은 쓰레기통으로 골인시켰다.

“이런 거 필요 없어요.”

그의 눈이 커지면서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는 의문 부호가 얼굴에 씌여졌다.

“왜… 왜 그러는….”

“나, 당신 좋아해요!”

파격적인 그녀의 고백에 그는 화들짝 놀랬다. 들이닥친 일들에 관한 생각으로 요 며칠 정신없던 그는 갑자기 그녀의 키스를 받았다.

쪽-

그녀의 붉은 입술 자국이 그의 입술에 선명하게 찍혔다.

“짝 없으면, 사귀어 보지 않을래요?”

지금은 늦은 밤, 젊은 남녀가 눈이 맞으면 뭘하랴.

다음 날 오전.

띠리링.

[엄마]

태준의 핸드폰에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엄마?”

“응, 태준아. 나, 죽은 너희 아빠 보여주고 싶어서. 혼자 오든, 임 서방 있으면 임 서방이랑 같이 와도 돼.”

“갑자기요? 네, 알겠어요.”

태준과 연우는 함께 강원도의 한 별장으로 찾아갔다. 그곳은 민혁의 소유로 되어있던 통나무 집 형태의 산골 별장이었다. 태준은 그 별장의 소유주가 누구인지를 알고는 있었지만, 굳이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강원도 정선의 별장.

별장 안에는 불을 쬐어놓고 있어서 온기가 있었다. 제법 쌀쌀해지기 시작하는 9월 말의 가을 날씨가 불을 쐬어놓은 통나무집 안을 차가운 공기로 고이도록 만들지는 못했다. 통나무집의 안은 통나무집답게 모두 목재로 처리되어 있었다.

‘벌레들이 많이 살지 않을까?’

몇 번 가봤을 때와 비슷한 생각이 또 드는 태준이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1층 부엌 식탁에 태준의 엄마가 앉아있었다. 강간 소식을 담은 뉴스가 터지자마자 한번은 신혼집에 달려와 태준을 찾았던 엄마였다.

“나 이혼했어.”

태준과 연우는 아예 예상 못한 건 아니라는 반응이었다. 서로를 그저 한번 씩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몇 년 만 있다가 재혼할 계획이야.”

태준과 연우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는 듯이.

“일단 앉아서 얘기해.”

태준과 연우는 태준의 엄마 앞에 나란히 앉았다.

“그게 무슨 소리세요? 재혼이라니.”

태준의 엄마는 갖고 있던 태준의 친부 사진을 꺼내놓았다. 태준과는 조금 닮은 듯 안 닮은 듯했는데 어떻게 보니 코가 엄마보다는 아빠를 더 닮은 것 같기도 했다. 꽤 잘생긴 얼굴의 소유자였다. 정말 배우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그렇게 유명한 배우 분은 아니라고 하셨었죠?”

연우도 태준의 옆에서 그 사진을 함께 뚫어져라 봤다. 태준은 조금 아리송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어? 어디서 본 적 있는 얼굴인 것 같기도 하고.’

태준은 어디서 본 적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갑자기 엄마가 그 해답을 얘기해줬다.

“죽은 임원석 장관님의 두 번째 부인이셨기도 해.”

“네? 엄마 그게 무슨?”

태준의 눈이 갑자기 많이 흔들렸다. 소름이 순간적으로 싹 끼쳤다.

“원래는 첩으로 두고 있었나 봐. 남자 애첩으로. 임원석 장관님이 좋아하는 남자 상이셨다나 봐. 나는 이제껏 내가 모르는 곳에서 차에 치여 폭발사고로 형체도 없이 타죽은 건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빼돌려서 살고 있었대. 그리고 임시우가 결혼하고 나서 첫째 부인과는 위장 이혼을 하고 둘째 부인으로 얼른 승격시켜 준 거지. 나는 그것도 모르고 태준이 2살 때 태성그룹이랑 재혼을 했었네.”

태준의 엄마는 연우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연우는 또다시 죽은 부친에 대한 말을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태준은 죽은 임원석 장관의 심각한 정신세계 때문에 또다시 눈물이 그렁거릴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그런데… 그 둘째 부인 분은 남자를 여자로 바꾼 거라고 하던데.”

태준은 그렁거리는 눈망울로 연우의 눈을 쳐다보고 엄마의 눈도 번갈아 보며 말했다.

“그게 임원석 장관님의 또 다른 욕구였다나 봐. 연우… 첩으로 있던 너희 어머니가 강한 알파 여자셨는데, 그분을 죽이고 나서는 또 더 강해 보이는 상대를 굴복시키고 싶으셨나 봐. 이런 말 갑자기 하게 되어서 미안하다 연우야. 너는 알고 있던 이야기니?”

“네, 저희 어머니에 대해서는 우연히 알고 있었어요.”

연우는 흔들리는 목소리로 겨우겨우 대답했다.

“그러면 제 부친은 지금 어디 계세요?”

“정신병원에 들어가 있어. 한 2년은 거기 있다가 퇴원할 예정이야. 그 뒤로는 내가 데리고 살 거야.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니까.”

태준은 눈물을 똑똑 흘리며 엄마의 손을 꼭 잡아줬다. 태준의 엄마도 태준의 손을 여러 번 쓰다듬어주다가 또 다른 종이 한 장을 보여줬다.

“여기, 이 납골당에 연우 너희 친어머니 유골함이 있대. 이건 태준이 친부가 가지고 와준 정보야.”

연우는 그 쪽지를 귀하게 받았다.

“감사합니다. 장모님.”

연우의 눈에서 송골송골 맺혀있던 눈물들이 사르르 떨어지고 말았다.

“너도 마음고생 정말 많겠지, 임 서방.”

아주 조그맣게 “네”거리면서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어떻게, 민혁이도 한번 만나볼래? 걔가 너희랑 꼭 했으면 하는 말이 있다던데. 사실 그래서 임 서방도 데리고 올 수 있으면 데리고 오라고 한 거야.”

“네. 괜찮겠어요?”

태준은 옆에서 고개를 떨구고 어깨가 흔들리는 중인 연우를 보며 물었다. 연우는 눈물을 잔뜩 닦아내며 고개를 끄덕이고 허리를 곧게 폈다. 이미 가장 큰 슬픔의 시간들은 홀로 견뎌낸 듯한 태준의 엄마는 홀연히 2층으로 사라지고 2층에서는 민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끼이익’거리는 나무 계단들을 하나하나 밟으며 약해진 연우를 조금은 안쓰럽게 바라보는 것 같은 민혁이었다.

‘에휴, 씨발. 뭔 집구석에 저리 우환이 많아서.’

민혁은 그닥 크게 동정하진 않은 듯 연기하며 그들의 맞은 편 자리에 살포시 앉았다.

“민준이 형은 어떻게 됐어요?”

“걔는 태성그룹에 직접적으로 오메가들 유즙 쓴 건 없는데 예당기업한테서 상급 오메가들 유즙을 따로 받아 가지고 다른 회사들한테 더 비싼 값에 파는 중개인 역할도 했었대. 불법유통 한 셈이지. 그거랑 너 강간한 거랑 합쳐서 징역 9년 나왔어.”

“9년. 9년이면 꽤 썩었다 나오네.”

태준은 만족한다는 듯 작게 읊조렸다.

“형네 아빠는 어떻게 돼요? 형네 친아빠.”

친아빠가 따로 생긴 태준은 본격적으로 ‘형네 아빠’라고 태성그룹 회장을 자신과 분리시킬 수 있게 되어 무의식적으로 기뻤다.

“요즘도 계속 전국적으로 오메가 운동 일어나 있고 난리들이잖아. 임원석 대표님도 돌아가셨고, 아빠가 그냥 총대 메고 대국민 사과 선언하신대. 며칠 뒤에 하실 거래.”

임원석 장관의 사망 얘기를 하면서 민혁도 연우의 눈치를 살폈다.

“회장직에서 물러나고, 뭐 그런 건 아닌가 봐요.”

“회장직은 못 물러나 아직. 나부터가 그럴 역량이 안 되어서. 계시긴 계셔야 돼.”

“우리 이 사람은 어떻게 해요?”

태준은 연우가 불쌍한 마음에 걱정스러운 얼굴로 연우의 팔을 살짝 잡으며 민혁에게 물어봤다.

“그거 얘기하려고 왔어. 결혼 계약서 위반 문제도 있고. 예당 기업이 태성 그룹한테 정치적 서포트를 제대로 안 해줬더라고. 근데 또 태준이도 집안 간의 계약 결혼이라는 생각보다는 개인 간의 결혼이라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같아서 결혼 계약서를 서로 위반을 한 것 같아. 그러면 샘샘인 거지.”

“그러면 결혼 계약서 위반 문제로는 서로 보상해줘야 할 부분이 없는 건가요?”

잠자코 있던 연우는 민혁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없어요. 없어서, 당신 감방 생활을 안 시켜줘야 맞는 건가 싶기도 하고. 왜냐하면 나보다 당신이 더 잃은 게 많으니까요. 그것도 삽시간에. 일이 어쩌다 그렇게 됐네요.”

민혁은 연우에게 조금 미안한 기색을 내비쳤다.

“감방 생활은 시키지 말고, 미안하면 이 사람이랑 내 뱃속 아기가 앞으로 먹고살 만한 물질적 보상이나 좀 해주세요.”

듣고 있던 태준이 민혁에게 요구했다. 민혁의 초점이 연우에게서 태준에게로 향했다.

“그 아기… 좋아. 아기에 대해서도 너무 늦었지만, 진심으로 사과할게요. 그런 마음에서 키메라랑 태준이 꽃 사업이랑 합작을 할까 하는데.”

사과를 받아주는 듯한 연우와 사업 얘기에 눈이 반짝이는 태준이었다.

“어떻게요?”

“개화를 빨리하고 열매를 일찍 맺는 꽃들의 종자를 키메라에서 앞으로 만들어 낼 거야. 태준이 너의 꽃 사업에서 그 종자들을 키워내. 일단 그런 일감들 주면 앞으로 먹고 살 걱정은 없을 거야. 이게 그냥 애 양육비 주는 것보다도 낫지 않나?”

“좋아요!”

연우는 반짝이는 태준의 모습을 잠시 쳐다봤다. 그리고는 민혁의 눈치를 살피는 연우였다.

“그리고… 다시 재기할 거죠? 사업가로 다시 재기할 거죠?”

“해야죠.”

민혁이 연우에게 묻는 말에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는 연우였다.

“태준이가 벌어다 주는 게 기초 사업 자금 되고 좋겠네.”

“고마워요. 이 사람 살려주셔서요. 정말 고마워요, 형. 이렇게 좋은 기회도 주고.”

“아니야. 내가 너무 심하게 몰아붙였어.”

“나도, 지옥에서 탈출하게 해줘서 그 점은 개인적으로 고맙네요.”

진솔한 연우의 고백에 민혁은 악수를 청했다. 그 악수를 받아줬다.

프랑스 파리.

한국의 새해 시즌을 맞이할 때까지는 있을 작정으로 연우와 태준은 파리로 짐을 바리바리 싸갔다. 그동안 이래저래 서로가 지친 일들이 많아 각자가 쉬기 위한 목적이었다. 에펠탑이 아주 근거리에서 보이는 19세기 오스만 풍의 집을 선택해서 살고 있던 이들. 태준은 자신을 빼닮은 여자 오메가를 순산했고 이름은 ‘임세은’으로 정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 태준에게는 예전과 같이 히트싸이클이 찾아왔고 이날은 연우에게 있어서 처음 보는 태준의 히트싸이클 데이였다.

“하아, 하악.”

발정이 난 태준의 뜨거운 몸, 달달한 복숭아 향에 연우는 매혹됐다. 연우가 가까이 가서 태준을 안아주자 태준은 자연스레 연우의 물건을 매만지다가 능숙하게 꺼냈다. 마치 제 것인 양.

“예뻐, 흥분한 거 예쁘다, 태준아.”

연우는 본능적으로 제 대나무 숲 같은 알파 향을 내뿜었다. 연우의 향을 맡은 태준은 더 알파를 원하게 되고 태준의 향도 농도가 훨씬 짙어졌다. 촉촉해지고 더 붉어진 태준의 입술을 앗아가며 시작했다. 태준의 아래에서는 진득한 애액이 끝없이 나와 잠옷 바지를 다 적셔버렸다. 그곳으로 손을 집어넣어 더 애무해줬다.

“하아, 넣어주세요. 하아, 채워주세요, 연우 님.”

연우에게 매달린 채로 앙앙대는 태준의 재촉에 연우는 꺼내진 대물을 태준의 안에 밀어 넣었다. 평상시 태준의 안보다 더 진득해지고 쫀득해진 자극에 연우는 다른 때보다 빨리 사정을 하고 싶어졌다.

“후우, 맛있어. 달다, 태준아.”

물건을 꺼내서 태준의 입안에 물려줬다. 태준은 다 받아서 먹었다. 연우는 곧이어 잊지 않고 태준의 남성기에 고여 있는 정액도 다 빨아 먹어줬다.

“안에다 싸고 싶었는데, 너 히트싸이클 오는 거 몇 달 더 즐기고 싶었어.”

진정이 되어가는 태준의 옆에 누워 태준에게 팔베개를 해주며 말했다. 태준은 그런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었다.

“이제 곧 한국에 돌아갈 거잖아요.”

“응.”

“재기하게되면 회사 이름 뭐라고 할 거예요? 생각해봤어요, 혹시?”

“신로. 신로 기업. 음식 위주로 팔 줄 알던 사람이 또 음식 팔아야지. 대신에 깨끗하게 만들고 싶어. 예전으로는 절대 돌아가고 싶지가 않아.”

고개를 끄덕이는 태준이었다.

“음, 그 부분은 민혁이 형도 꽤 도와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빨리 자라는 작물들 종자를 만들어내니깐.”

“응. 그럴 수도 있게 되었네.”

연우는 민혁의 좋은 경영 능력을 인정해버린 듯 했다.

“나, 선물 줄 거 있어요.”

“뭔데?”

태준은 쪼르르 어딘가로 가더니 반지 함을 들고 왔다.

“짜잔!”

태준의 왼쪽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지와 같은 디자인인 반지였다. 태준의 반지와 알맹이 색깔도 흰색으로 동일한데, 다른 점이 있다면 금테가 아닌 로즈골드 색의 테가 둘러져 있었다.

“언제 어디서 샀어?”

“우리 여기 파리로 오고 나서 얼마 안 지나서 몰래 사뒀어요. 이제는 줄 때도 된 것 같아서. 대신에 지금 내가 끼고 있는 걸 연우 님이 하고 지금 이렇게 산 걸 내가 할게요.”

태준은 제 손가락에 있던 반지를 연우의 왼쪽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주고, 새 반지를 자신의 왼쪽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웠다.

“왜 이렇게 하는 거야?”

“연우 님은 금색, 나는 로즈골드가 더 어울리니까요.”

태준의 센스에 흐뭇한 미소를 짓는 연우였다.

“고마워. 나랑 결혼해줘서. 영원한 내 편이 되어줘서.”

연우는 태준에게 보답으로 진한 키스를 선물했다. 건물 외벽 창문틀 안으로 이들이 부둥켜안고 키스하는 모습이 보이고 밖에 있는 에펠탑은 축하라도 하듯 전구들을 반짝여줬다. 그리고 창가에는 이들이 데려온 ‘다육이’ 식물이 빤질거리는 잎사귀로 에펠탑의 노란 전구들을 나름대로 반사해내고 있었다. 태준이 원래 연우에게 선물했던 그대로 갈색의 부엉이 화분에서 줄기 한단 정도는 더 성장해낸 다육이였다. 어느 겨울밤, 그 모든 것들이 하나의 따스한 그림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