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민혁은 최대한 많은 비리들이 쏟아져 나왔으면 싶었다. 민혁의 눈동자가 초조하게 굴러갔다.
‘대선 전에 터트릴 수 있으면 터트릴 거야.’
태성 그룹의 비리들도 모르는 게 절대 아닌 민혁이지만 이제는 오로지 예당 기업만이 타깃이었다.
태성병원.
임신 4개월 차인 태준은 연우와 함께 초음파 검사를 받으러 왔다. 의사가 이번 달 즈음에는 아기 성별을 알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오늘 아기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있다고 했어요.”
“오메가인 거면 여자인 게 낫지.”
아기가 오메가인 것은 이미 임신 초기 때 유전검사를 하면서 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남자 오메가인 자신의 앞에서 여자 오메가가 더 낫다고 말하고 있는 연우가 갑자기 또 얄미워졌다. 연우를 보란 듯이 도끼눈을 뜨고 째려봤다.
“내가 남자 오메간데 내 앞에서 왜 그래요. 흥!”
“남자 오메가일 거면 누구처럼 여성기도 있는 게 좋지. 야시꾸리한 가슴도 있고….”
산부인과 외래 앞에서 사람들 눈치를 살피며 몰래 태준의 유방을 만졌다.
“야하단 말이야. 내내 불룩한 것도 아니고 흥분되거나 임신할 때, 히트싸이클일 때만 불룩해지니까 얼마나 야해. 말 그대로 만지면 부푼다는 거잖아.”
자꾸 조몰락거리는 연우의 손을 잡고 떼려고 했다. 그래도 손을 절대 떼지 않으려는 연우였다.
“여자 오메가였으면 임신했다고 이렇게 내내 젖은 안 나왔으려나….”
태준의 허리를 한쪽 팔로 감싸고 한쪽 손으로는 젖을 짜내려는 시늉을 했다.
“어머, 미쳤나봐! 여기 지금 밖이란 말이에요!”
“네가 너무 야한 죄야.”
태준은 급기야 연우의 손을 팍팍 때렸다.
“여기서 내가 더 안 만지게 하고 싶으면 오랜만에 집에 가서 야한 옷 입어주기.”
반발심이 들었다.
‘누가 이기나 한번 해봐. 네가 어디 얼마나 더 만질 수나 있나 보자!’
아무 말도 안 하는 태준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싶어졌다. 태준의 가슴 한쪽을 계속 만지며 태준의 헐렁한 바짓가랑이 쪽으로 손을 갖다 대고는 주물럭거렸다.
“알겠어요. 내가 야한 옷 입어줄 테니까 그만 해요.”
사람들의 눈치를 엄청나게 보더니 바로 깨갱하는 태준이었다. 이들이 요상한 행각을 마치자마자 간호사가 불렀다.
“이태준 님, 보호자 분과 함께 들어오세요.”
초음파실로 들어가 초음파 촬영을 했다. 연우는 태준의 곁에 있었다.
“애기 얼굴이 더 또렷해졌네요. 예쁜 공주님이에요.”
방긋 웃는 태준과 아기를 보고 신기해하는 연우였다.
둘은 의사의 진찰을 보고 나와서 병원 안의 식당에 가서 우동 한 그릇씩 시켜 먹었다.
“이제 너 입덧 괜찮나 봐.”
“요즘은 잘 안 하더라고요. 이제 잘 안 하려나 봐요. 의사 선생님이 말씀해주셨듯이.”
“이제 더 맛있는 거 많이 먹어. 조금 자극적인 것만 먹어도 입덧하느라 잘 못 먹었잖아. 맨날 무슨 죽이랑 반찬 몇 개 없이 밥만 먹었다면서 일부러.”
“이제 맛있는 거 많이 먹어야 돼요. 아기가 운동 많이 해요.”
“운동을 어떻게 하는데? 그게 이제 느껴져?”
“네, 떼굴떼굴 굴러다녀요. 나 잘 때면 같이 자고, 내가 일어나기 전에 일어나는 것 같아요. 발로 툭툭 때려요, 애기가.”
이야기에 많은 흥미를 느끼는 연우였다.
‘내 애기면 더 좋겠지만, 사실 아직 애 아빠가 될 자신은 없다. 저 애를 내가 키울 수 있다고 해볼까 싶어도 아직 그만한 마음의 크기도 되지 않는 것 같아. 이제 겨우 너 하나랑 그나마 평온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난데. 애는 아직 과분해.’
“오늘, 애기 태어나면 입을 옷이랑 침구 같은 거 보러 가볼까?”
연우의 제안에 입으로 넣던 우동 가닥 하나를 우동 그릇에 도로 흘리며 눈을 반짝였다.
“그렇게 해줄래요?”
당황하며 기뻐하는 태준이 재밌었다.
“응, 애기 성별도 이제 여자인 거 아니까. 분홍색 많이 보러 가자. 애기 침대 같은 건 좀 더 알아보고 사고.”
“오예, 좋아요!”
태성 그룹의 계열사인 하나 백화점.
‘아무리 친정 사람들이 뭣 같다는 생각이 들어도 나는 그런 만큼 그들을 이용해 먹을 거야. 더러운 알파 식구들아, 너네가 일군 거 다 내 혜택으로 갖다 쓸 거야.’
태성 병원에서도 하나 백화점에서도 VVIP 혜택을 최대한으로 열심히 보고 있는 태준이었다. 병원에서는 예약을 잡지 않고도 의사를 만나볼 수 있었고, 의사와 간호사들이 최대한 빠르게 진찰을 해주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줬다. 심지어 수납 처리를 안 해도 되었던 부부였다. 하나 백화점의 주차비도 무료였고 퍼스널쇼퍼도 따라오려 했으나 오늘은 그걸 거절했다. 아기 명품매장에서도 VIP 실에 들어가 앉아있었다.
뭔가 모르게 독이 올라 있는 듯한 태준의 아우라에 연우가 눈치를 살폈다.
“너 뭐 화난 거 아니지?”
“하나도 안 화났어요. 돈 많이 벌어서 여기 있는 물건 다 사버릴 거야. 오늘은 그냥 손수건이랑 신생아 겉싸개 같은 간단한 거나 살 거지만요.”
‘하나도 화가 안 난 게 아니라 화 밖에 없는 것 같은데.’
가만히 태준을 보다가 끄덕여주는 연우는 웃었다.
“많이 벌어서 네 돈으로 다 사버려, 그래.”
“네, 꼭 그럴 거예요.”
약이 오른 채로 따박따박 할 말은 다 하고 있는 태준이 우스웠다.
‘도대체 무슨 원수가 져서 저러고 있을까.’
웃긴 연우는 그런 태준의 모습마저 사랑스러웠다.
그날 늦은 오후.
태준은 쉬는 날이지만 작업실에서 청소를 했다. 연우가 그 일을 조금 도와주다가 누가 오기로 했다며 나갔다. 혼자서 마저 청소를 하고 나서 화단의 꽃들이 잘 있는지 확인해보기로 했다.
“내 이쁜 꽃들 잘 있나 보러 가야지.”
신혼집의 화단에 나왔다. 가녀려 보이는 미국수국아나밸리, 태준의 작업실에도 꽂혀있는 청보라색 델피니움, 붉은 글로리오사 릴리, 태준의 작업실에서 곁다리 꽃들로 활약하고 있는 그린벨과 안개꽃 등이 있었다. 태준은 직원들과 함께 심어놓은 여름 꽃들을 요리조리 살펴봤다.
“잘 살고 있니? 귀엽다.”
도중에 예쁘게 핀 안개꽃 한 다발을 꺾어 배에 갖다 댔다.
“아기야, 이 꽃 예쁘지? 이건 안개꽃이라고 하는 거야.”
아기에게 만져보고 냄새 맡아보라는 듯 안개꽃을 배에 간질간질 거렸다.
콕콕.
아기는 이에 반응하듯 태준의 배를 발로 찼다. 태준은 매우 기쁜 표정이었다.
“우와, 너 내 말 알아듣는 거야? 벌써 엄마 말 알아듣는 거예요, 아기?”
요즘 따라 매일 아기가 발차기를 하며 노는 와중에 잠에서 깨어나던 태준은 또 시작되는 아기의 발차기가 귀엽기만 했다.
“우리 아기는 벌써부터 낮 밤도 알아차리고, 엄마 말도 알아듣고. 똑똑한 것 같단 말야.”
또각또각.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고, 고개 돌렸다.
“어머, 안녕하세요. 나 누군지 알아요? 나는 당신 누군지 알겠는데.”
물음표 여러 개가 떠오르는 태준이었다.
여자를 쳐다봤다. 키는 그냥 보통 여자들 만한 키에 짧은 스커트를 입고 까만 속옷이 다 비치는 하얀 여름용 블라우스를 입은 여자였다. 상냥하고 톡톡 튀게 생긴 외모에 화장이 과하게 짙어서인지 약간의 싼 티라면 싼 티 나는 느낌도 있었다. 외모가 풍기는 비슷한 어투로 통통 튀게 말을 걸어왔다.
“동서.”
“동서? 동서라구요?”
깜짝 놀랬다. 연우네 가족을 아버지 말고는 안 봐온 게 맞지만 이렇게나 모를 수가 있었나 싶었다.
‘가족사진을 떠올려보자.’
연우의 화장대에 있던 가족사진을 떠올려보는데, 이미지와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하, 화장이 너무 진해서 그런가?’
“죄송해요. 형이 있고 형수가 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얼굴을 상세히 보진 못했어요.”
“아냐, 괜찮아 동서.”
‘이게 무슨? 뭔데 말을 바로 놓지?’
“그… 저희 초면인데요. 형님.”
“초면? 응, 그래 초면이야. 나는 최서연이라고 해. 동서는 이태준이지? 나 다 알아. 잘 부탁해 동서.”
악수를 거는 여자와 마지못해 받아주는 태준이었다.
“근데 말씀하시는 거 참 듣기 좀 그러네요.”
“아, 그래? 미안해 동서. 동서가 나보다 나이가 적길래 그랬는데, 싫으면 안할게. 안할게요 동서님. 됐죠?”
‘이래나저래나 기분 되게 나쁜 여자네. 담배 피다 왔는지 담배 냄새도 쩔고.’
저도 모르게 인상을 푹 찌푸렸다. 여자는 태준에게 손 인사를 건네고는 화단을 지나 신혼집의 1층으로 쫄래쫄래 들어갔다.
‘근데 왜 저런 차림으로 혼자서 오는 거야?’
태준은 여자가 들어가고 있는 1층 현관문을 바라보다가 살살 따라 들어가 봤다.
3층, 연우의 서재.
서재는 바닥에서 천장에 닿을 정도로 길고 큰 책장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안 그래도 층고가 높은 편인 신혼집이어서 그 웅장함이 더 컸다. 별다른 장식품은 없이 중앙쯤에 독서용 책상과 스탠드, 편안하고 큰 의자가 전부였다.
똑똑.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자 여자는 연우를 안을 시늉을 하며 뛰어 들어갔다.
“자기야, 너무 오래 나를 안 안아줬어.”
연우의 목을 감싸 안고 뽀뽀를 하는 서연이었다.
“일주일씩이나 안 안아줄 수가 있어? 회사에서도 살살 모른 척하려는 것 같길래 내가 이렇게 친히 집에까지 와주잖아. 꼭 이렇게 해야겠어?”
“나 이제 그렇게까지 너한테 관심 없어.”
생각보다 새침한 연우의 반응에 블라우스를 더 벌려서 가슴을 까 보였다.
“연우야, 내 거 먹어. 내 거 좋아했잖아. 회사에서 매일 안아줬듯이 여기서도 안아줘, 제발.”
“됐어, 너 관심 없다니깐 이제. 그거보다 야한 가슴이 내 와이프 가슴이야.”
“하, 무슨 남자 오메가도 내가 이렇게 비교당해야 돼?”
“너 가슴에서 젖 나와? 너 그냥 임신하고 좀 지나야 젖 나오는 정도잖아. 쟤는 너보다 양도 많고 기간도 훨씬 길어.”
서연은 짜증을 냈다.
“아유, 진짜!”
화내는 서연을 귀찮다는 듯 신경 안 쓰려는 연우였다.
“뭘? 너 짜증내는 것도 이제 귀찮다. 내 와이프는 애가 얼마나 온순한데. 애가 화를 안내요 화를. 너처럼 감정조절 못 하는 년이랑은 급이 달라.”
화를 못 이기고 눈을 크게 깜빡이며 어이없어했다.
“급? 온순? 하! 나 아까 걔 봤거든?”
“어, 보셨어요? 잘 보셨어요. 태준이 아름답지?”
“미친! 너 애가 왜 이렇게 된 거야? 너 원래 바람 피는 거 좋아하고 잘 노는 여자 좋아하잖아. 너 뭐야? 쟤가 무슨 반전 매력이라도 있는 거야?”
“반전을 안 해도 매력이 많은 애야. 너와는 달리.”
시댁인 연우네 식구들 앞에서는 조신하고 온순한 척하면서 연우 앞에서만 유난히 되바라지길 좋아하는 서연이었다. 그런 서연을 좋아한 것도 연우였지만 말이다.
“쟤 사납더라? 아까 막 나보고 말 함부로 놓지 말라고 콱 무는데 나 무슨 갑자기 별 구경 하고 왔잖아. 쟤한테 한번 혼나고 나니까 정신없더라니깐!”
“네가 사납게 할 짓을 했겠지!”
“결혼하고 나서도 나랑 그렇게 바람을 잘 피더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한 달 전쯤부터 사람이 싹 바뀌는 것 같긴 하더라! 이제는 아예 날 안 안으실 거야?”
짧은 스커트 입은 엉덩이를 책상 위에 올리고 다리 벌리며 도발했다. 스타킹 밑 부분을 가위로 잘라서 다리를 벌리니 성기가 보였다.
“이리와, 연우야. 여기 네가 좋아하는 거 있어.”
연우가 가까이 가자 바지 앞섶을 만지며 연우의 물건을 꺼냈다.
“회사에서처럼 책상 밑에 가서 빨아줄까? 아님 네가 여기 넣을래?”
야한 차림으로 섹스 하는 것에 굶주려 있던 연우는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박을래.”
서연은 행복하게 웃었다. 연우는 서연의 블라우스 위 쪽 단추를 모두 열고 브라의 앞 버클을 풀고 서연의 양 가슴이 모두 드러나게 했다. 연우는 물건을 서연의 음부로 집어넣었다.
“펠라는 와이프가 더 잘하거든.”
순간 기분 나빠지려 한 서연이지만 연우의 물건이 결국엔 제 몸에 들어왔다는 사실에 빙긋이 웃어 보였다.
“그래도 밑으로는 내가 더 좋지?”
“아직은?”
“뭐? 아직은?”
“아직 걔 히트싸이클 때는 자본 적이 없어서. 알다시피 임신 중이라.”
“그러면 와이프님 임신 동안에는 임연우 자지, 내 거네?”
“밑으로는.”
서연의 허리와 엉덩이를 끌어당기며 밑에서 하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아앙, 앙!”
서연은 연우의 머리와 목을 감싼 채 연우의 얼굴 이곳저곳에 뽀뽀를 했다.
“임연우 자지가 최고야. 니네 형 거보다 좋아.”
신음으로 가득 차는 서재였다.
“남자 좆에 환장한 년. 너는 진짜 아무데나 다 벌리고 다니지? 응?”
“응, 남자 좆이 최고야. 네 거가 제일 좋아.”
연우는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상관이 없었다. 그저 자극만 강하면 좋을 뿐이었다.
서재 문에 귀를 대고 있던 태준은 아무것도 들리지가 않자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일단 문을 열어보고, 날 이상하게 바라보면 잘못 연 척을 하는 거야.’
연우의 서재 문을 활짝 열어봤다. 연우와 서연은 교접을 하던 와중 동시에 태준을 쳐다봤다.
태준은 그 자리에서 굳었다.
쾅!
‘개판 됐다.’
태준은 연우를 째려보다가 서재 문을 닫고 어딘가로 뛰어갔다. 연우의 서재 안에는 분위기 착잡해진 남녀 둘이 있었다. 바지를 주섬주섬 다시 정돈하고 서연에게 말했다.
“너, 나가.”
“풉!”
갑자기 서연은 연우를 바라보며 비웃었다.
“나는 이렇게 꼬일 대로 꼬인 관계들이 재밌더라! 나는 팝콘 튀기고 있을게. 너네 이혼 하나 안하나 한번 보자. 이혼하게 되면 연우 너는 또 아버님한테서 살 길을 찾아야겠지만.”
연우의 아픈 곳을 찔러대는 서연에게 연우는 심한 짜증을 느꼈다. 서연의 얼굴 앞으로 들이대며 화를 냈다.
“너 이딴 짓거리 하려고 나한테 찾아왔어? 너 도대체 오늘 나한테 왜 온 거야! 쟤는 왜 따라 들어오게 만든 거야!”
의외로 눈 하나 깜짝 않고 끝까지 뻔뻔하게 나왔다.
“왜? 너도 내 몸 바란 거 아니니? 바랬고, 바랬던 걸 네 와이프한테 들켜서 이렇게 화내는 거 아니니 나한테?”
‘개 빡치네.’
“나, 너 앞으로 다시는 안 만나. 회사도 다른 파트 알아봐. 내 눈에는 얼씬 거리지도 마.”
서연은 계속 꼿꼿하게 연우를 바라봤고, 연우는 많이 화난 얼굴로 서재 문을 박차고 나갔다. 서연은 유유히 신혼집을 나갔다.
연우는 태준이 있을 만한 곳들을 찾았다. 3층 발코니에도 가보고, 2층 샤워실에도 가보고, 2층 태준의 작업실에도 가보고 방에도 가봤다. 없었다.
혹시나 한 연우는 3층의 자기 방으로 뛰어갔다.
덜컥.
연우는 방문을 열고는 태준에게 달려갔다. 연우의 화장대 서랍이 열려있었고, 태준은 가족사진을 들고 서 있었다.
고개 숙이고 있는 태준의 표정이 보이지 않자 불안해진 연우는 태준의 고개를 살짝 들게 했다. 태준의 얼굴에는 눈물 자국들이 선명하고 가족사진 액자도 이미 눈물방울들로 얼룩져있었다.
“이거 설명해 봐요. 이 사람이 형의 부인이라는데, 왜 그 사람이랑 섹스하고 있었는지.”
사진 속 형 옆에 서 있는 여자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따졌다. 상당히 떨리는 태준의 목소리에 연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지도 바람 폈으면서.’
순간적으로 방어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던 연우는 태준을 잠시 욕했다. 순간 화나려는 걸 꾹 참아봤다.
“전 여친이었어. 걔도 너처럼 잘사는 집 애야. 마약하면서 살던 애라서 머리에 딱히 든 건 없어. 너랑은 비교도 안 되는 애야.”
‘그래서 왜 섹스 했냐고!’
“그래서요.”
갑자기 차분하게 내리까는 태준의 목소리에 조금 당황했다.
“그래서요! 그래서 왜 섹스 했는데! 왜 우리 집에 데리고 들어와서까지 섹스를 했냐고!”
화나는 마음에 고함지르며 반말도 시전 해버리는 태준이었다.
‘이게 진짜 보자보자 하니까.’
“너도 네 형이랑 섹스 했잖아! 친형은 아니지만! 형이랑 섹스해서 애도 갖고 있잖아!”
태준은 오히려 화가 더 많이 나버린 듯한 연우를 보고 위축됐다.
‘맞는 말이긴 해. 나도 지금 못 할 짓 하고 있어.’
대답 못하는 태준이었다.
“지금 누가 누굴 보고 화내고 있는 건데 도대체.”
연우도 억눌러왔던 감정에 북받친 걸 겨우 참아내는 듯 목소리를 내렸다.
‘씨발.’
[너무 힘들어지는 때가 오면 그냥 그 아기 낳지 마.]
민혁이 했던 말이 떠올랐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연우는 소파에 가서 앉았다.
‘그래, 내가 힘들게 해서 눈이 돌아갔을 수도 있어. 나도 힘들어서 바람 폈던 거고.’
태준이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에 연우도 정적을 유지하며 태준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입을 뗐다.
“나도 잘했다는 건 아니야. 나도 바람 펴온 건 다 잘못했어.”
연우를 천천히 올려다봤다.
“근데 나는… 애가 자신 없어서 이러고 산 것 같아.”
두 눈에 눈물이 고인 채로 괴로워하며 한 손을 이마에 짚는 연우였다. 연우의 가슴 속에 응어리졌던 것이 팍하고 터졌다. 그런 연우의 약한 모습을 두 번째 정도로 보는 듯해서 놀라워하는 표정의 태준이었다.
“아기… 잘 키울 자신이 없다는 거예요?”
“아니, 그냥 애초에 가질 자신도 없어. 내가 좋은 아빠가 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내가 나름 오래 생각해봤는데, 나 그쪽으로 자존감 되게 낮은 것 같아.”
들으면서 너무 슬픈 마음에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봤다.
‘불쌍해라. 그래서 내가 남의 아일 임신해도 여태껏 보고 있기만 했다는 건가.’
자신의 눈물을 다 닦은 태준은 연우의 곁으로 조심조심 다가갔다.
‘그래도 이렇게 말하는 걸보면 날 좋아하는 사람이긴 한가봐.’
태준은 몇 분 전 자신의 모습과 비슷하게 눈물범벅이 된 연우의 얼굴을 보고는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얘기했다.
“민혁이 형이, 우리가 너무 힘들면 아이 지워도 된다고 그랬었어요.”
연우는 눈을 번뜩였다.
“언제?”
“임신 초기에요. 근데 앞으로 한 달 안으로 지워야할 거예요, 아마. 애가 더 크면 낙태도 못 시킨댔어요.”
연우는 기다린 사람처럼 재깍 응답했다.
“지우자. 애기 지우자.”
태준은 재빨리 지우자고 얘기하는 연우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이 사람이 나를 생각보다 더 좋아하고 있었나…?’
“애 있어서 많이… 속앓이 했어요?”
“힘들어. 남의 애라는 것도 그렇긴 한데, 나는 애 자체에 자신이 없는 남잔데, 이 애 아빠는 자신이 있어서 이렇게까지 임신시키고도 아무렇지 않다는 거잖아?”
‘나 좋아해주는 사람한테 내가 참 몹쓸 짓을 했구나.’
“이 애를 뭐 낳아서 혼자 키우든 어떻게 다른 여자랑 키우든 어쨌든 지는 좋은 아빠 될 자신이 있다는 거잖아? 난 전혀 못 그럴 것 같은데.”
연우의 고백을 듣고는 저도 모르게 눈물을 그렁그렁 거렸다,
“나는… 여보가 나 그렇게 안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 미안해요, 여보. 마음 아프게 해줘서.”
“나 너 좋아해… 오늘 일은 정말 미안한데, 걔보고 다른 부서 가랬어. 걔가 무슨 핑계대면 형이 알아서 해주겠지… 나 근데 너 진짜 좋아해. 너 없으면 안 돼. 나는 살 자신이 없어.”
앉아있는 태준의 손과 다리를 매만지며 계속 고백했다.
‘사실 많이 바뀌긴 했지. 이 사람도 노력 많이 하긴 했던 걸 거야.’
“그러면… 나한테 계속 잘해 줄 자신 있어요? 나도 여보가 잘 안 대해줄 때는 이혼 선언해버릴까 고민 많이 하기도 했었어요.”
‘이혼은 절대 안 돼.’
“계속 잘해 줄 자신 있어. 잘해줘야지.”
태준을 거의 연우의 다리 위로 올릴 듯이 더 밀착하며 애원했다. 연우의 슬픈 눈을 가만히 바라보는 태준이었다.
“그러면 애 지울게요. 대신에 우리 둘 다 바람 피지 마요. 바람 피면… 또 몰라요.”
‘다행이다.’
“당연하지… 당연하지….”
연우는 태준에게 눈물범벅인 제 얼굴을 가까이하더니, 큰 결정을 해준 태준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키스했다.
태준은 연우가 준 결혼반지를 낀 왼손을 올려 연우의 머리를 감쌌다.
둘은 사랑을 나누고 누워있었다.
꼬물꼬물.
막상 지우려는 생각을 하니 너무 마음이 아파오는 태준이었다.
‘이렇게 움직이는 애를 지우자고? 팔다리 다 성한 애를?’
태준이 펑펑 울어 베개가 젖어갔다. 우는 태준을 바라보는 연우. 연우는 한 손을 태준의 어깨 위에 올렸다.
‘아… 진짜 어쩌지.’
“여보, 많이 슬퍼?”
우느라 잠긴 목소리로 답했다.
“애가 움직여요. 살려달라고 하는 것 같아.”
너무 슬퍼서 공허한 눈빛이 되어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눈물은 속절없이 흐르고 있었다. 연우가 좋아하던 밝은 모습의 태준이 아니어서 연우는 안타까워했다.
“아기… 못 지우겠지? 걔랑 정 많이 들어서.”
“아까 여보가 우는 거보고 너무 당황해서 지우겠다고는 했는데, 내 애랑 많이 친해졌어요. 얘 얼굴도 다 만들어지고 팔다리도 다 있고 이렇게 잘 노는데….”
말을 잇지 못했다. 연우는 태준의 어깨에서 손을 떼고 다시 자신의 자리에 누워 손을 이마 위로 얹었다. 그러고는 한참을 생각했다.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건가. 저 애 낳고 이민혁한테 주게 되면 둘이서 계속 만날 것 같아서 애를 주기도 싫은데… 태준이 임신 동안에 나오는 유즙은 특A급이라 따로 관리 대상이 될 만한 유즙이고… 하, 나 원래 애 싫어하는데, 애를 내가 키워야 하나?’
머릿속으로는 아기를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기를 수십 번은 해봤다.
‘태준이랑 이민혁을 확실히 덜 만나게 하려면 내가 키우겠다고 하는 수밖에는 없어.’
다시 태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 와중에도 계속 울고 있던 태준이었다.
“여보, 그냥 내가 아빠 해줄게.”
태준은 얼른 눈물을 최대한 닦아내고 눈을 반짝이며 연우를 향해 바라봤다.
“아까 아빠 되기 싫다면서요. 그리고 남의 애라면서….”
“내가 키울 거야. 내가 노력해볼게.”
“진짜요? 친아빠처럼 키울 자신 있어요?”
“여보가 그 새끼랑 자주 안 만나게 하려면 그래야지.”
태준이 빙그레 웃어 보였다.
“큰마음 먹었네요, 여보.”
“이러다가 여보가 병 들 것 같아서… 그냥 내가 노력해봐야지. 원래 나도 낳는 거에 동의했었고.”
아기와 친해져 보려고 태준의 배를 만져봤다. 잠잠한 배지만 가만히 쓰다듬어봤다.
‘내가 노력 많이 해야겠는데?’
“나부터 트라우마 치료 잘 받고 아빠 될 준비 할게.”
“방금 툭툭 찼어요. 느껴져요?”
“찼어? 못 느꼈어.”
태준의 배 쪽으로 내려가서 귀를 배에 갖다 댔다. 아직 뭔가가 느껴지진 않았다.
“미안해, 아가야. 너를 없애려고 했어서. 아빠가 미안해.”
“꼬물이라고 해요. 태명 꼬물이에요.”
“꼬물아, 아빠가 미안하다.”
‘내가 이제껏 노력한 것보다 더 노력해야겠어. 이젠 아빠도 되어야 하니까.’
나름대로 굳은 결심을 하고 태준의 배에 입을 맞췄다.
“좋은 아빠… 될 수 있어요. 책도 많이 읽고, 자기 성찰도 많이 해봐요, 이 기회에. 아기가 태어나기 전까지요.”
빽빽하게 책들로 가득 차 있는 연우의 서재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잔뜩 사 놓고 읽지도 않은 책들만 많네.’
“책… 많이 읽어야겠어.”
“서점에 가면 요새 자기계발하고 대인관계 개선하고 그런 책들이 반 이상으로 나오고 있어요. 그중에 한 권만이라도 다 흡수하겠다고 생각하고 잘 읽어 봐봐요. 아마 머리 좋아서 잘 흡수해낼 것 같은데.”
‘내가 이제껏 그런 책 하나를 소화하지 못했다는 말인가.’
괜히 부끄러워져서 귀가 빨개졌다.
“알겠어. 잘해볼게. 꼬물이 덕에 나도 많이 성장하게 생겼네.”
“여보가 애기보고 꼬물이라고 불러주니까 너무 좋다. 솔직히 이렇게 아빠가 되어주겠다고는 못 할 줄 알았어요. 남의 애라고 안 해줄 줄 알았어요.”
“그냥 내가 못나서 그래. 내가 바뀔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아봐야지.”
‘오, 이렇게 건설적일 줄이야.’
굳은 마음을 먹은 연우를 보고 신기해하며 슬며시 웃었다.
“아기 태어나기까지 6개월 남았어요. 그 동안에 많이 건강해주세요, 꼬물이 아빠.”
“네, 노력을 되게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요.”
‘이제 너랑 나랑 안 떨어져도 돼, 꼬물아.’
“나는 네가 우는 거 보기 싫어. 좋은 아빠 되도록 노력할 거야.”
자신의 배 위에 올려놓아진 연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렇게 마음 넓게 쓸 줄 몰랐네요.”
“응, 나도 몰랐어. 그런데 너 우는 거 보고 있으니까, 애 지우면 앞으로 매일 그렇게 울 것 같아서 안 되겠더라.”
‘어우, 기특해라.’
“고마워요.”
“낙태도 트라우마가 되잖아. 막상 하려고 하니까 너까지 나처럼 병들게 하는 것 같아서 도저히 안 되겠어. 나 혼자만 먼저 생각하려고 해서 미안해. 내가 이기적이었어, 너무.”
“이제 됐어요. 좋은 아빠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만으로도 너무 좋게 생각해요.”
가만히 배 위에 눕혀있는 연우의 얼굴을 살살 만져줬다. 연우는 태준의 움직이는 손을 눈감고 가만히 느껴 봤다.
‘나도 바뀌려면 180도 바뀌도록 노력해봐야지. 어정쩡하게 언제까지고 태준이한테만 잘해주며 살 수는 없잖아.’
“우리 여보한테 내가 더 잘해줘야겠다.”
“내가 못된 사람인데 내가 더 잘해주려고 노력해야지. 여보는 원래 착한 사람이잖아. 나랑은 다르게.”
태준은 클럽에서의 악당들과 바람 피던 모습, 야한 옷을 입히고 격하게 섹스하길 좋아하던 연우의 모습을 떠올려봤다.
‘못된 기질이 확실히 많긴 많지.’
아무 말 없이 연우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어줬다.
연우는 자신이 오메가들을 멸시하던 순간들,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키워왔던 순간들, 형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르던 순간들, 남들을 나쁜 방향으로 조종하던 순간들. 못된 순간들의 자신에 대해서 떠올렸다.
‘어쩜 그리 못되게 살았을까.’
갈 길이 많이 남았다는 사실에 괜히 한숨부터 나왔다.
‘사실 이 아이도 내 입맛대로 내가 더 노력하고 싶지 않아서 지워버리라고 한 거지. 애초에 낳으라고 동의도 내가 해놓고. 애를 다 크게 해놓고 또 지우라고 한 게 나지… 난 왜 이렇게 쓰레기일까.’
“내가 너무 못됐어.”
태준의 배 위에서 고개를 돌린 채로 태준을 올려다봤다. 태준의 표정에는 별다른 흔들림이 없었다.
‘잘 알아서 다행이네. 자기가 못됐다고도 생각 못 할 줄 알았는데.’
“못된 걸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좋게 생각해요. 이제 하나하나 바꿔가 봐요.”
태준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며 태준의 말을 고분고분 듣고 있었다.
“착할 줄 알면… 그 인생이 더 살기 쉬워요. 엄청 쉬운 거예요, 그거, 생각보다.”
입술을 움찔움찔 거리며 가만히 한참을 생각해보는 연우였다. 거기까진 아직 동의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나도 착하기만 하진 않잖아요. 우리 같이 노력해요.”
쪽.
배에서 얼굴을 떼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태준의 입술에 뽀뽀를 했다.
“응, 우리 아기를 위해서.”
다음 달.
민혁은 한 달 동안 예당 기업의 비리에 대한 자료들을 수집했다. 대선주자 임 장관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을 만큼 큼직한 비리들은 대여섯 개 정도로 추릴 수 있었다.
“이것들이 어떻게 터져야 잘 터졌다고 소문이 날까. 이거 다 터지면 예당 게이트 열리겠는데?”
민혁의 눈은 반짝였다.
따르릉.
“부사장님, 회장님께서 찾으십니다.”
회장실.
“민혁아, 너 한국 지사로 가서 지사장으로 일하고 와라.”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지사장으로 일하고 나면 본사 사장 시켜줄게.”
키메라는 뇌와 컴퓨터를 연결시키는 프로젝트를 완수해냈고, 이로 인해 주가가 나날이 오르고 있었다. 한국, 중국, 일본에 지사를 세우는 것이 목표였던 키메라는 경영진들 중 가장 한국 시장에 대해 잘 알 수밖에 없는 민혁을 한국 지사장으로 보냈다.
‘복수 하는 게 좀 더 수월해지겠군.’
“너 움직이고 있니, 민혁아? 예당에 대해서 말이야.”
“네, 거의 다 캐냈습니다.”
민혁의 생모는 일을 빨리 처리해내는 민혁의 태도에 기분이 좋았다.
“그래, 그런 건 복수를 해야만 하는 거야. 상대를 너무 물로만 보진 마.”
“실제로 알아보니까 무서웠습니다. 알겠습니다. 어머니.”
민혁의 생모는 민혁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복수 잘해. 우리 아들.”
공항.
민혁은 마스크를 쓰고 키메라 한국 지사로 들어왔다. 많은 직원들이 입구에서부터 민혁을 반겼다.
‘이대로라면 내가 한국에 돌아온 게 까발려지는 건 시간문제야.’
지사장실에 들어온 민혁은 마스크를 벗고 책상에 앉았다.
‘키메라 한국지사장 이선호’
민혁은 한국에서의 은밀한 생활을 위해 이름을 바꿨다. 모든 복수가 완료 되고나면 다시 그 잘난 ‘이민혁’이라는 이름을 다시 되찾으리라 다짐했다. 민혁은 곧 비서를 불러 신신당부를 했다.
“여기 임원진 분들만 앞으로 내 얼굴을 볼 수 있게 해주세요. 임원진이 아닌 직원들은 제 얼굴을 몰랐으면 하네요.”
“네, 알겠습니다. 지사장님.”
“그리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드르륵.
뒤에 있는 벽을 미는 민혁. 벽이 밀리고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여기 내가 먹고 자는 방이니까, 혹시나 열려있거나 열리게 되더라도 제 방으로 올라오지는 마세요.”
“네, 알겠습니다. 지사장님.”
‘회사 건물 밖으로 들락날락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닐 것 같아서…. 태준이를 만나고 싶지만 아직은 때가 일러. 일단 복수부터 서서히 시작해놓고 만나야지.’
민혁은 키메라를 집중적으로 보도하는 기자들의 명단을 찬찬히 살펴봤다.
신혼 집.
태준과 연우는 아기의 방을 꾸미고 있었다. 태어나게 될 오메가 공주님의 방인지라 이 방의 테마는 핑크 색이었다. 연한 분홍빛의 벽지와 핑크 색 아기 침대, 모빌 등을 설치해 놨다.
태준이 갑자기 나갔다 들어오더니 무언가를 들고 왔다. 연우에게 보란 듯이 보여줬다.
“산세베리아예요.”
“이게 산세베리아야? 생각보다 잘 보던 식물이네.”
“맞아요. 애기한테는 꽃가루가 안 좋다고 그래서 꽃 있는 식물은 이 방에 들이면 안 돼요. 대신에 공기 정화시켜주는 이런 식물은 오히려 좋대서 놔두려고요.”
“여보 똑똑해, 역시.”
태준의 배에 대고 속삭였다.
“네 엄마 덕분에 네 폐는 걱정 안 해도 되겠다, 꼬물아.”
배에다가 뽀뽀를 해줬다. 이제 태준의 배가 꽤 나왔다.
볼록.
이제는 꼬물이가 발차기를 할 때면 그 부위가 조금 튀어나왔다.
“꼬물이 또 발차기 했어.”
발차기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콕콕 짚으며 태준을 올려다봤다. 태준은 그 모습을 보고 행복해했다.
밤.
지난 한 달 동안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야한 플레이를 즐겼던 태준과 연우였다. 오늘도 그 날이다. 태준은 연우가 특히나 좋아하는 망사 옷을 다시 입고 있었다.
연우는 자신의 방으로 태준을 부르지 않았다. 어느 샌가부터 연우가 태준의 방으로 주로 가줬다.
‘임산부니까 내가 가주는 걸 더 자주 해야지. 태준이가 나한테 오기 보단.’
연우는 언제부터인가 ‘배려’라는 단어를 머리에 새기기 시작했다. 태준이 연우에게 이런저런 대인관계와 관련된 책들을 소개 시켜주고 그 책들을 연우가 읽어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나도 배려할 줄 아는 남자니깐.’
유치원생 마냥 책에서 읽은 것들을 하나둘 현실에서 적용시켜 나갈 때마다 알게 모르게 스스로 만족해나가는 연우였다.
똑똑.
망사 옷차림인 태준은 연우가 들어오자마자 침대 위에서 고양이 자세를 취하고 엉덩이를 살랑거렸다.
‘역시 내 와이프야.’
섹시한 자태에 눈이 돌아간 연우는 연우의 페로몬을 적당한 양만큼 분출시켰다. 분출시키자마자 태준은 느끼기 시작했다.
“하, 앙.”
태준은 두 손으로 태준의 엉덩이를 더 벌렸다. 태준의 항문이 그대로 드러나고, 흥분감에 벌렁이는 것이 보였다.
“박아주세요, 여보.”
태준의 뒤로 가서 항문을 애무해줬다. 항문에서 애액이 나왔다. 주름지고 따뜻한 그곳을 만지작거리던 연우는 바지와 팬티만 벗고 물건을 항문에다가 꽂았다.
“흐응, 흥-.”
태준의 엉덩이가 더 올라가려고 하자 태준의 허벅지를 감싸고 제 물건 높이에 맞도록 계속 조정했다. 어느 정도 고정이 되자 연우는 허벅지를 두르던 팔을 풀고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눈 밑으로 보이는 태준의 허리 곡선을 감상하며 허리 쪽을 스윽 쓰다듬어봤다.
‘미친, 개 예뻐.’
쓰다듬는 것과 동시에 태준의 항문이 더 수축하면서 연우의 성기에 감겨들었다. 쫄깃한 태준의 내벽에 연우의 몸은 더 뜨거워졌다.
“여보, 사랑해. 응?”
“좋아… 좋아요.”
질 내 사정을 마친 연우는 태준을 돌려 눕혔다. 연우의 방에 있는 테이블 밑 서랍장에서 두꺼운 투명 테이프를 꺼냈다.
‘뭐하려는 거지?’
처음 보는 연우의 동태에 긴장했다. 투명 테이프와 가위를 들고서는 태준에게로 다가왔다.
“뭐하는 거예요? 스너프 찍을 거예요?”
“가만히 있어 봐.”
태준의 가슴을 한 손안에 최대한 모으고 투명 테이프로 젖가슴을 포함한 흉곽 전체를 감았다. 그에 따라 핑크빛 유두가 망사와 테이프 속에서 모여진 채로 보였다. 유두에서 하얀 즙이 짜여져 나와 테이프들 밑으로 삐질삐질 나오는 게 보였다.
“존나 야해.”
태준의 모여 있는 가슴골 사이로 쿠퍼액이 넘쳐흐르는 물건을 아래에서 위의 방향으로 꽂아 올렸다. 왔다 갔다 하면서 태준의 핑크 유두를 자극시켰다.
“하, 하으-.”
제 가슴이 여성기로 변한 듯한 요상한 느낌에 신음이 절로 났다. 태준의 여성기에서도 애액이 나오고 남성기도 쿠퍼 액을 내뿜으며 바짝 섰다. 자연스레 다리를 벌리고 태준의 질 구멍은 벌렁거렸다.
“부드럽고 좋다. 찌찌.”
헤실헤실 웃으며 피스톤 질을 해대는 연우가 조금 얄미웠다. 그러면서도 즐기는 태준이었다. 턱 위까지 망사 사이로 내미는 연우의 귀두 부분을 자연스럽게 입에 넣었다. 귀두가 입에 들어올 때마다 혀와 입술을 귀두와 접촉시켰다.
별 반응은 없자 입술을 둥글게 해서 구멍 같은 모양으로 만들었다. 귀두가 들락날락거리며 소리를 냈다.
뽁,뽁.
“아, 씨발.”
흥분한 연우가 욕을 뱉았다.
‘가슴이 자꾸 더 부풀어 오르니까 조금 답답하네.’
꽉 조여오는 테이프의 압력도 해소할 겸 연우에게 흥분감을 더 주고 싶은 마음에 양쪽 가슴을 더 안쪽으로 오므려서 주물럭거렸다. 테이프 밖으로까지 새어 나오는 태준의 하얀 유즙이 보였다.
박다 말고 이 광경을 본 연우가 재빨리 빼고는 망사들 사이로 테이프 밖으로 나오고 있는 유즙을 핥아 마셨다. 태준은 계속 신음을 내며 제 가슴을 짜고 있었다.
한참을 태준의 가슴에 머리를 묻고 새어 나오는 젖을 핥아 먹던 연우는 계속 발기해있는 자신의 물건을 태준의 질구에 꽂아 넣었다. 한참을 흔들다가 안에서 사정했다.
섹스 마친 둘은 이불 속으로 나란히 누웠다. 연우는 태준의 테이프를 계속 풀어주지 않았다.
“다음 달이 추석인데 친정집에 만찬회 안 갈 거야?”
“안 가고 싶어요. 친정 식구들 중에 보고 싶은 사람은 엄마밖에 없어서. 엄마는 한번 씩 보면서 살잖아요.”
‘이민혁은 안 만나?’
갑자기 대화를 끊은 연우는 다시 대화를 전개했다.
“너 우리 집 사람들 본 적 없지? 우리 아버지랑 저번에 그 형수라는 애 빼고.”
‘시집 식구들도 보고 싶지 않을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을 것 같지만.’
“네. 한번쯤은 보는 것도 괜찮죠.”
“그냥 인사나 한번쯤 하는 건 괜찮을 것 같아서.”
“아… 네. 한번쯤은 괜찮아요.”
연우의 눈치를 살살 살피며 마지못해 대답했다. ‘한번’이라는 단어만은 강조했다.
“이번 추석 때, 여보네 친정에서 만찬회 할 때 그때 아마 다 갈 거야. 그때 잠깐만 얼굴보고 인사드리자.”
“만찬회 안 가고 싶은데….”
“이번 해는 우리가 결혼한 해이기도 하잖아. 그걸 알리려는 만찬회이기도 하니까 그냥 눈 딱 감고 가자.”
“그러면 웨이팅룸에만 주로 있을게요.”
추석 만찬회를 특별 이벤트가 있는 해마다 해오던 태성 그룹이었다. 태성 그룹의 만찬회에서는 빈방들을 웨이팅룸으로 만들어놨었다. 만찬회 도중 쉬고 싶은 사람들이나 만찬회 전에 참석자들이 각자의 짐들을 놔둘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으니까.
“그래, 알았어. 여보는 그냥 얼굴만 잠시 비추고 그날 저녁 조금만 먹고 바로 웨이팅룸으로 들어가. 컨디션이 안 좋다고 하면 되니까.”
태준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괜찮을 것 같네요.”
“그리고 아버지 이제 장관직 물러나신대. 대선 가야지.”
‘애도 마음대로 굴리고 싶고, 막강한 권력도 잡고 싶고. 진짜 욕심 많긴 많네.’
“대선 가야죠. 아마 되실 거예요. 아버님만큼 유력한 후보자도 없잖아요. 누구 빼고는.”
여기서 누구란 반대편인 민주경 국회의원이었다. 청년 시절부터 쭈욱 정치에 발을 담가왔는데, 그는 법조계 집안의 엘리트들 중 하나였다.
“그 사람보다도 우리 아버지가 한 수 위긴 하지. 난 아버지가 대선에서 이기든 지든 사실 별 상관은 없는데, 그냥 아버지 화나는 일 없이 순탄하게 이기는 방향으로 간다면 더 좋긴 하겠어.”
민혁은 태성 그룹에서 본부장으로 지내던 시절에 사용한 전화번호부를 열었다. 민주경 국회의원 사무실의 전화번호가 있었다.
뚜, 뚜, 뚜.
“안녕하세요, 민주경 국회의원 사무실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키메라 한국지사장 이선호입니다. 민 의원님 한번 뵐 수 있을까요?”
“의뢰 목적이신지요, 아니면 따로 약속을 잡고 싶으신 건지요?”
“약속을 잡고 싶습니다.”
민 의원은 자신이 가능한 시간, 가능한 장소에서 만나자고 선호에게 알렸다.
토요일 오후, 5성급 SW 호텔의 맨 윗방에서 만나는 민 의원과 선호였다. 민 의원은 안면 있는 상대에게 놀랬다.
“혹시 태성 그룹 아들….”
“네, 전에 태성 그룹 전략본부장을 했던 이민혁입니다.”
“요즘 뜨고 있는 키메라에서 찾는다고 해서 토종 미국인이 올 줄 알았는데, 경영권에서 한 발 물러난 줄 알았더니 다른 곳에서 재기하셨군요.”
“어쩌다보니 그렇게 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재기 소식은 되도록 비밀로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민 의원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이유가 있으니 이름도 바꿨겠죠.”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본론으로 들어간 그들은 서로가 알고 있는 예당 기업의 비리들에 대해 주고받았다. 민혁은 자신이 알고 있던 비리들에서 딱 그만큼의 비리들을 더 알아낼 수 있었다. 알고 있는 비리가 2배로 늘어난 셈이었다.
“예당 기업에 크게 복수하려고 이렇게 재기하셨구만.”
“알아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파트너가 될 것 같아요. 일단 지금부터 비교적 가벼운 것들을 터뜨려서 힘을 좀 빼준 뒤에 추석 지나서부터는 두 번 다시 일어서지도 못할 게이트 엽시다. 언론을 잘 꾸미면 큰 게이트가 될 거예요. 좋은 정보들 고마워요.”
“대체로는 이미 알고 계시던데, 왜 아직 잠자코 계시던 겁니까? 더 좋은 시기를 노리고 계셨던 건가요?”
“나도 까일 게 없는 사람은 아니거든. 지금 집권 여당이 저쪽 임 장관 쪽이니까, 현재 대통령이 레임덕 걸리고 나서 타격을 크게 받게끔 꾸미고 있어요. 여론이 조금 더 안 좋아지면 터뜨리려고 했지. 그리고 우리 제1야당 쪽 캠프가 자금이 상대적으로 달려요. 어지간한 대기업들은 지금 여당이랑 손잡고 있으니까.”
[복수 잘하고 와, 우리 아들.]
생모의 속삭임이 생각난 민혁이었다.
“키메라에서 적극적으로 도와드리겠습니다.”
“키메라가 도와주면 좋긴 좋지만, 우군이 더 필요할 것 같은데.”
“저희 AI 기술을 한국 다수의 대기업들에게 헐값에 도입시켜주겠다고 제안하면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트, 백화점, 반도체, 전자 쪽 사업하는 기업들은 혹할 것 같습니다.”
“그런 식으로 대기업들을 포섭한다라… 알겠습니다. 그쪽으로는 지사장이 더 잘 알 테니까요. 그렇게 계획대로 한번 해봅시다.”
“감사합니다. 의원님.”
민 의원을 보고 나서 주차장에 내려와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예당 기업만 무너지게 만들건 아니니까. 그 정도면 괜찮아. 모험할 만 해.’
민혁은 주차장을 나섰다. 곧이어 태준네 신혼집으로 향했다.
[남편 몰래 나와. 너네 집 앞에 와 있어.]
민혁에게서 메시지를 받은 태준은 집 밖으로 나섰다. 연우가 메시지를 보게 될까 봐 얼른 삭제했다. 태준은 집 앞 민혁의 차를 알아보고 다가갔다. 태준을 태우자마자 빠르게 어딘가로 향하는 민혁의 차였다.
민혁은 신혼집 근처 낮은 산에 지어져 있는 절에 차를 끌고 들어갔다. 늦여름, 이제는 초가을이 오려나 싶게 더위는 절정으로 발버둥 치고 있었다. 커다란 나무들이 짙은 녹색 빛을 띠고 강렬한 햇빛을 겨우겨우 막아줬다. 차를 멈췄다.
“여기 좋지?”
“창문 열어놓고 달리기 좋은 데네요.”
태준의 배를 살살 만져봤다.
“얘가 이제 발차기를 하면 차는 곳이 눈에 잘 보여요.”
“씩씩하게 잘 크고 있네, 우리 공주님. 요즘 아픈 곳은 없어?”
태준의 배를 살살 쓰다듬어 줬다.
“무게가 좀 나가니까 허리가 아파요.”
허리를 짚어 보이는 태준이었다.
민혁이 태준의 손을 잡아 허리에서 떼어내려는데 반짝이는 결혼반지가 눈에 보였다.
“이 반지 뭐야? 결혼반지?”
“네. 남편이 줬어요.”
‘태준이를 좋아하는 게 확실하네.’
태준의 대답을 들은 민혁은 태준의 눈을 가만히 응시하며 반지를 괜히 쓰다듬어봤다. 반지에다가 침이라도 뱉고 싶은 심정이었다.
‘네가 임연우한테 마음이 더 이상 안가면 좋겠는데.’
민혁은 태준의 허벅지를 만지작거렸다.
‘여기서 하자고?’
자동차 앞쪽 창문이 다 열려있는 상황에서 태준은 당황해 흔들리는 눈으로 민혁을 봤다. 태준의 안전벨트를 풀어주더니 태준의 조수석을 눕혔다.
‘진짜 하자고?’
민혁은 태준이 입은 임산부 원피스를 서서히 걷어 올렸다. 태준의 다리를 쓰다듬으며. 태준도 묘한 긴장감 속에 민혁의 손목을 가만히 만졌다. 민혁의 자율신경계가 반응하고 있는지 팔뚝과 손에 있는 핏줄이 또 부풀어 올라있었다. 민혁이 태준의 조수석을 뒤로 가게 조정하고 조수석 앞쪽으로 몸을 아예 옮기자, 태준은 조금 더 긴장하며 바라봤다.
“근데 차 창문이 열려있는데, 누가 보면 어떻게 해요?”
민혁은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대답하며 하던 일을 마저 했다. 태준의 원피스를 태준의 허리께까지 올리는 일이었다.
“상관없어. 다 봐도 돼.”
“부끄러운데….”
“오히려 봐주면 좋지.”
‘민혁이 형이 이런 걸 좋아했나.’
민혁의 처음 보는 과감한 모습에 태준은 이상한 흥분감에 사로잡혔다.
‘남편이 이러는 거면 아무렇지도 않을 텐데. 형이 이런 취향을 가지고 있다니.’
연우와의 사이가 좋아졌지만 바뀐 민혁의 모습에 바뀐 그를 겪어보고 싶은 태준이었다. 연우의 SM적인 취향에 길들여진 탓이었는지 태준도 꽤 이런 분위기를 즐길 줄 알았다.
‘나도 변태가 되어가고 있어.’
태준의 팬티를 벗기자마자 저도 모르게 다리를 벌리며 대기하고 있던 태준은 민혁의 아랫도리를 먼저 만졌다. 생각보다 적극적인 태준의 태도에 잠시 놀란 민혁은 슬그머니 웃으며 태준을 바라봤다.
“미시 됐어, 우리 태준이?”
“미시가 뭐예요?”
민혁은 대답하지 않고 태준의 밑에다가 민혁의 분신을 집어넣고는 태준의 몸 위로 민혁의 몸을 가볍게 겹쳤다. 태준은 신음했고, 민혁은 태준의 귀에다가 속삭였다.
“아. 줌. 마.”
‘이럴 수가, 내가 아줌마라니!’
“하… 나 아직 20살이에요.”
민혁은 태준의 머리칼을 매만지며 태준의 귀를 깊숙하게 핥기 시작했다.
“음란하게 내 애기 배고 있으면서 아직도 처녀이고 싶어?”
‘음란하게 애를 배다니… 내가 짐승 된 것 같아.’
분명히 무시하는 말임에도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민혁의 목을 두르고 있던 태준의 팔이 자연스럽게 떨어졌다.
‘날 짐승으로 보는 사람인데 감히 팔을 두를 순 없지.’
팔을 얌전하게 한 채로 민혁이 빠르게 박으면 빠르게 박는 대로 신음을 자주 내고, 귀를 깊숙이 핥으면 깊숙하게 핥는 대로 더 느끼는 듯한 신음을 내주면 되는 거였다.
태준의 등 뒤로 태준의 팔을 넘겨 보내더니, 손목을 모아 쥐고는 들고 왔던 가방에서 수갑을 꺼내 태준에게 채웠다.
‘와, 애초에 나를 더 속박시키려 했어.’
“수갑 맘에 들지?”
“네, 맘에 들어요.”
민혁이 너무 즐겁다는 듯 웃었다.
“역시 넌 이런 플레이 좋아할 줄 알았어. 타고난 오메가인 걸 처음 안을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펠라를 잘한다며 감탄하던 민혁의 모습이 떠올라 낯을 붉혔다.
‘그래도 타고난 오메가라는 소리는 어쩐지 좋게 들리는걸.’
태준은 그만 얘기하고 빨리 계속 박아달라는 듯이 성기 부분을 민혁의 성기에까지 올려서 비볐다. 민혁은 미소 지으며 태준을 다시 안았다.
“이 남자 저 남자한테 박히니까 기분이 어때?”
“좋아요.”
쉴 틈 없이 나온 대답에 민혁은 기쁜 마음이었다. 연우에 대한 약간의 질투를 빼고는.
“형, 밑에 있는 입에다가 우유 주세요. 해봐.”
순간 클럽에서 여자 오메가들에게 둘러싸여 행복해하던 민혁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 정도면 어지간한 여자들만큼 예쁘게 보이긴 하겠지?’
“오빠, 밑에 있는 입이 배고프대요. 우유 넣어주세요. 제발요.”
예쁜 외모에 대한 근거 있는 자신감으로 민혁을 더 흥분시키려 했다.
“수갑 차고 애도 밴 주제에 박아 달라고 애원하는 꼴이라니. 진짜 타고났네. 흐흐.”
외설스러운 민혁의 말에 태준의 여성기에서 애액이 터졌다.
“내가 한번 쌀 때까지 네 씹을 내 좆에 비벼봐. 그러면 다시 한 번 박아줄게.”
애액이 터져 흥건해진 성기를 민혁의 페니스에 갖다 대고 열심히 움직였다.
‘오메가는 좆 맛을 한번 보여주고 나면 주체를 못하지.’
태준을 더 골려주고 싶은 민혁은 가만히 애무를 당하고만 있었다.
페니스를 꼿꼿하게 세운 민혁은 다시 운전석에 앉았다. 태준에게 넘어오라는 듯이 태준의 팔을 붙들고 잡아당겼다. 태준이 수갑 때문에 움직이질 못하자 수갑을 벗겨주고 자신에게 건너오도록 해줬다. 건너가서 민혁의 위에 앉아 민혁의 물건이 제 여성기 안으로 들어가도록 조정했다.
“아아.”
물건을 넣은 태준이 민혁을 끌어안으려고 하자 민혁은 그 팔을 저지시키고 운전대 쪽으로 손을 짚게 했다. 태준의 몸이 뒤쪽으로 아치형이 됐다. 원피스를 태준의 가슴이 다 드러나도록 올렸다. 노브라에 유두패드만 하고 있던 가슴에서 패드를 떼어내고 드러난 가슴을 살살 만져줬다.
차창 밖에서는 드러난 가슴이 다 보였다. 태준의 탐스러운 가슴을 크게 물었다. 입을 크게 해서 빨아들이자 젖이 민혁의 목구멍 안으로 들어왔다. 그 상태에서 혀를 태준의 유두 위에 열심히 놀렸다. 빠는 것과 동시에 혀끝을 세워 유두를 자극해오는 민혁 때문에 태준은 오르가슴을 느꼈다.
무더운 날씨 탓에 둘은 모두 땀이 흥건했다. 태준은 허리를 지속적으로 돌렸다. 민혁은 사정을 했다.
“산책하자.”
절까지 올라가는 짧은 길을 천천히 걷기 시작하는 둘이었다. 민혁이 깍지 끼려고 하자 태준은 수줍은 척 거부했다.
“나 한국에서 당분간 내내 있을 거야.”
“왜요?”
“키메라가 한국지사까지 이번에 만들었는데, 거기 지사장으로 왔어.”
“축하해주면 되는 일이에요?”
“응, 뭐. 축하해줘도 되는 일이지.”
“축하해요, 형.”
“너네 남편한테는 내가 돌아온 거 비밀로 해줘.”
“알겠어요, 형.”
생각보다 무미건조한 태준의 축하에 미심쩍은 민혁은 대화주제를 돌렸다.
“애기 공주님이라며.”
“네. 남편이랑 육아용품 사들이고 있어요.”
“나한테 넘길 거라면서.”
길을 걷던 걸음을 멈추고 민혁에게 얘기했다.
“남편이 자기가 키우고 싶대요.”
‘뭐라고? 그놈이?’
“안 미워하고 키울 자신 있대?”
민혁을 더 빤히 보다가 대답했다.
“노력 많이 하고 있어요. 좋은 아빠 되려고.”
‘그 새끼가 태준이도 빼앗고 내 애까지 빼앗으려고 하는구나.’
이상하게 억울해진 민혁은 태준을 따라 다시 천천히 걷다가 또 입을 열었다.
“너 나랑 안 만날 거 아니지?”
태준에게서 답이 없자 태준의 어깨 위에 손을 얹으며 다시 물었다.
“나랑… 안 만날 거야?”
조금은 미안한 듯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남편이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오늘 섹스 할 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안 그래도 연우가 태준에게 공을 많이 들이고 있는 상태에서 태준을 희롱하듯 대했던 민혁은 점수를 많이 잃었다는 느낌에 슬퍼졌다.
‘임연우가 그러고 있을 줄은 몰랐지. 설마 했는데….’
자신이 방심했다는 생각에 자책하는 민혁이었다.
“앞으로 만나더라도 일 년에 한두 번만 만나요. 애기 낳고 나서도요.”
태준의 손목을 붙들고 애원했다.
“안 돼…. 안 돼, 태준아.”
민혁의 시선을 외면하고 있던 태준은 민혁을 똑바로 쳐다봤다.
“형은 결혼하면 되잖아요. 형은 결혼 잘할 수 있잖아요.”
‘완전히 마음이 가버린 건가.’
“그게 무슨 소리야.”
“형은 나랑 낳은 아이가 있든 없든 좋은 여자 잘 만나서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이잖아요.”
“아니야, 그래도… 애랑 너랑 살면 좋은데. 너는 안 되어도 애만이라도….”
“아기 줄 생각 없어졌어요. 남편이 알뜰살뜰 잘살아보려고 노력 중이에요. 친아빠처럼 해주고 싶대요. 아기 걱정은 마세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민혁은 태준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기가 꽤 크고 나면 그때부터 만날 수 있게 해줄게요. 어릴 때는 못 만날 거예요.”
생각보다 선을 잘 긋는 태준이었다. 그리고 연우에게로 마음이 많이 기울어져 있던 태준이었다.
“나 아직 결혼 생각 없어.”
“돈 있겠다, 능력 있겠다, 집안 좋겠다, 잘생겼겠다. 형이랑 결혼 못해서 안달인 상대들은 줄 서서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마음이 많이 떠났다는 게 확연히 드러나고 있는 지금, 민혁은 말이 없었다.
“형은 형의 가정을 꾸릴 날을 기다려요. 나는 남편이랑 아이랑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태준에게 갑자기 키스를 해댔다. 기댈 곳도 없어 마냥 당하고만 있는 태준이었다. 한참을 하고 나서 민혁은 입을 열었다.
“너, 나 안 선택한 거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후회 안하겠지? 남편이 지금처럼만 해준다면.’
태준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쏴아아.
숲의 나무들이 민혁의 심경을 대변이라도 해주듯 갑작스러운 바람에 휘날리며 공허함을 노래했다.
‘근데 어쩌지. 복수를 어느 정도는 해야겠는데. 이미 스타트를 끊어 놓은 복수인데.’
민혁이 알고 있는 예당의 비리들 중 전부 다 세상에 공개하고 싶은 마음을, 절반만 공개하고 싶은 마음으로 고쳐먹었다.
“만약에 애기를 키우다가도 또 임연우가 힘들게 하면 그때는 언제든 나한테 와. 최소한 애기라도 나한테 보내. 나도 너랑 애기가 행복하길 바라니까.”
태준은 민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형은 처음부터 좋은 사람이랑 결혼해요.”
태준은 민혁의 손을 가만히 잡고는 바라보며 말했다.
“형은 결혼을 하는 게 잘 어울리는 사람이에요. 결혼해서 애도 낳고 그렇게 책임감 있고 화목하게 잘 사는 게 어울리는 사람이에요.”
‘태준이가 나를 평상시에 이렇게 보고 있었구나. 이렇게 듬직하고 좋게.’
“애기는 우리가 잘 키울게요.”
‘우리….’
연우에게 KO패를 당한 이 느낌은 비참했다.
민혁은 태준을 신혼집 앞에다가 내려주고 작별인사를 했다.
“추석 만찬회 때 봐. 나도 잠시 얼굴 비추기는 할 거야.”
“네, 형 잘 가요.”
민혁은 태준이 집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태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
긴 한숨을 내쉰 민혁은 걸려오는 전화를 받았다.
[민 의원님]
“가능하면 다음 주 중으로 그 집 아들들에 관련한 비리는 터질 것 같으니까, 그 안에 큰 기업 한 두 개 정도는 더 포섭해놔 주세요. 우리 쪽 방어해가면서 터뜨려야지.”
“네 알겠습니다. 의원님.”
‘아들들에 관한 건 워낙 자주 있던 비리들이라서 별 타격 없을 것 같긴 한데, 앞으로가 문제야. 어디까지 내가 패를 까는 데에 일조를 해줘야 되는 거지…?’
신혼집으로 들어온 태준은 바로 샤워실로 향했다. 향기 나는 초를 여러 개 피워놓고 레몬 향이 나는 배쓰밤을 풀었다. 샤워를 다 하고 반신욕까지 다 한 후에 샤워실의 침대에 드러누웠다. 이렇게 하면 민혁의 냄새가 빠질까 싶었지만 최대한 다른 향기를 주입 시키려고 노력했다.
따르릉.
“여보, 여보 어딘데 방에 없어?”
다른 때와 다르다는 듯 의아해하는 연우의 목소리에 태준은 마른 침을 삼켰다.
‘아니야, 괜찮을 거야.’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빨리 답했다.
“오늘은 샤워실에서 해요.”
연우는 태준의 샤워실로 들어왔다. 나체로 있는 태준과 다르게 일반복을 입고 있었다. 초 여러 개를 켜놓아 다른 냄새들이 진동을 하는 샤워실이 이상해 보였는지 두리번거렸다. 침대 위 태준의 곁에 앉으면서도 샤워실을 두리번거렸다. 그런 연우의 모습을 보며 심장이 쫄깃해졌다.
“아까 어디 나갔다 왔어?”
‘집 앞에 있는 CCTV를 지워야겠다.’
대문 앞에 있는 CCTV가 영 마음에 걸리는 태준은 내일 중으로 CCTV를 처리할 생각을 했다. 연우가 말하고 있는 뉘앙스가 심상찮게 들렸다.
“아까 잠시 집 주변에 산책 갔다 왔어요.”
“거기까진 왜? 원래 집 안에서만 산책하잖아.”
잠시 벙찐 태준은 괜히 연우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쌌다.
‘집 정원에서만 산책하는 것도 알고 있어? 관찰하고 있던 거야?’
“네, 원래 집 안에서만 하죠.”
“근데 왜… 갑자기….”
‘임연우 무섭다. 깊게 파고드는 것 봐.’
태준은 제 표정이 망가질까 두려워 애써 웃어 보였다.
“한 번씩은 바깥이 궁금하잖아요. 우리 집 주변이 어떤가해서요. 그냥.”
“초는 왜 이렇게 켜놓은 거야?”
“예쁘잖아요. 가끔씩 이렇게 해놓고 여기 누워있을 때도 있어요.”
‘안 그런 것 같은데. 샤워실 청소하는 하녀한테 물어보지 뭐.’
“그래?”
뭔지 모를 확신을 갖고 되물어보는 느낌의 연우를 보고 위기를 직감하긴 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좋게 넘어가 보려고 했다.
“네. 오늘 마침 분위기 좋게 해볼 수 있게 되었네요.”
애써 웃어 보이며 연우의 목을 양팔로 감았다. 연우는 태준에게 뽀뽀를 하고는 태준을 눕혔다. 그리고는 태준의 볼록한 배를 정성스럽게 쓰다듬으며 눈을 바라봤다. 그냥 보기에는 아이와 아내를 사랑하는 남자 같았지만, 어딘가 싸늘해 보였다.
‘계속 의심하는 건가.’
위기를 느낀 태준은 연우를 더 끌어안으며 키스했다. 연우는 묵묵히 함께 키스했다. 그 후로는 태준의 리드에 따라 박아주고, 사정하고, 키스해주는 연우였다.
연우와 태준은 태준의 방으로 향했고 함께 잠이 들었다. 새벽녘에 태준보다 먼저 일어나서 방을 나서는 연우였고, 태준은 그보다 늦게 일어나서 CCTV가 고장 났다며 교체했다.
추석 한 주 전.
자신의 업무실에 있는 민혁은 민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의원님, 키메라 이선호입니다. 국내 포털사이트 대기업들 두 개를 포섭해놨습니다.”
“잘했네, 그럼 바로 작전 들어가지.”
“네, 의원님.”
[(주)예당 사장 임시우, 부사장 임연우 입시 비리와 군 비리 연루되어]
[대선 주자 임원석 장관의 자제들, 비리 폭로되다]
[예당 기업의 아들들, 문서 조작으로 군 면제 받았나]
[임원석 장관 “아이들 정당한 루트로 대학 갔다. 군대는 안 간 게 아니라 못 간 것.”]
9시 뉴스부터 시작해서 인터넷 뉴스 기사에도 도배되고 있는 연우와 연우 형 관련 비리. 민혁은 결과물을 보고 흡족해했다.
‘사실 저 정도는 또 무난하게 넘어가겠지. 더 큰 것들은 임연우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린 거야.’
그래도 꽤나 데미지를 입고 있을 연우를 생각하며 빙긋 웃어 보였다.
신혼집 서재.
연우 담당 집사가 인터넷 뉴스를 들고 와서 연우에게 보여줬다.
‘예상하긴 했지만, 이렇게 보니 적나라하네.’
집사에게 물러가 보라는 듯 손짓했다. 집사가 나가고 머리를 부여잡았다.
“씨발.”
아무리 예상했던 시나리오라고는 해도 알몸을 세상에 내보이는 것과 같은 수치심을 느꼈다.
‘보나마나 욕하겠지.’
인터넷 댓글들을 쭈욱 읽어봤다.
[청렴하고 공정한 척 하던 거 역시 다 위선이었다니까, 자기 집 아들내미들은 대학 편하게 보내고 군대를 무슨 수를 써서든 안 보내는 게 공정인가 봄.]
[정치인치고 역시 깨끗한 사람 하나 없다니까. 저런 사람을 보이는 대로 믿는 게 개돼지들이 하는 짓이지.]
[왜 허구한 날 애들 대학 요상하게 보내고 군대 이상하게 빼돌린 사람들이 정치한다고 난리인 거냐.]
[저 집 아들들은 좋겠다. 저렇게 해주고 공정이라고 외쳐대는 아버지가 무려 장관이셔서.]
[아빠가 장관쯤은 되어야 대학 편하게 잘 가고 군대 안 갑니다.]
새로 고침을 할 때마다 1,000여 개씩 추가되는 댓글들을 하나하나 읽어보다가,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에 태블릿을 집어 던졌다.
퍽!
박살이 난 태블릿이 보였다. 연우는 양손으로 머리칼을 꽉 잡으며 오만상을 찡그리다가 눈물을 흘렸다.
“내 노력이야. 내 노력이라고!”
책상을 주먹으로 퍽퍽 치던 연우는 환멸감에 갑자기 정색을 했다. 그리고는 슬며시 웃었다.
“우리 아버지 이상한 거 이제 처음 알았네, 사람들이. 드디어.”
연우는 힘이 빠져 넋을 놓고 책상에 엎드렸다.
“드디어.”
연우는 주먹을 꽉 쥐고 또다시 울었다.
‘드디어 밝혀지면 뭐해. 저 정도는 우습게 넘겨버릴 사람인데. 그 정도의 괴물인데.’
연우는 한참을 서재에서 울고 웃고를 반복하다가 지친 몸을 이끌고 태준에게로 향했다.
태준의 방.
똑똑.
연우가 자신에게로 찾아올 수도 있다고 예상하고 있던 태준은 초췌해진 연우의 안색에 놀라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너무 많이 힘들구나.’
가만히 서 있는 연우에게로 달려가 어깨를 감싸고 꼭 끌어안아 줬다. 연우는 태준을 끌어안고 펑펑 울어댔다. 여리디 여린 아이같이 울어대는 연우가 꽤나 낯설었지만, 태준은 가만히 안아주며 함께 울기까지 해줬다.
침대로 끌고 가 눕혀서 쉬게 하려는 태준이었다. 연우는 질질 끌려가서 태준의 침대에 드러누웠다. 연우의 옆에 앉아서 연우의 머리칼을 가만히 쓰다듬어줬다. 그러다가 연우의 옆에 함께 누워서 허리를 감싸 안아 가슴에 제 손을 얹어놨다.
띠리링.
연우의 폰에 전화가 왔다.
[아버지]
“여보세요?”
“기사들이랑 네티즌 반응들 읽었니?”
“네, 방금 읽었습니다.”
“너무 상심하지 말고. 다들 그냥 무능감에 질투 나서 그러는 거니까. 원래 능력 되면 자식들 다 그렇게 키우고 싶어 해. 주변에 능력 좋은 사람들 중에 안 그런 사람들 거의 없었잖니.”
“네,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아빠나 되니까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거야. 그러니 너무 상심하지 마. 그냥 자연스러운 과정이야. 대선 끝나고 나면 다 없어질 얘기들이야. 알겠니, 연우야?”
‘역시 다 자기 좋게 해석하고 가뿐히 넘기려는 게 우리 아버지지.’
“네, 알겠습니다.”
태준은 전화하는 연우를 따라 같이 앉았다가 연우가 말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애들도 엄청 힘들구나. 자기는 원치 않는데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심정이 얼마나 더럽게 느껴질까.’
“나중에 연말쯤에는 네가 예당 대표직을 거의 맡게 될 거야. 앞으로 너네 형은 또 정계 데뷔 해야지. 연말부터는 내가 너네 형 데리고 다닐 거거든. 얼굴은 알려놔야 될 거 아니야.”
‘아랑곳 안 하는 정도가 아니구나, 아버지는.’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
‘아버지’라는 끝말에 맥이 탁 풀리는 듯한 연우를 보며 태준은 더 걱정되는 마음에 미간을 찌푸리며 울상을 지었다.
‘자기가 원해서 선택한 삶은 하나도 없는 건가.’
결혼반지를 만지작거려보는 태준은 내심 동질감을 느꼈다.
‘민혁이 형이랑 민준이 형도 사실 아이비리그를 공부로만 간 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군대도 뭘 어떻게 해서 되게 쉬운 곳 갔다가 온 거 같던데.’
계속해서 아버지와 통화하고 있는 연우와 자신의 손에 끼워진 결혼반지를 번갈아 봤다. 머리 아픈 생각들로 인해 태준의 입술이 뾰로통하게 나와 있었다.
‘나도 어떻게 보면 내가 제대로 선택한 건 없지… 이 결혼도. 내가 선택한 건, 가족이랑 연을 끊는 거, 꽃 사업을 하는 거, 아기를 지우지 않고 연우랑 사는 걸 선택한 것. 다 이 결혼 뒤에야 선택해본 것들인데.’
알고 보면 연우가 도와줘서 선택할 수 있었던 것들이라 묘하게 고마워지는 태준이었다. 한편으로는 남자 오메가여서 교육 의무와도 거리가 멀고 군대도 의무사항에 해당이 안 된 채로 살아온 신분이라 조금은 다행감을 느끼기도 했다. 반지를 만지작거리다가 연우의 눈치를 살폈다. 연우는 전화를 끊고 다시 드러누웠다.
털썩.
드러누운 연우의 등 뒤로 따라서 누워버렸다.
‘그래도 나한테 고마운 짓도 많이 한 사람이네.’
연우의 등에다가 뺨을 갖다 대고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연우의 흉곽을 바라보며 가만히 연우의 숨소리를 느꼈다.
연우는 태준에게로 돌아누워 태준의 잠옷 원피스를 살살 걷어 올렸다. 엉덩이에 손을 올리고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태준을 바라봤다.
“위로해줘.”
태준은 연우의 물건으로 손을 옮겼다. 연우는 잠옷 차림의 바지와 상의를 벗고 태준의 원피스를 벗겼다.
태준은 섹스 하는 내내 연우가 원하는 대로 최대한 움직여줬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은 연우였으니까. 둘의 섹스가 끝나고 연우는 평상시와 다르게 태준에게 팔베개를 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태준과는 등을 지고 돌아누웠다.
‘왜 평상시랑 다르지?’
연우의 뒤에서 혼자 고민에 빠졌다.
“이민혁은 왜 만났어?”
뜬금없지만 날카로운 발언에 속으로는 화들짝 놀랬다. 매우 당황해버린 태준이었다. 여전히 등은 돌린 채로 물어오는 질문이라 더 무서웠다.
‘나는 결심했어. 쫄 것 없어.’
“정리하려고 만났어요.”
“정리하려고 자고 오나.”
‘한 번을 안 속아 넘어가는 것 같네.’
“잘못했어요.”
“CCTV 멀쩡한 거 고장 났다고 구라치면서 바꾸면 모를 줄 알았어?”
갑자기 또 화난 연우는 돌아누우며 태준을 째려봤다. 태준은 숙연해진 표정으로 아무 말이 없었다.
“CCTV 네가 떼기 전에 이미 내가 다 확인했었어. 차에 이민혁 있더라.”
태준은 용기 내어 말대답했다.
“이제 안 만나겠다고 했어요. 남편이 바뀌려고 노력 많이 한다고, 아기도 키워주겠다고 했다고. 그래서 앞으로는 안 만나는 게 좋겠다고 만나지 말자고 했어요. 앞으로는 그런 일 절대 없어요, 여보.”
“내 맘대로 되는 게 없네.”
망연자실한 연우를 보며 앞니로 아랫입술을 꼭꼭 씹었다. 눈은 데굴데굴 굴리며 어떻게 풀어야 하나를 생각해보려 애를 썼다.
“나 민혁이 형 이제 절대 안 좋아해요. 당신이 최고예요. 나는 당신밖에는 없어요.”
꿈쩍도 않는 연우를 보며 애가 탔다.
“전화해서 물어봐도 돼요. 나는 이제 당신밖에 없어요. 나한테 새 삶을 열어준 사람은 여보예요.”
“일단 추석 만찬회 때까지는 잠자리 같이하지 말자. 바람 폈던 죄에 대한 벌은 만찬회 때 내릴 거야.”
연우가 끝까지 밀어내자 태준은 많이 당황했다.
“알겠어요.”
‘무슨 벌이지?’
“나갈게.”
들어올 때와 다르게 싸늘한 연우의 말투에 또다시 입술을 물어뜯었다. 연우는 나가다 말고 휙 돌아섰다.
“넌 내 성욕 배출구 밖에 안 돼. 내 맘 아프면 위로나 해주고, 그러는 역할이나 착실하게 해. 여기저기 다리 벌리고 다니는 오메가 남창 주제에 별 쓸데없는 사랑 타령 그만하고. 누가 너 따위한테 진지한 사랑 바라겠어.”
눈물을 또르르 흘리는 태준의 턱을 만지더니 입꼬리 한 쪽을 올리며 비웃었다.
“그냥 하룻밤 일탈하고 싶은 욕구 풀고, 하룻밤 마음 달래려는 용도로 쓰고 버리는 거지. 넌 나랑 계약 관계니까 여러 번 그런 용도로 쓰일 수 있다는 게 다른 오메가들이랑 다른 점일 뿐이야. 명줄 길게 해준 건 내 덕인 줄 알아. 이민혁도 널 그냥 노리개로 생각하고 쓰다 버리는 거야. 어느 알파가 오메가를 그렇게 사람대접 해주나.”
극악무도한 말들을 던지고 아무런 책임도 질 필요가 없다는 듯 태준의 방을 휙 나가버리는 그에게 짓밟히는 느낌을 받았다. 동등한 줄 알았던 자신의 지위가 확 내려가 버린 느낌이었다.
툭, 툭.
아기가 발로 차도 별로 즐거운 느낌이 없었다. 오히려 자신과 같은 오메가인 아기가 저런 아빠 밑에서 커야 하는 것이 불쌍할 뿐이었다.
‘아무리 내가 잘못했지만… 아무리 임연우가 지금 안 좋은 상황에 있다지만….’
눈물이 또르르 내리는 태준은 아기를 품은 배를 감싸 안고 그 자리에 누워 울었다.
다음 날, 민혁은 민혁의 수하를 불렀다.
“최서연이랑 만날 수 있도록 해봐.”
민혁의 수하는 서연이 자주 다니는 클럽에 가서 함께 놀아주는 척을 한 후, 민혁의 사무실로 유인했다.
“나 지금 어디로 가는 거예요?”
“같이 와보시면 알아요.”
서연이 이끌려서 도착한 곳에는 민혁이 지사장이라는 명패를 달고 앉아있었다. 그녀가 들어오자 민혁은 일어서서 그녀와 악수를 나누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녀는 맞은편에 앉혔다. 민혁의 수하는 제 일을 다 한 듯 방문을 꼭 닫고 나가 버렸다.
‘뭐야 이 사람은? 어디서 본 사람인데. 왜 갑자기 이런 짓을 하는 거지? 무서워. 생긴 건 멀쩡해서는.’
서연은 겁을 잔뜩 먹은 표정으로 민혁의 명패를 확인했다. ‘이선호’라는 이름을 보면서 갸우뚱거렸다.
‘왜? 너도 나 안면 있어?’
민혁은 그녀의 아리송해하는 눈빛을 관찰하다가 말을 걸었다.
“최서연 씨 맞으신가요?”
“네, 저 최서연 맞는데요. 근데 실례지만 저랑 어떤 인연이 있어서 이렇게 사람을 막무가내로 오게 한 거죠?”
“죄송합니다. 갑작스럽게 약속도 안 잡고 이렇게 놀라게 해드린 부분은 제가 사과드릴게요.”
‘넌 안 잘생겼었으면 내가 바로 신고했었어.’
고개를 끄덕거리며 민혁의 말을 들을 준비를 했다.
“서연 씨, 친오빠 되시는 분을 예당에서 유학 보내 준 걸로 알고 있나요?”
“네. 2년 전에 제 오빠가 그린 작품 중에 제일 값어치 높은 그림을 문화부에서 사들여서 국립아트회관에 전시해놨거든요. 그 부상으로 예당 기업이 유학 보내 준 걸로 아는데요.”
“집 잘 사시잖아요. 근데 왜 그 돈으로 유학을 가야했죠?”
“예당기업이 우리 오빠에게 주는 돈은 곧 문화부 장관이 장학금을 주는 것과 같은 거니까요. 서류상으로 장관 장학금을 받아가며 유학하는 학생이라고 보여지면 플러스잖아요.”
민혁은 한숨을 고르더니 두 손을 책상 위에 얹고 손들을 맞잡았다. 무언가 대단한 말을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서연은 괜히 침을 꼴깍 삼켰다.
“잘 들어요. 나는 지금 당신의 친오빠가 어디서 살고 있는지를 알고 있어요. 당신 오빠가 프랑스로 유학을 안 갔다는 것만 알아둬요.”
서연은 갑자기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는 듯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싶었다.
“도대체 누군데 그런 소릴 나한테 하는 거예요?”
“내 말 믿어요. 나는 당신 오빠가 한국의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우리 오빠는 얼굴 없는 화가로 활동하고 있어요! 그런데 당신이 어떻게 알고 그런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거예요?”
“얼굴 없이 활동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요. 나랑 거래를 해요.”
“무슨 거래를요?”
서연은 다소 무례한 말에 열을 내다가 조금 차분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 가장 소중한 물건 하나를 올려 놔보세요. 어떠한 해를 가하지도 않을게요. 해를 가하면 신고하세요. 물론 값어치 꽤 나가는 것 중에 내놔보세요.”
민혁은 그녀의 몸에 치렁치렁 매달려있는 팔찌, 귀걸이, 반지, 목걸이 등에 시선을 나눠주며 말했다. 그녀가 알아듣고는 자신의 왼쪽 중지 손가락에 있던 금테두리에 까만 알맹이들이 박힌 반지를 책상 위에 내려놨다. 그것의 모양새는 연우의 화장대 서랍 안에 있던 반지와 같았다.
‘중요한 사람한테 받은 건가 보네.’
그 반지를 꼼꼼하게 살펴봤다.
‘반지 생긴 게 태준이 결혼반지랑 똑같네… 색만 다르고.’
반지를 내려놓고 서연을 바라봤다.
“이게 왜 그렇게 중요한 거죠?”
“제일 좋아했던 사람이 선물했던 반지예요. 결혼반지는 아니고.”
‘제일 좋아했던 사람? 똑같이 생긴 반지가 한 집안에서 각자의 부인에게서 나온다라…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지?’
제일 좋아했던 사람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었지만 일단은 참았다.
“추석 만찬 할 때 알게 되겠지만 내 본명은 이민혁이고 태성 그룹 장남입니다.”
서연은 명패에 있는 이름을 다시 보고는 깜짝 놀랬다.
“어쩐지… 낯이 익다 했어. 이름이랑 회사도 바꾸고 지금 뭐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마음이 좀 더 놓인 듯한 그녀의 모습에 같이 마음이 조금 놓인 민혁이었다. 책상 밑 수납함에서 사진 두 장을 꺼냈다.
“이게 다 뭔지 알겠어요?”
서연의 오빠 화풍으로 보이는 그림들 여러 점이 마당에 쌓여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 한 장, 서연의 오빠가 큰 주택 실내에서 왔다갔다 거리는 듯한 사진 한 장이었다.
‘우리 오빠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감… 감금?”
“맞아요. 당신의 오빠는 예당에 의해서 감금된 채로 살고 있어요. 오빠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값어치 높은 얼굴 없는 화가들도 각자의 주택에서 감금 중이에요. 사육당하며 그림을 찍어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죠. 저 그림들이 다 예당의 비자금들이에요.”
“하아-.”
절로 탄식 소리가 나오고 이 사실이 믿기 지가 않아 눈, 코, 입의 구멍들이 모두 경악 중이었다.
‘악랄한 건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이렇게까지 지옥 같을 줄이야. 죽일 놈들.’
“키메라에서 이 주택의 보안을 뚫을 수 있어요. 오빠 살리고 싶죠?”
“어떻게, 어떻게 하면 되나요, 제가.”
거의 우는 표정으로 민혁에게 애원하는 그녀는 온몸이 불안감에 휩싸였다. 손도 파들파들 거렸다.
“서울 안에 예당과 손잡고 있는 클럽들, 그 클럽들에게로 예당이 공급해 넣는 마약들의 출처를 수집해주세요. 한마디로 대포 통장들 스캔해 달라는 거예요. 마약 밀매매의 증거가 충분히 될 수 있게요.”
“알았어요. 꼭 최선을 다해 볼게요.”
“그리고 제가 키메라 지사장으로 돌아왔다는 얘기는 절대 하지 말아주세요. 그러는 순간, 이 반지는 영영 없어질 거예요.”
민혁은 반지를 가볍게 톡톡 건드렸다. 반지를 따라 눈이 움직이는 그녀였고, 다른 어느 때보다도 예당이 싫어졌다.
“이번에 입시 비리랑 군 비리 터지게 한 것도 당신 짓이었나요?”
“네, 제 기여도가 높긴 합니다.”
‘임연우가 엄청난 적을 뒀네.’
자신만만한 태도를 가만히 보고 있던 그녀는 입을 열었다.
“사실은 임연우가 그 반지를 내게 준 사람이에요.”
‘뭐야, 좋아하던 사람이 형수 된 거야?’
민혁은 그녀의 신기한 말에 눈을 크게 꿈뻑이며 그녀를 계속 지켜봤다.
“그래도 우리 오빠 살리는 게 더 중요해요. 만약에 진짜 오빠가 2년 내내 감금 생활을 한 게 맞다면, 예당을 없애도 저는 좋아요.”
‘저 집안도 개판이구나 역시.’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살짝 절레절레 흔들었다가, 슬퍼하는 중인 그녀의 눈치를 봤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해요. 따로 연락처 드릴게요.”
번호를 교환하는 그녀와 그였다.
신혼집.
태준은 작업실에 들어가서 작업장을 불러내어 복도에서 얘기했다.
“작업장님, 앞으로는 작업장님께서 이 꽃집을 운영해주세요. 제가 출산을 할 때까지만요.”
2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