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쾅쾅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정혁의 눈이 힘겹게 뜨였다.
쾅쾅쾅.
“정혁군, 안에 있죠? 모시러 왔습니다.”
부서질 듯 크게 울리는 소리에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다.
소파 위에 엎어져 있던 정혁은 귀를 막으려 힘겹게 손을 들어 올렸다.
휘둘러진 손끝이 테이블 위를 지나며 건드린 탓에 빈 병들이 우르르 쓰러져 바닥을 뒹굴었다.
“그냥 열고 들어가겠습니다!”
마지막 경고 끝에 문을 따는 소리가 들렸다.
침입자가 나타났는데도 정혁은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정혁 군!”
기어코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난장판이 된 집안 꼴을 보며 기겁하다가 그 가운데 쓰러져 있는 정혁에게로 달려갔다.
“세상에. 괜찮은 겁니까?”
윤수의 비서인 박 실장이 정혁의 몸을 낑낑대며 부축해 일으켰다.
윤수가 제일 잘난 미남이라며 자랑해 마지않던 얼굴은 집안 꼴보다도 더 엉망이었다.
헝클어진 머리와 퀭한 눈 탓에 정혁은 제가 몇 번 보았던 이와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오늘 행사 있는 거 잊지 않으셨죠? 모셔오라는 회장님의 분부입니다.”
“…….”
“정혁 군, 내 말 듣고 있어요?”
정혁은 귓가에 웅웅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알코올에 젖어 흐리멍덩한 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이게, 도대체!”
시간이 지체되는 것 같자 따라 올라온 윤수가 뒤늦게 집 안으로 발을 들이다가 사색이 됐다.
“이 녀석이, 정말!”
윤수가 입술을 파르르 떨며 정혁에게로 다가왔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야! 응? 네가 이런다고 떠난 사람들이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
“왜 네 부모 마음에 대못 박을 짓을 하냔 말이다! 눈도 편히 못 감게!”
그간 안쓰러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더니 갈수록 망가져만 가는 정혁에 윤수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하지만 총기 가득했던 눈동자엔 빛이 없었다.
“정혁아…… 이 녀석아.”
윤수가 답답함에 정혁의 어깨만 툭툭 손으로 내리쳤다.
똑똑한 녀석이 오죽 죄책감에 시달렸으면 이럴까 싶었다.
밖으로 표현할 줄 모르는 녀석이다 보니 안으로 고통이 파고든 탓이었다.
“네 탓이 아니다.”
“…….”
“네 탓이 아니라고.”
“…….”
흐린 시야에 흐느끼는 윤수가 들어왔다.
“사람 명이 거기까지였던 것을…….”
질끈 감은 눈가가 붉어졌지만 정혁은 눈물조차 흘리지 못했다.
“엄마가 데리러 갈 거니까 기다려.”
“말년 휴가인데요. 번거롭게 오실 필요 없어요.”
“얘, 그러니까 가야지! 마지막이니까!”
“전역 날에도 오실 거잖아요.”
“전역은 전역이고, 말년 휴가는 또 말년 휴가지.”
“야, 인석아! 네 엄마 고집을 누가 꺾어!”
“……알겠어요.”
옆에서 한 마디 덧붙이는 부친의 말에 결국 모친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도 이상하게 찝찝한 기분이 남아 전화기에서 떠나질 못했던 것도 같다.
그리고 다음 날, 그를 데리러 오겠다던 부모님은 결국 정혁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교통사고로…… 마주 오던 트럭이 중앙선을 침범해서…….”
정신없이 병원으로 가 상황을 듣는데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즉사였다.
전날의 전화 통화가 정혁이 들은 마지막 목소리가 됐다.
피로 얼룩진 얼굴이 마지막 기억이 됐다.
장례식을 어떻게 치렀는지, 군대의 마지막을 어떻게 보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전역하고 돌아오니 텅 빈 집이 정혁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제야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는 게 실감이 났다. 보고 싶어도 더이상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장례식 때도 흘리지 못했던 눈물이 뒤늦게 쏟아졌다.
사랑한다고 한번은 말할 것을.
내게 가장 소중한 당신들이었는데.
그리워도 돌아오지 않는단 사실을 깨닫자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항상 듣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고, 항상 곁에 있었는데 이젠 없다.
맨정신으로는 견딜 수 없는 공허함이었다.
내가 끝까지 오지 못 하게 했더라면.
아니, 하필 그때 휴가를 나간다고 하지 않았더라면.
아니…… 처음부터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끝도 없이 파고드는 죄책감은 시퍼런 칼날이 되어 정혁을 쑤셔댔다.
고통의 모든 화살이 제게 향했다.
그런다고 해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아는데도,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아는데도.
……견딜 수가 없었다.
“이제 그만 하자, 정혁아.”
윤수가 정혁과 눈을 마주치며 호소했다.
“네 엄마를 생각해서라도, 넌 이걸 이겨내야만 해.”
윤수가 작정한 듯 단호하게 정혁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어서 일어나. 오늘 이 행사, 네 엄마가 재단 일 하면서 가장 소원하던 거다.”
“…….”
“네 엄마 자리를 대신하거라. 정 네 탓인 것 같아 괴로우면 그렇게라도 네 엄마에게 죄를 갚아.”
……죄를 갚아……
그 한 마디가 정혁을 움직이게 했다.
비틀거리면서도 기계처럼 일어나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도림 그룹 소속 문화재단에서 주최한 미술 공모전 시상식이었다.
차에서 내려 문득 올려다본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처럼 흐렸다.
“네 엄마가 이 일에 얼마나 많은 정성을 쏟았는데. 네가 대신해서 똑똑히 지켜보거라.”
단단히 못 박는 윤수에 대답하지 않은 정혁은 천천히 건물 로비를 가로질렀다.
재단을 설립하고 키우는 모든 과정에 모친의 정성 어린 손길이 들어갔다.
하다못해 건물 설계부터 내부 인테리어까지, 그녀의 컨펌을 거치지 않은 게 없었다.
씁쓸하게 보던 때, 문득 로비에 나란히 걸린 그림들이 보였다.
수상작인 모양이었다.
커다란 그림 하나가 무심코 스쳐 지나가던 정혁의 시선을 붙잡았다.
“…….”
황량하게 펼쳐진 평원 한가운데 길이 나 있고, 길가에는 길쭉하게 뻗은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촘촘하게 서 있는 그림이었다.
그림은 무척 쓸쓸하면서도, 어쩐지 평온한…… 이상한 느낌을 주었다.
“……이 그림, 잘 그렸죠.”
멍하니 그림을 바라보고 있을 때, 통통 튀는 목소리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이게 이번 공모전 대상 수상작이에요.”
정혁에게 조금 더 가까이 붙은 아이가 비밀이야기를 하듯 속닥거렸다.
정혁이 시선만 조금 내려 상대의 얼굴을 확인했다.
중학생쯤 되었을까. 순수하고 말간 얼굴을 한 소녀였다.
“……맞아요, 제가 그렸어요. 대단하죠?”
정혁이 반응을 보인다 생각했는지 소녀는 입을 손으로 가린 채 키득거리며 정혁의 팔을 철썩철썩 내리쳤다.
“오늘은 특별히 기분 좋으니까 그림 해석도 해드릴게요. 아저씨, 운 좋으시네요.”
정혁이 대답하지 않았는데도 소녀는 뒷짐을 진 채 정혁과 나란히 서서 그림을 들여다봤다.
이런 어둑한 그림을 그렸다고 하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밝음이었다.
그린 이를 보고 나서인지, 그림을 다시 보니 밝은 느낌이 드는 것도 같았다.
정혁의 침묵에도 개의치 않고 제 그림을 감상하던 소녀가 입을 열었다.
“사이프러스 나무가 십자가를 만들던 나무래요. 죽음을 상징한다고도 해요.”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정혁의 귀에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그런데 우리 엄마가 그랬어요. 사이프러스 나무가 저렇게 높은 건, 산 사람들의 마음을 먼저 떠난 사람에게 전해주기 위해서라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묘지 주변에 저 나무를 심기도 한대요.”
“…….”
“전 외동딸인데, 우리 엄마가 매일 걱정하거든요. 나중에 혼자 두고 갈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대요. 나이도 별로 안 많은데 벌써부터 그런 걸 걱정하는 거 있죠?”
소녀가 어이없다는 듯 조잘댔다.
“그래서 엄마를 위해서 그렸어요. 나중에 나보다 먼저 엄마가 세상을 떠나도, 우리는 계속 연결되어있다고 전해주고 싶어서요. 아무리 세상이 힘들고 고달파도 나는 꿋꿋이 살다가 만나러 갈 테니까 걱정 말라고요.”
“…….”
“이건 비밀인데요.”
손을 펼쳐 입을 가린 소녀가 다시 정혁에게로 몸을 기울이며 속닥였다.
“재단 이사장님 있잖아요. 이 이야기를 심사 때 그분한테 말했는데…… 그분이 우셨어요.”
……울었다고?
갑자기 언급되는 모친의 이야기에 정혁이 저도 모르게 소녀의 눈을 바라봤다.
“이사장님도 아들이 하나뿐이라 우리 엄마 마음을 너무 잘 아신대요. 수상 못 해도 이 그림, 이사장님이구매하시겠다고 하셨다니까요? 아들에게 선물하시겠대요.”
“…….”
“물론 대상을 타버리는 바람에, 당장은 못 사시겠지만.”
소녀가 도도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언젠가 아들이 혼자 남게 돼도, 씩씩하고 꿋꿋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정혁의 입술 끝이 굳었다.
“무뚝뚝한 아들이라, 힘들어도 속으로 쌓아두는 것 같아서 걱정되신대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어쩌겠어요. 특별히 팔기로 약속했죠, 뭐.”
“…….”
“엄마들은 다 그런가 봐요…… 그쵸?”
“…….”
“아저……! 아저씨, 울어요?”
그제야 대답 없는 정혁을 올려다본 아이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아니, 갑자기 왜 울어요?”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아이가 난처한 듯 정혁의 소매를 흔들었다.
몸을 돌려 정혁 앞에 선 아이가 고개를 들어 올리자 소리 없는 눈물이 아이의 볼 위로 툭툭 떨어졌다.
깜짝 놀란 소녀가 입술을 앙다물었다.
“이, 이리 와요.”
아이의 손에 끌려간 곳은 건물 비상계단이었다.
숨을 헉헉대던 아이가 벽으로 밀친 탓에 정혁은 스르르 힘없이 주저앉았다.
“어, 음…….”
바닥에 주저앉아 무릎을 세운 채 우는 어른을 본 소녀가 난처한 듯 어물거렸다.
우는 게 창피해서 그러는가.
“아저씨…… 울 거면 차라리 소리 내서 펑펑 울어요. 그럼 속이라도 시원해질 텐데.”
옆에 앉은 그녀가 자그맣게 속삭였다.
그럼에도 남자는 침묵 속에 서글픈 눈물만 흘렸다. 굵은 눈물방울이 눈가로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소리 나는 게 창피해서 그래요? 아니…… 슬프면 울기도 하고 그러는 거지.”
어쩐지 남자의 눈물에 저까지 찡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럼 내가 노래 불러줄게요. 크게 부를 테니까, 아저씨도 소리 내서 마음 편히 울어요, 그럼.”
정혁이 우는 내내 아이는 옆에 쪼그리고 앉아 노래를 불렀다.
계단을 타고 청아한 목소리가 울려 정혁을 어루만졌다.
그렇게 흘린 눈물이 말라갈 때쯤, 문득 고개를 드니 계단 창문으로 환한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언제 흐렸냐는 듯, 날이 개어 있었다.
“아, 그쳤네.”
소녀가 중얼거리다 몸을 일으켰다.
“앞으로는 웃기만 해요, 아저씨.”
목이 쉬어버린 소녀는 정혁을 보며 빙긋 웃은 뒤 떠나갔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따라 나갔지만, 소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정혁은 수상작 그림 옆에 적힌 이름을 확인했다.
[차은서]
어둠 속에 짓눌리던 정혁을 구원해준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작은 소녀였다.
*창밖에서 시선을 거둔 정혁이 느른하게 몸을 일으켰다.
때로는 나비의 작은 날갯짓 하나가 커다란 파도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날 차은서가 전해 준 몇 마디는, 정혁의 마음속에 뿌리내리던 죄책감을 끄집어내 부쉈다.
그녀가 전해 준 이야기 때문에,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무너졌던 정혁에게 다시 살아가야만 하는 정당한 이유가 생겨났다.
그러니 이번엔 내가 너의 구원이 되어 줄 차례였다.
네가 내게 구원이었듯이, 내가 네게 구원이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