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널 안고, 울리고-32화 (32/82)

32.

허리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손의 온기와는 달리 맞닿은 그의 입술은 서늘했다.

스치듯 부딪치고 말았던 수영장에서의 입맞춤이 떠올랐다. 그날처럼 촉촉하지만 차가운 입술에 손끝의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날과는 달리, 먼저 입을 맞춰온 건 정혁이었다. 그 사실에 의지하기로 한 은서는 일부러 그의 옷깃을 더욱 꼭 부여잡았다.

그러자 간을 보듯, 움직임 없이 머무르기만 하던 입술이 곧 떨어져 나갔다.

“…….”

의아함에 감았던 눈을 뜨자 그의 긴 속눈썹이 보였다. 그 밑으로 높게 솟은 콧날도.

정혁의 내리뜬 눈이 올라오며 시선이 부딪쳤다.

허리에 있던 그의 손이 조금씩 아래로 내려가는가 싶더니 골반 바로 위에서 멈췄다.

그가 툭 치듯 다리를 들어 올리면서 동시에 은서를 제 몸에 바짝 붙였다.

“!”

미끄러지듯 그의 몸에 밀착된 탓에 갈 곳 잃은 은서의 손이 자연스레 정혁의 어깨로 올랐다.

몸이 빈틈없이 닿고서야 은서의 얼굴을 감싸 쥐고 있던 그의 손이 내려가 은서의 날개뼈 아래를 짚었다.

저를 받친 단단한 그의 몸과 팔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좋았다.

“오늘은 잠들지 마.”

“…….”

입술 위에서 속삭이는 그의 숨결은 다행히도 뜨거웠다.

은서는 대답 대신 그의 목을 두 팔로 휘감았다.

누군가 빚어 놓은 듯한 그의 얼굴을 내려보다가 눈을 감자 기다렸다는 듯, 그가 다시 입술을 붙여 왔다.

조금 전과는 달리 온도가 높아진 입술이 문지르듯 비벼졌다. 조금씩 깊게 맞물리며 서로의 호흡이 엉켰다.

살짝 벌어진 입술 틈으로 그의 혀가 뜨거운 숨과 함께 미끄러져 들어왔다.

몸의 윤곽을 따라 스르르 올라오던 정혁의 손이 다시 은서의 목 뒷부분을 감아 고정했다.

저를 붙잡은 손은 듬직할 정도로 강했다.

혼탁했던 머릿속이 조금씩 깨끗해졌다. 그리고 정혁으로 가득 찼다. 제 팔 안에 갇혀 제 입술을 탐해오는 이 남자로.

더없이 고요한 가운데 입 안을 구르는 질척한 소리만 귓가에 울렸다.

아니, 곧장 뇌리를 거쳐 온몸으로 끈적하게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전혀 수줍지 않은 움직임으로, 그는 점령해 오듯 저를 농락했다.

하릴없이 그가 이끄는 대로 끌려가며, 은서는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골반을 타고 내려온 손이 잠옷으로 입은 원피스 아래를 파고들었다.

거침없이 미끄러져 올라오는 손을 따라 옷자락이 함께 끌려왔다.

피부에 닿는 온도가 뜨거워 화상을 입을 것 같았다. 낯선 온도에 긴장이 풀려 흐늘거리는 몸이 움찔거렸다.

그의 긴 손가락이 머리칼 속을 파고드는 동시에 아래로는 말캉거리는 살덩이를 움켜쥐었다.

“흐읏.”

여린 비음이 새어 나가자 입속을 헤집어 오는 움직임이 더 깊어졌다.

은서의 반응을 관찰이라도 하듯, 느리게 혀를 놀리는 그의 손길도 덩달아 느려졌다.

문지르다가 움켜쥐기도 하고, 장난치듯 끝을 건드리기도 했다. 그러다 그의 손이 가슴을 조인 천 안으로 훅 들어왔다.

빠짐없이 감싸 쥐는 손에 녹아내리는 상상을 하며 은서는 정혁이 더이상 망설이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는 오늘 밤 저를 가질 것이다.

묘한 충족감이 일며 감각들이 예민하게 살아났다.

온몸의 신경세포가 팽창되는 것만 같았다. 익숙지 않은 감각이 서서히 피어나 이성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아…….”

배 아래 어딘가가 꾹 조여드는 것 같아 저도 모르게 다리를 오므렸다.

그러자 입술을 떼어 낸 정혁이 그대로 원피스 끝을 집고 끌어 올려 머리 위로 벗겨냈다.

긴 머리가 흩어지며 하얀 어깨와 속옷만이 남은 상체를 가렸다.

은서는 인형처럼 가만히 앉아 정혁을 바라봤다.

냉정하기만 하던 그의 짙은 눈동자엔 묘한 열기가 어려 있었다.

“…….”

그의 손이 닿기 전, 은서는 양손을 뒤로 하고 잠겨있던 고리를 풀어냈다.

낯선 허전함을 느끼며 어깨에 아슬하게 걸린 끈을 제 손으로 걷어내자 하얀 속옷이 침대 위로 떨어졌다.

여전히 날카로운 눈을 한 그는 은서가 하는 행위를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갑자기 피부에 닿는 공기가 차갑게 느껴졌다. 그의 손이 떨어져 나간 탓인지, 아니면 그의 품에서 벗어나서인진 알 수 없었다.

짧은 틈에도 그의 온기가 절실히 그리워졌다.

떨리는 손을 정혁의 셔츠로 가져가는데, 그가 은서의 손을 낚아챘다.

그리고는 소중한 것을 다루듯, 그녀의 손을 감싸 쥐고는 은서의 손바닥에 제 입술을 가져다 댔다.

경건한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머물러 있던 그의 입술이 곧 손목으로 옮겨갔다.

짧은 입맞춤을 이어가며 팔 안을 타고 올라온 그가 다른 손으로 은서의 머리를 한데 모아 그러쥐었다.

조명에 드러난 가녀린 목덜미에 입술을 묻은 그가 지그시 여린 살을 깨물었다.

“읏.”

날카로운 통증이 등허리를 타고 내려갔다.

그에게 붙잡힌 손가락 사이로 그의 긴 손가락이 얽히듯 들어왔다.

깍지 낀 손을 옮겨 제 목을 두르게 한 정혁이 쇄골 밑으로 입술을 옮겼다.

“아……!”

술기운도 없이 맨정신으로 맞는 감각이 통렬했다.

당혹스러울 정도로 적나라한 쾌감에 무심코 고개를 떨구자 제 시야 밑으로 사라진 정혁이 저를 머금고 있는 게 보였다.

지금껏 본 적 없는 외설적인 광경에 은서의 몸이 바짝 수축했다.

저절로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며 사이에 있는 그의 다리를 조였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의 어깨만 부여잡고 있던 손을 움직여 정혁의 얼굴을 잡으려던 때였다.

얼굴에 닿기도 전 은서의 손을 잡아챈 정혁이 그대로 은서를 침대 위에 쓰러뜨렸다.

은서의 양손을 각각 침대 위에 결박한 그가 다시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피부를 스치는 그의 부드러운 머리칼이 간지러웠다.

뜨겁고 미끄러운 감촉이 몸 곳곳을 헤집다가 점차 아래로 내려갔다.

감당할 수 없는 자극에 저절로 다리를 세우자 그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무릎으로 옮겨 갔다.

“아흣!”

다리가 벌어짐과 동시에 그의 손이 미끄러져 들어왔다.

“싫…… 읏……!”

밀착해오는 감각에 허리가 절로 뒤틀렸다.

낯선 자극은 금방 쾌락으로 변모했다.

매달리다시피 그의 팔을 붙잡으며 다른 손으론 시트를 움켜쥐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되어 가고 있었다.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몇 번이고 밀려오는 쾌락을 온몸으로 맞았다.

“아플지도 몰라.”

“…….”

희미해진 의식 속에 그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반응하지 못하고 흐린 시야 속에 그를 찾았다.

그는 천천히 제 셔츠의 단추를 풀고 있었다.

대답 대신 그의 다리에 제 다리를 감듯이 문질렀다.

그의 다리에 힘이 들어가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다시 입술을 겹쳐 온 그가 혀를 세워 넣으며 아래를 겹쳐 왔다.

“흐읏.”

생경한 통증에 신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아!”

그가 크게 움직일 때마다 참지 못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 소리에 반응하듯 그의 움직임이 조금씩 빨라졌다.

어둑한 조명 아래, 그의 움직임을 따라 시야가 흔들렸다.

침대 시트가 비벼지는 소리에 한 번씩 그의 거칠고 낮은 숨소리가 섞였다.

늘 평온하기만 하던 남자의 흐트러진 숨소리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녀는 절정에 이르렀다.

*

눈을 다시 떴을 때 은서는 여전히 침대 위였다.

다만 은서를 당황하게 한 건, 제 옆에 걸터앉은 정혁의 행동이었다.

그는 따뜻하게 적신 수건으로 제 몸을 문지르듯 닦아내고 있었다.

이제는 눈감고도 그릴 수 있을 만큼 익숙해진 차갑고 무심한 얼굴을 한 그의 손길은 퍽 다정하게 느껴졌다.

그제야 섹스가 끝난 직후 곧장 잠에 빠져들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민망함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나마 지난번처럼 도중에 잠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씻고 나올게요.”

그의 눈이 힐끔 제게 닿았다 떠나갔다.

“그냥 자.”

“씻을래요.”

창피함에 고집스레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나신인 그녀와 달리 그는 바지만을 입은 채였다. 조금 전에는 제대로 보지 못했던 그의 탄탄한 상체가 선명하게 보였다.

어쩐지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슥 눈을 돌린 은서가 곁에 떨어져 있는 그의 셔츠를 집어 걸치고는 침대 아래로 발을 내렸다.

“아……!”

하지만, 발로 땅을 딛고 서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리고 말았다.

곧장 은서를 붙잡아 준 정혁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그냥 있어.”

한 손으로 은서의 허리를 감은 그가 조심스레 다리 사이를 닦아 냈다.

창피함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태연한 그의 태도에 입술만 잘근거리다 그가 시키는 대로 다시 침대에 누웠다.

“……갈 거예요?”

그가 일어나는 걸 본 은서가 조금은 조급한 투로 물었다.

죽을 만큼 창피해도, 지금은 그의 곁에 있는 게 좋았다.

“……입어. 감기 걸리기 싫으면.”

그리 대답한 정혁이 보드라운 면으로 된 커다란 원피스를 건넸다.

고분고분하게 셔츠 위로 원피스를 입고 그 안에서 꼬물대며 셔츠를 벗어 밑으로 내려놓았다.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들자 그가 제 옆에 와 눕듯이 앉았다.

가까워진 그의 열기에 마음이 놓였다.

“……안아도 돼요?”

“…….”

그는 대답 대신 몸을 완전히 내려 은서를 품에 안았다.

그의 몸은 아까처럼 뜨겁진 않았지만, 여전히 따듯했다.

첫 키스였고,

첫 섹스였다.

아직 아릿하게 남아있는 통증과 간지러운 감각이 그와의 섹스가 진짜였다는 걸 말해주었다.

남자에게 제 몸을 전부 보인 것도,

제 입에서 나오는 소리라고 믿기 어려운 신음을 흘린 것도,

전부 처음이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처음 해보는 경험은, 모든 걸 잊게 해줄 만큼 강렬했다.

그의 곁에서 심장이 떨리면서도, 머릿속은 더할 나위 없이 깨끗했다.

은서는 규칙적으로 울리는 그의 심장 소리를 자장가 삼아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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