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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보고 폭군이래?-77화 (77/151)

<77화>

룩소르가 긴장한 티를 내며 자세를 바로 했다.

나는 소피아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전달하며 네페르트 후작 부인이 무엇을 꾸미고 있는지 이야기해 주었다.

룩소르가 마른침을 삼키며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반란이라니…….”

그래도 6년 동안 담력을 많이 키운 모양인지 당장 기절할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그는 숨을 고르고 잠시 생각을 잠기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반겔레스 셰피오 자작에게 군대를 모아 수도로 돌아오라고 해야겠다.”

“안 그래도 군대를 움직이는 것에 대해 상의하려고 했어.”

“그래. 그리고 네페르트 후작 부인도 잡아들이라고 하고…….”

“흠……. 네페르트 후작 부인은 그냥 두는 게 어때?”

룩소르가 놀란 투로 물었다.

“후작 부인을 말이냐?”

고개를 끄덕이자 키네시아가 내 의견에 반대했다.

“손 놓고 있다가 반란군이 궁전까지 들어오면 위험해질 거야.”

“궁전 안까지 들어오게 할 생각은 없어.”

네페르트 후작 부인은 궁전에 주둔하는 병력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룩소르가 전혀 위협적인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그렇기에 급조한 인원으로 반란을 저지르려는 거겠지.

귀족들의 사병은 제한해 뒀으니 네페르트 후작이 모은 인원으로는 반겔레스가 키운 군대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반란군은 궁전의 정원도 밟지 못할 거야.”

룩소르는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리아야, 미리 잡으면 사상자도 줄고 좋지 않겠느냐?”

“그렇지.”

“그런데 왜 수도로 들어오는 것까지 허용하려는 것이냐?”

“증거가 없어.”

동향으로 반란의 조짐은 눈치챘다.

그러나 결정적인 증거가 없었다.

후작 부인은 파라돈, 레바나 신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런 그녀를 정보원들의 증언만으로 반란의 주동자라며 잡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증인으로 노출시킨 정보원이 위험해질 수도 있고, 얼굴이 알려지면 다시 쓸 수 없기도 하니까.

“저번처럼 로그리예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건 어때? 마법 물품이 있으면 들어가서 증거를 가져올 수 있잖아.”

“그 마법 물품의 제공자가 로그리예였느냐?”

펄쩍 뛰며 놀라는 룩소스를 내버려 둔 채 키네시아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때는 약혼해 주는 거로 거래를 했지만 지금은 아미르 공작가에 줄 게 없어.”

“거래 때문에 로그리예와 약혼한 것이냐?”

정확히 말하자면 주고 싶은 게 없었다. 주어서도 안 되고 말이다.

“더 큰 세력을 끌어들일 땐 심사숙고해야지. 일이 마무리된 뒤에도 그가 우리 편일 거라는 보장이 없잖아?”

“하지만 로그리예는 내 친구고 네 약혼자가 될 거잖아.”

“국가 간의 관계는 친목과는 달라. 받는 게 있으면 반드시 주는 게 있어야 해.”

게다가 반란은 국가의 전복이 달린 일이다.

그들의 도움을 받았다가는 아예 중앙으로 진출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파라돈과 레튜니아만으로도 골치가 아픈데 아미르 공작령까지 끼어들면 통제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그리고 그건 게텔린 백작한테 썼던 거잖아. 한 번 당한 거에 두 번 당하겠어?”

이미 네페르트 후작가 주변에 마법 탐지기가 깔려 있다는 것을 들었다.

그러니 로그리예에게 부탁해 마법 물품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걸리고 말 것이다.

비등록 마법사의 물건을 쓴 게 밝혀지면 나나 로그리예가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뭐, 그런 이유도 있지만. 내가 노리는 건 다른 거야.”

“다른 거?”

“레바나 신전의 대신관.”

룩소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로즈라에게 받은 자료를 꺼내 룩소르에게 건네주었다.

“최근 23년간 레바나가 사들인 땅 목록이야. 보면 대부분이 에피파네스 변방과 그 인근 땅들이고.”

“하지만 그곳은 내가 직접 시장을 보내 다스리고 있는 곳인데…….”

“맞아. 통치권은 그대로 두고 소유권만 몰래 거래한 거지. 그 이유가 뭐겠어?”

“……모르겠구나.”

룩소르가 머리 아프다는 얼굴로 서류를 내려놓았다.

키네시아가 그 종이 뭉치를 가져가 훑어보고는 고개를 들었다.

“나라를 세우려는 거야?”

“그것도 에피파네스의 땅을 근거지로.”

룩소르가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주변에 적이 너무 많구나. 너무 많아.”

“나약하게 굴지 마. 적은 원래 많았어. 전하가 모르고 있었을 뿐이지.”

못해도 23년은 된 계획이다. 룩소르가 왕이 되기 전부터 땅을 사들이고 있었으니까.

“레바나를 국교로 인정하는 순간 에피파네스는 그들의 성역을 보호하고 인정해 줘야 하지.”

키네시아가 다시 한번 서류를 들여다봤다.

“지금 레바나 교가 가진 땅은 어지간한 백작 영지보다 클 것 같은데…….”

“맞아. 성금은 국고, 성기사단은 군사, 신도는 백성, 군주는 대신관. 이제 땅만 있으면 사실상 국가의 조건을 모두 갖추는 거야.”

“그런데 그게 이번 반란과 무슨 상관이냐?”

“도와주면 국교로 인정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겠지. 신의 이름으로 세워진 국가면 다루기도 쉽고, 반란으로 왕이 된 사람은 끌어내리기도 편하니까.”

예정대로라면 어느 정도의 땅을 확보한 뒤 게텔린을 이용해 국교가 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계획 막바지에 게텔린을 치워 버렸으니 아마 약이 잔뜩 올랐겠지. 그래서 이런 출혈이 큰 방법까지 쓰는 걸 테고.

심경이 복잡한 얼굴로 키네시아는 서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런데 사실 믿기지 않아. 대신관님은 굉장히 인자하신 분이었는데.”

“맞다. 내가 백성을 구호할 때 항상 앞장서 도와주었던 분인데, 어찌…….”

그래서 처음 만났을 때 막내 공주인 나를 동네 꼬마 다루듯이 했구나?

“원래 웃는 얼굴로 칼을 숨기고 있는 놈들이 제일 무서운 법이야. 대놓고 난리면 잡아들이기라도 하지. 쯧쯧.”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룩소르와 키네시아가 확인한 서류들을 벽난로에 집어 던졌다.

새하얀 종이가 검게 물들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을 때쯤,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어쨌거나 평소보다 네페르트 부인과 만나는 일이 잦긴 한데, 그 외에는 수상한 행적이 없단 말이야. 우리처럼 가만히 있는 척하는 모양이야.”

키네시아가 내 뒷말을 이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반란이 시행될 때는 움직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키네시아는 이제 이해한 듯했으나 룩소르는 여전히 걱정스러워 보였다.

나는 몸을 살짝 틀어 수심에 잠긴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그레서 말인데, 전하. 제안할 게 있어.”

“무엇이냐?”

“약혼 날짜를 조금 앞당겼으면 해.”

키네시아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약혼식 날짜는 왜? 설마…….”

“아마도.”

확신할 수 없는 이유는 네페르트 부인이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탓이었다.

같이 일을 도모하는 사람들에게도 아직 정확한 날짜를 알리지 않았는지 캐내려고 해도 나오는 게 없었다.

하지만 날짜를 유추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아직 민심은 룩소르에게 있다. 그러니 네페르트 부인은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반란의 명분을 알려서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왕족의 약혼식 때는 백성들이 광장에 모여 축제를 연다. 궁전에는 외교 사절단과 국내의 귀족들이 모두 모인다.

그때만큼 적당한 때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약혼이 끝나면 아미르 공작은 수도 일에 개입할 수밖에 없어. 그건 아마 네페르트 부인에게도 큰 부담이 될 테고.”

그리고 아미르 공작이 개입하는 건 나도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온전히 해결해야 국왕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백성과 귀족들에게 알릴 수 있다.

내 설명을 다 들은 키네시아는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약혼식을 앞당기면 네페르트 부인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겠구나. 그러면 성공하기 어려워질 거고?”

“맞아. 그렇다고 반란을 포기할 정도로 일정을 당기면 안 돼. 이참에 반대 세력을 싹 모아서 제거해야 하니까.”

룩소르가 여전히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약혼식 날은 언제가 적당하겠느냐?”

“음……. 한 3일 정도만 앞당기자.”

“그래. 내가 공작에게 은밀히 말해 보마.”

“셰피오에게도 최대한 소리 소문 없이, 빠르게 오라고 해.”

룩소르와 키네시아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참. 그리고 약혼식 날 최대한 호위를 많이 대동해. 반군이면 분명 국왕의 목부터 치려고 할 테니까.”

룩소르가 겁에 질린 얼굴로 제 목을 더듬었다. 내 말이 무서웠는지 키네시아도 굳은 얼굴로 제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았다.

나는 두 사람을 보며 몸을 일으켰다.

약혼식까지는 앞으로 2달. 그동안에는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했다.

단 한 치의 실수도 없도록.

***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개인적인 문제는 있었지만 말이다.

“공주님. 요즘 통 잠을 못 자네.”

로그리예가 창문을 넘어 들어오며 내 문제를 지적했다.

나는 인기척에 반사적으로 뽑았던 단검을 집어넣고 그를 노려보았다.

“네가 매일 야밤에 찾아오니까 그런 거 아니야.”

“악몽 때문이면서.”

로그리예가 장난스러운 말투로 나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묘하게 걱정스러운 기색이 깔려 있었다.

침대에 걸터앉은 나에게 그가 다가왔다. 올려다보자 그가 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드러난 이마에 입을 맞췄다.

“공주님은 어떻게 내 핑계를 대는 것도 사랑스럽지?”

“네가 미쳐서 그렇게 보이는 거야.”

“그럴 수도.”

그가 생긋 웃으며 나를 와락 끌어안고 침대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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