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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보고 폭군이래?-52화 (52/151)

<52화>

키네시아는 그 시선들이 버거웠다. 그녀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이라네리아는 유난히 자세가 자유분방하고 태도가 불량해 보이는 기사들에게 눈길을 주며 간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쯧쯧.”

한심하다는 눈빛도 잊지 않았다.

뒤늦게 포넨트가 이라네리아에게 따라붙었고, 지시스는 타솔라 옆에 섰다.

타솔라가 고개를 돌려 그들이 있었던 곳을 보았다. 나무를 관찰하는 플로레타 옆에 미론이 서 있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고개를 바로 했다.

그러자 앞서 걷는 세 사람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독특하게 제일 어린 이라네리아가 앞장을 서고 있었다.

‘확실히. 다른 분들과는 달라.’

어른스러운 키네시아는 물론, 괄괄하기로 소문난 포넨트 왕자마저 무장한 300명 사이에서는 위축되어 보였다.

그러나 이라네리아는 그런 상황에서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10살짜리의 기백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어린애답지 않게 눈치도 빨랐다.

“그렇게 미적지근하게 쳐다봐서 내 뒤통수가 뚫리겠니?”

“죄송합니다.”

“할 말 있으면 해.”

“아닙니다.”

“싱겁긴.”

이라네리아는 더 묻지 않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공주와 왕자가 우르르 몰려 들어오자 바닥을 청소하고 있던 종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누가 보면 내가 너 잡아먹는 줄 알겠다. 왜 그렇게 놀라?”

“죄송합니다!”

우렁찬 대답에 이라네리아가 종자를 가볍게 훑어보았다.

“됐고. 기사단장 집무실이 어디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타솔라는 이라네리아의 표정을 살폈다.

분명 뭔가를 파악하는 듯한 눈으로 종자를 보고 있는데, 파악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타솔라는 언제나처럼 궁금증을 삼키며 다른 왕족들을 보았다.

하지만 포넨트와 키네시아도 그녀의 심중을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다들 궁금해하고만 있을 때 코뿔소 같은 성격의 포넨트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이라네리아에게 물었다.

“저 사람은 왜 그렇게 빤히 봐?”

“여기 오면서 본 놈 중에 제일 기사 같아서.”

제 잘못이 아님에도 타솔라는 낯이 뜨겁고 수치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감정 변화를 눈치챈 이라네리아가 뒤돌아보며 가볍게 말을 툭 뱉었다.

“내가 고른 셋은 당연히 예외고. 연무장에 굴러다니는 것들 말이야.”

“동화 속 기사님하고는 많이 다르긴 하지.”

포넨트가 이라네리아의 말을 거들었다. 그녀는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그런 주제에 제 종자는 엄청 잡는 모양이지? 군기가 바짝 든 걸 보면. 쯧쯧. 산적들을 모아 둬도 저것들보다는 낫겠어.”

그 목소리가 들렸는지 앞서가던 종자가 어깨를 움찔거렸다.

그는 타솔라와 지시스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꾹 다물고 열심히 걷다가 커다란 문 앞에서 멈춰 섰다.

“여깁니다.”

“가 봐.”

이라네리아는 종자를 돌려보내고 문을 열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키네시아가 이라네리아의 손을 잡아 내리고 노크를 했다.

안에서 나온 집사장이 왕족들의 얼굴을 알아보고 경례했다.

이라네리아가 뚱한 얼굴로 키네시아를 쳐다보다가 집사장에게 물었다.

“기사단장을 만나고 싶은데. 안에 있어?”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빨리. 난 인내심이 좋지 않아.”

차가운 말투에 집사장이 허둥지둥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의 태도와 달리 제법 시간이 지나고도 집사장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참다못한 이라네리아가 발을 들어 올렸다. 당장에라도 문을 걷어찰 것 같은 모습에 놀란 포넨트가 뒤에서 이라네리아의 양팔을 붙잡았다.

키네시아는 이라네리아와 문 사이로 끼어들었다.

완벽한 연계 방어였다.

지시스의 입에서 반사적으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동시에 이라네리아가 고개를 홱 돌렸다.

귀신 같은 표정에 지시스가 입을 꾹 다물고 무표정한 얼굴로 정면을 응시했다.

그의 시선이 닿자마자 문이 열렸다. 들어가기 전만 해도 허둥대던 집사장은 차분하게 문에서 비켜섰다.

“들어오십시오.”

이라네리아가 몸을 비틀어 포넨트의 떨쳐 내고 제일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공주를 봤음에도 기사단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하거나 먼저 인사하지 않았다.

성가시다는 표정부터 꼰 다리까지, 태도와 분위기가 건방지기 짝이 없었다.

포넨트와 키네시아가 들어온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뒤이어 타솔라와 지시스가 들어오자 기사단장이 두 사람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지?”

“그 질문은 나한테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기사단장이 이라네리아를 보았다.

그는 매우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라네리아가 기사단을 들쑤셨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탓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말하자면 긴데.”

“하십시오.”

“흠……. 단장은 원래 찾아온 사람을 세워 두는 편인가? 인사도 없이 앉아 있기만 하고.”

“…….”

“예의는 기사의 기본 덕목 중 하나인데, 이상하네.”

기사단장이 이를 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포넨트가 당황하며 이라네리아를 팔로 툭툭 건드렸다.

키네시아도 이라네리아가 왜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는지 알 길이 없어 눈만 굴렸다.

기사단장은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제 나이의 반도 안 되는 어린 것들이 찾아와서는 예의를 운운하다니.

그러나 아무리 불청객이라도 상대가 왕족인 이상 계속 세워 둘 수는 없는 법이었다.

“앉으십시오.”

기사단장이 손바닥으로 소파를 가리키자 이라네리아가 아주 당연하다는 듯 상석을 차지하고 앉았다.

“그대도 앉아.”

기사단장이 화를 참는 듯 눈을 지그시 내리감고 숨을 깊이 내쉬었다.

그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으며 삐딱한 투로 물었다.

“그래서, 여긴 왜 오신 겁니까?”

“한동안 훈련을 지켜봤는데 엉망이라서. 훈련법을 바꿔야겠어.”

기사단장은 그녀의 말을 비웃었다.

10살짜리 꼬마가 알면 뭘 얼마나 안다고 훈련을 운운한단 말인가.

“그렇게는 안 되겠습니다.”

이라네리아의 눈초리가 뾰족해졌다.

“훈련 시간에 농땡이 부리는 건 되고?”

속을 대놓고 긁는 이라네리아의 말에도 기사단장은 다른 사람들처럼 주눅 들거나 분노하지 않았다.

“그게 공주님과 무슨 상관입니까?”

“보호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기사들 실력이 신경 쓰이는 거야 당연한 일 아니야?”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찾아오셔서 관여하시면 안 됩니다. 기사단은 국왕 전하의 것이고, 기사단을 운영하는 것은 매우 민감한 일입니다.”

이라네리아는 표정 없는 얼굴로 물끄러미 기사단장을 응시했다.

다들 기사단장이 옳은 말을 해서 이라네리아의 말문이 막힌 거로 생각했다.

기사단장 역시 자신이 공주의 콧대를 눌렀다고 생각해 기고만장해졌다.

“누군가 공주님께 반역의 죄를 물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란 말입니다.”

부단장에게 했던 협박을 고스란히 돌려받은 이라네리아가 코웃음을 쳤다.

옹졸한 놈.

“반역은 무슨. 기사들이 탱자탱자 놀고 있는 걸 보고 훈련 제대로 하란 말도 못 해? 공주가?”

이번엔 기사단장의 말문이 막혔다.

이라네리아는 이글거리는 기사단장의 눈을 보며 팔걸이에 편하게 몸을 기댔다.

“기사들 일과가 어떻게 되지?”

기사단장은 대답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었다. 침묵이 조금 길어지자 벽 앞에 서서 대화를 듣고 있던 지시스가 대신 대답했다.

“오전 근무자는 근무 후 병장기 및 기마 훈련을 세 시간씩 받습니다.”

“오후에 근무가 있는 기사는?”

“훈련을 받고 근무를 합니다. 타솔라 경처럼 공주님 호위와 같은 특수한 임무가 있는 경우에는 훈련을 빼 주는 편입니다.”

기사단장은 원수에게 꼬리를 흔드는 제집 개를 보는 듯한 눈으로 지시스를 보았다. 그러다 이라네리아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침저녁으로 20분 달리기, 근력 운동, 대련을 추가해.”

기사 단장이 은근한 무시를 담아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철없는 아이를 타이르듯 말했다.

“훈련을 늘리는 게 공주님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사들이 지쳐서 일을 하지 못하면 누가 궁전을 지킵니까?”

“그거 좀 했다고 근무도 못 설 정도면, 그게 기사야?”

기사단장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당장 나가라고 소리칠 것처럼 반쯤 일어났던 기사단장이 신경질적인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가 짜증을 겨우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공주님이 훈련을 받아 본 적이 없어서 그런 말을 하실 수 있는 겁니다.”

이라네리아의 황금색 눈동자가 덫에 걸린 사냥감을 발견한 사람처럼 빛났다.

그 눈빛을 본 사람들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러나 구겨진 미간을 문지르기 위해 웅크려 있던 기사단장이 고개를 들었을 때, 이라네리아의 표정은 달라진 점이 없었다.

다만 이라네리아 양옆에 있는 두 사람이 희미한 동정심이 서린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기사단장이 의문을 품기도 전에 이라네리아가 그를 도발했다.

“별거 아닐 것 같은데.”

심드렁한 목소리에 기사단장이 발끈했다.

“그렇습니까? 공주님의 나뭇가지 같은 다리로는 5분도 못 달리실 것 같습니다만.”

“그래?”

“예. 어린애들이 들판에서 뛰어노는 것과 같은 취급을 하면 곤란합니다.”

“그렇구나. 그럼 내기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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