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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보고 폭군이래?-34화 (34/151)

<34화>

“아.”

나는 로그리예를 밀어 내고 단도를 다시 베개 아래로 넣으며 갑작스러운 침입자에게 물었다.

“그래서, 뭐야?”

“리아…….”

플로레타가 울먹거리며 다가왔다. 그리고 나를 안을 듯 팔을 든 채 어쩔 줄 몰라 했다.

그사이 포넨트가 침대로 성큼성큼 걸어오며 로그리예에게 검지를 휘둘렀다.

“너 당장 그 손 안 풀어? 내가 내 동생한테 집적대지 말랬지!”

“어이쿠. 무서워라.”

“이 녀석이 진짜!”

단숨에 달려든 포넨트가 로그리예의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었다.

그럴 때마다 은색 머리카락이 위아래로 나풀거렸다. ‘으아아아’ 하고 맥없이 늘어지는 로그리예의 목소리도 위아래로 흔들렸다.

나는 사이 좋은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떼고 침대 밖으로 나와 기지개를 켰다.

팔을 위로 쭉 뻗는데 그대로 플로레타가 나를 끌어안았다.

“미안해, 리아! 나는, 나는 네가 그런 위협을 받, 받고 있는 줄도 모르고……. 난 언니 자격도 없어!”

“그럼 동생 하든가.”

플로레타가 울먹거리며 입술을 오물거렸다.

“리아 언, 어, 언.”

“농담이야.”

“응…….”

플로레타가 힘없이 말꼬리를 늘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로그리예의 영혼 없는 비명이 끊겼다.

고개를 뒤로 돌리자 포넨트가 주먹을 꼭 말아 쥐고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저건 또 왜 저래.

“너, 그런 일이 있으면 오빠한테 말을 해야 할 거 아니야!”

“해결해 줄 수 있는 일도 아닌데 뭐 하러.”

“가-”

“가족이어도 해결 못 하는 건 못 하는 거야.”

후손 놈들의 지긋지긋한 가족 타령 패턴은 이미 다 꿰고 있어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포넨트와 플로레타는 더 울상이 되었지만 적어도 귀찮게 굴지는 않겠……

“우리가 지켜 줄게!”

“아니. 괜찮아. 나 혼자,”

“플로레타 말이 맞아. 우리가 지켜 줄게.”

“그래, 리아. 너는 우리 동생이잖아.”

동생이 아니라 선조님이다 이놈들아!

답답해 가슴을 내리치는데 뒤에서 풉, 하고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자 퍼질러 누워 있던 로그리예가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얼굴이 시뻘게질 정도로 웃음을 참고 있는 게 보였다.

어느 부분이 웃긴 건지 모르겠지만, 비웃음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 못했다.

베개를 하나 집어 로그리예에게 집어 던졌다.

그의 얼굴에 맞은 베개가 폭, 하고 별로 위협적이지 않은 소리를 내며 옆으로 굴러떨어졌다.

동시에 로그리예가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하!”

물론 방 안에 웃는 사람은 그밖에 없었다.

미친놈 쳐다보듯 그를 보자 포넨트가 걱정하지 말라는 얼굴로 로그리예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내가 치우고 올게.”

비장하게 말한 그가 로그리예를 질질 끌고 갔다.

“아하하! 아하하하하!”

로그리예는 엉거주춤하게 끌려 나가 문 밖으로 던져질 때까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로그리예와 같이 사라져 주었으면 했지만 포넨트는 다시 내 앞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플로레타와 나란히 섰다.

“네가 괴롭힌 궁정인들 전부 암살자였다며. 나는 네가 괜히 사람을 괴롭히는 줄 알았어. 오해해서 미안해.”

“맞아, 리아. 미안해.”

두 사람이 동시에 나를 끌어안았다.

아니, 이 후손 놈들은 왜 이렇게 포옹을 좋아하는 거야. 답답하게.

나는 두 사람 사이에 갇혀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한숨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한 것인지 별안간 플로레타가 와앙 울음을 터트렸다. 옆에서 포넨트도 숨죽여 질질 짰다.

이제 보니 키네시아를 제외하고는 전부 호구에 울보들이다.

정말, 피곤해 죽겠네.

나는 팔을 뻗어 건성으로 두 놈들의 등을 다독였다.

“알겠으니까 돌아가.”

“아니. 여기서 리아를 지킬 거야.”

플로레타가 답지 않게 단호하게 말했다.

포넨트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맞아. 우리가 옆에 있어 줄게 푹 쉬어.”

그래. 너희 마음대로 해라.

나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다시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좀 저러다가 말겠지, 하는 심정으로.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며칠이 지나도 두 사람은 내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

그러다 조금이라도 수상해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강아지처럼 이를 드러내고 아르릉거렸다.

문제는,

“풋, 흠! 어머나, 죄송해요.”

“공주 왕자님들 사이가 참 좋으시네요.”

“귀여우셔라.”

위협은커녕 재롱떠는 거로밖에 안 보인다는 거지만 말이다.

도망도 쳐 봤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같이 내가 있는 곳을 알아내 내 양 옆에 딱 붙어 있었다.

지시스와 미론, 타솔라가 번갈아 가면서 호위하고 있는데 왜 무력이라고는 개미 더듬이만큼도 없는 녀석들이 난리냐고!

옆에 손바닥만 한 강아지 두 마리를 끼고 다니는 기분이었다.

내 권위가 두 후손의 깜찍함에 가려져 버렸다. 심지어 나란히 다니다 보니 덩달아 귀여움을 받게 되었다.

‘황제로서의 위엄이…….’

바닥에 떨어지다 못해 흙먼지와 함께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게 보였다.

누가 이 치와와 두 마리 좀 치워 줘!

속으로 절규하던 그때 키네시아가 나타났다.

“리아. 나랑 어디 좀 같이 가 줘.”

살았다!

어디를 가는지 들어 볼 필요도 없었다.

벌떡 일어나 키네시아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옆에 있던 치와와 두 마리도 내 뒤를 졸졸졸 쫓아왔다.

“우리도…….”

플로레타가 말끝을 흐리며 조심스럽게 키네시아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포넨트가 아주 자연스럽게 끊어진 말을 이었다.

“같이 갈 거야. 우리가 지켜 주기로 했어.”

키네시아의 시선이 나에게 툭 닿았다가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혼잣말처럼 한 말에 포넨트가 눈을 치켜떴다.

그러더니 성큼성큼 다가와 키네시아에게 붙어 있는 플로레타를 제 옆으로 홱 끌어왔다.

포넨트가 키네시아를 쏘아보았다.

“넌 알고 있었지? 리아 주변에 암살자들이 들끓는다는 거 말이야.”

멀뚱히 서서 포넨트와 키네시아를 번갈아보던 플로레타가 포넨트이 말을 듣고는 간식 뺏긴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지었다.

저게 자기가 지을 수 있는 가장 무서운 표정인 건가? 정말 저게 최선이야?

어이가 없어 쳐다보는데 키네시아가 어색하게 웃으며 눈빛으로 구조 요청을 보냈다.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고 싶지만 그러면 내 근처에서 싸우겠지?

내 귀의 안녕을 위해서라도 나서는 게 낫겠다.

“내가 말하지 말라고 했어.”

“그래도 말해 줄 수 있잖아. 네가 리아 말은 언제부터 그렇게 잘 들었는데?”

포넨트는 여전히 키네시아에게 날을 세우고 있었다.

키네시아가 당황하며 포넨트를 달래려고 했다.

“알아. 그래도 나는 너희가 다칠까 봐,”

“누가 네 보호 따위 필요하대?”

그는 내가 타국에서 공주를 원했느냐고 물었을 때처럼 울음을 참는 얼굴로 두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우린 쌍둥이야. 네가 할 수 있는 건 나도 할 수 있어!”

“포넨트, 그런 게 아니라,”

“됐어!”

포넨트는 이번에도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홱 돌아 뛰어가 버렸다.

“포넨트. 포넨트!”

키네시아가 불렀지만 당연히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포넨트의 뒷모습과 나를 번갈아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제 언니가 어쩔 줄 몰라 하자 플로레타가 나섰다.

“키네샤, 내가 따라가 볼게!”

“응. 부탁해, 로라.”

플로레타가 고개를 끄덕이고 포넨트의 이름을 힘없이 부르며 그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뛰어갔다.

터무니없이 느린 속도를 보며 키네시아는 안절부절못했다.

참 잘 노네, 애기들. 원래 저 나이때는 싸우면서 크는 거지.

늘어지게 하품을 하다가 키네시아의 팔뚝을 툭 쳤다. 그제야 키네시아가 작게 감탄했다.

“오래 세워 뒀네. 미안.”

“알면 됐어. 저것들은 데려가도 되나?”

근처에 서 있는 지시스와 타솔라, 미론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키네시아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몸을 돌리더니 정원 중앙에 나 있는 대로를 지나 왼쪽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방 20개 정도로 이루어진 작은 건물이 있는데, 주로 궁전에 머무는 귀족이 외부의 사람을 초대했을 때 접견하는 곳으로 쓰였다.

‘여긴 왜 온 거지?’

의문을 꺼내기도 전에 하먼이 보여 바로 알아차렸다.

나는 곧장 걸음을 멈췄다.

“꼭 같이 가야 한다는 게 차용증 처리하는 일이었어?”

키네시아가 찔끔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그러더니 곧장 표정을 갈무리하고 몸을 돌려 나와 마주 섰다.

“네 공을 가로채고 싶지 않아.”

“공은 무슨.”

“전부 네가 한 일이잖아. 암살을 견뎌 낸 것도, 게텔린 백작의 악행을 밝혀낸 것도, 함정을 파서 비자금을 찾아낸 것도, 전부.”

비자금의 상당 부분은 내가 꿀꺽했기 때문에 조금 찔렸다.

나는 고개를 돌려 딴청을 피우며 중얼거렸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대단한 일 맞아. 이제껏 아무도 못 했으니까.”

“그거야 룩, 국왕 전하께서 말랑말랑하다 못해 물러 터져 가지고는, 속 알맹이까지 다 내주고 거죽만 남은 채로 데굴데굴 굴러다니니까 그런 거고.”

“……호칭보다는 말투에 신경 쓰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신경 쓸 생각이 없기에 그녀의 의견을 가볍게 무시하고 본론으로 돌아갔다.

“차용증 처리하는 일이라고 하면 내가 같이 안 올 줄 알았어?”

키네시아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의외라는 듯 눈을 조금 크게 떴다.

“같이 와 줄 거였어?”

“아니.”

그녀의 표정이 빠르게 식었다. 그리고 내 손을 힘주어 잡았다.

힘을 쓰더라도 같이 들어가야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그럼 같이 가 주지 뭐.

쉽게 걸음을 옮기자 키네시아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내 뒤를 따라왔다.

“네 생각을 도무지 모르겠어.”

“알면 네가 황제지 공주겠니. 그리고 14살밖에 안 먹은 게 어디 감히 내 속을 들여다보려고. 100년은 멀었다.”

“너는 10살이거든.”

“응. 틀렸어.”

소곤거리면서 걷는데 뒤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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