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진짜인 줄 알았는데-111화 (112/134)

<111>

소름 끼치게 닮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이마 모양, 코끝, 턱선, 하다 못 해 귓불까지… 에바가 머리를 자르면 구즈만 씨가 될 거다.

에바도 구즈만 씨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들은 너무 놀라서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먼저 반응한 건 구즈만 씨였다.

구즈만 씨는 눈시울을 붉히더니 울음을 터트리며 에바를 끌어안았다. 그러자 에바도 떨리는 숨을 토해내며 울기 시작했다.

아이를 어떻게 잃어버렸는지 정황을 확인하지 않아도 얼굴만으로 그들이 부녀 사이란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엠마뉴엘… 내 딸… 내가 널 얼마나 찾았는지 모른다…….”

둘은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한 채 문가에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서럽게 울었다.

그들의 울음소리에 안에서 병약한 인상의 여자가 나왔다.

구즈만 씨가 한쪽 팔로는 에바를 꼭 안은 채 그녀에게 소리쳤다.

“여보! 엠마뉴엘이 우릴 찾아왔어요! 엠마뉴엘입니다, 우리 딸이요!”

“내 딸이라고요? 어, 어디 봐요. 직접 보기 전엔 못 믿어요.”

구즈만 부인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에바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에바의 얼굴을 확인하곤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그녀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내 딸에겐 팔 한가운데에 흉터가 있어요. 어릴 때 개에 물린 상처죠.”

에바는 떨리는 손으로 소맷자락을 올렸다.

구즈만 씨와 그 부인이 숨을 삼킨 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흐으으으윽.”

자식 잃은 부모의 울음은 세상 그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을 거다. 듣는 이의 간담이 서늘해질 만큼 끔찍한 비명이었다.

물론 구즈만 부인이 내는 소리는 오래전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 기쁨에 젖어 나온 울음이었지만, 긴 세월 쌓인 고통이 툭 터져서인지 마냥 행복하게 들리지 않았다.

나는 멍하니 에바의 팔에 난 흉터를 바라보았다.

내게도 저런 흉터가 있었으면 좋았을걸. 그랬다면 시에라가 우리 가족을 헤집는 일은 없었을 텐데.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안타까울지언정 되돌릴 수는 없다. 형제나 아버지가 필요하지도 않다.

“허어어어엉. 어디 계셨던 거예요. 제가, 제가 얼마나 찾았는데… 얼마나 찾았는데…….”

에바가 제대로 말도 못하고 우는 걸 보자 코끝이 시큰해졌다.

그렇게 부모님을 찾고 싶어 했는데 이렇게 찾아서 다행이다.

에바가 바라고 바라던 날이 와서 내 가슴이 다 벅차올랐다.

그러면서 조금은… 아주 조금은 내 처지가 우울하게 느껴졌다.

이런 때에 에이든이 내 옆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가 없었다면 많이 외롭고 고독했을 것 같다.

내 속을 읽기라도 한 듯 에이든이 말없이 다가와서 내 어깨를 감쌌다.

“정말 잘됐다. 그치?”

에이든은 웃는 시늉만 했다. 내가 느낄 감정을 염려하는 눈치였다.

가족은 없어도 이렇게 내 걱정을 해 주는 에이든이 있어서 외롭지 않다.

어깨를 붙든 손을 단단히 붙잡았다. 그와 내 시선이 마주쳤다.

내게 가족이 있다면 나를 잡아 주는 이 남자일 거고, 미래에 가족이 될 사람도 이 사람일 테다.

나는 에이든의 가슴팍에 얼굴을 기대며 마음을 다잡았다.

* * *

“칼립소 공작께서 우리 딸을 찾아주신 겁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구즈만 씨는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는데도 울컥 치키는 감정을 이기지 못해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구즈만 부인은 에바와 나란히 앉아 연신 제 딸아이의 손을 쓸었다.

그녀는 잃어버렸다가 찾은 딸이 너무도 애틋한지 에바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 했다.

“저를 직접적으로 찾은 건 공작님이지만 셀레나 씨가 저를 위해 노력한 걸 잊으면 안 돼요. 애초에 하녀 중에 아…버, 지를 닮은 사람이 있단 걸 믿게 된 것부터가 레이온 제약이 배포하던 초상화 덕분이었다면서요.”

“그래, 그렇지. 제 딸을 위해 그렇게나 힘써 주셨다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셀레나 씨. 정말 감사드립니다.”

구즈만 씨는 나와 에이든에게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나는 몸 둘 바를 몰라 함께 인사를 했다.

에바의 손을 꼭 붙든 구즈만 부인이 손수건으로 눈가를 꾹 눌렀다.

딸을 잃어버리고 평생 고통 속에 산 그녀는 아이를 되찾는 게 믿기지 않는지 몇 번이고 ‘신이시여’라며 중얼거렸다.

“세바스찬이 숨긴 물건을 내어주셨잖아요. 먼저 마음을 써 주셔서 일어난 구즈만 씨의 복인걸요.”

“그깟 물건이 뭐라고 제 딸아이에 비견되겠습니까. 더 필요한 게 있으시면 뭐든 말씀하십시오. 세바스찬의 범죄에 대한 증언도, 다른 부탁도 다 괜찮습니다.”

“더 필요하면 그때 말씀드릴게요. 지금은 에바, 아니, 엠마뉴엘과 못다 한 회포를 푸셔야죠. 엠마뉴엘이 부모님을 애타게 찾았거든요. 구즈만 씨와 구즈만 부인도 쉬셔야 하니… 저흰 이만 가 볼게요. 다른 날, 다시 약속을 잡아서 만나요.”

“좋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구즈만 부부와 에바는 우리를 배웅하기 위해 집 앞까지 나왔다. 숙소로 떠나기 전, 나는 잠시 에바를 꼭 껴안았다.

“에바. 진심으로 축하해요. 너무 잘됐어요. 앞으로 행복한 일만 가득할 거예요.”

“셀레나 씨… 다 셀레나 씨 덕분이에요.”

처음엔 에바를 보고 기분이 이상했지만 지금은 마냥 좋았다.

우리는 누가 보면 연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서로를 으스러지도록 껴안았다.

짧은 대화이고 잠깐의 포옹이었지만 마음 깊이 서로의 진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 * *

마차가 큰길까지만 데려다주는 바람에 숙소까지 걸어가야만 했다.

가는 길에 작은 시장이 나왔다. 에이든이 작게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누가 보면 둘이 연인인 줄 알겠어. 네가 만나는 사람은 난데.”

“에바가 남자였으면 긴장해야 했을걸? 우리가 얼마나 친한데.”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그럼.”

내 농담에 에이든이 입을 쩍 벌렸다.

나답지 않게 장난을 거는 건 좋은 일이 있어서 기분이 들떠서다.

에이든이 바로 옆에 있던 좌판에서 꽃을 한 송이 샀다. 그가 꽃을 쥐어주며 물었다.

“뇌물을 줘도?”

“뇌물?”

에이든은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이번엔 두 송이를 사서 그중 한 송이를 건네주었다.

“네가 원하는 만큼 선물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말투는 무뚝뚝했고 얼굴은 은근히 붉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나를 보는 시선만큼은 선연했다.

“네가 나만 보면 좋겠어.”

이번엔 내 얼굴이 화르륵 불탔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변명하듯 말했다.

“…에바는 장난이었어.”

“알아. 아는데 조금 마음이 불편해서. 그게 불쾌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그냥 네가 장난이라도 다른 사람을 입에 올리는 게 싫어. 네가 나만 봤으면 해서…….”

그렇게 말한 에이든은 터질 듯 새빨개진 얼굴을 한 손으로 쓸어내리며 작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런 주제에 널 거부하려고 했다니 내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었지. 더는 머저리처럼 굴지 않을 거야. 널 두고 고민하기보단 이런 세상을 뒤엎어서 너와 아무 문제 없이 함께하는 방법을 찾아냈어야 했는데, 내가 철이 없어도 너무 없었어.”

에이든은 제 손에 남은 꽃줄기를 만지작거리다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꼭 용서를 구하며 눈치 보는 소년 같았다.

“난 대단한 놈이 못 돼.”

“그런 말 하지 마.”

“그런 뜻이 아니라… 네 기분을 상하게 하려고 꺼낸 말이 아냐. 전쟁에서 어떤 공적을 쌓았건, 어떤 노력을 얼마나 할 줄 알건, 네 앞에 서면 그런 건 다 의미가 없어진단 뜻이었어.”

“…….”

“내가 어떤 신분이고 누구든 상관없이 좋아하는 여자 앞에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바보 등신이 돼.”

밖에서야 어떤지 몰라도 적어도 내 앞에서 에이든은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남자였다.

그래서 지금 그가 얼마나 떨리는 마음으로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항상 멋진 모습만 보이고 싶고 너랑 손끝만 스쳐도 가슴이 터져서 숨이 멎을 것 같아. 네가 어떤 말을 해야 좋아할지 몰라서 항상 머릿속이 새하얀데, 어떻게든 너한테 말을 붙이고 싶어서 아무 말이나 지껄이게 돼. 그러다가 네 웃는 모습을 보게 되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뻐.”

“…….”

“그래서 난 별거 아닌 놈이야. 네 앞에만 서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바보가 되니까. 그리 대단한 놈도 아니고…….”

진솔한 고백을 듣고 있자 내 얼굴도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홧홧하게 열이 오르는데 그건 가슴팍도 마찬가지였다.

뜨거운 무언가가 뱃속에서부터 끓어올라 가슴 전체에 뭉근하게 번져갔다.

그가 전해 주는 진심과 충만한 애정이 나를 감쌌다.

에바를 볼 때 느꼈던, 에이든만 있으면 내가 외로울 일이 없겠다는 직감이 다시금 들었다.

“내가 이런 머저리지만 그래도 내 손 놓지 마. 다른 건 몰라도 널 좋아하는 것만큼은 포기 못 하겠어.”

그렇게 말한 에이든은 제 손에 남은 마지막 꽃을 내게 내밀었다.

“원한다면 꽃도 매일 사 줄 수 있어.”

씨익. 쑥스러움을 뚫고 에이든 특유의 시원하고 호쾌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웃음이 짙어질수록 흉터가 선명해졌지만 흉하거나 무서워 보이진 않았다.

그냥 순박한 시골 남자의 손에 으레 한두 개씩 존재하는 굳은살처럼 느껴졌다.

이상한 일이다. 분명 무뚝뚝하고 거친 분위기인데 이다지도 순진하게 보이다니.

“그러니 날 선택해.”

내가 널 책임지도록.

에이든이 내민 꽃을 받아 향기를 맡았다. 달콤한 내음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은은한 꽃향기에 취한 건지 그가 한 고백에 취한 건지 분간가지 않았다.

그래서 그에게 한 발짝 다가갔다. 뒤꿈치를 치켜들고, 의아해하는 에이든의 입술에 내 입술을 맞췄다.

쪽.

찰나의 순간 닿았다 떨어졌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심장이 터져서 죽을 것 같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하고 뒤늦게 머리가 굴러갔다.

그러는 동시에 그의 입술 감촉이 떠올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에이든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제까지 얼굴을 붉혔던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벌게져선 입을 뻐끔거렸다. 시선이 마주쳐서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인 찰나였다.

“아…….”

에이든이 내 양 볼을 붙잡고 고개를 숙여 내게 입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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