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이네트! 야, 이네트!”
시에나가 거친 발소리를 내며 뛰어왔다.
먼지를 한쪽으로 쓸어놨는데 시에나가 바닥을 마구잡이로 밟아서 다시 쓸어야만 했다.
“네가 말했어?”
“뭘?”
“엄마 주머니에서 돈 가져간 거! 네가 엄마한테 일렀냔 말이야!”
“난 네가 엄마 돈을 가져간 줄도 몰랐어.”
“거짓말하지 마! 그날 집에 있던 게 너랑 나밖에 없는데 몰랐단 게 말이 돼?”
“아냐. 난 정말 몰랐어.”
“웃기지 마. 네가 아니면 누구야!”
시에나가 내게 달려들어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은 팔과 어깨를 가리지 않고 나를 때렸다.
“아파. 하지 마! 시에나, 하지 마!”
때리는 손이 매워질수록 시에나를 떨쳐내려고 애썼지만 그녀는 집요했다.
참다 못한 내가 빗자루를 들고 시에나에게 휘두르려 하자 시에나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이게!”
“악!”
시에나는 고양이처럼 내게 달려들었다. 그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몸이 뒤로 쓰러졌다.
그녀는 내 위에 올라타서 나를 때렸다. 버둥거릴수록 주먹에 실은 힘이 거세어졌다.
어린 아이들에게 두 살은 체급 차이가 제법 난다는 걸 의미한다.
시에나를 당해낼 수 없었던 난 울음을 터트렸다.
“미친! 뭣 하는 거야!”
어디선가 나타난 에이든이 시에나를 밀어냈다.
나는 먼지 구덩이인 바닥에 누워서 서럽게 울었고 바닥에 쓰러진 시에나는 씩씩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노예 새끼가 누구 몸에 손대는 거야!”
“내가 노예 새끼면 너는 사생아 새끼잖아.”
시에나의 얼굴이 화롯불처럼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녀가 눈을 부릅뜬 채 에이든을 노려보았다.
“내가 모를 줄 알았냐?”
“너, 너…….”
시에나는 에이든을 죽일 듯 노려보다 홱하니 몸을 돌려 집을 나갔다. 문이 쾅 닫히자 공기가 울렸다.
“괜찮아?”
삐질삐질 나오는 눈물을 꾹 참으며 몸을 일으켰다.
빗자루질을 하며 모아 둔 흙먼지가 내 옷과 머리카락에 범벅이 되었다.
설움을 꾹 참고 울지 않으려 입술을 콱 깨물었다.
“집에 가고 싶어.”
줄리아에게 엄마라고 부르고 있지만 그녀는 내 엄마가 아니었다.
나를 낳아 주신 분은 나를 햇빛보다 더 사랑한다고 했다.
줄리아는 나를 햇빛보다 더 사랑하긴커녕 구름 낀 하늘보다 못한 취급을 했다.
깊은 바람에 똑같은 말이 또다시 흘러나왔다.
“……집에 가고 싶어.”
“…도망칠까?”
“도망칠 수 있어?”
“해 봐야 알지.”
“도망치다가 걸리면 아주 크게 혼날 거야. 사흘쯤 독방에 밀어 넣어서 밥도 물도 안 줄걸?”
“그 정도야 뭐. 근데 난 괜찮아도 넌 힘들 수도 있겠다.”
줄리아와 살며 에스타리온 백작저에 살 때보다 더 자주 앓았다.
열악한 환경과 줄리아의 학대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에이든은 그런 나를 신경 써 주는 유일한 존재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 지옥 같은 곳에서 의지할 수 있는 단 한 명이었다.
“어른이 될 때까지 엄마랑 같이 살아야 하는 걸까? 아버지랑 시온의 얼굴을 잊어버릴까 봐 겁나.”
“…안 되겠다. 뭐가 됐든 일단 나가 보자. 도망치는 길이라도 익혀 놓는다고 치는 거야.”
에이든이 나를 잡아 일으켰다. 에이든은 내 치마와 머리를 탈탈 털어주더니 손을 내밀었다.
내가 붙들 수 있는 유일한 온기이자 희망에 내 손을 얹었다. 기다란 손가락이 나를 옭아왔다.
에이든과 손을 잡자 뭐든 해낼 수 있으리란 용기가 샘솟았다.
우리는 용기 내어 집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까지 뛰고 또 뛰었다.
“헉. 헉. 이쪽은 마을 반대편이야.”
줄리아의 집은 마을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우린 그때까지 집 주변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마을 근처에만 가도 죽도록 혼이 난 뒤 독방에 갇혀 이틀은 쫄쫄 굶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가 간 곳은 마을의 반대 방향으로 난 숲이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뛰자 숲의 끝이 보였다. 그리고.
“헉!”
에이든도 나도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
숲에 난 길을 통해 막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케빈이었다.
우리는 놀라서 뒷걸음질을 쳤다. 우릴 확인한 케빈이 이쪽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나도 에이든도 겁에 질려 숨을 들이마셨다.
“너희가 왜 여기 있는 거냐?”
맞잡은 손을 통해 에이든이 잔뜩 긴장한 게 느껴졌다. 내가 얼른 대답했다.
“에, 에이든이랑 같이 토끼를 찾던 중이었어요.”
“토끼?”
“네… 토끼요. 귀엽잖아요.”
그때 에이든이 나를 제 뒤로 끌어당겼다. 케빈의 눈이 가늘어지더니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맞고 싶지 않다면 집으로 돌아가라.”
케빈은 우리를 데리고 줄리아의 집으로 돌아왔다.
“줄리아! 줄리아!”
케빈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줄리아를 찾아 헤맸다.
“엄마는 마을에 내려갔어요.”
“마을? 돈을 받아 처먹었으면 애를 잘 붙들고 있어야 할 거 아냐.”
그는 씩씩거리며 물을 찾아 마셨고 조금 기다리자 줄리아가 돌아왔다.
“대체 어딜 갔던 거야!”
“케빈? 네가 연락도 없이 웬일이야? 다음 달은 되어야 올 거라더니. 드디어 쟬 데려갈 마음이 생긴 거야? 아니면 백작가에서 돈을 주겠대?”
“돈은 무슨! 상황이 바꼈어! 황실까지 합세해서 우릴 찾고 있다고! 꼬리가 밟히는 순간 너도 나도, 우리 모두 죽음이야.”
“화, 황실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젠장! 난들 돈 받고 처리하는 일인데 저 꼬맹이가 황태자의 약혼녀로 예정되었는지 알았겠냐고. 군사들까지 동원하기 시작해서 얼른 이 나라를 떠나야 해.”
“군사라고? 그럼 난? 난 어떻게 해야 해. 나도 해외로 나가야 하는 거야?”
“지난번에 준 돈 있잖아. 그걸로 한동안 나가 있어.”
“그 돈 없어! 다 썼단 말이야!”
“뭐어?”
줄리아와 케빈은 죽어라 싸우기 시작했다.
나와 에이든은 겁에 질려 맞잡은 손에 힘을 더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시에나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엄마! 아빠 왔어!”
아빠? 시에나는 가끔 아빠 이야기를 하긴 했다.
하지만 한 번도 얼굴을 보인 적이 없어서 여태 그가 죽은 사람인 줄 알았다.
고개가 휙 돌아갔다. 시에나의 뒤에 나타난 남자를 확인하고는 헉하고 숨을 들이켤 수밖에 없었다.
루카스 에스타리온. 내 작은아버지였기 때문이다.
* * *
“셀레나?”
작은아버지가 나를 알아보았다. 시에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와 작은아버지를 번갈아 확인했다.
“아빠?”
“작은아버지!”
눈물이 툭툭 흘러나왔다. 작은아버지가 줄리아와 케빈 등 집 안을 빠르게 훑었다.
케빈은 하얗게 질렸고 줄리아는 잔뜩 당황해서 더듬더듬 말을 꺼냈다.
“루, 루카스. 이건 다 내가, 내가 설명할 수 있어요. 이, 이건 다…….”
작은아버지는 한달음에 내게 다가와 나를 꽉 안았다.
뒤에서 시에나가 배신감 가득한 얼굴로 나와 작은아버지를 노려보았다.
“오, 셀레나. 살아 있었구나! 살아 있었어!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자, 작은아버지. 흐어엉.”
“난 네가 죽은 줄 알았다. 세상에. 이렇게 가까운 데에 있었을 줄이야.”
작은아버지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의 몸이 잘게 떨리는 게 내게 전해졌다.
다 끝났다는 생각에 꾹 참아온 서러움이 해일처럼 몰려왔다.
작은아버지가 줄리아와 케빈에게 성난 음성으로 경고했다.
“줄리아. 그리고 네 놈의 얼굴은 내가 똑똑히 기억해 두었으니 도망칠 생각은 않는 게 좋을 거다. 법대로 엄격한 처벌을 받을 테니 그리 알도록. 가자, 셀레나.”
“자, 잠시만요. 에이든도 같이 가야 해요.”
“에이든?”
“제 친구예요.”
작은아버지에게서 벗어나서 에이든의 손을 붙잡았다.
에이든은 믿지 못 하겠단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가자.”
함께 우리 집으로 가는 거야.
에이든은 검도 배우고 글도 배우게 될 거다. 우린 거대한 저택에서 함께 숨바꼭질을 하며 놀 거다.
나는 에이든의 손을 잡고 작은아버지에게로 뛰어갔다.
작은아버지가 내민 손을 붙잡으려는 순간, 에이든이 나를 붙잡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케빈이 작은아버지의 품으로 파고든 것이다.
“윽!”
투둑. 툭.
바닥에 진득한 피가 떨어졌다. 작은아버지가 헉하고 숨을 삼켰다.
그때 줄리아가 벽에 걸려 있던 나무 장식품으로 작은아버지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꺅!”
작은아버지의 몸이 무너졌지만 케빈이 그를 붙들었다.
그의 손에 붙들린 칼이 점점 피투성이가 되어갔다.
“끼야아아아악!”
“꺄아아아악!”
시에나의 것인지 내 것인지 모를 비명이 온 집을 울렸다.
나무 바닥이 피로 흥건하게 젖었다. 붉은 피가 나무 홈을 따라 번져갔다.
피에선 비린내가 나는구나. 소설에서 말하던 묘사는 거짓이 아니었다.
케빈이 작은아버지를 바닥에 내던졌다.
얼굴에 피가 튀어 섬뜩한 기세를 한 그가 이쪽을 확인했다.
케빈이 한 걸음 한 걸음 이쪽으로 다가올 때마다 우린 두 걸음씩 뒤로 물러섰다.
그러다가 케빈의 손이 꿈틀거리는 순간, 에이든이 소리쳤다.
“피해!”
에이든이 우리에게 성큼성큼 다가오는 케빈에게 달려들었다.
에이든은 케빈을 막으려고 했지만 조그만 소년이 다 큰 성인 남성을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케빈의 손이 무자비하게 움직였다.
허공에서 피가 튀었다. 아아악! 에이든의 비명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마침 피웅덩이에 내던져진 에이든은 온몸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에이든이 뺨을 감싼 채 이쪽을 확인했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보였다.
“도망가!”
에이든의 검은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수많은 감정이 솟구쳤다.
에이든을 두고 도망갈 수는 없었다. 우린 친구였다. 하지만… 하지만 내겐 힘이 없었다.
케빈의 뒤로는 죽은 듯 축 늘어진 작은아버지가 보였다.
바닥은 피투성이가 되었고 줄리아는 하얗게 질려 작은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에나가 경기를 일으키듯 울어젖혔다. 케빈의 손에 들린 칼에서 피가 툭, 툭 떨어졌다.
“이네트, 도망가!”
케빈이 점점 가까워져 갔다. 눈물이 삐져나왔다.
내가 다 큰 어른이었다면, 내게 힘이 있었다면…….
에이든이 케빈의 몸에 매달려 그에게 마구잡이로 주먹질을 했다.
흉하게 찢어진 뺨이 보였다. 공포로 신경이 타들어갈 것 같았다.
“미안해, 에이든.”
나는 몸을 돌려 도망쳤다.
“이것 놔! 이 빌어먹을 노예 새끼가!”
“가! 이네트! 멀리 도망쳐!”
내 뒤로 케빈의 욕지거리와 에이든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 걸음 한 걸음 뜀박질을 할 때마다 눈물이 쏟아졌다.
길 앞에 늘어진 내 그림자가 에이든을 향한 죄책감이 길게 이어진 것 같았다.
뛰고 또 뛰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어지러움에 머리가 팽팽 돌았다.
‘그 애가 말한 대로 얼른 도망치자.’
어느새 신발이 벗겨지고 맨발로 도보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 누군가에게 발견되어 백작가로 인도되었다. 그게 납치사건의 전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