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줄리아는 나를 제 딸아이의 방에 밀어 넣었다.
앞으로 이곳에서 같이 지내라는 거였다.
그녀는 조용히 있으라고 경고한 뒤 집을 나갔다.
겁에 질린 나는 방 한쪽 구석에 쭈그려 앉아서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아버지와 시온이 너무 보고 싶었다.
신전에 들렀던 건 사제들로부터 안수기도를 받기 위함이었다.
몸을 회복시키기 위해 외출했던 게 이런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누가 알았을까.
무섭고 외로운 와중에 너무 겁에 질려서 소리 내어 울지도 못 했다.
그때 밖에서 끼이익하고 문소리가 들렸다.
우당탕탕. 요란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휙하고 내가 있던 방문이 열렸다.
“야. 넌 뭐야? 여긴 내 방이야.”
내 또래의 목소리였다. 고개를 들자 역광 속에 여자애의 형체가 보였다.
눈이 부셔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여자애의 부스스한 갈색 머리는 분명히 보였다.
“어?”
여자애의 놀란 숨소리가 들렸다. 곧 눈이 적응하자 내게도 여자애의 얼굴이 보였다.
놀랍도록 똑같은 외모였다. 눈코입의 비율, 얼굴형, 콧대, 입매… 무엇 하나 빠짐없이 나와 흡사했다.
심지어 우린 흔치 않은 노란 눈인 것도 같았다.
여자애가 내 앞에 쭈그려 앉았다.
그녀가 손을 뻗어 내 얼굴을 붙잡고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뭐야. 내가 쌍둥이란 말은 못 들었는데.”
“…….”
“와. 진짜 똑같아.”
여자애는 퉁퉁 부은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려 내 눈을 확인했다.
“나보다 훨씬 노랗네. 마음에 안 들어.”
나를 휙 밀친 여자애는 벌떡 일어나서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그 애는 내가 있는 걸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혼자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러다가 밖에서 기척이 들리자 벌떡 일어나 방을 뛰쳐나갔다.
“엄마! 쟤 뭐야? 나 쌍둥이였어?”
“네 쌍둥이는 아니고 그냥 잠시 맡게 된 아이야.”
“나랑 저렇게 똑같은데?”
“세상에 닮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당분간은 쌍둥이라고 하자. 도시 아빠 집에서 자라던 쌍둥이 동생이 왔다고. 이해했지?”
“알았어. 근데 진짜 아빠 집에서 온 건 아니지?”
“아냐. 네 아빠 딸은 너뿐이야.”
“히히. 그거면 됐어.”
“당분간은 저 애랑 같이 지낼 거니까 같이 방을 쓰도록 해.”
“뭐어? 싫어! 난 혼자 있고 싶단 말이야!”
“쓸데없는 소리 말고 시키는 대로 해.”
“씨이…….”
곧 거친 발소리가 들리더니 여자애가 다시 돌아왔다.
그 애가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야! 너 이름이 뭐야?”
“…….”
“왜 말을 못 해. 이름 뭐냐니까?”
“…….”
셀레나라고 말하자니 줄리아가 신경 쓰였고 이네트라고 하자니 가짜 이름을 말하는 게 불편했다. 그래서 입을 꾹 다물자 여자애가 말했다.
“너 바보야? 이름도 몰라? 이거 완전 멍청이를 데려왔잖아.”
“…….”
“난 시에나야.”
“…시에…나…….”
“뭐야. 말할 줄 아네? 그래서 네 이름은 뭐야?”
“…셀…….”
그때 밖에서 줄리아가 소리쳤다.
“시에나. 걔 이름은 이네트야! 누가 물어보면 이네트라고 해!”
“으응. 알았어!”
시에나는 방문을 닫고는 내게 다시 물었다.
“이름이 뭐라고?”
“…셀레나 에스타리온…….”
기어갈 듯 작은 목소리로 답했는데 용케도 뭐라 하는지 들은 모양이었다.
시에나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어린 나는 그녀의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너 귀족이었어?”
“으응.”
그때 보인 시에나의 얼굴을 뭐라고 정의 내릴 수 있을까.
욕망과 질투, 부러움과 호기심이 번뜩이는 그것은 어린아이의 그것이라기엔 꽤나 어둡고 진득했다.
시에나는 한참 나를 관찰했다. 나는 시에나의 눈길이 무서워서 시선을 피한 채 숨을 죽였다.
그녀는 내 얼굴, 머리카락, 옷차림까지 모든 걸 확인한 뒤에야 내게서 시선을 뗐다.
“있잖아. 나 그 옷 좀 입어 봐도 돼?”
순간적으로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해 의아한 내게 시에나가 활짝 미소 지어 보였다.
“나랑 옷, 바꿔 입자. 나 그 옷 입어 보고 싶어.”
싫다고 말할 수 없었던 건 번뜩이는 눈빛에 기가 죽어서일까, 무서운 상황이 주는 두려움 때문일까. 나는 순순히 옷을 벗어 주었다.
* * *
접시에 담긴 새우를 보자 속이 울렁거렸다.
줄리아는 매끼 반쯤 상한 새우를 삶아 식사거리로 던져 주었다.
그 당시 오징어, 문어, 새우 같은 바다에서 나는 것들은 가장 싼 음식거리 중 하나였다.
줄리아는 식비를 아끼기 위해서 내겐 새우만 먹인 거였다.
정작 시에나와 줄리아는 새우를 먹지 않았다. 그들은 새우 알레르기가 있었다.
“어…엄마…….”
나는 그녀를 엄마라고 불렀다. 그러지 않으면 무자비한 매질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흐드러지는 금발을 늘어트린 줄리아는 빵을 뜯으며 손톱을 매만지고 있었다.
시에나는 내 맞은편에 앉아서 양배추 오믈렛을 먹는 중이었다.
그녀가 먹는 양배추 오믈렛이 너무 맛있어 보였다.
새우가 역한 건 그것이 상한 것이라서다.
상한 음식 특유의 향과 식감이 매 식사 시간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밥 안 먹어?”
“…못 먹겠어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줄리아와 함께하는 건 끔찍하게 고통스러웠다.
그녀는 발작적인 신경질을 퍼부었고 나는 늘 겁에 질려 지냈다.
줄리아와 고작 며칠 함께했을 뿐인데도 시온과 장난치며 까르륵 웃음을 터트리던 순간이 아주 오래전 일처럼 아득했다.
“못 먹겠어?”
“네에… 죄송해요…….”
줄리아가 언제 분노를 터트릴지 몰라 고개를 푹 숙인 채 벌벌 떨었다.
그녀의 흰자가 번뜩이고 공기가 사나워졌다.
내 예상대로 그녀는 단박에 날카로운 음성으로 대꾸했다.
“그냥 처먹으란 말이야! 왜? 귀한 집에서 귀하게 자라 넌 이런 것도 못 먹는 거냐?”
“죄, 죄송해요…….”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처먹어!”
“흡…….”
“울긴 왜 울어!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재워 주는데 뭐가 부족해서 울어!”
그녀의 히스테리가 시작되려고 할 때였다. 밖에서 쾅쾅 문을 두드렸다.
“줄리아! 문 좀 열어봐!”
남자 목소리였다. 소리를 지르려던 줄리아가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명령했다.
“둘 다 들어가 있어.”
시에나는 입 안에 남은 음식을 죄 쑤셔 넣고는 빠릿하게 일어나서 방으로 쏙 들어갔다.
나도 얼른 일어나서 시에나를 쫓아 방으로 갔다.
역한 음식을 먹지 않았단 생각에 묘한 안도감이 퍼져나갔다.
달칵. 방문을 닫고 나자 침대에 벌렁 누운 시에나가 물었다.
“이네트. 귀족들은 집에서 뭘 먹어?”
“…….”
“귀족들은 새우 같은 건 안 먹지? 빵은 어떤 걸 먹어? 귀족도 양배추 오믈렛을 먹어?”
“우리 집은-.”
느릿하게 대답을 시작할 무렵 밖에서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들렸다.
“이것 놔! 놓으란 말이야!”
남자애 목소리였다. 찢어지는 음성은 완전히 악에 받쳐 있었다.
“죽여 버릴 거야! 너네 다 언젠가 죽여 버릴 거라고!”
“이 새끼가 진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우당탕탕하고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리가 천둥소리 같았다.
시에나는 아무렇지도 않은지 내게 다시 물었다.
“귀족들은 뭘 먹냐니까?”
“아… 우리 집에선 그냥…….”
밖에선 여전히 남자애의 비명 소리와 성난 어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오들오들 떨며 더듬더듬 시에나에게 대꾸했다.
“이네트. 다른 귀족들도 다 너처럼 생겼어?”
“아니. 그냥 다들 평범해.”
“나 봐. 나도 귀족처럼 생기지 않았어?”
시에나가 내 앞에서 샐쭉하게 미소 지었다.
시에나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소년의 울음소리가 먹먹하게 울렸다.
“자, 잘 모르겠어.”
“잘 봐. 나도 귀족처럼 생겼을 거야.”
목을 쭉 뺀 시에나는 내 신경이 바깥에 쏠린 걸 깨닫고는 내 귀를 꽉 막았다. 힘이 어찌나 센지 귀가 너무 아팠다.
시에나가 혼자 무어라 중얼거렸는데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서 벗어나려고 몸을 비틀었다.
“너보단 내가 더 귀족 같은 거 같아. 하긴. 나도 반은 귀족인걸.”
손이 빠져나가며 시에나의 혼잣말이 들렸다.
반은 귀족이란 말을 이해할 정도로 여유롭지 못해서 대충 흘려들었다.
나는 바닥에 너부러진 담요를 가져와 몸에 둘렀다.
세상은 봄인데 이곳은 겨울이었다. 따뜻한 햇빛을 쬐어도 온종일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시에나! 이네트! 둘 다 이리 나와 보렴!”
줄리아의 부름에 빠릿하게 일어나 거실로 갔다.
남자는 줄리아의 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중이었다.
“내일 아침에나 돌아올 테니까 알아서 밥 차려 먹어.”
“엄마, 어디가? 아빠 만나러 가는 거야?”
“네 아빠한테 가서 네 양육비 정도는 받아와야지.”
“나도 아빠 볼래! 아빠한테 집으로 오라고 하면 안 돼?”
“네 아빠, 당분간은 우리 집에 오면 안 돼. 넌 어디 나가지 말고 집에서 이네트랑 붙어 있어. 알겠어?”
“왜애! 나도 아빠 보고 싶어!”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
줄리아가 화를 낼 듯하자 시에나는 입술을 비죽 내밀고는 다른 질문을 꺼냈다.
“근데 창고에 쟨 뭐야?”
“쟨 아무것도 아냐. 내일까지 아무것도 넣어 주지 마. 빵도 물도 안 돼. 알아들었어?”
“걱정 마.”
“그리고 너!”
“네, 네에…….”
줄리아가 무시무시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늘 그녀가 무서웠다.
불그스름하게 충혈된 눈이나 신경질적인 성미, 변덕스러운 태도 등. 모든 게 공포 그 자체였다.
내가 아는 엄마는 저런 사람이 아닌데. 내 엄마는 나를 햇빛보다 더 사랑했는데…….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좋게 말할 때 방에 처박혀 있는 게 좋을 거야. 허튼 생각은 하지 마. 괜히 딴생각했다간 죽도록 얻어맞을 줄 알아.”
“흡…….”
울음을 참느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줄리아가 시에나와 꼭 닮은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착하다, 이네트. 언니 말 잘 듣고 있어.”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남자와 함께 집을 나갔다.
두 사람의 모습이 까마득하게 멀어지자 시에나는 신이 나서 현관문을 열었다.
“시, 시에나. 어디 가는 거야? 엄마가 집에 있으랬는데…….”
“이네트. 집 잘 지키고 있어!”
시에나는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나가 놀겠다며 뛰쳐나갔다.
그렇게 집에는 나 혼자 남았다. 아니, 둘이었다. 창고에 갇힌 어느 소년까지.
나는 담요를 붙잡은 채 코를 훌쩍였다.
아버지와 시온이 너무 보고 싶었다. 내 방이 그리웠고 어머니가 남겨준 편지가 간절히 읽고 싶었다.
그때였다.
“거기 누구야?”
창고 문 너머로 남자애가 말을 걸어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헙하고 숨을 삼켰다.
남자애에게 대답했다가 나중에 줄리아에게 흠씬 얻어맞을지도 몰라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남자애는 포기하지 않고 말을 걸어왔다.
“야, 거기 너.”
“헉…….”
“이리 좀 와 봐. 거기 있는 거 다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