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간수가 끌고 간 곳은 어둡고 칙칙한 어느 방이었다.
간수는 의자에 나를 앉혔다. 그러곤 의자에 박힌 사슬에 두 팔과 다리를 고정시켰다.
“뭐, 뭐 하는 거예요?”
덜컥 치미는 두려움에 숨이 턱 막혔다. 간수는 내 질문을 완벽하게 무시했다.
이곳에서 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저들에게 내 목소리는 의미 없는 소음이고 내 존재는 사악한 이단의 그것이었다.
덜컹. 덜컹.
의자에서 벗어나려 손발을 흔들 때마다 사슬이 부딪치며 금속성 소리가 울려 퍼졌다.
“푸, 풀어 줘요.”
굶기고 때리다가 잠을 못 자게 하는 데에 이어서 또 무얼 하려고 이러는 걸까. 눈물이 펑펑 솟아 앞이 흐려졌다. 두려움에 숨이 막혔다.
“대체 내가 무얼 잘못했다고 이러는 건가요? 언제까지 날 괴롭힐 셈인 거죠?”
곧 등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사제복을 입은 신관이 들어왔다.
금실이 수놓아진 하얀 로브를 입은 신관이 차가운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분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언뜻 보아선 마녀로 안 보이는데.”
“고문을 해도 입을 열지 않는 아주 독한 년입니다.”
“저런. 이름이… 셀레나라고요?”
신관은 안경을 추켜올리며 내게 물었다.
“전 마녀가 아니에요. 흑마법을 쓴 적도 없어요.”
“그건 조사해 보면 알 일입니다.”
사제의 눈짓에 심문관이 방을 나갔다. 그러자 사제와 나, 둘만 남게 되었다.
“대신관님께 듣자 하니 에스타리온의 크루커스를 공명시켰다고 들었습니다. 이는 아주 심각한 사안입니다.”
“크루커스가 저와 공명한 이유를 물어도 대답해드릴 수 없어요. 저는 정말로 이유를 모르니까요.”
“셀레나. 당신이 쓴 흑마법이 성물을 공명시킬 정도로 아주 교묘하단 건, 그만큼 위험하고 심각한 마법이었단 겁니다.”
“사제님께서도 제 말을 들으실 생각이 없으시군요.”
나는 더 이상의 설득을 체념했다. 지난 몇 주간의 경험으로 이곳의 사람들은 내 말을 수용할 생각이 없음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마법과 신성력은 상성이 맞지 않습니다. 하지만 흑마법의 사용 여부를 조사함에 있어 두 조합의 동시 사용은 최고의 방법이죠.”
“물 한 잔만 주시겠어요?”
“많이 아플 겁니다. 모든 혈관과 신경을 훑게 될 것이니까요.”
“물… 아닙니다…….”
이곳에선 포기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저들은 내가 빌고 빌어야만 물을 줄 테고 그마저도 오래되어 반쯤 썩은 물일 테다.
변론을 하거나 다른 요구를 하는 대신 눈을 감고 잇따를 고통을 대비했다.
이 사람들은 내가 고통을 이기지 못해 죽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끔찍한 고통을 이겨내고 무고함을 증명하면 이들도, 백작가의 그들도 용서를 빌까.
아. 그 모든 게 다 부질없음을 안다.
“…흐으으… 꺄아아아악!”
지독하단 말로는 감히 설명되지 않는 고통이 온몸을 강타했다.
손가락 마디마디를, 머리 두피부터 발끝 아주 작은 살점 하나까지 불로 지지는 듯했다.
번개를 맞으면 이러할까. 고통에 숨이 턱 막혔다. 내가 비명을 내지르고 있는 것마저 인지되지 않았다.
“아아아아악! 아아악!”
사슬을 채운 건 고통에 몸을 비트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사슬 소리가 요란했지만 그보다 더 요란한 건 내 비명소리였다. 그리고 고통은 그러한 비명마저 가렸다.
‘차라리 죽여 줘.’
죽으면 편할 테다. 심장이 멈추고 영혼이 몸을 떠나면 이렇게 아프지 않을 텐데.
‘아버지, 오라버니. 이렇게까지 하시다니 정말 너무하세요.’
가족으로서의 미운 정이나마 남아 있다면 이렇게까진 못할 테다. 이건 원수에게나 할 짓이다.
‘신관의 흑마법 감별은 철천지원수에게도 재고해 보는 거라 했어.’
그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다. 생살을 가르고 상처를 불로 지지고 온몸을 때려 부수는 느낌이다.
“꺄아아아악!”
비명 아래 의자 걸이를 긁던 손톱이 툭 하고 부러졌지만 아픈지 모르겠다.
어디 하나 특정할 수 없는 미칠 듯한 고통 덕분이다.
1초가 10년 같은 시간이 흘렀다. 시간 감각을 완전히 상실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신관의 탄식 소리와 함께 고통이 멎었다.
“헉. 허억. 허억.”
거친 숨을 내뱉으며 시체처럼 늘어졌다. 눈에 초점이 맞질 않았다. 온몸이 발작하듯 벌벌 떨렸다. 가슴이 쪼그라들었다.
신이시여, 제발 저에게 자비를… 신이시여, 제발 저를…….
“죽여 주세요.”
“셀레나. 정말로… 흑마법을 사용한 적이 없군요. 맙소사, 세상에…….”
“죽여 주세요. 제발… 저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요.”
“간수! 어서 와서 이분을 풀어 주세요! 이분은 무고합니다. 무죄예요!”
애원할 힘도 없었다. 사제분이 허겁지겁 내게 물을 건네주었다.
찬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자 몸이 부르르 떨렸다. 목덜미가 콱 막혀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고통 아래에 시간은 그 존재를 상실한다. 1초가 1년이 되고 과거와 현재가 무의미해진다. 그저 숨 쉬는 모든 게 삶의 무게가 되어 생을 이을 의지를 앗아간다.
넋이 나가 언제 사슬에서 풀려나 간수에게 업혔는지 기억이 없다.
정신이 든 건 사제의 진술을 들으러 온 아버지의 목소리 덕분이었다.
“흑마법을 쓴 게 아니라면 어떻게 공명했단 겁니까?”
“그건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그녀에겐 흑마법의 흔적이 조금도 없단 겁니다.”
언제 왔던 건지 나를 검사한 신관이 내 어깨를 감싸 쥐었다. 굳은 얼굴로 나를 노려보는 아버지를 확인했다.
“하.”
당신에겐 내 고통이 보이지 않는군요. 그만큼 내가 미우셨군요.
“속이 시원하신가요?”
“뭐라?”
“죽도록 고통스러웠어요. 차라리 죽여 달라 애원할 만큼. 그 모습을 보지 못해 아쉬우신가요? 아니면 제가 겪었을 고통에 즐거우신가요?”
“흑마법을 쓰지 않았다는 네 무고함이 증명되었으면 된 것 아니냐? 마녀가 되어 화형에 처해질 일이 사라졌으니 말이다.”
“한때나마 가족이라 생각했는데…….”
더 이상 저들을 붙잡고 있을 이유가 없다. 나를 가족으로 생각지 않는 이들을 사랑해 뭐할까.
마지막 남은 한 줌 애정마저 사라졌다. 그들을 사랑하던 마음에 남은 것은 냉담함과 증오만이 남았다.
그 뒤로 또다시 넋이 나갔다. 누군가 내게 소리를 치는 것도 같았는데 기억이 나질 않았다.
다시금 정신을 차렸을 땐 강렬한 태양 빛에 눈을 찡그리고 있었다.
“아…….”
목이 타고 기운이 하나도 없어 중심을 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간수는 그런 나를 감옥 문 너머로 밀어냈다.
“거 다시는 오해받을 짓 하지 말고 이런 데엔 얼씬도 말게.”
그러곤 문이 쾅 닫혔다. 육중한 문이 닫히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어 바닥에 쓰러졌다.
“흐으…….”
눈꺼풀을 들 힘도 없어 돌바닥을 허우적댔다. 자박. 발소리와 함께 눈앞이 그늘졌다.
간신히 눈을 떠 앞을 확인하니 여성용 구두코가 보였다. 고개를 들자…….
“시에…나…….”
“세상에. 셀레나. 괜찮나요? 이단심문관이 지독하다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시에나가 나를 안아 일으켰다. 염려 가득한 목소리와 달리 나를 보는 그 얼굴엔 비열한 미소가 흐릿하게 걸려 있었다.
“쯧. 하여간 질기구나. 난 네가 죽을 줄 알았는데.”
작게 속삭이는 소리에 정신이 툭 끊겼다. 나는 짐승처럼 소리치며 시에나에게 달려들었다. 그녀의 목을 움켜쥐고 비명을 내질렀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거예요!”
“셀레나! 정말로 미친 게냐?”
오라버니가 칼집으로 나를 쳐서 떼어냈다.
“컥.”
명치를 가격하는 고통에 숨이 턱 막혔다.
“시에나. 위험하니 물러나라.”
“오, 오라버니. 셀레나를 그리 때리실 것까진 없었잖아요.”
바닥에 엎드려 허억허억 숨을 쉬는 내게 오라버니가 명령했다.
“시에나가 아버님께 밤낮으로 너를 빼내 달라 부탁해 이렇게 자유를 찾았건만 정작 너는 은혜도 모르고 해를 가하려고 해?”
“저는 무고하다고 밝혀졌어요.”
“무고? 하! 허튼소리! 무릎을 꿇고 정식으로 사죄해라. 그리고 감사를 표해라. 네가 살아나올 수 있었던 건 모두 시에나 덕분이니!”
“싫습니다. 제가 풀려난 건 제가 무고하기 때문이지 누군가의 덕을 보아서가 아닙니다.”
“셀레나!”
차가운 눈빛, 매서운 말투, 나를 향한 날 선 검까지… 저 이는 내 형제였던 시온 에스타리온이 아니다. 다정했던 내 형제는 영영 사라졌다.
“무릎을 꿇고 방금 전 일에 대해 용서를 구해라. 그리고 감사를 표하는 게 좋을 거다. 그러지 않으면 귀족의 법으로 너를 처벌할 것이다.”
“정말로 제가 감옥에 가거나 처형되길 바라시는 건가요?”
“못할 것 같으냐?”
“…….”
검 날이 목덜미에 닿았다. 피로로 무거워진 눈꺼풀이 느릿하게 닫혔다. 겨울바람에 얼어 버린 검날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하…….”
비로소 깨달았다. 아니, 실감되었다.
내게 가족은 없단 것을. 더 이상 나는 ‘함께’가 아니다.
나는, 혼자였다.
그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스스로가 바보 같아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다시 눈을 떴다. 이제 더 이상 저치가 내 형제로 보이지 않는다.
“오라버니. 검을 거두세요.”
시에나의 목소리가 사악한 마녀의 비웃음 같았다.
다름 아닌 시에나에게 무릎을 꿇는 건 하고 싶지 않다.
그녀에겐 의심스런 구석이 많았고 내게 악의를 가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살아야 해.’
내 결백을 증명하려면 살아야만 한다. 그래서 자존심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었다.
참하다는 단어는 내가 느끼는 참담함을 온전히 담지 못한다.
울음을 참으려 입술을 콱 깨물었지만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아가…씨께 용서를 구합니다.”
“일어나요. 셀레나. 난 당신을 용서한걸요. 오라버니,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 없잖아요!”
시에나가 얼른 나를 잡아 일으켰다.
시온에게 등을 져 내게만 보이는 그 얼굴은, 내뱉는 말과 달리 상황을 즐기는 기색이 만연했다.
그녀가 눈매를 곱게 접었다. 터지고 또 터진 손이 바르르 떨려 왔다.
“오라버니. 마차로 가요. 나와서 기다리는 게 아니었어요.”
시에나가 시온에게 몸을 돌려 그를 붙잡았다. 검을 집어넣은 시온이 나를 위아래로 훑고는 자리를 떠났다.
그의 뒷모습에 대고, 멍들고 악에 받친 감정을 짓이기며 말했다.
“언젠가 후회하게 될 겁니다.”
걸음을 멈춘 시온이 대꾸했다.
“그럴 일은 없다.”
“아뇨. 제가 그렇게 만들 거예요.”
한때나마 내 아버지였던 이도, 당신도. 내게 했던 끔찍한 짓들을 후회하며 개처럼 빌게 될 테다.
나, 셀레나 에스타리온이었지만 이젠 이름만 남은 평민 셀레나.
나는 더 이상 저들의 가족이 아니다. 저들이 나를 버리고, 나 또한 저들을 버렸으므로.
그러니 이제 당신들을 지우겠다. 당신들을 사랑한 마음을, 사랑했던 과거를, 사랑했을지도 모를 미래를.
‘내가 겪은 만큼 아파하도록 해. 내가 그리 만들 테야.’
그들이 떠난 뒤 아픈 몸을 움직여 걸음을 옮겼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이단심문소와 조금이라도 멀어질 수 있다면 어디든 좋다 생각되었다.
그때 멀리서 마차 하나가 다가왔다. 마차를 피하려 길을 비켰다.
무슨 이유인지 마차가 멈추었다. 그리고 안에서 거대한 인영의 누군가 나왔다.
“셀레나 에스타리온이 맞군.”
눈앞을 가리는 빗방울 사이로 완벽한 검은 눈이 시선을 잡아챘다.
언젠가 황궁에서 본 적이 있는 이였다.
에이든 칼립소.
제국의 하나뿐인 전쟁 영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