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내가 가짜였다.
크루커스가 공명한 데엔 무언가 문제가 있었던 듯하다. 그러니 나와 공명할 때 나온 빛이 그토록 희미했던 걸 테지.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정말로 내가 파렴치한 유괴범의 딸이란 걸까?
아니, 그 이전에… 아버지를 뵐 자신이 없다. 그 눈을 보는 게 두려웠다.
가슴 박동이 그대로 느껴졌다. 비참하고 참담했다.
“아버…지.”
애써 고개를 들어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무시무시한 얼굴에 숨이 막혔다. 그렇다고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다시 한번 확인해 주세요. 분명… 제게도 공명했잖아요. 제발, 부탁드려요. 제발…….”
무서운 눈빛에 질려 내 목소리는 점점 기어가듯 작아졌다.
아버지는 당장 내 목을 조를 듯한 기세로 침묵을 유지했다.
그러다가 무겁게 눌린 입술을 떼곤 말했다.
“시온.”
“예.”
“저 아이를 붙잡아라. 사기와 귀족 능멸죄. 그리고 흑마법을 사용한 죄로 엄격히 처벌할 것이다.”
“흑마법이라뇨. 말도 안 되는 말이에요. 아버-.”
“닥쳐라! 누가 네 아버지더냐! 나는 네 아비가 아니다!”
벼락같은 외침에 어깨가 움찔거렸다.
“너는 흑마법을 이용해 성물이 네게 공명하도록 만들었고, 그를 통해 이 집의 친자인 척하려고 했다.”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다, 흑마법 근처에도 가 보지 않았다. 내가 흑마법 같은 데에 관심이 없단 건 아버지가 더 잘 아실 테다.
다른 증거도 없이 무작정 흑마법을 썼다고 생각한단 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 줬다.
“아녀요. 아버, 백작님. 믿어 주세요. 뭔가 착오가 있었던 거지 흑마법을 사용하다뇨…….”
“그럼 성물이 어떻게 네게 반응한단 말이냐? 이는 흑마법 이외엔 설명되지 않는 일이다. 시온, 무얼 하느냐! 저자를 체포해 이단심문소에 넘겨라!”
“오라버, 오라버니! 믿어 주세요. 정말로 아니에요. 정말로… 악!”
오라버니는 단박에 나를 붙잡았다. 힘을 주어 벗어나려 버둥거렸지만 덩치 좋고 검을 배우기까지 한 오라버니를 이길 리 만무하다.
“아악!”
강한 힘에 근육이 찢어질 것 같았다. 오라버니는 몸부림치는 나를 바닥에 눌러 개처럼 제압했다. 그 행동에 망설임 따윈 없었다.
“아니에요. 흑마법 같은 건 쓴 적도, 가까이한 적도 없어요.”
“반항하지 마라. 험한 꼴을 보게 될 것이다.”
오라버니의 싸늘한 그 목소리는 이제껏 들어본 적 없는 기사의 그것이었다.
그제야 피부로 느껴졌다. 더 이상 이들에게 난 가족이 아님을. 나와 달리 오라버니와 아버지는 마음을 모두 정리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나요?”
눈높이에 시에나의 발이 보였다. 턱이 덜덜 떨렸다.
그녀가 보기에 나는 얼마나 한심해 보일까. 아니, 얼마나 우스워 보일까.
부끄럽고 치욕스럽고 비참했다. 이 상황이 너무 끔찍했다.
“흑마법은 아주 사악하고 위험한 마법이다.”
“하지만 셀레나가 흑마법을 쓴 것 같진 않은데…….”
“이단심문소에 넘기면 알게 될 테지.”
어떻게 흑마법을 썼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걸까. 에스타리온의 먼 방계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터인데, 어떻게…….
오라버니가 힘을 주어 나를 일으켜 세웠다. 아버지께서 망설임 없이 내게 다가왔다. 불신 가득한 얼굴에 고개를 내저었다.
“전 아니에요. 정말로 아니어요.”
“아직도 거짓말이구나.”
“믿어 주세요. 저도 크루커스가 왜 제게 공명했는지 몰라요.”
“애정으로 키웠건만 고작 이런 녀석이었더냐? 한때나마 네 착한 마음씨가 자랑스러웠던 나날이 부끄럽구나!”
녹색이 저토록 차가운 색이었던가. 나를 바라보는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서늘한 녹빛 눈에 기가 죽었다.
가슴이 얼어붙고 머리가 정지하는 낙담에 내 안의 무언가가 툭 하고 끊어졌다.
팔에 힘이 풀렸다. 손이 축 늘어졌다. 나를 믿지 않는다. 믿을 생각조차 없으니 설득할 힘도 없다. 무엇보다 내겐 두 사람을 설득시킬 패가 없다.
눈물이 입술을 타고 입 안으로 들어왔다. 짭짤한 그 맛에 입 안이 텁텁해져 왔다.
“시에나의 삶을 훔친 것도 모자라 은폐하려 시도하는구나! 하긴, 그러니 그 어린 나이에 천연덕스레 거짓말을 해 모두를 속였겠지. 천한 범죄자의 피는 못 속이는구나!”
“…제가 어떤 말을 하건 믿지 않으실 거군요.”
무슨 말이건 이제 다 변명이 되고 사악한 뱀의 속삭임이 될 터.
더 이상의 부정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변호하길 포기했다.
* * *
두 발목과 손목엔 쇠사슬이 차였고 입고 있던 옷은 벗겨져 넝마나 다름없는 죄수복으로 바뀌었다.
푸른 죄수복은 아직 차가운 겨울 공기를 차단해 주기에 너무도 얇아 설원에 던져진 것처럼 덜덜 떨어야 했다.
“하아…….”
입술 사이로 하얀 입김이 피어나 허공 속으로 사그라들었다.
꽁꽁 얼어붙은 쇠사슬에서 냉기가 파고들어 손목과 발목엔 감각이 없다.
동상이 심하다 못해 피부는 껍질이 벗겨져 피투성이었고 벌써 사흘째 굶어 기운이라곤 없었다.
짝!
“빌어먹을 마녀야! 어디서 졸음이냔 말이다!”
심문관의 두터운 손바닥이 뺨을 내리쳤다. 머리를 울리는 고통에 정신이 들었다.
“아으…….”
살이 찢어지는 아픔은 불면의 고통에 먹혀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잠들지 못한 게 며칠째일까. 사흘? 나흘? 아니면 일주일? 모르겠다.
그럼에도 더 심한 꼴을 당하지 않은 것에 감사하는 내 상황이 너무도 우스웠다.
“웃어? 미친 여자를 봤나!”
입가에 미소가 내걸렸던가. 머리가 몽롱해 아무것도 인지되질 않았다. 자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어떻게 흑마법사들과 접선했는지, 어떤 마법을 써서 성물과 공명했는지 어서 대답해!”
“…그대는 언제까지 나를 죄인 취급할 건가요?”
뻑뻑한 눈을 끔뻑였다. 흑마법? 내가 흑마법을 썼다고?
명색이 심문관이라면서 내가 정말로 흑마법을 썼는지 아닌지조차 분간하지 못하다니.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상황이 웃겨 또다시 픽 웃음이 새었다.
내 미소가 심문관을 자극했는지 그가 성난 얼굴로 멱살을 잡아 흔들어 댔다.
“네가 아직도 백작가의 아가씨인 줄 아나? 넌 한낱 마녀에 불과해!”
“몇 번이고 말했을 텐데요. 나는 흑마법을 쓴 적도 없으며 그와 비슷한 것들과…….”
입술이 부르트고 목소리가 쉬도록 반복했던 내용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내 말을 믿지 않는다. 들을 생각도 없다.
그걸 알면서도 똑같은 해명을 또 하는 스스로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아버지께서 그러시던가요? 흑마법을 썼고 마녀라고.”
안다. 아버지께서 나를 이단심문관에게 넘겼다는 걸.
아버지가 명령하는 걸 직접 보아 누구보다 잘 알지만 누군가 부정해 주길 간절히 바랐다.
“그래. 백작님께서 어떤 사악한 방법으로 성물과의 공명을 이끌어 냈는지 알아내라 하셨다.”
무거운 눈꺼풀이 끔뻑끔뻑 닫혀간다. 너무 힘들다. 그리고 너무 졸린다…….
“신관은 언제 오나요?”
신관이 있으면 내게서 흑마법의 흔적을 발견해 누명을 밝혀 줄 테다.
이단심문이 폭력적으로 이루어지는 줄은 알았지만 사람을 이토록 짐승 취급할 줄은 몰랐다.
그걸 알면서도 이곳에 보낸 아버지와 오라버니. 그들에게 나는 짐승 취급을 당해도 싼 사람이구나.
서럽고 슬픈 와중에 저 밑바닥에서부터 분노가 지글지글 끓는다.
“흥! 그건 네 년이 알 바 아니다! 말해라! 대체 어떻게-.”
“재판 한 번 받지 못한 이를 죄인으로 확정지으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내 말에 이단심문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곧 강한 힘이 다시금 얼굴을 강타했다.
그것이 내 마지막 기억이 되었다. 그대로 기절해 버린 탓이다.
* * *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아주 좁고 더러운 골방에 갇혀 있었다.
눈앞에 더듬이 달린 벌레가 지나갔다. 너무 놀라 숨을 들이켠 채 얼어붙었다.
“깼어?”
낯선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입술이 새까맣고 귀신처럼 창백한 얼굴을 한 여자가 나를 보며 킬킬 웃어댔다.
“뭐, 뭔가요?”
몇 박자 늦게, 그녀가 내 옷을 뒤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손 떼요!”
손을 쳐내려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먹을 거, 숨겨 둔 거 정말 없어?”
“없어요.”
“정말 없어?”
“정말로 없어요.”
“있으면 얻어맞을 줄 알아.”
그리곤 여자는 옷 안에 넣은 손을 휘저어 내 몸 구석구석을 살폈다.
살갗을 스치는 손길이 끔찍해 비명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젠장! 귀족 출신이라 뭐라도 나올 줄 알았더니만.”
억센 힘이 나를 구석으로 쭉 밀었다. 거친 바닥에 살갗이 긁혀 적잖게 쓰렸다.
몸 전체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 같다. 너무 끔찍하다.
“야 이년아. 정신 차렸으면 얼른 일어나서 앉아. 여기 너 누워 있을 자리 같은 건 없단 말이다!”
무거운 몸을 덜덜 떨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추위에 살이 아렸다.
감옥 구석에 몸을 웅크린 채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여태 얼어 죽지 않았다니…….’
열 번의 겨울을 기억하지만 이토록 춥고 시렸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손목과 발목에 감각이 없어.’
사슬에 닿은 손목과 발목 쪽은 확인해 보기도 싫었다. 사람 꼴이 아닐 게 뻔하다.
동상이 심해 절단해야 할지도 모른단 생각에 공포감이 몰려왔다.
‘아버지. 오라버니… 저를 정말로 버리셨군요…….’
그들에게 나는 한낱 거짓말쟁이 사기꾼에 불과하다. 이젠 이단 마녀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나를 버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뭐 있어.’
그들에게 내가 가족이 아니듯, 내게도 그들은 더 이상 가족이 아니다.
내가 겪는 고통만큼 그들을 향한 애정이 조금씩 조금씩 사그라드는 게 느껴졌다. 그 자리를 채우는 건 분노와 미움이었다.
“에이씨. 저년은 왜 또 재수 없게 울고 지랄이야.”
“악!”
무언가가 머리에 명중해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내 머리에 맞은 나무 그릇이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야, 울지 마! 재수 없어!”
“참. 그거 들었어? 위에서 신관이 내려온대.”
“뭐? 그럼 형량이 더 무거워지잖아! 신관이 이런 누추한 곳까지 왜 온단 거야! 지난 5년간 한 번도 안 왔는데.”
“뭐겠어. 잘나신 귀족 나으리가 엮여 있으니 그렇지.”
“이런, 제엔장! 다 저년 때문이야!”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들은 내게 달려와 무자비하게 발길질을 했다.
머리채를 뜯기고 목과 볼을 할퀴었다. 발길질은 또 얼마나 매서운지, 온몸에 힘이 없어 간신히 웅크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어느 순간 또다시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다시금 정신을 차렸을 때, 천장에 난 조그만 구멍 사이로 달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차라리 죽고 싶어.’
이렇게 살아 숨 쉬는 것보다 죽는 게 덜 비참할 테다.
몸이 아픈 것도 힘들었지만 사랑하는 이들이 나를 외면하고 버렸다는 사실에 가슴이 찢길 듯 괴로웠다.
‘하아…….’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그때 밖에서 문이 열리고 간수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간수의 발소리가 내가 잘 아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저…전하…….”
다 쉬어 버린 소리가 부끄러웠다. 터진 입술과 이런 꼬락서니를 다른 누구도 아닌 황태자 전하께 보인다는 게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그가, 내가 사랑하는 남자, 필립소 마르티네슨이 나를 보러 왔다.
진탕에 처박힌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