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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짜인 줄 알았는데-11화 (1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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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이단심문소

“방을 하나 주게.”

아멜리아에게 박대당한 뒤 나는 어렵사리 여관을 찾았다.

여관 주인은 경계와 호기심이 담긴 눈을 하고선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며칠간 묵을 겁니까?”

“우선은 하루만 있으면 될 것 같네.”

“가격은 선불입니다.”

“여기, 이 가격이면 되는가?”

주머니에서 동화 몇 개를 꺼내자 주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을 받아 챙겼다. 열쇠를 받은 뒤 방을 찾았다.

태어나 처음 와 본 여관은 상상 이상으로 축축하고 열악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가릴 때가 아니었다.

돈도 없고 갈 곳도 없었다.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계획을 세워야만 했다.

“하…….”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꿉꿉한 이불에서 냄새가 올라왔지만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지쳐 있었다.

아버지와 오라버니에게 버림받았고 아멜리아의 민낯을 보았다. 오갈 데라곤 없는 데다 가지고 나온 돈도 없다.

앞으로의 생활을 걱정하기엔… 단시간에 너무 지쳐 버렸다.

‘한 시간만… 딱 한 시간만 쉬자. 그런 뒤 계획을 짜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침대에 털썩 누웠다. 너무 피로해서 눈이 저절로 감기는데 잠은 오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정신이 또렷해지기만 했다.

뭐가 문제였을까. 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그리고 시에나의 그 말은 뭘까…….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자 머릿속이 산만해져갔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짐 가방을 뒤졌다. 적어도 지금은 생각에 빠져 있고 싶지 않았다.

‘편지를 보내자. 이 상황을 알려야 해.’

뺨을 짝짝 때렸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상황에 쓰러지고 싶지 않았다.

종이와 펜을 꺼내 어렵사리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헤레이스, 나예요. 셀레나.

잘 지냈나요? 일이 생겼어요. 당장 자세히 말해 주긴 힘들어요. 후에 상황이 정리되면 설명해 줄게요.

당분간, 제 거취가 정해지기 전까진 에스타리온 백작가로 편지를 보내지 말아요. 보고서도, 그 무엇도요.

그나저나…(중략)… 그렇게 진행해 줘요.

그럼 무탈히 잘 지내길 바라요.

셀레나 에스타리온으로부터.]

습관적으로 에스타리온이라는 이름을 적은 나는 그 부분에 줄을 벅벅 그었다.

‘나는 더 이상 에스타리온이 아니야.’

내가 그들의 혈육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더 이상 나를 가족으로 받아들여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 점이 속을 후벼파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울지 않으려 눈을 부릅뜨던 찰나였다.

“윽.”

머리가 쑤셨다. 지끈지끈 쑤시는 정도가 아니라 순간적이지만 도끼로 머리를 내리치는 느낌이 들었다.

‘꺄아아아아악!’

또다. 또 그 비명소리가 들린다.

대체 넌 누구니? 무슨 일을 겪었기에 그토록 처절히 비명을 지르는 거니?

목이 찢어져라 지르는 비명에 머리가 지끈거리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숨이 턱하고 막히는 찰나였다.

‘도망가!’

어린 남자애의 다급한 음성이 들렸다.

도망가라고? 누구로부터? 왜?

“아아악!”

머리가 쪼개질 것 같았다. 두통이 심해 헛구역질이 나왔다. 우욱! 입을 틀어막는 것과 동시에 어떤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아버지께서 혼을 내실 거야.’

어린 나는 초조하게 손을 감싸고 있었다.

‘어쩌면 좋지? 아버지께서 아시면 날 미워할 거야.’

내가 저지른 ‘실수’는 절대 사소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큰 잘못을 용납받을 수 있으리라 믿을 만큼 단단하지 못했다.

거리에서 발견되어 집에 온 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족을 향한 믿음과 신뢰가 약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것, 에스타리온의 보배에 가득 든 물을 마셨다.

그것을 끝으로 나는 정신을 잃었다.

* * *

에스타리온의 보배는 제국의 건국 때부터 우리 에스타리온 백작가에서 보관해 온 성물로, 흔히들 ‘크루커스’라고 불렸다.

단순히 백작가에서 보관했기 때문에 에스타리온의 보배라 불리는 건 아니다.

바로 크루커스가 에스타리온 백작가의 혈통에만 반응하기 때문이다.

백작가의 혈통에 반응한 크루커스는 성수를 만들어 내는데 이는 뛰어난 치유 능력을 지녔다.

그리고 10년 전, 내가 에스타리온 백작가에 들어왔던 때에 분명 크루커스는 내게 공명했었다.

‘내가 아무리 기억이 온전치 않다 해도 어떻게 이걸 잊을 수가 있지?’

유괴를 당한 뒤 발견된 직후라 한참 정신이 없을 때긴 한데 이토록 중요한 걸 잊고 지냈다니, 나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내가 가짜라면, 아버지의 딸이 아니라면 어떻게 보배가 내게 반응한단 거야.’

손이 덜덜덜 떨렸다. 스스로의 멍청함에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분명 나와 공명했었어.’

유괴를 당한 뒤 막 백작가에 구해진 때였다.

저택의 길을 몰라 복도를 헤매다가 들어가선 안 되는 밀실에 들어간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그곳에 진열되어 있던 에스타리온의 보배를 건드렸다.

‘이제까지 잊고 지냈던 건…….’

대체 무슨 일을 겪었길래 그런 건지 어린 시절의 나는 기억이 엉망진창이다.

열 살 이전엔 기억이 아예 없는데다 열한두 살까지도 온전히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지금도 그 시절을 떠올리려면 한참 머릿속을 뒤지며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뽀얀 먼지가 쌓인 채 서재 구석에 숨겨져 있던 기억이 떠오른 거다.

‘에스타리온의 보배로 시험해 보는 게 가장 확실해. 가장 먼저 크루커스로 확인했어야 했어.’

워낙 지하 깊숙한 곳에 숨겨져서 사실상 가문의 직계 정도만 알고 있는 게 크루커스다.

함부로 만져도 안 되고 눈길을 주는 것조차 자제해야 하기에, 집안이 뒤집힌 상황에 보배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을 테다.

그럼에도 시에나가 왔을 때 한 번은 크루커스로 확인을 하셨어야 했다.

오라버니도 나도 크루커스의 존재를 잊고 산다지만 아버지만큼은 크루커스를 잊어선 안 되었다. 아니, 그럴 수가 없다.

‘아버지께선 크루커스를 사용하고 계시는데…….’

굳이 크루커스로 검증하지 않은 건 그만큼 날 믿지 못한단 거겠지.

달리는 마차 안에서 초조하게 손을 뜯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진짜냐 아니냐는 의문을 해결할 수 있단 기대에 무언가가 벅차올랐다.

‘내가 친딸이 맞아.’

그렇지 않으면 에스타리온의 피에만 반응하는 보배가 공명할 리가 없다.

‘그럼 시에나는 뭐지?’

내가 진짜라면… 대체 그녀는 뭐란 말인가.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은 모두 진짜였다.

머리가 복잡해져갔다. 펌프질하는 심장을 중심으로 긴장과 기대가 번졌다.

백작가의 위세니 뭐니 하는 것들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내겐 가족이 필요했다. 아버지도 오라버니도 내 소중한 가족이었고 그들과 아무 사이도 아닌 관계로 돌아가긴 싫었다.

그렇게 초조히 백작가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마차가 지독하게 느리게 느껴졌다.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자 곧 에스타리온 백작가의 저택이 보였다.

“여기, 삯이네.”

백작가에 도착하자 남은 돈을 털어 마부에게 삯을 주었다. 다시 여관으로 돌아갈 돈도 없다.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긴장이 되고 숨이 막혔다.

“세, 셀레나 아가씨?”

“이렇게 빨리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잘 있었는가?”

내 등장에 집사는 당황을 숨기지 못했다.

가문에서 파문된 죄인이 연락도 없이 갑작스레 방문했으니 얼떨떨할 테다. 하지만 내겐 미리 연락을 하고 예의를 지킬 여유가 없다.

“아버지와 오라버니는 어디에 계시나?”

“두 분을 왜 찾으시는지 용건부터 말씀하십시오.”

“그대에게 말할 것은 아니네. 아버지께 가서 중요하게 드릴 말씀이 있노라 전해.”

“두 분께선 바쁘십니다. 무슨 일인지 제게-.”

집사의 말을 더 듣지 않고 지나쳤다. 그는 내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그건 지난 10년간 집사를 봐 온 내가 잘 안다.

“아, 아가씨!”

나를 붙잡으려는 집사를 물리친 채 고집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복도에 들어서자 안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하하! 맞아요. 사루비아 꽃을 따다 빨면 꿀을 맛볼 수 있죠. 하지만 아버지께서 경험해 보셨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어요.”

낭랑한 목소리에 유쾌한 어투였다. 백작가에 온 지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특유의 사교성으로 잘 녹아들었다.

시에나의 저런 면이 참 부러웠었다. 그리고 지금도 부럽다.

‘그대는 백조 같아.’

언젠가 황태자 전하께서 그리 말씀하신 적이 있다.

맥락 없는 말이었지만 그 뜻이 무엇인지 못 알아챌 만큼 바보가 아니다.

‘그리고 지나치게 고고하지.’

고저 없는 목소리,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빛, 바닥을 보일 줄 모르는 성격까지. 그런 면면이 차갑게 느껴질까 봐 더 언행에 조심했다.

그렇다 한들 타고난 성격이 변하는 건 아니라 늘 제자리걸음이었다.

내성적인 성격과 스스로를 확신하지 못 하는데서 오는 자신감 저하는 쭈뼛거리는 태도로 이어졌고, 다른 이들에겐 그런 모습이 차갑게 느껴진 듯했다.

‘셀레나. 다른 아이들처럼 어리광을 부려도 괜찮아. 버릇없이 굴어도 다 받아 줄 수 있으니까 가족에겐 편히 대해도 돼.’

때문에 오라버니는 내게 편히 굴어도 된다, 격식 없이 지내도 괜찮다고 몇 번이고 조언했다. 그러나 그 말에 앵무새처럼 대답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오라버니를 편히 대하고 있는 거예요.’

오라버니는 내가 유괴 전엔 밝고 명랑했다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겁이 났어요.’

나는 내가 셀레나 에스타리온이라는 기억이 없는데 모두가 나를 두고 셀레나라고 했다.

그런데 원래의 셀레나와 나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너는 원래 밝고 명랑한 아이였어.’

다들 그리 얘기했지만 정작 나는 밝고 명랑하게 구는 게 어색했다.

늘 불안하고 초조해서 그들이 아는 셀레나가 되지 못하는 거라면 완벽한 셀레나라도 되고 싶었다.

다른 이들이 나를 차갑다고 봤다면, 그건 완벽하고자 이를 악문 탓이다.

‘신경 쓰지 말자. 지금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야.’

꽉 쥔 주먹을 들어 올려 노크를 했다. 옆에서 집사가 안절부절못했다. 차마 내 몸에 손을 대는 건 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무슨 일이냐?”

오라버니의 음성이 들려왔다. 문고리를 붙잡는 손을 떨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저예요.”

“너, 너……!”

내 등장에 오라버니가 인상을 썼다.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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