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시에나는 아버지와 독대에 들어갔다.
손에 땀이 찼다. 여유롭고자 안간힘을 썼지만 그 사실에 불안을 이길 수가 없어 식은땀이 흘렀다.
아무렇지 않기엔 나는 너무도 불안정하고 나약한 인간이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내가 친딸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고……?’
떨려 오는 어깨에 힘을 주며 손톱 끝으로 손끝 여린 살을 쿡쿡 찔렀다.
‘나와 무척 닮은 얼굴을 했었어.’
시선이 마주친 때 숱한 생각과 감정이 스쳤다.
피 섞이지 않은 남이면서 어쩜 저리도 닮았을까 하는 평범한 의문부터 막연한 불안, 뿌리를 알 수 없는 불편함까지.
그리고 아버지와 시에나의 독대를 기다리는 그때에도 그러한 감정은 지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셀레나 에스타리온이란 정체성의 근간이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었다.
“아니겠죠? 아닐 거예요. 그죠……?”
작은아버지의 손을 꼭 붙들곤 스스로에게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당연하게도 작은아버지에게선 대답이 없었다. 그는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부터 늘 의식 없이 누워 있었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초조히 작은아버지에게 다시금 매달렸다.
“도와줘요. 작은아버지.”
어째서 내겐 아무런 기억이 없는 걸까요? 왜 그녀가 내가 가졌어야 할 기억을 가지고 있는 건가요? 숱한 질문이 한숨과 함께 사그라들었다.
“여기 있었구나.”
문이 열리더니 오라버니가 나타났다. 황실에서 급히 전갈을 받고 온 터라 오라버니의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셀레나.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제가, 제가 아닐 수도 있다고 해요.”
목구멍 너머로 눈물 냄새가 났다. 아니, 그것은 불안의 향이었다.
“제가 셀레나 에스타리온이 아니면, 전 누구인가요?”
그래. 그게 너무도 두려웠다.
내가 누구인지 나조차 알 수 없는 것. 셀레나로 살아온 삶을 부정하면 나는 무엇이 될까.
내 정체성도, 삶도, 추억도 모두 셀레나 에스타리온에 있는데 그럼 나는 앞으로 어딜 가야 한단 건지.
기억이 없기에 내가 셀레나라는 확신이 스스로에게 있지 않다. 해서 나는 조그만 바람에도 이렇게 흔들린다.
“당연히 넌 내 누이 셀레나다. 네가 셀레나가 아니면 누구란 말이야.”
“하지만 그녀에겐 기억이 있어요.”
나는 내가 셀레나라고만 전해 들었지 내가 셀레나라는 기억이 없다. 하지만 시에나라는 이름을 한 그녀는 자신이 셀레나라는 기억이 있다.
그 차이가 어린 시절의 기억이 없는 내겐 삶을 관통하는 중요한 조각이라 가슴이 울렁거렸다.
“괜찮다. 셀레나. 어디서 정보를 주워듣고 온 아이일 거다.”
오라버니가 나를 꼭 안아 주었다. 전해지는 온기에 조금씩 떨림이 잦아들었다. 내가 진정을 찾을 무렵 로지가 와서 외쳤다.
“아가씨. 하녀장님이 그 여자의 몸을 검사한다고 하세요! 얼른 가 보세요. 이건 정말, 말이 안 돼요.”
나와 오라버니는 시선을 교환했다.
몸을 검사한단 말은 그녀가 말한 어린 시절의 기억이 정확했단 걸 뜻한다. 즉, 몸에 난 몇 가지 흔적을 확인해 2차 검증을 한단 말이다.
순간 가슴이 조여 왔다.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아.”
눈앞이 새까매져 옆에 있던 오라버니의 팔을 꼭 붙들었다. 단단한 손아귀 힘이 휘청이는 나를 잡아 주었다.
“셀레나. 뭔가 착오가 있는 모양이다. 아버지께서 분별을 잘못하신 게 분명하니 내가 먼저 가 보마. 로지. 아가씨를 잘 보필해라.”
오라버니는 내 등을 툭 친 뒤 아버지의 서재로 갔다. 나는 로지의 부축을 받아 내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래 지나지 않아 오라버니에게서 전갈이 왔다. 급히 아버지의 서재로 와 보란 내용이었다.
서재로 가는 길이 지나치게 짧았다.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었다.
“후우.”
문 앞에서 한참 심호흡을 한 뒤에야 노크를 했다.
“들어와라.”
안에서 허락이 떨어지자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시에나는 내보냈는지 보이지 않았다.
창백해진 오라버니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얼굴을 한 아버지가 눈에 들어왔다.
무거운 분위기에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걸까.
“아가. 앉거라.”
아가. 아버지는 늘 나를 아가라고 했다.
하나뿐인 딸에 막내라 아버지 눈엔 마냥 어린아이로 보였던 것 같다.
“아버지. 제가 얘기하겠습니다.”
“그래. 그러거라.”
“셀레나. 그 여자가, 어린 시절과 유괴당한 때의 기억을 갖고 있다. 아버지와 나, 이렇게 둘이서 두 번 확인을 했다만…….”
오라버니가 잇지 못한 뒷말을 알 수 있었다.
불안이 어깨를 타고 손끝까지 흘렀다. 팔이 저릿저릿했다.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아가. 넌 태어날 때 목 뒤에 삼각형 모양의 점이 있었단다.”
삼각형 모양의 점? 내게 그런 점이 있는 줄 몰랐다.
목 뒤는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데다 하녀들도 내게 점이 있다고 말해 준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똑같은 위치에 같은 모양의 점이 있었지.”
“제가 처음 백작가에 왔을 때 확인하시지 않으셨나요?”
“확인했단다. 그때 네겐 점이 없었지만… 나는 네가 내 딸이라 생각해서 그저 희한한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깟 점 하나로 내 딸이 아니라고 하기에, 너는 확실히 내 딸이란다.”
“그렇다면 어째서 없는 점을 보여 달라 하시는 건가요?”
“점 위로 상처가 생기면 지워지기도 하는 법이지. 상처 자국을 확인하고자 한다.”
나는 내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아버지는 확신을 바라셨다. 내가 당신의 딸이라는 확신.
하지만 확신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내게 셀레나라고 했기에 셀레나인 줄 알고 자랐다.
기억이 없단 건 그런 거였다. 스스로에게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
“저는 아버지 딸이에요. 제가 아는 건 그것밖에 없어요.”
아버지의 딸로 자랐기에 아버지의 딸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 내게 증거를 들이밀라고 한다면, 내가 셀레나가 맞는지 다시금 확인해 보라며 목을 내어주는 것밖에 없다.
해서 길게 기른 머리를 앞으로 쓸어내린 뒤 뒷목을 보여드렸다. 그리고…….
“…아버지… 점도 상처도… 없습니다.”
아버지를 돌아보는 오라버니의 목소리가 허망했다. 그 음성에 내가 느낀 두려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친딸이 아니었구나.’
그리 생각했던 게 기억에 선하다. 오라버니가 숨을 들이켜곤 급히 해명했다.
“뭔가 잘못된 겁니다. 있던 점이 어떻게 사라진단 말입니까.”
아버지는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 춥지도 않은데 한기가 느껴져 턱이 딱딱 떨려 왔다.
오라버니와 아버지의 얼굴을 마주 볼 수 없었다. 너무도 혼란스러웠다.
“…제가, 제가…….”
숨을 헐떡이며 힘겹게 말을 이어나갔다.
“셀레나가 아니라면…….”
저는 누구인가요?
차마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뒷말 대신 눈물이 툭 흘렀다.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바닥이 무너지더니 그 아래로 까마득한 추락이 시작되었다.
아버지께서는 두터운 손으로 거무죽죽하게 변한 당신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대체 무슨 일이야.’
기가 막힌 상황에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조차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우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침묵에 기대었다. 한참 뒤 아버지께서 입을 열었다.
“처음 너를 구조해 냈을 때, 점이 사라진 걸 확인했었다.”
“…….”
“하지만 넌 셀레나였다. 셀레나와 꼭 닮은 얼굴, 같은 목소리를 했지.”
“…….”
“그리고 넌 기억이 없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지. 그렇지 않으냐?”
“네. 맞아요.”
도플갱어처럼 닮은 외모에 제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백치 상태의 아이.
누구나 착각할 수밖에 없다. 몇 가지 의구심은 뒤로할 만하다. 그만큼 절박했고 그만큼 셀레나를 닮았으니까.
“부모가 되어서 자식을 못 알아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이 일은 네 잘못이 아니다. 내 잘못이지. 넌 여전히 내 사랑하는 딸이자 시온의 누이다. 그건 달라지지 않을 테니 염려 마라.”
입술 사이로 흐느낌이 흘렀다. 우리는 가족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들의 딸이요 누이였다.
* * *
웃긴 일이었다. 가짜가 셀레나의 이름을 쓰고 진짜 셀레나가 다른 이름을 쓰고 있다니.
“시에나. 불편한 게 있으면 언제든 편히 말해 줘요.”
“이불이 이렇게 부드럽단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지덕지예요!”
시에나가 활기차게 얘기했다. 그녀의 말에서 그녀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짐작할 수 있어 마음이 안 좋았다.
내가 가짜란 현실을 인정하기 힘들었지만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녀에겐 자신이 진짜임을 증명할 증거가 많았다.
시에나는 진짜 딸로 판명 난 그날부터 에스타리온 백작가의 딸로 들어오게 되었다.
“오랜만이에요. 이런 감촉은.”
시에나가 실크로 만들어진 잠옷을 만지작대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어린 시절을 기억했다. 유괴 시절도 기억했다. 뿐만 아니라 뒷목에 점도 있었다.
자신이 셀레나 에스타리온임을 증명하기에 차고 넘치는 증거였다.
“…….”
미안해요. 그 말이 입 안을 맴돌았지만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내게 사과할 자격이 있기나 한지 모르겠다. 결국 도망치듯 방을 나왔다.
내가 누군가의 삶을 훔쳤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향한 혐오가 앞섰다. 이런 순간에도 아무런 기억이 없는 스스로가 싫었다.
부끄럽다. 수치스럽다.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도록 만든 시에나가 미운데, 그보다 내가 더 밉다.
오라버니의 방을 지나며 그가 집안의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걸 들었다.
“시에나를 키워 준 여인의 친구를 데려와라.”
유괴 당시 충격으로 기억을 잃은 시에나는 다른 여자를 어머니로 알고 자랐다고 한다.
그러다 몇 년 전 병사했는데 오라버니는 그 주변인들을 통해 유괴범들을 수사하려는 생각인 듯했다.
나는 못 들은 척 방으로 돌아와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너무도 피로했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나보단 아버님과 오라버니가 더 힘드실 거야.”
“아가씨…….”
“가족이 아닌데 이다지도 닮을 수 있는 걸까?”
셀레나 에스타리온은 쌍둥이였던 걸까. 아니면 내가 아버지의 사생아이기라도 한 걸까.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아녀요. 두 분, 닮은 듯하지만 많이 달라요!”
로지가 다급히 외쳤다.
“아가씨는 똑똑해 보이시고 그분은 소탈해 보여요! 그리고 언뜻 들은 것뿐이지만 목소리도 달라요.”
“…….”
“아가씨가 조곤조곤 차분하시다면 그분은 더 발랄하고 생기 있었어요! 눈을 감으면 말투부터 목소리까지 완전히 다른 걸 알 수 있어요!”
“혼자 있고 싶어.”
“아가씨…….”
“로지. 나가렴.”
“네에. 힘내세요. 필요하시면 언제든 부르시고요.”
로지는 시무룩하게 자리를 비켜 주었다.
나는 진짜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가짜와 가짜로 살아온 진짜가 한 지붕살이를 하는 게 웃기다고 생각했다.
‘내게 이 집에 있을 자격이 있는 걸까?’
하지만 아버지와 오라버니는 내 가족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내 전부.
다른 건 다 시에나에게 돌려주어도 가족은 함께 나눠 가졌으면 하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을 억지로 떠올리려 안간힘을 쓰다가 잠들었다.
지금에 와 보면 그 시점까진 아주 평화로웠다. 아버지와 오라버니도 내게 우호적이었고 나도 혼란스럽긴 했지만 견딜 만했다.
시에나의 이간질이 시작된 건 한 달쯤 지난 뒤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