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진짜인 줄 알았는데-1화 (2/134)

<01>

Chapter 1. 가짜가 되었다.

시련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법이다. 시에나의 존재도 그러했다.

어느 날 갑자기, 조금의 예고도 없이 나타났다.

“아가씨. 또 악몽을 꾸셨어요?”

“그런 것 같아.”

“무슨 꿈인지는 기억 안 나시고요?”

“그러게. 도무지 한 번을 기억 못 하네.”

일주일에 사나흘은 악몽을 꿔 비명을 내지르거나 해가 뜨기도 전에 식은땀 속에 깨어난다.

저명한 심리학자를 만나 보고 유명 정신과 의사에게 찾아가기도 했지만 조금도 치료되지 않았다.

오히려 치료를 시도할수록 습관성 두통만 더 심해져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걱정을 끼치곤 했다.

그 때문에 잠들기 전 수면유도제나 진정제를 먹기까지 하지만 별다른 차도가 없었다.

‘의학이 더 발달했으면… 적어도 약물이라도 더 발달하면 좋겠지만.’

신성력을 이용한 신관의 치료가 존재하는 신성 제국인지라 사람들의 수준과 달리 화학적 약물의 연구가 느릴 수밖에 없었다.

백 년 전까지 성녀가 존재했고 나라의 건국 영웅들부터가 성기사들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많이 아쉽단 말이지.’

내가 몸이 안 좋아 늘 이런저런 고통을 달고 살아서 현 상황에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머리는 안 아프세요?”

“조금 아프지만 참을 만해.”

“신전에서 만든 진통 포션을 가져올까요?”

“아냐. 진통 포션은 무척 귀한 약물인걸.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아껴야지.”

“그래도 두통이 오래가면 속에 든 걸 죄 게워내시잖아요. 전 아가씨가 걱정돼요.”

“괜찮아. 그보다 로지. 밖이 소란스럽구나. 무슨 일인지 알아보련.”

“아,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내 명령에 당시 로지는 상황을 알아보러 서재를 나갔다.

로지가 나간 뒤 읽던 책을 마저 읽으려 했지만 쉬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전하께 추천받은 책인데…….’

다소 어려운 내용이긴 하지만 황태자 전하의 취향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는 책이었다.

집중이 잘되지 않는 건 현관이 시끄러워서였을까. 아니면 악몽으로 인해 또다시 머리가 지끈거려서일까.

그 순간의 묘한 산란함은 곧 내가 겪을 슬픔의 복선이었을지도 모른다.

곧 밖을 확인하고 온 로지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저… 직접 와 보셔야 할 듯해요.”

“무슨 일인데 그러니?”

“그게…….”

로지는 명랑하고 언제든 생글생글 웃는 얼굴을 할 줄 아는 애였다. 그런 로지의 새파래진 안색에 무슨 일이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당장 책을 덮고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걸음을 옮기는 복도가 유난히 짧게 느껴졌다.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가 피부에 닿았다. 코너를 돌아 현관이 한눈에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저를 믿어 주세요! 증명할 수 있습니다.”

내 또래 아가씨가 무릎을 꿇는 광경이 눈에 보였다.

“아버지. 무슨 일인가요?”

“셀레나. 방에 들어가 있거라.”

아버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엄격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께선 내가 시에나의 출현에 상처받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려 하신 거였다.

무릎 꿇은 아가씨, 시에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정돈되지 않은 푸석한 머리와 거친 피부, 억센 말투와 검게 탄 피부는 아버지께서 평생 마주할 일 없는 부류의 그것이었다.

즉, 나와도 아주 먼 세상의 이였다. 그럼에도 묘한 느낌을 받았다.

‘뭐지.’

기시감이라고 정리하면 될까. 아니, 그보다 더 기민하고 복잡한 무언가였다. 그리움과 두려움, 섬뜩함과 불안감. 어떤 본능과 같은 감각이 등을 타고 흘렀다.

그 감각에 숨이 턱 막히는 순간 그녀, 시에나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아.”

우린 놀라울 정도로 닮은 얼굴이었다. 갈색 머리, 금빛 눈, 이목구비까지 무엇 하나 닮지 않은 게 없었다. 누가 보면 자매라고 할 만큼.

그 때문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이 솟아났다. 심장이 조여 오도록 아릿하고 고통스러웠다. 꼭 어둠 속에서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 같았다.

“윽!”

내가 느낀 감정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끼야아아아악!’

누군가의 모습과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가 안개처럼 나타났다 사라졌다. 나도 모르게 헙하고 숨을 삼켰다.

‘뭐, 뭐야.’

무슨 내용인지 파악할 수도 없을 정도로 찰나의 장면임에도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헐떡거리는 숨소리에 놀란 로지가 헐레벌떡 다가와 나를 부축했다.

“아가씨. 또 머리가 아프세요?”

“괜찮아. 돌아가자. 가서… 쉬어야겠어.”

더 서 있다간 볼썽사납게 구역질을 하다 쓰러질 것 같았다. 힘겹게 시에나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몸을 돌려 발을 뗐다. 그 순간이었다.

“아버지! 제발 절 믿어 주세요.”

발걸음이 멈추었다. 무언가 내 안에서 쿵하고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것이 떨어진 자리로부터 불안이 모래바람처럼 일어났다.

‘아버지라고?’

휙. 고개를 돌리기가 무섭게 아버지께서 노성을 내질렀다.

“누가 내 딸이란 말이냐!”

“아버, 백작님. 제발 한 번만 제 말을 들어주세요.”

아버지라니…….

내 기억이 시작되는 때부터 지금까지 아버지껜 애인조차 없었다. 그러니 사생아가 있을 리 없다. 형제도 오라버니 한 명이 유일했다.

그런데 나와 쌍둥이처럼 닮은, 일면식도 없는 여자가 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불렀다.

“벌을 받고 싶은 것이더냐? 끌어내라!”

“저, 셀레나예요. 제가 셀레나란 말예요!”

“닥쳐라! 누가 셀레나란 말이냐! 셀레나, 이런 꼴을 볼 필요 없으니 어서 방으로 들어가라!”

아버지의 명령에도 마저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심장이 쿵, 쿵, 쿵 뛸 때마다 세상도 쿵, 쿵, 쿵 흔들렸다.

저게 무슨 소리지? 저 이가 본인을 두고 셀레나라고 했다. 셀레나는 나인데 왜 스스로를 셀레나라고 주장할까.

보통 사람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자신이 진짜 누구라 할 때 코웃음을 치며 비웃을 테다. 스스로가 본인이라는 확신이 있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셀레나지만, 동시에 셀레나라는 확신이 없다.

열 살 때 납치되기 이전의 기억이 없어서 스스로가 누군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누군가 나를 셀레나 에스타리온이라고 정의내려 줬기 때문에 스스로가 셀레나라고 믿지, 내가 셀레나 에스타리온이라는 타고난 확신과 자신감이 없다.

그래서 그녀의 말에 너무도 쉽게 정체성이 흔들렸다.

‘당신,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당신이 셀레나라고? 내가 셀레나인데……?’

다리가 빳빳하게 굳어 복도를 가로질러 돌아갈 수가 없었다. 뒤를 돌아보는 몸이 삐그덕댔다.

아가씨…. 옆에서 로지가 발을 동동 구르며 나를 불렀다.

“감히 셀레나의 이름을 네 입에 담다니! 끌어내라!”

하인, 시몬과 제롬이 그녀의 두 팔을 붙잡고 질질 끌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말했다.

“어머니께선 출산 전 제게 편지를 남기셨어요. ‘사랑하는 내 아가. 너를 햇빛보다 더 사랑한단다.’, 네 살 생일 때 아버지께선 저를 발등에 올리신 채 춤을 가르쳐 주셨죠!”

그녀의 외침에 아버지가 숨을 삼키셨다.

주인의 눈치를 보는 데 익숙한 하인들이 여자를 끌어내는 걸 멈춘 채 다시금 명령을 기다렸다.

자신을 셀레나라고 주장한 여자가 마저 외쳤다.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께서 검술 대련을 하다 실수로 검을 놓친 적이 있어요. 그 검이 오라버니와 저를 향해 날아왔고 오라버니께서 허공을 날아 그 검을 잡아채어 사고가 나지 않았어요. 그때 전 고작 일곱 살이었고 햇빛이 뜨거운 어느 여름날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아닌가요?”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였다. 그녀가 말하는 모든 추억이 내겐 없는 일이다.

열 살 어린 나이에 납치를 당해 반년 가까이 실종되었던 난, 간신히 납치범들에게서 벗어나 거리에서 주워졌다.

그 뒤 집안으로 인계되었지만 이미 모든 기억이 날아가고 없어서, 네 살 생일 때나 일곱 살 여름의 추억 같은 건 하나도 모른다.

나는 모르고 저 여자는 아는 추억이 가슴에 불안감을 불 지폈다.

“그건 네가 하인이나 하녀들에게 들었을 수도 있는 일이다.”

지나치게 불안해 숨이 거칠어졌다.

이렇게까지 두려워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왜 이러는 걸까.

내 상태는 무릎을 치면 다리가 움츠러드는 것처럼 반사적인 반응과 비슷했다.

“아가씨, 진정하세요.”

로지가 나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로지의 손을 꽉 붙들며 그녀에게 집중했다.

시에나는 나와 달리 불안해하지 않았다. 그녀에겐… 자신감이 엿보였다.

“그럼 이건요. 제가 혼자 자는 걸 두려워하자 아버지, 아니, 백작님께선 종종 침대 밑에 야광석을 놔두고 가셨어요. 야광석이 침대 밑을 밝혀 줘 괴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 줄 거라면서요.”

“…….”

“그리고 <춤추는 고래의 비밀>이란 동화책을 자주 읽어 주셨죠. 아직도 그 내용을 기억해요. <상어의 입속으로 빨려들어간 낚시꾼>이란 책도 있었어요. 또… 또…….”

아버지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하얗게 질린 채 경악 어린 표정에 숨이 턱하고 막혔다. 쩌저적. 발밑에 금이 가는 것 같았다.

그러다 아버지께서 고개를 돌려 나를 확인했다. 그 행동은 딸인 나를 지키기 위함이었을까. 아니면 진짜와 가짜를 가려내기 위해서일까.

“셀레나. 들어가 있어라.”

“아버지. 여기 있게 해 주세요. 어떻게 된 일인지-.”

아버지께서 딱딱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명령이다. 들어가 진정제부터 먹는 게 좋겠구나. 로지, 네 주인을 모시고 들어가라.”

“네. 백작님. 아가씨, 어서 들어가셔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었다. 로지가 힘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시에나, 그녀와 두 번째로 시선이 마주쳤다.

허공에서 엉켜 든 시선 속에 담긴 건 지독하게 복잡한 감정이었다.

아주 순간이지만, 그녀가 진짜 셀레나라면 나를 원망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그 생각을 쓰레기통으로 밀어 넣었다.

‘내가… 내가 진짜야.’

나는 셀레나 에스타리온이다.

나이는 스무 살에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있고 황태자 전하의 약혼녀이며 아멜리아라는 친구가 있다.

셀레나가 내 정체성이었고… 애초에 내가 내가 아니면 난 누구란 말인가.

내가 셀레나 에스타리온이라는 걸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것도 웃긴 일이다.

“아가씨, 제발, 제발 들어가셔요.”

“그래…….”

내가 셀레나인데… 왜이리도 불안한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자신감에 차 있던 시에나처럼 나 또한 자신감을 갖기 위해, 시에나를 허튼소리 하는 여자로 치부한 채 로지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럼에도 가슴이 답답한 건 내겐 없는 기억이 그녀에겐 있어서일 테다.

세찬 불안감에 잠겨 죽을 것 같았다. 시에나는 내게 그런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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