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6화 (186/196)

17화 

이 정도까지 참아 줬으면 된 거 아냐? 오빠도 나에게 너무하잖아!

내가 아버지에게 목걸이를 달라고 조른 것도 아니고, 아버지께서 내게 먼저 주신 거잖아?

왜 내가 이렇게,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있어야만 하지?

언제까지 나이 어린 내가 저 칭얼거림을 받아 줘야 하는데?

"그래서?”

리안나가 프란츠에게 되물었다. 순간 허를 찔린 얼굴을 했던 프란츠가 잔뜩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뭐라고 했어?”

“그래서, 라고 했는데?”

리안나의 낯도 얼음으로 빚은 조각처럼 차가워진 상태였다. 그녀가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그래서 나보고 뭐 어쩌라고.”

“리안나!”

"아버지께서 내게 직접 주신 거잖아.”

리안나가 프란츠를 사납게 노려보았다. 삐딱하게 그 자리에  선채, 리안나가 그에게 반박했다.

“그게 잘못된 거라면, 내가 아니라 아버지에게 가서 따져야 하는 거 아냐?”

그 말에 프란츠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리안나의 말에는 틀린 구석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여동생이 부모님의 애정을 독차지하는 것 같은 모습에 질투가 났다.

‘나는 부모님이 쓰시던 물건 같은 건, 단 한 번도 받아 본 적 없는데!’

프란츠는 숨을 삼켰다. 자신이 지금 질투에 찌들어 있다는 것, 또한 어딘가 꼬여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가끔 사람은 스스로가 이성적이지 않음을 알고 있어도 고집을 부리는 때가 있는 법이다.

그가 갖지 못했다면, 그녀가 갖는 것도 역시 싫었다. 프란츠는 보석함을 움켜쥐었다.

“아무튼, 이 목걸이는 내가 가져갈 게.”

그 말에 리안나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졌다. 리안나는 바짝 날을 세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오빠가 뭔데 아버지께서 주신 목걸이를 빼앗아 가는데?”

그 외침에 말문이 막힌 프란츠가 도망치듯이 몸을 물렸다.

무어라 설명한다 한들 리안나를 설득할 수 없었고, 설명할 말도 없었다. 그 자신조차 지금의 제 행동을 납득하기 어려웠으니까.

“갈 거면 내 목걸이 돌려주고 가!”

그러나 리안나의 고함에, 프란츠도 순간 확 열이 올랐다. 보석함을 쥔 프란츠가 소리 질렀다.

“이게 왜 네 목걸이야? 어머니 목걸이지!”

“그걸 몰라서 물어? 아버지께서 내 게 주셨으니 이제 내 거지!”

하지만 리안나도 절대 물러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두 남매는 다시 보석함을 사이에 두고 사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리안나가 보석함을 붙들고 늘어졌 고, 프란츠는 어떻게든 제 여동생에 게서 보석함을 빼앗으려 들었다.

두 남매는 두 눈에 한껏 날을 세 운 채, 서로에게 으르렁거렸다.

“아, 이거 놔!”

“못 놔! 왜 내 물건을 오빠한테 빼 앗겨야 하는데!”

프란츠에 맞서 리안나도 소리를 질렸다. 두 남매는 보석함을 사이에 둔 채 승강이를 벌였다.

"목걸이, 절대로 오빠에게 못 줘!”

“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거야, 내가 간직할 거야!”

그렇게 외친 리안나가 프란츠가 쥐 고 있는 보석함에 달려들었다.

보석함을 빼앗으려 들자, 반사적으로 프란츠도 보석함을 움켜쥐었다.

그 서슬에, 보석함의 뚜껑이 열리며 목걸이가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바닥에 떨어진 에메랄드 목걸이가 영롱하게 빛났다. 리안나가 손을 뻗었다.

“내 꺼야!”

“누구 마음대로!”

프란츠도 질세라 목걸이를 움켜쥐려 했다.

두 남매는 목걸이의 끈을 각자 손에 그러쥐었고, 그 결과는 처참했다.

툭!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을 동시에 창백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한 소리이기도 했다. 티격태격하던 두 남매는 동시에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     

“……”     

죽음과도 같은 침묵이 흘렀다. 두 사람은 멍하니 그들이 저지른 처참 한 현장을 내려다보았다.

“오, 오빠 이게 무슨……?”

리안나의 떨리는 물음에 그제야 프란츠는 그들 남매가 무슨 일을 저질렸는지 알았다.

두 남매는 각자 목걸이를 손에 움켜쥐고 제 쪽으로 잡아당겼고, 그리하여 연약한 목걸이 끈이 끊어지고 만 것이다.

끊어진 목걸이 줄에 걸린 에메랄드 펜던트가 두 남매를 놀리는 양 반짝거렸다.

“이, 이거.”

프란츠가 황급히 목걸이 줄과 펜던트를 집어 들었다. 어떻게든 해 보려 했지만, 이미 끊어진 금속 줄이 다시 붙을 리 없다.

줄과 펜던트를 양손에 든 채, 프란츠가 리안나를 돌아보았다.

“어떡하지……”?"

그렇게 물어본들 리안나에게도 답이 있을 리 없었다. 리안나는 어쩔 줄 몰라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결국 두 사람은 허탈한 표정이 된 채로 그 자리에  나란히 주저앉고 말았다.

     * * *

그날 밤, 느지막이 귀가한 자카리는 이엘리가 아끼던 에메랄드 목걸이의 처참한 결말에 대해 전해 들었다.

매도 먼저 맞는 편이 차라리 낫다 고, 아버지에게 그들 입으로 직접 고백할 것을 남매는 서로 합의한 것이다.

그리하여 두 남매는 움츠러든 채 자카리에게 목걸이를 내밀었다.

“……그래서, 목걸이가 끊어졌다고?”

자카리는 속을 알 수 없는 얼굴로 보석함을 받아들었다. 그 안에는 끊어진 줄과 에메랄드 펜던트가 얌전히 담겨 있었다.

보석함을 들여다보던 자카리가 잠시 후, 남매를 가만히 응시했다.

“……”     

프란츠와 리안나는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어깨와 눈썹은 축 늘어뜨렸고, 입술은 꾹 다물었다. 그 모습을 보던 자카리는 상황에 맞지 않게 조금 웃음이 날 것 같았다.

‘누가 남매 아니랄까 봐.’

각자 자카리와 이엘리를 닮아 외양이 좀 다르긴 하지만, 똑같은 표정을 지은 채 기가 죽어있은 그 얼굴이 꼭 닮아 있었다.

안 되지, 지금 상황에서 웃으면. 그는 애써 낯빛을 가다듬었다.

“그래서 목걸이가 왜 끊어진 거지?”

자카리는 엄격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눈치를 살살 보던 리안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빠.”

자카리의 시선이 리안나에게로 향했다. 그 시선에 흠칫 놀란 그녀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제, 제가 잘못한 거예요.”

리안나는 어깨를 옹송그리며 조그맣게 말했다. 프란츠가 눈이 휘둥그레 해진 채 그녀를 본다.

"제가 목걸이를 잘못 관리하는 바람에……”

리안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는 현재 아까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는 중이었다.

아까 낮부터 고민해 봤지만, 이번 일은 그냥 그녀가 뒤집어쓰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프란츠보다 어리고, 좀 더 철없이 굴어도 되는 입장이었으니까.

리안나의 오빠는 헤센바이츠의 차기 가주이자 소공작이었고, 리안나 보다도 훨씬 더 많은 책임과 의무를 짊어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뭐, 솔직히 프란츠 오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니까.’

리안나는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간신히 눌러 삼켰다. 만약 입장을 바꾼다면, 리안나도 불타오르는 질투를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를 빼놓은 채, 프란츠만 부모님이 쓰시던 물건을 물려받는 특혜를 누리게 된다면?

분명히 공작성을 뒤집어엎어 놓았겠지.

기껏 지금까지 만들어 두었던 아버지의 호감을 몽땅 날려 먹는 건 속이 쓰리지만, 그렇다고 오빠가 혼나 게 두는 건 좀 아닌 것 같았다.

‘이럴 때 빚을 지워 둬야지, 역시.’

그렇게 자기합리화를하며 리안나는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그때.

“아니예요.”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그녀가 곁을 돌아보았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프란츠였다.

“제가 고집을 부려서, 리안나에게 목걸이를 빼앗으려 하다가…… 그 만.”

“오, 오빠?”

오빠가 뭘 잘못 먹었나? 리안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뜻을 담은 그녀의 시선을 느꼈는지, 프란츠가 제 여동생을 곁눈질로 노려 본다.

그러면서도 소년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니까 제가 잘못한 거예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면 가끔 현실을 도피하게 된다.

이따 메리한테 가서, 오늘 태양이 서쪽에서 떴는지 물어봐야지.

프란츠가 제 잘못을 순순히 제 입으로 인정하는 감격적인 순간에, 리안나는 고작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프란츠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리안나는 혼내지 마세요.”

“아, 아니예요!”

화들짝 놀란 그녀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두 남매의 행동에, 자카리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그게 아니라, 오빠와 제가 어쩌다 보니……!”

리안나는 횡설수설 말을 이었다. 야, 왜 갑자기 착한 척 구는 거야? 너 때문에 내 양심이 심하게 아프잖아!

그러나 그런 여동생을 두고 볼 프란츠가 아니었다. 그는 잔뜩 인상을 구겼다.

“야, 끼어들지 말고 가만히 있어! 왜 괜히 나서서……!”

“오빠야말로 왜 혼자서 다 잘못했다고 해? 우리 둘 다 잘못한 거잖아!”

프란츠와 리안나는 아버지 앞이라는 것까지 까맣게 잊어버리고 아옹다옹 말다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꼬마들을 바라보던 자카리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머물렀다. 마치 새끼 고양이들이 다투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잠시 후, 자카리는 표정을 엄준하게 가다듬고는 입을 열었다.

“다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아차. 두 꼬마가 얌전히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자카리는 두 눈을 가늘게 뜬 채 말했다.

"두 사람 모두 서로 잘못했다고 하니, 벌을 받아야겠군.”

“……네에.”

“네….”

시무룩한 대답이 뒤따랐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잘못하지 않았다고 항변하지 않는 걸 보니, 얌전히 벌을 받을 마음은 있는 것 같다.

자카리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기울인 채 입을 열었다.

“리안나는 예법 교본 베껴 쓰기 스무 장.”

잔뜩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던 그녀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라, 생각보다 벌이 약하네?

"그리고 프란츠는 포프 경에게 일러둘 테니, 내일 훈련을 두 배로 추 가한다.”

“저, 정말요?”

다른 것도 아니고, 어머니께서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시던 목걸이를 망가뜨렸다.

기껏 선물로 주셨는데도 이런 결과를 내고 말았으니, 엄청나게 화를 내셔도 할 수 없다 생각했다.

그런데도 정말, 이 정도 벌로 충분 한 거야? 그런 의문을 담아서, 두 남매가 자카리를 올려다보았다.

‘누가 남매 아니랄까 봐, 표정이 똑같군.’

접시처럼 커다란 눈으로 저를 바라 보는 두 남매를 마주보면서, 자카리는 삐져 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느라 애써야만 했다.

혀를 깨물어 웃음을 삼킨 자카리가 고갯짓으로 문을 가리켰다.

“그래, 두 사람 모두 나가 보거라.”

혹시 아버지의 마음이 바뀔까 봐 두려웠던 두 꼬마는 화닥닥 방을 빠져나갔다.

방문이 달칵 닫히자, 자카리는 나지막이 웃음을 흘렸다. 그가 책상 위에 얌전히 올라간 목걸이를 응시했다.

‘목걸이는 수선하면 되니까.’

무엇보다도 이엘리는, 자신의 목걸이가 망가졌다는 이유로 자카리가 아이들을 심하게 혼내는 것을 바라 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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