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5화 (185/196)

16화

자카리는 리안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며 말을 이었다.

“이만 나가 보아도 좋다, 리안나.”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되어, 뺨을 발그레하게 붉힌 리안나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 소중하게 간직할게요.”

“그래, 어머니가 돌아오면 목걸이를 착용한 모습을 제일 먼저 보여 주려무나.”

자카리의 말을 들은 그녀가 활짝 미소 지었다. 그는 그런 딸을 눈이 부신 것처럼 바라보았다.

     * * *

리안나는 하루 종일 굉장히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자카리가 선물로 준 어머니의 목걸이 때문이었다.

거울 앞에 앉은 그녀가 목걸이를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햇빛을 한껏 머금은 에메랄드는 마치 여름의 신록처럼 푸르렀다. 에메랄드 위로 빛이 영글어 떨어지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네가 이대로 쏙쏙 자라서, 그 목걸이가 잘 어울리는 레이디가 된 모습을 기대하고 있단다.’

목걸이를 조심스레 만지작거리던 리안나는, 아버지의 다정한 목소리를 문득 뇌리에 떠올렸다.

‘그래, 어머니가 돌아오면 목걸이를 착용한 모습을 제일 먼저 보여 주려무나.’

리안나의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래야겠다, 엄마께 제일 먼저 보여드려야지. 에헤헤, 소리 내어 웃은 그녀가 침대로 폴짝 뛰어들었다.

그렇게 침대 속에서 데굴데굴 구르고 있을 때.

“그렇게 좋으세요?”

흐뭇하게 미소 지은 메리가 리안나에게 물었다. 리안나는 커다랗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응! 엄청 좋아!”

“아가씨가 기뻐하시니 저도 좋네 요.”

진심이었다. 다양한 표정을 가진 리안나는, 마치 이엘리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처럼 무척 사랑스러웠으

니까.

한참 목에 건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던 리안나가 아쉬운 어조로 중얼거렸다.

“이제 목걸이를 풀긴 해야 하는 데.”

아무래도 성인을 기준으로 만들어 둔 목걸이라, 계속 착용하고 있는 건 좀 불편했다.

게다가 워낙 고가였기에 분실의 위험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내내 목걸이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게, 저

목걸이를 받은 게 무척 기쁜 것 같다.

메리는 살포시 미소를 짓고는 리안나에게 물었다.

“아, 목걸이 벗는 것 도와드릴까요?”

“응, 그래……”

리안나는 아쉬움을 채 버리지 못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메리는 그녀가 목걸이를 벗는 것을 도와주었다. 홀린 듯 목걸이를 바라보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보석함에 목걸이를 집어넣었다.

“내가 정말로… 저 목걸이가 어울 리는 레이디가 될 수 있을까?”

“그럼요.”

메리가 커다랗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작은 아가씨의 어깨를 토닥여 주며 말을 이었다.

“아가씨 이상으로 저 목걸이가 잘 어울리는 사람은 없을걸요.”

그 말에 리안나는 수줍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빈말이라 해 도 그렇게 말해 주는 게 기뻤다. 그녀는 뺨을 발그레하게 물들인 채, 하루 종일 보석함을 손에서 떼어놓지 못했다.

마치 다람쥐가 도토리를 숨긴 곳에 들락거리듯이 계속 방에 들어가 보석함을 열있다 닫곤했다.

“아가씨께서 뭔가 기분 좋으신 일이 있으신가 봐요.”

“그러게요. 하루 종일 웃고 계시네 요.”

그런 작은 아가씨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작게 소곤거릴 정도다. 그렇게 후작저의 하루는 평화롭게 흘 러가려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프란츠가 리안나의 방에 방문하기 진까지는 그랬다.

     * * *

프란츠는 곰곰이 생각에 빠져 있었다. 최근 리안나와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을 다시 되새겨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정하긴 싫었지만, 현재 어머니가 자리를 비우고 계셨음에도 공작성의 분위기는 상당히 부드러운 상태였다.

이전에 어머니가 자리를 비우셨을 때를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무척 온화해 졌음을 프란츠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내가 요새 좀 심했나.’

그리하려 프란츠는 자신의 행동을 되짚어 반성한다는, 성실한 소공작에 어울리는 행위를하고 있었다.

리안나와 벌였던 파이 대 전쟁 이 후, 자신이 여동생을 일부러 외면했다는 사실은 그 자신도 아주 잘 알았다.

하지만 리안나는 오히려 그런 프란츠의 허물까지 감싸 주지 않았나.

‘리안나가 말하기를, 요새 훈련을 열심히하고 있다고 하더구나.’

자카리의 흐뭇한 눈빛, 머리에와 닿던 커다란 손의 온기, 그리고 프란츠를 바라보던 환한 미소.

프란츠는 힘겹게 인정했다. 아버지의 그런 표정은 정말 처음이었다.

‘어머니가 자리를 비우셨음에도, 아버지께서 이렇게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 주신 적도.’

나란히 저녁 식사를 하고 짧으나마 대화도 나누었다.

완벽한 공작이자 가주인 아버지를 존경하면서도 약간은 어려워하는 프란츠였기에, 아버지의 온기를 느끼자 가슴이 뭉클해졌다.

‘……정말 오랜만이었지.’

그리고 이건 모두 리안나 덕이었다. 프란츠는 반쯤 충동적으로 몸을 일으켜 방을 나섰다.

‘리안나의 얼굴이나 보러 갈까.’

비복 리안나가 얄미운 건 사실이었지만, 그녀 덕분에 아버지와의 관계 가 회복된 것도 맞으니까.

프란츠는 오라버니다운 관대함을 발휘하여 제 여동생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 * *

리안나는 보석함을 열어, 고이 들어있은 에메랄드 목걸이를 내려다 보았다.

영롱하게 반짝이는 목걸이를 시야에 담는다.

흐뭇하게 웃고 있는 와중, 노크조차 없이 문이 불쑥 열렸다.

“숙녀 방에는 노크를하고 들어와 야 한다는 사실, 몰라?”

모습을 드러낸 프란츠를 보며, 리안나가 대번 곱지 않은 눈초리로 쏘아붙였다.

그러고는 아차, 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나 분명히 화해하고 싶은데, 왜 자꾸 틱틱거리게 되는 거지?

“그래, 미안해.”

미안하다고? 리안나의 표정이 괴상 하게 일그러졌다. 내 오빠가 저렇게 순순한 사람이었던가?

“그렇게 리안나, 입이 귀 뒤에 걸렸네?”

“응?”

내가 그랬었나? 리안나가 두 눈을 깜빡였다. 프란츠는 어깨를 으쓱여보이며 한 발 다가섰다.

“뭐 좋은 일이라도 있어?”

“아? 음, 그게……”

리안나는 눈동자를 굴렸다. 그렇지 않아도 요새 부녀 사이가 가까워진 것에 질투를 보이고 있는 프란츠였다.

만약 아버지께서 그녀에게 어머니의 목걸이를 선물했다는 것을 알면, 좋은 반응이 나오진 않겠지.

그녀는 어색하게 눈웃음을 치며, 열어 둔 보석함의 뚜껑을 슬쩍 닫았다.

“그,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닌 표정이 아닌데?”

프란츠의 얼굴이 의심스러워졌다. 그의 눈동자가 리안나가 소중하게 움켜쥔 보석함에 닿았다.

“그게 뭐기에 아까 전부터 보물단지처럼 끌어안고 있어?”

턱짓으로 리안나의 보석함을 가리키며 그가 물었다. 리안나는 식은땀 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그럼 보여 줘.”

“응?”

“아무것도 아니라며, 보여 달라고.”

프란츠의 뚱한 목소리에 리안나는 애써 표정을 관리했다.

불길한 예감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안 돼, 여기서 들키면 오빠의 질투가 폭발하고 말거야. 리안나는 태연한 척 대답했다.

“나, 나도 사생활이란 게 있거든?”

프란츠의 두 눈이 점차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딱 보기에는 고작 보석함일 뿐인 데, 사생활 운운까지 하며 숨기려 드는 모습이 너무 이상했다.

프란츠는 수상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너, 뭔가 이상한 짓하고 있는 거 아니야?”

“아니야!”

기가 막힌 리안나가 언성을 높였다. 아니, 저 인간이 날 뭘로 보고? 프란츠가 손을 내밀었다.

“그럼 보여 줘.”

“아, 싫다고!”

“이상한 짓도 아니라면서 왜 자꾸 숨기는데?”

두 꼬마는 옥신각신거리기 시작했다. 리안나는 황급히 서랍 안에 보 석함을 숨기려 했지만, 프란츠의 행동이 조금 더 빨랐다.

보석함을 낚아챈 프란츠가 말릴 새 조차 없이 뚜껑을 열었다.

“도대체 어떤 것을 넣어 뒀기에 이렇게 끌어안고 있는 건지……”

그렇게 중얼거리던 프란츠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보석함 안에 들어있은 물건은 프란츠에게도 아주 익숙한 물건이었던 것이다.

섬세하게 세공되어 찰랑거리는 에메랄드 목걸이.

어머니의 짙은 녹색 눈동자 색깔을 꼭 닮은 목걸이는, 어머니의 목에 항상 걸려 있던 목걸이였다.

“……”     

침묵하던 프란츠가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렸다. 어둡게 가라앉은 새파란 시선이 그녀를 본다.

“……이걸 왜 네가 가지고 있어?”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를 들으면서, 리안나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안 돼, 프란츠의 질투가 폭발한다! 프란츠의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바라보던 리안나가 애써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목걸이, 돌려줘.”

“아니, 이걸 왜 네가 가지고 있냐 고.”

그러나 프란츠는 리안나가 목걸이를 소유하게 된 경위를 듣기 전까진, 절대 목걸이를 돌려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는 미간을 좁혔다. 그녀도 그의 저런 태도가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난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추궁당하는 위치가 되어야 하지?’

하지만 지금은 프란츠가 흥분한 것 같으니, 일단 맞춰 주자. 리안나는 포르르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께서 주셨어.”

“뭐? 아버지께서 네게 이 목걸이를 주셨다고?”

“그래.”

두 남매가 서로를 쏘아보았다. 프란츠의 얼굴은 이제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마치 믿고 있던 사람에게 철저하게 배신이라도 당한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프란츠는 날카로운 어조로 따 져 물었다.

“너, 이 목걸이가 어떤 물건인지는 알아?”

리안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마치 죄인을 질책하는 것처럼 매서운 말투에 기분이 확 나빠졌다.

“알지. 어머니가 평소에 아끼시는 물건이잖아.”

빠드득, 프란츠가 이를 갈아붙였다. 그는 치받는 분노를 애써 억누르며 리안나에게 되물었다.

“그런데 너 혼자만 저런 물건을 받는 거야?”

그 말에 리안나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프란츠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아버지께서 네게 선물해 주셨다고 해도 그렇지! 어머니께서는 아시는 거야?”

왜 리안나만 예뻐해 주시는 거지? 나도 예쁨받고 싶은데. 치졸하지만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리안나가 그보다 훨씬 더 어리고, 오라비라면 마땅히 여동생을 아껴야 하는 건 알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

한편, 리안나는 잔뜩 열을 내는 프란츠를 바라보며 심호흡을 했다.

‘내가 왜 이렇게 추궁당하고 있어 야…… 아냐, 우선 내가 참자.’

프란츠에게 저지른 죄도 있있고, 프란츠가 질투를 하게 된 이유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니까…….

“엄마도 아시는 일이니까, 오빠도 너무 화내지 말고……”

“……그러니까 네 말은, 어머니가 너만 챙겨 주셨다는 소리야?”

“그게 아니라, 조만간 내 생일이잖아? 그래서 그런 거야, 웅?”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왜 너만 이렇게 특별대우를 받는 건데?”

프란츠는 계속해서 사납게 캐물었다. 결국 리안나의 표정도 험악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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