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9화 (179/196)

10화

헤센바이츠 공작가의 고명딸이자 막내딸인 리안나 헤센바이츠는 현재, 아주 불쾌한 상황에 빠져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무뚝뚝한 아버지와 매일 투닥거리는 원수 같은 오빠.

이 두 사람과 아침 식사를 함께해야 한다니. 평소라면 다정한 어머니가 있어 괜찮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우와, 공기가 엄청나게 썰렁하잖아.’

얼음 같은 공기가 가득 차 있다, 뭐 이 정도의 표현이 가장 적합하려나? 다른 장소랑 비교해 봐도, 온도 가 한참 낮은 기분이었다.

리안나는 뚱한 얼굴로 식당 안으로 걸음을 옮기다 말고, 힐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아버지는 오로지 어머니에게만 다정했다.

굳이 따지자면 자식들을 사랑하긴 사랑하지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다고나 할까.

'아니, 자식들에게도 조금 다정하게 대해 주셔야 하는 거 아니예요?’

리안나는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그림처럼 우아한 자태로 신문을 펼치고 있던 아버지가, 신문을 접으며 어린 딸을 마주보았다.

반짝이는 은발 아래의 새파란 눈등자가 그림처럼 아름답다.

“조금 늦었구나, 리안나.”

“죄송해요, 씻고 머리를 빗다 보니 조금 늦었어요.”

약속 시간에 늦은 건 어쨌든 잘못 이었기에, 리안나는 속으로 찔끔했다. 어떻게든 미소로 무마해 보기 위해, 애써 생글생글 웃는다.

미소가 걸린 입가에 경련이 날 지 경이다. 다행스럽게도 아버지는 리안나를 크게 질책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무심한 목소리가 뒤에 이어졌다.

“자리에  앉거라.”

“네, 아버지!”

안도의 한숨을 내쉰 리안나가 최대 한 발랄한 목소리를 내어 대답했다. 평소 엄격한 아버지였기에, 혼나면 어떡하나 걱정했었다.

리안나는 베운 대로, 드레스 자락을 곱게 모으고는 얌전히 자리에  않았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아버지가 아닌 다른 사람이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약속 시간에 늦다니, 헤센바이츠 공작가의 레이디의 자격도 없네.”

“……”

바로 그녀보다 세 살 많은 오빠, 프란츠였다. 리안나는 뚱한 얼굴로 프란츠를 흘겨보았다.

얼굴값 좀 하지. 리안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프란츠는 아버지를 쏙 빼 닮은 외모를 가졌고, 평소에는 아버지를 본받아 진중한 행동거지를 보였다.

하지만 여동생을 놀릴 때만큼은 언제나 개구쟁이에 짓궂어서, 리안나는 내심 그런 오빠가 얄미웠다.

리안나가 반격했다.

“그러는 오빠는 퍽이나 신사다워서, 동생의 작은 실수 하나조차 그렇게 물고 늘어지니?”

“와, 그 말 진싸 숙녀답지 못한 거 알지?”

두 꼬마가 또다시 아르릉거렸다. 상황을 보다 못한 자카리가 한숨을 삼키며 경고를 남겼다.

“프란츠, 동생에게 다정하게 굴어야 한다고 내가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니?”

“……쳇.”

“그리고 리안나도 마찬가지야. 먼저 약속 시간에 늦은 사람은, 리안나 너잖니.”

하긴 그건 그렇다. 리안나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프란츠가 턱을 괸 채 홱 고개를 돌려 버린다.

에휴, 저 진상. 리안나는 두 눈을 가늘게 치켜떴다. 나잇값도 못하는 오빠 같으니라고

고작 일곱 살 난 나를 아득바득 이겨 먹으려 들다니, 오빠 자격도 없다니까?

“그래, 이번에는 내가 참는다.”

그때 프란츠가 다시 한 번 리안나의 약을을렸다.

안 돼, 바보처럼 넘어가지 말자!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오빠가 참긴 뭘 참아?”

결국 이렇게 대꾸해 버리고 마는 게 리안나의 약점이었다. 프란츠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리안나, 그렇게 얼굴 찌푸리니까 진짜 못난이 같다.”

“……”

아니, 못난이라니?

리안나는 진심으로 억울해졌다.

자화자찬하려는 건 아니지만, 리안나는 한때 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레이디로서 한껏 이름을 날린 어머니를 쏙 빼닮았다.

아샤꽃처럼 화사한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분홍 머리카락은 리안나의 자랑이었다.

그런데 지금 나보고 뭐라고?

우리 엄마를 닮은 내가 얼마나 예쁜데, 감히 이 나를 보고 못난이라 고 한다 이 말이야?

“그런 오빠는 얼마나 잘났다고 사람에게 못난이래?”

리안나가 프란츠에게 항변했다. 프란츠는 쿡쿡 웃음을 터뜨리더니, 앞에 있는 농이 요리를 우아하게 썰었다.

“못났으니까 못났다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해?”

“오빠, 지금 말 다 했어?!”

“할 말은 더 남았지만 안하고 있는 건데?”

그리고 자카리는 온통 난장판이 되 이 가는 두 남매의 대화를 지친 얼굴로 바라보았다.

방금 전에 싸우지 말라고 그렇게나 말했는데, 십 초도 지나지 않아 두 남매는 치열한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이엘리는 도대체, 이 엉망이 된 상황을 어떻게 그렇게 마법처럼 정리 해 내는지.

프란츠와 리안나의 시선이 딱 마주 쳤다.

“왜 그렇게 쳐다봐?”

미간을 좁힌 프란츠가 리안나에게 툭 말을 뱉었다.

손으로는 완벽한 궁중 예법을 구사하는 주제에, 말투는 온통 틱틱거린다.

“그러게 평소에 예법 수업 좀 열심 히 듣지 그랬어.”

“……”

리안나는 분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이엘리의 교육이 빛을 발해서인 지, 프란츠의 예법 하나는 그야말로 완벽했다.

차기 헤센바이츠를 물려받을 소공작으로서 대외적인 활동도 많이 하게 될 예정이었기에, 미리 교육을 시킨 것이다. 반면, 아직 나이가 어린 리안나는 상대적으로 서툴렀다.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동생이여. 이 오빠는 모자란 여동생을 감쌀 배려심을 갖추고 있으니.”

마치 연극에 나오는 대사처럼 기나 긴 말을 읊은 프란츠가 씩 웃었다.

리안나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저 인간이 진짜, 예법에 조금 능숙 하다고 사람을 바보 취급을 해?

“오빠아!”

“다들 이쯤에서 그만두도록 해라.”

그때 자카리가 한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두 꼬마는 서로를 실컷 노려보며 입을 다물었다.

“리안나, 그러다가 음식이 모두 식겠다.”

“네에.”

입을 불퉁하게 내민 리안나가 포크와 나이프를 양손에 들었다.

그새 프란츠는 매끄러운 동작으로 농어 한 조각을 썰어 입에 집어넣고는, 냅킨으로 입술을 닦고 있었다.

“……”

한껏 얄입다는 시선으로 오빠를 노려보던 그녀도 농어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레몬즙을 뿌린 농어 요리는 입 안에서 살살 녹았기에, 그나마 잔뜩 뾰로통해진 리안나의 마음을 달래 주었다.

“이 농어 요리, 진짜 맛있어요!”

아침 식사 자리의 얼어붙은 분위기에 대하여 일말의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리안나는 애써 발랄한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말했다.

그러자, 자카리가 묘한 눈으로 제 딸을 응시했다.

“입에 맞느냐?”

“네!”

순진한 아이인 척 리안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프란츠가 토하는 시늉을 했다. 아니 저 자식이?

“리안나는 생선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아…… 그게.”

리안나는 문득 멈칫했다. 그랬다. 다섯 살 때만 해도 리안나는 생선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리안나, 훌륭한 레이디는 편식을 하면 안 된단다.’

하지만 자라면서 어머니의 가르침 하에 편식을 고쳤고, 이젠 생선도 꽤 좋아하게 됐다.

리안나는 저도 모르게 아버지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어머니께만 관심 있으신 거 아니었어?

‘아버지가 내 음식 취향을 아시는 줄은 몰랐는데.’

약간 당황해 버린 리안나는, 잠시 후 핫 정신을 차렸다. 상대를 앞에 두고 딴생각에 빠지는 건 무례한 짓 이라고 어머니가 말씀해 주셨다. 게다가 아버지는 예의범절에 엄격한 분이셨다.

“아버지께서는 오늘도 행정관들을 만나러 가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녀는 애써 생글생글 눈웃음을 치며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직 일곱 살이었지만, 아버지에게 ‘제 취향을 아실 줄은 몰랐어요, 아버지는 원래 무뚝뚝한 분이신 줄 알았거든요.’라고 말하지 않을 정도의 상식은 가지고 있다.

그런 리안나에게 아버지는 툭 대답을 들려주었다.

“맞다.”

“……”

저렇게 말하면 내가 대꾸할 말이 없어지잖아!

리안나는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여기서 패배한다면, 계속 이 체할 것 같은 분위기가 이어질 것이다.

리안나는 억지로 말을 이었다.

“오늘 일찍 돌아오실 거죠?”

“아니, 회의가 있어서 늦을 것 같은데.”

“……”

……어쩐지 분위기가 더 썰렁해진 것 같다. 그녀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아니, 아버지. 이렇게 사람 할 말 없게 만드실 필요는 없지 않나요?

바로 그때, 프란츠가 얄밉게 끼어 들었다.

“너, 오늘은 이상하게 말이 많은데. 아침 식사에 늦게 와서, 양심에 찔려서 그런 거 아냐?”

아버지에게 법보이지 않으려던 리안나는 최대한 착한 눈빛으로 프란츠를 쳐다보았으나, 아쉽게도 프란츠에게는 ‘노려보았다’ 그 이상이 되지 않았던 것 같았다.

“내가 뭐 없는 말 했나?”   

프란츠는 어깨를 으쓱여 보였고, 리안나는 잔뜩 미간을 구겼다. 아니, 아침부터 왜 자꾸 시비를 걸어 대!?

‘‘프란츠,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이 지 않느냐. 조금 더 상냥하게 대해 주는 편이 좋을 것 같구나.”

“아버지!”

그때 아버지가 불쑥 입을 열었고, 프란츠는 발끈했다.

리안나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가 내 편을 들어 줄 줄은 전혀 몰랐는데.

아버지는 항상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공평한 시각으로 상황을 지켜 보셨다.

그런 아버지의 태도가 어쩔 수 없이 서운하게 느껴졌던 적도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웬일이시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리안나는 약간 감동하고 말았다.

그때 아버지가 무릎을 덮은 냅킨을 치우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럼, 다들 좋은 하루 되거라.”

아버지는 그대로 의자에 걸어 둔 겉옷을 집었다. 리안나는 황급히 아버지에게 인사를 남겼다.

“자, 잘 다녀오세요!”

“……그래. 두 사람 모두, 싸우지 말고.”

아버지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가 싶더니, 곧장 식당을 빠져나갔다.

아버지가 사라짐과 동시에 프란츠와 리안나는 서로를 핵 노려보았다. 프란츠는 레몬을 띄운 물로 입을 가셨다.

“아버지가 싸우지 말라고 하셨으니까, 내가 봐준다.”

“웃기지 마, 착한 내가 참아 주는 거거든?”

두 꼬마는 한참 동안 티격태격했고, 결국 오늘의 아침 식사는 엉망으로 끝나고 말았다.

* * *

마차에 탄 자카리는 긴 한숨을 내뱉었다. 슬프게도 그는, 태생적으로 아이들을 다루는 데에는 서툴렀다. 두 남매를 무척이나 사랑하는데도 그랬다.

두 꼬마가 서로를 온통 견제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이엘리처럼 부드러운 말씨로 아이들을 휘어잡을 능 력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엔, 네가 너무 보고 싶어……”    

천천히 달리는 마차 속에서, 자카리는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현재, 리안나는 아침 식사 후의 간식을 즐기고 있었다. 메리를 졸라 뜯어낸 쿠키와 우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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