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1화 (151/196)

151 화

또한 북부는 오랫동안 헤센바이츠 공작가를 주군으로 삼아 뭉쳐 왔다.

이건 그들의 주군에 대한 예의 문제기도 했다.

“공작 각하를 뵙습니다.”

대회의실에 들어선 귀족들은 젊은 공작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공작이 그들을 본다.

“다들 예고 없는 소집에 이렇게 모여 줘서 정말 고맙네.”

공작은 미소 한 점 없이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만난 공작은 바짝 날을 세운 칼날 같았다.

느른한 자세로 의자에 몸을 기댔으나, 표정에는 예기가 돌았다.

서늘한 시선이 그들을 응시했다.

“다들 황가에서 북부의 상인들에게 세금을 물리기로 한 것은 잘 알고 있을 터일세.”

“그렇습니다, 각하.”

“어떻게 북부를 이렇게 홀대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쌓인 것이 많았던 귀족들은 왈칵 성을 냈다.

공작가와 황가가 마찰했던 것이 이게 도대체 몇 번인가.

게다가 그 마찰의 시작은 언제나 황가였다.

북부 입장에서는 가만히 있을 따름 임에도 멋대로 먼저 공격당하는 것 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슬슬 귀족들의 불만도 쌓일 때였다.

“맞아, 이번 일에서 북부의 잘못은 없어.”

귀족들의 원성을 귀 기울여 듣던 자카리는 잠시 후,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였다.

“먼저 북부에 세금을 물리기로 한 쪽은 황가 측이지.”

자카리의 말에 동의하는 음성들이 이곳저곳에서 튀어 올랐다.

쌓여 있던 불만을 토해 내었기에, 상당히 격한 반응이었다.

자카리는 턱을 된 채 그 불만들을 들었다. 이윽고 그가 말을 잇는다.

“그렇다면, 황제께서는.”

자카리의 새파란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났다.

자카리는 톡톡 테이블을 두드리며 계속 말했다.

“북부를 제국과 같은 국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는 게 아닌가 싶은데.”

귀족들의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자카리는 침착한 얼굴로 눈앞의 귀족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

“……”

공작의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와는 별개로, 그 순간 귀족들 사이에서는 죽음과도 같은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귀족 중 한 사람이 저도 모르게 입술을 열었다.

탄식과도 같은 목소리였다.

“그, 그런……”

분명히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관세를 정한다는 건 엄연히 다른 나라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이다.

그렇다면 황제는 북부를 같은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인가.

그저 어깃장을 놓으려 행동한 게 아니 라면...

“그대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자카리의 푸른 눈동자가 우아하게 휘어졌다.

그는 그대로 앉아 있던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난 조만간 폐하께 여쭈어 볼 생각 일세.”

뚜벅뚜벅. 구두 굽이 바닥을 짓밟는 소리가 귀족들의 귀 안쪽을 선명 하게 두드리고 있었다.

“폐하께서는 북부를 이제 제국에게 서 독립시키실 생각이시냐고.”

비스듬히 시선을 들어 올리면서 자카리가 입술 끝을 밀어 올렸다. 귀족들은 바짝 얼어붙었다.

“또한 폐하께서 만약 그런 의도를 가지고 계신 거라면……”

단 한 번도 녹아내린적 없던 빙하처럼 새파랗게 빛나는 눈이 귀족 들을 제 안에 가둬 넣는다.

“……이쪽도 거부하지 않을 것임을 전할 생각이야.”

목소리는 단호했다.

귀족들은 지금 공작의 말에 반대한다 한들 공작이 받아들일 리 없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반대할 생각도 없었다.

지금 공작의 행동은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판단이었으니까.

“또한 우리도 제도에서 들여오는 물건에 세금을 매길 생각일세.”

그 말은 곧, 황가의 이번 일을 겪으면서 공작가 또한 맞불을 놓겠다는 뜻이었다.

귀족들은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북부의 오랜 생활 방침 중 하나 아닌가.

“다들 황가와 대립하는 이번 일에 마음이 좀 불편할 것은 알고 있네, 하지만.”

자카리는 테이블에 양손을 짚고 허리를 슬쩍 숙인 채, 눈앞의 귀족들을 크게 휘돌아보았다.

“……언제까지 황가에 계속 끌려다 닐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여상한 질문에 귀족들은 모두 마른 침을 삼켰다.

헤센바이츠 공작은 이제 황가와 대립하는 것에 망설이지 않았다.

지금은 공작이 목숨보다도 아끼는 공작 부인이 납치당했다가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황가가 본격적으로 공작가를 긁어 놓으려한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지금 시기는 피했을 것이다.

“상인들의 피해를 전체 보전해 주 지는 못해도, 공작가에서도 상인과 영주들을 도울 것일세.”

게다가 공작가도 일정 부분 희생을 함께 짊어진다.

상인들과 영주들을 돕는다는 것은 곧, 황가의 세금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지원하겠다는 뜻이었다. 공작가의 예산을 이용해서.

“그러니 다들 조금 불편하더라도 양해해 주게나.”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귀족들이 동 의하지 못할 리 없다.

공작은 여론을 능숙하게 사로잡았다.

“황가의 합리적이지 못한 이런 행동에 꺾여서는 안 될 일이지, 그렇지 않은가?”

귀족들은 항변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공작의 말에 동의했다.

마침내, 북부의 사람들은 황가의 이성적이지 못한 조치에 맞대응하기로 결정했다.

그 기세등등함을 꺾고 제 발밑에 조아리기를 바랐던 황제에겐 그리 좋은 흐름이 아니었다.

이로 인해 귀족들의 반대 또한 상당해졌다.

세금 관련 조치가 떨어졌음에도 북부는 꽤나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북부가 비축하고 있는 식량의 양은 상당했고, 상인들의 피해 또한 공작가에서 일정 부분 해결해 주었다.

“공작가에서 이번 세금 관련으로 피해를 받은 걸 일정 부분 보상해 주겠다고 선언했다며?”

“게다가 상인 조합에게 양해 또한 구했다고……”

“그래, 그 정도면 당분간은 참을 만하지.”

솔직히 북부의 상인들 또한 황가의 난데없는 조치가 마음에 들 리 없었다.

북부에 세금을 매긴다니, 그렇다면 북부 사람들을 같은 제국민으로 취급조차 하지 않는다는 뜻인가.

그런 불만 때문에, 상인들은 공작가를 충실히 따랐다.

결국 오히려 혼란에 빠져든 쪽은 제도 쪽이었다.

“아니, 북부에 세금을 물린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제도 귀족들은 느닷없는 사태에 비상이 걸렸다.

이 위험한 조치는 황제의 독단으로 이루어졌다.

어느 정도로 독단적인 판단이었느 냐 하면, 황녀와 황후는 물론이고 황제 휘하 제도 귀족들까지 모두 전 혀 몰랐던 일일 정도였다.

“페하!”

그로 인하여 황궁은 아침부터 굉장히 시끄러웠다.

론도 후작을 필두로 한 귀족들이 모두 세금 문제가 터지자마자 황궁에 입궁한 것이다.

황녀와 황후는 조금 늦게 상황을 파악하게 되었다.

“아버지?”

북부에 세금을 물리다니, 같은 제국 안에서 세금을 물린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당황한 황후는 황녀를 대동하고 당장 제 아버지인 론도 후작을 찾아갔다.

론도 후작은 막 황제에게 알현 요청을 넣고 알현실로 찾아가고 있었다.

저를 부르는 목소리를 들은 후작은 뒤를 돌아보았다.

“황후 폐하.”

그와 동시에 후작은 황녀에게도 짧게 목례해 보였다.

“인사는 괜찮아요. 그보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북부에 세금을 물리다니요?”

황후가 당황한 표정으로 제 아버지를 채근했다.

두통이 오는지 후작이 미간을 꾹꾹 눌러 댔다.

“북부도 같은 제국이지 않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폐하께서 그렇게 명령하셨습니다.”

황후는 와락 얼굴을 찌푸렸다.

“폐하께서요?”

“예. 그래서 지금 북부에서 전량 수입되는 모피가 품절 상태에 빠져 버렸습니다.”

후작은 드물게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려 후작은 무진 애를 써야했다.

“폐하의 명령 때문에, 북부에서는 더 이상 모피를 제국 전체에 공급하지 않겠다 선언했어요.”

“예? 북부에서 모피 공급이 중단된다고요?”

황후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모피가 공급되지 않으면 피해를 보는 쪽은 북부보다 오히려 남부 쪽이었다.

북부는 당장 돈이 급하지 않지만, 남부는 모피가 급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겨울은 조금 쌀쌀해서, 모피의 필요량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물량과 질 모두, 북부 이상으로 훌륭한 곳은 없으니까요.”

“……”

“또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 은, 모피를 독점하여 공급하는 건 북부라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황녀와 황후의 얼굴에 순식간에 핏기가 가셨다.

북부에서 들여오는 모피는 물론 고가의 것도 있었지만, 평민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사용하는 저렴한 모피 들도 포함되어 있다.

“올해 날씨가 상당히 차가운 것도 그렇고…… 게다가 1월에는 신년 무 도회가 끼어있습니다.”

북부에서 나는 것만큼 질 좋은 모 피는 흔하지 않았으니, 당장 큰 타격을 받는 건 평민들이었다.

또한 신년 무도회처럼 대규모 행사가 끼어있다는 점에서도 현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다.

“모피의 필요량은 계속 늘어날 텐데, 제도에서 북부로 들여오는 모피 양이 줄어든다면……”

론도 후작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생각도 하기 싫었다.

비록 모피는 사치품에 가까운 물건 이었지만 올해 겨울에는 사치품 이 상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후작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아마 모피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 솟을 겁니다.”

“그렇다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쪽은 오히려 평민들이 되지 않겠습니까.”

후작의 한숨 섞인 말에 황녀의 동 공이 격하게 떨렸다.

“게다가 북부에서 수입하여 들여오는 물품은 모피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으니까요.”

후작은 머리가 아팠다.

최대한 황제에게 호의적으로 생각 해 보았으나, 그럼에도 황제가 왜 이런 판단을 내렸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일은 결국 황가의 제 살 깎아 먹기 였으니까.

“최근에 식재료도 양식하여 들여오는데, 그럼 식당들의 점주들도 피해를 입게 될 겁니다.”

양식을 통해 고급 식재료였던 굴을 포함하여 갖가지 어패류와 해산물을 제도에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공작가에서 사비를 들여 빠른 운송 수단을 확립하였기에 가능했다.

특히 제도는 바다와 인접한 위치가 아니었기에 북부에서 들여온 신선한 해산물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북부는 전혀 아쉬운 처지가 아니예요.”

후작은 다소 신경질적인 말투로 입을 열었다.

현 상황 자체가 골치가 아파서 죽을 것 같았다.

“비록 북부는 날씨가 차갑긴 하지만, 당분간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상태니까요.”

현 황가와 공작가의 상황을 날카롭 게 꿰뚫어 본 자 특유의 판단이다.

후작이 다시 말을 이었다.

“공작가에서 비축해 두고 있는 식 량 자체도 어마어마 하거니와, 바다와 산도 인접해 있어요.”

그 말은 곧, 공작가는 당분간 버티는 것에 큰 무리가 없을 거라는 뜻 이다.

북부 자체가 농성을 할 수도 있었다. 그 정도로 북부는 황가의 무례 한 행동에 불만이 쌓여 폭발하기 직 전인 상태였다.

“북부가 남부에서 유의미하게 들여오는 건 그나마 곡물 정도일까요?”

아무래도 황제는 남부가 북부에 판매하는 곡물을 고려하여 저러한 무리수를 둔 것 같았지만.

“하지만 적어도 헤센바이츠 공작은 생각 없이 일을 벌이는 사람이 아니 지요.”

황후와 황녀는 나란히 침묵했다. 후작은 헤센바이츠의 젊은 공작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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