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화
아델라이데는 처음으로 테론의 포옹을 거부하지 않았다.
품에 고개를 기대며 그녀는 울었다.
“당신의 사랑은 잘못되었어요.”
그 말에 테론은 침묵했다.
아델라이데는 눈을 내리떴다.
젖은 속눈썹이 옅은 그늘을 드리운다.
“그리고 내 사랑도요.”
창백한 뺨 위로 주르륵 눈물이 흘러 내렸다.
소리 없는 울음이 방 안에 고였다.
테론의 품 안에서, 죄책감을 곱씹으면서 아델라이데는 의문을 품었다.
이런 내가 자카리 곁에 계속 있어 도 되는 걸까.
언젠가 내가 나의 아들을 죽이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녀는 가볍게 어깨를 떨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끝없이 이어졌다.
사랑했다고 믿었던 옛 연인의 배 신, 그리고 아들에 대한 죄책감.
그 두 가지의 감정만 있었더라면 차라리 좋았을 텐데.
그녀의 연약한 정신은 강대한 용의 폭주를 받아들이기엔 너무나도 약했다.
그녀는 눈을 감으면 괴물 같던 그 모습이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무서워.’
아델라이데는 어깨를 끌어안으며 온몸을 떨었다.
온통 새하얗게 물들던 세상, 바닥에서 솟아오르던 날카로운 얼음.
작살에 꿰인 물고기처럼 심장을 꿰 뚫린 자신의 예전 약혼자. 정말로 두려웠다.
‘무서워.’
그녀는 입술을 달싹거렸다. 자카리는 여전히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가끔씩 말도 안 되는 공포 가 불쑥 치솟아 오른다.
그 아이가 괴물이 되어 그녀를 갈 기갈기 찢어 놓을 것 같은.
‘과연 널 이 세상에 풀어놓아도 괜찮은 걸까?’
자카리를 처음 본 순간 떠올렸던 그 생각은, 마치 가시처럼 박힌 채 도무지 사라지지 않는다.
억지스러운 생각이라는 것을 안다. 그때의 자카리는 명백히 그녀를 지 키려고 했었다. 하지만.
만약 저 아이가 괴물로 각성하여 날 죽이면 어떡하지? 나뿐 아니라,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모든 사람들을 해한다면?
‘내가 낳은 아이니까, 내가 책임져 야 해……’
그녀는 기이한 충동에 사로잡혔다. 괴물을 낳은 건 자신이다.
그러니 괴물을 죽이는 것도 그녀 자신이어야 한다.
제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지 못할 정도로 그녀는 벼랑 끝에 몰려 있었다.
‘세상에 이 괴물을 내보내서는 안 돼.’
아델라이데는 홀린 듯이 시선을 들어 올렸다.
낳은 것도 자신, 죽이는 것도 자신. 그건 아이를 위한 책임감이었다.
그녀에게 광증이 발병한 때는, 자카리와의 일이 발발한 지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테론은 제 아내가 작게 몸을 웅크린 채, 파리한 얼굴로 뜻 모를 말을 중얼거리고 있는 것을 가만히 지켜 보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스스로도 아마 잘 모를 것이다.
“으응, 맞아. 그래야지……”
아델라이데는 품에 꼭 끌어안은 인 형을 고쳐 안았다.
포대에 싼 인형을 마치 제 아이라도 되는 것처럼 소중하게 보듬는다.
탁한 초록색 눈동자가 인형을 똑바로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우리 자카리.”
인형에게 소공작의 이름을 붙이며 중얼거리는 그 모습은 공작성안에 한껏 소문이 퍼진 지 오래였다.
공작 부인이 반미치광이가 되었다는 소문.
지금은 어떻게든 입단속을 시켜 소 문이 퍼지지 않도록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테론은 입술을 잘근 짓씹었다.
‘아델라이데.’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건 괜찮았다.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주었던 것 도, 그와 함께 도망치려 했던 것도 괜찮았다.
하지만 그녀가 저렇게 제정신을 잃어버리고 점차 미쳐 가는 것은…….
“……”
테론은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아델라이데를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순간이 떠오른다.
신록이 우거진 밤의 정원, 청량한 공기, 군데군데 꿈결처럼 흔들리던 화려한 불빛.
생기발랄하게 웃고 있던, 나무의 정령처럼 아름다웠던 그녀.
“아델, 너를 망가뜨린 건……”
절망이 목을 조른다. 그의 귓가에 강제로 속삭인다.
아델라이데가 저렇게 된 건 자신 때문이고, 또한 자신이 그녀에게 잉태시켰던 자카리 때문이라고.
그는 순간 강렬한 증오를 느꼈다.
‘……자카리.’
아이의 이름만을 읊조리며 멍하니 앉아 있는 아델라이데.
그 모습을 바라보며 시시각각 비탄에 잠기는 자신.
테론의 사랑은 너무 작았기에, 그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하나 뿐이었다.
‘이건 모두 자카리 때문이야.’
그리하여 테론은 아이에게 풀 길 없는 원망을 퍼부었다.
그러지 않으면 제가 버틸 수 없어서.
어느 창백한 새벽, 아델라이데는 자카리의 방을 찾아왔다.
자카리는 죽은 듯이 잠들어있었다.
“자카리.”
“……”
아델라이데는 의자를 끌어다 침대 곁에 앉았다.
얕은 숨을 내뱉는 자카리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하기만했다.
그녀는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아 이의 손등 위로 이마를 기댄 채 소곤거린다.
“이런 선택을 해서, 정말, 정말로…… 미안해.”
그 말은 자카리가 어머니에게 듣게 된 최초의 사과이자, 최후의 사과가 되었다.
아이는 잠에서 깨어나려 들지 않는다.
의사가 말하기를 몸은 다 회복되었 다했다. 그런데도 눈을 뜨지 않는 건……
“……너도 네가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아델라이데는 질끈 눈을 감았다.
툭툭 떨어지는 눈물들이 침대 시트를 동그랗게 적셔 나갔다.
“너무 걱정하지 말렴. 널 보내 주고 엄마도 금방 따라갈 테니까……”
그렇게 말한 그녀가 자카리를 침대 시트로 잘 감싸고 안아 올렸다.
사박사박 걸음을 옮겨 공작성의 첨탑으로 향한다.
까마득한 높이를 걸어 올라가는 그 얼굴엔 단호한 확신이 가득했다.
“그래, 처음부터 이렇게 했었어야 했어.”
아델라이데는 잠든 아이의 이마를 쓸어내리며 다정하게 소곤거렸다.
아이가 깨어있을 땐 한 번도 보여 주지 않았던, 봄의 녹음을 닮은 따스한 눈동자.
그녀가 아이의 흰 이마에 키스했다.
“엄마가 미안해, 자카리.”
그렇게 속삭인 아델라이데가 난간에 비스듬히 기대어 첨탑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하얀 조각달만이 파리하게 빛나는 푸른 새벽.
그녀는 가슴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괴물을 낳은 어미와, 어미에게서 단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어린 괴 물.
애초에 이 세상에 태어난 것부터 잘못이었다.
“이제 금방 편해질 테니까……”
아델라이데는 아이를 와락 끌어안았다.
조그맣고 따스한 아이의 몸.
그녀가 책임지고 목숨을 거두어 줘 야 하는 그 몸.
그녀는 난간 위에 올라섰다. 바로 그때, 커다란 고함 소리가 들렸다.
“아델라이데!”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가 그녀의 귓전을 쨍하니 울렸다.
그녀는 황급히 뒤를 돌아본다.
“테론……?”
그가 겨울 설원처럼 창백하게 질린 얼굴이 되어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렸다.
누구든지 그녀를 방해하면 안 된다.
그녀는 아이를 부둥켜안은 채로 뒤 로 물러났다.
“가까이 오지 말아요.”
“아, 아델? 제발.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테론이 더듬거리며 아델라이데를 불렀다.
그녀는 경계심 가득한 눈초리로 테 론을 쏘아보았다.
“우리를 이대로 보내 주세요.”
“보낸다니? 아델, 잠깐만. 제발 좀 진정하고……”
“괴물은 마땅히 괴물을 낳은 어머니와 함께 떠나야지요.”
그 말에 테론은 누군가가 뺨을 후려친 것 같은 충격에 휩싸이고 말았다.
아델라이데는 자카리를 절대 빼앗기지 않겠다는 것처럼 힘을 주어 품 고 있었다.
그녀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를 보내 주세요.”
“아델, 그러지 마. 응?”
그렇게 애원한 테론이 주춤주춤 아델라이데에게로 다가갔다.
그의 사나운 시선이 고요히 잠들어 있은 자카리에게로 향했다.
새파란 눈동자가 분노로 확 불타올 탔다. 그가 입술을 깨물었다.
‘만약 네가 없었더라면.’
안다. 비이성적인 증오라는 것쯤.
자카리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으며, 오히려 어른스럽지 못한 테론과 아델라이데 사이에서 고통만 받은 피 해자라는 것도.
그럼에도 테론은 아들이 미웠다.
‘너만 없었더라면…… 아델은 이렇게까지 몰리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그건 차라리 눈먼 분노에 가까웠다. 스스로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알 면서도, 원망을 쏟아 넣을 대상이 필요하여 그런 것이다.
테론은 아델라이데의 손목을 확 붙들었다.
그녀는 물 밖에 건져진 물고기처럼 마구 몸부림을 쳤다.
짜랑짜랑 울리는 목소리가 테론의 귀를 가득 메웠다.
“놔요, 난 자카리와 함께 떠나야 해!”
“아델라이데!”
“난 저 아이의 엄마야, 그러니까 저 아이를 죽이지 않으면……!”
그렇게 고함치며 실랑이를 하던 중, 아델라이데의 몸이 커다랗게 휘청거렸다, 난간 너머로 그녀의 몸이 홱 넘어간다.
테론의 눈동자가 경악에 가득 찼다. 테론은 처절하게 아내를 불렀다.
“아, 아델!”
몸이 넘어간 건 아델라이데 혼자뿐이었다.
힘이 빠진 그녀의 손에서 자카리의 몸이 미끄러져 공작성의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
등부터 뒤로 넘어갔기에, 그녀의 시선은 순식간에 허공으로 향했다.
검푸른 밤하늘, 총총히 흩어진 사 금파리 같은 별들, 그리고 창백한 푸른색의 달.
‘아.’
그녀의 창백한 입술 위로 희미한 미소가 스쳐 지났다.
제 아들의 눈동자와 꼭 닮은 달빛을 받으며 아델라이데의 몸은 아래 로, 아래로 끝없이 추락했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떠올린 생각은……
‘난 드디어 자유로워지는구나.’
광! 그녀의 몸이 바닥에 부딪쳤다. 그녀는 긴 숨을 한차례 내쉬고,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데에에엘!”
테론이 찢어질 것처럼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녀는 신음 소리조차 내뱉지 않았다.
고통보다도 후련함이 훨씬 더 컸다.
그녀가 작게 입술을 달싹였다. 미안해요, 테론. 미안해, 자카리.
“……”
죽은 나비인 양 힘을 잃은 속눈썹 이 파르르 떨렸다.
시야가 흐릿해진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테론은 아델라이데가 그렇게 된 건 자카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테론에게는 누군가 자신의 죄책감을 전가할 대상이 필요했고, 마침 그에 어울리는 상대도 있었다.
그리하여 자카리는 눈과 얼음으로 쌓아 올린 세상에 갇혔다.
“이번 마수 토벌에 너도 참여하거라.”
열 살도 되지 못한 아이에게 말하 기에는 너무 가혹한 말이다.
하지만 소년은 그저 담담했다.
“왜 그런 표정이지? 넌 어미까지 잡아먹은 괴물 아닌가.”
“……”
“마수들 앞에서 폭주하면 그만일 것을.”
테론은 차갑게 웃었다.
새파랗게 날을 세운 시선이 자카리의 온몸을 난도질할 것처럼 본다.
“설마 괴물도 상처받는 게냐?”
비웃음 섞인 목소리로 테론은 질문을 던진다.
테론은 한 음절 한 음절, 못 박듯이 말을 이었다.
“잊지 말거라, 어린 괴물아.”
저를 꼭 닮은 새파란 눈동자가 자 신을 본다.
테론은 그 눈을 파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네가 내 아내를 잡아먹은 그 순간부터……”
“……”
“……난 평생 널 사랑할 마음이 없다.”
부자의 관계를 근원부터 잘라 내는 말이었다.
하지만 잔인한 말을 들으면서도 자카리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테론은 경멸과 혐오에 가득 찬 눈으로 소년을 바라보다가, 이내 뒤돌아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