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강아지를 소중하게 끌어안은 이엘리를 보며, 자카리는 자꾸만 자갈이 가슴속을 굴러다니는 것 같은 불편 한 기분을 느꼈다.
뜬금없이 강아지를 주워 온 안주인의 행동에 메리는 둥그렇게 눈을 떴고, 깜짝 놀라 묻는다.
“어머나, 웬 강아지인가요?”
“이 앞에서 데려왔어. 비를 맞고 있기에.”
“우선 씻겨야겠어요. 세상에, 임신한 것 같은데 너무 말랐네요.”
그렇게 말한 메리가 강아지를 받아 안았다.
귀찮을 텐데, 그래도 흔쾌히 강아 지를 맡아 주니 다행이었다.
강아지가 작게 꼬리를 흔들었다. 강아지를 요모조모 살펴보던 메리가 입을 연다.
“밥을 제대로 못 먹어 꽤 마르긴 했지만, 딱히 아픈 곳은 없어 보여 요.”
“그래?”
“네. 대신 해산까지 얼마 안 남은 것 같아서…… 저희들이 잘 살펴볼 게요.”
“고마워, 메리도 바쁠 텐데.”
그녀는 진심을 담아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말에, 메리가 생긋 눈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예요. 저희보다는 마님께서 더 바쁘시잖아요.”
“하지만.
“마님께서 저희를 많이 생각해 주 시는 거, 잘 알고 있어요.”
다정한 말에 이엘리는 심장을 깃털 로 문지르는 것처럼 간지러워졌다. 메리는 강아지를 추슬러 안았다.
“그러니 저희도 이 정도는 도와 드려야지요.”
“메리.”
“너무 걱정 마세요, 강아지는 씻기고 밥을 먹여서 다시 마님 방으로 올려 보낼게요.”
이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작성 사람들이 그녀를 신뢰한다. 그 사실에 마음이 따스해졌다.
타닥타닥 불꽃이 장작을 집어삼키는 소리가 났다.
음식과 물을 배불리 먹고 깨끗해진 강아지는 보드라운 천에 감싸여 잠 들어있었다.
이엘리는 그 곁에 쪼그려 앉아 강아지를 살펴보았다.
“이엔.”
“아, 자카리. 왔어?”
이엘리는 생긋 웃었다. 자카리는 고개를 숙여 강아지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미간이 구겨졌다.
‘불편해.’
그는 저 강아지가 불편했다. 정확히는 그녀가 강아지에게 보이는 애정이 불편했다.
이성적이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가 멀어질 것만 같은 기분. 자카리는 그녀에게 애써 태연한 척 물
었다.
“강아지 이름은 뭐야?”
“강아지 이름?”
이엘리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갈 색 털을 내려다보던 이엘리가 애정 어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토리.”
“토리?”
“토리라고 부를래.”
그건 전생에 이엘리가 키웠던 강아지의 이름이다.
자카리는 활짝 웃는 제 아내를 망연히 바라보았다.
어째서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일까. 자카리는 저도 모르게 이엘리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자카리?”
“……아, 아무것도 아니야.”
의아한 얼굴로 저를 바라보는 이엘리를 향해 자카리는 어색하게 눈매를 접었다.
그는 자신이 느끼는 이 위화감을 설명할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침착한 척하는 수밖에.
“그건 그렇고, 요새 매번 얘만 보 고 있는 것 같은데.”
“그거야 토리가 해산하기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까 그렇지.”
그녀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의아한 목소리로 질문을 한다.
“자카리, 오늘 이상하게 예민해 보여. 괜찮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자카리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이엘리에게 간파당할 정도면 제가 얼마나 초조하게 굴었는지 알 만하 다. 시시때때로 그녀가 아주 먼 곳으로 떠나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런 불안감을 어떻게 그녀에게 설명하겠어.’
이미 한 번 제 불안감을 이야기했 고, 이엘리는 그를 떠나지 않는다고 약속해 주었다.
그렇다면 이엘리를 믿고 있으면 될 일이었기에 자카리는 술렁거리는 마음을 애써 꾹꾹 접어 넣었다.
이튿날. 오랜만의 늦잠에서 깬 이엘리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메리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마님, 어제 새벽에 토리가 새끼를 낳았어요.”
“정말?”
그녀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이런 기쁜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얼른 자카리에게 말해 줘야겠다.”
당연히 자카리였다. 메리는 이엘리의 반응을 이미 예상했다는 것처럼 생글생글 미소 지었다.
“그러세요. 주인님께서는 아마 기사단 건물에 계실 거예요.”
“고마워, 메리. 그런데 오늘도 자카리가 훈련을 담당하는 날이었던가?”
“아뇨,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메리도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보 통 기사들의 기초 체력 훈련은 기사 단장이 따로 맡아서 진행하고, 자카리는 기사들과 직접 대련을 해 주는 형식으로 주 3회 정도 기사들을 훈련 시킨다.
‘하지만 오늘은 자카리가 대련하는 날이 아닌데.’
이엘리는 의아한 얼굴이 되어 기사 단 건물을 찾아갔다.
자카리는 서류 더미에 파묻혀 있었다.
“자카리!”
“이엔.”
자카리가 빙글 몸을 돌리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에게 다가갔다.
“아침 일찍부터 일하는 거야?”
“살펴볼 서류가 좀 있어서.”
“도와줄까?”
“아냐, 그럴 필요는 없어. 이엔 너 도 일이 많잖아.”
부드럽지만 어딘가 날이 서 있는 태도였다.
그녀는 멈칫했다. 왜지, 좀 피곤하 기라도 한 건가.
“있잖아, 토리가 새끼를 낳았대.”
“그래?”
“응. 그래서 함께 새끼들을 보러 가자고 하려고 했는데……”
이엘리는 말꼬리를 흐렸다.
이상하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이엘리는 조심스럽게 입술을 열었다.
“혹시 뭔가 좋지 못한 일이라도 있어?”
“아니, 그런 건 아니야……”
“그런데 왜 그렇게 표정이 안 좋아?”
“내가?”
그렇게 묻던 자카리는 문득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설마 불편한 마음을 티 내고만 건가.
“그런 거 아니야, 이엔.”
손을 떼어 내자, 자카리의 얼굴 위 론 평소와 같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는 여상하게 말했다.
“가자.”
“아, 응……”
가면처럼 미소를 덮어쓴 자카리를 보며 이엘리는 별달리 말을 걸지 못했다.
아닌데, 뭔가 정말로 심기가 불편한 것 같은데.
이엘리는 애매한 기분으로 자카리와 함께 건물을 빠져나왔다.
자카리가 다소 기분이 가라앉아 있었다는 건 아무래도 제 착각이었나 보다.
지금의 그는 평소와 전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이엘리는 자카리의 손을 잡아끌며 개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거 봐, 귀엽지?”
이엘리는 잔뜩 신이 나서 그에게 속삭였다.
자카리는 젖을 물리는 어미 견과 꼬물거리는 강아지들을 가만히 내려 다보았다.
갈색 어미 견의 품 아래로 작은 강아지들이 다섯 마리나 있었다.
“색깔이 다양하네.”
점박이와 눈처럼 흰 강아지, 그리고 어미를 닮은 갈색 강아지들이 뒤 섞인 모습이었다.
해산한 지 얼마 안 되어 예민한 어미 견을 배려하기 위해 두 사람은 손은 대지 않고 지켜보기만 했다.
“그, 있지.”
그러던 중 이엘리는 입술을 작게 달싹거렸다. 그대로 그녀가 자카리의 손가락을 감아쥐었다.
“응?”
“우리도 언젠가……”
자카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의 뺨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녀가 손가락을 꼬물거렸다.
“……아이도 가질 수 있겠지?”
“아, 아이?”
“그러니까, 공작가의 후계자 생산 은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니까……!”
이엘리는 횡설수설 말을 이었다. 두 눈을 동그랗게 떴던 자카리가 저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이엔.”
“응?”
“고마워.”
“……도대체 뭐가?”
뺨을 붉혔던 이엘리는 이제 아리송한 얼굴이 되었다.
자카리는 마주 잡은 손안에 힘을 준다.
‘아마 넌 모르겠지.’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지극한 안도 감이 들었다는 건.
그녀가 아이를 먼저 얘기한다는 건, 그와 함께 미래를 설계하는 건. 그녀가 스스로 여기에 남아 있으려
고 한다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냥, 아무것도 아니야.”
“너 정말 요새 이상해.”
“미안. 좀 성인답지 못하게 행동했 지.”
자카리는 지극히 행복한 얼굴로 대답했다.
어리둥절해진 이엘리가 자카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고작 강아지들에게 질투나 하고.”
“뭐?”
“그런 게 있어.”
자카리는 싱긋 미소 짓고는 허리를 굽혔다.
그가 꼬물거리는 강아지들을 향해 다정하게 속삭인다.
“미안하다.”
물론 개가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의아함은 개들이 아닌 이엘리의 몫이었다.
“뭐가 미안해?”
“그냥, 그런 게 있어.”
그렇게 대답한 자카리가 가만히 눈 매를 접었다.
뭐, 자카리의 기분이 좀 풀린 것 같아 다행이다.
이엘리는 대충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강아지들만이 평화롭게 이불 위에서 꼬물거렸다.
* * *
토리와 새끼 강아지들은 기사단원 들이 맡아 기르기로 결정했다.
새끼 강아지들을 군견으로 키워 보겠다며 몇몇 기사들은 어깨에 힘을 주었지만, 사실 이엘리는 그건 불가 능할 것 같았다.
“군견이라니. 저 작은 애들이 군견이 되는 게 가능해?”
“그럴 리가. 그냥 기사들이 개들을 키우고 싶은 것뿐이겠지, 핑계 대기는.”
자카리는 냉정한 얼굴로 그렇게 평했다.
평화로운 시간이 흘렀다. 이엘리가 준비하던 사업들도 각자 궤도에 오르던 와중, 드디어 그날이 찾아왔다.
이엘리가 살롱을 오픈하는 날이었다.
이엘리는 스스로의 살롱을 상당히 공을 들여 준비했다.
북부의 귀부인들에게 모조리 초대장을 돌렸고, 공작성의 별저도 새로이 열었다.
모조리 로렌 백작 부인의 살롱을 누르기 위해서였다.
“살롱의 본래 목적은 보통 이거지.”
“뭔데?”
“주기적으로 귀족 가문의 객실을 개방하여 문화계의 명사들을 초대하는 거야.”
결전의 그날, 아침 일찍 일어나 자카리와 식사를 하던 그녀는 결연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식사나 다과를 제공하면서, 작품에 대해 토론과 비평을 나누는 것.”
“아, 그래?”
잘 익은 달걀 프라이를 우물거리던 자카리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요새는 그 목적이 좀 변질 되어서 귀부인들이 티타임을 하는 정도로 바뀌었어.”
마치 적진의 장수를 찌르기라도 할 것처럼 그녀가 포크를 움켜쥐며 단호하게 말을 잇는다.
“난 그 목적을 다시 되살리고 싶어.”
“목적을 다시 되살린다면……”
“그저 예술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티타임을 하는 건 이제 진부하잖아.”
포크를 들어 소시지 하나를 쿡 찍 은 그녀가 포크를 흔들어 댔다. 연녹색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그러니까 난, 여성들이 직접 원하는 예술품을 창작할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어.”
“예술품을 직접 만든다고?”
자카리는 조금 놀라 버렸다. 그런 종류의 것들은 보통 남성들의 영역으로 치부되곤 했다.
여성이 직접 예술계에 진출하는 건 흰 눈을 뜨고 바라보지 않나. 그녀는 당연하게 말을 이었다.
“응.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노래를 하거나…… 방법은 많잖아?”
이엘리는 눈을 가늘게 뜨며 답했다.
자카리는 눈동자를 굴렸다. 확실히 신선하긴 할 것 같다.
“또한 능력 있는 여성 예술가들이 있다면, 그들을 초대하여 그들의 예술을 보고 싶어.”
“하지만 여성 예술가 자체가 그리 많지 않을 텐데.”
“그러니까 더 소중한 거지.”
그녀의 대답에 자카리는 픽 웃음을 터뜨렸다.
이엘리와 함께 있으면, 대부분의 무거운 고민들도 가벼워지곤 한다.
이엘리는 접시를 깨끗하게 비우고 단호한 동작으로 포크를 내려놓았다.
“잘 먹었습니다. 역시 싸우러 가기 전에는 배부터 채워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