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0화 (110/196)

110화

“네 얼굴을 보는 시간을 줄이느니, 차라리 아침잠을 줄이는 편이 나아.”

“……”

이런 종류의, 공작 기준으로는 사소한 애정 표현들 말이다. 결국 포기한 쪽은 공작 부인이었다.

“그래, 네가 그게 정 편하다면.”

이엘리는 뚱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는 제국 최고의 기사다. 그가 가진 겨울의 마법은 그렇다 치더라도, 신체 능력으로도 최상위였다.

그러니까 뭐, 자기 피곤함은 알아서 잘 관리하겠지. 그녀는 편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데?”

“음, 축제에서 어떤 상품을 내놓을 지에 대해서?”

이엘리는 어깨를 으쓱거려 보였다. 자카리는 눈동자를 굴렸다.

그가 의아한 어조로 되물었다.

“상품?”

“응. 손님들을 끌어모으려면, 사람들을 유혹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 어야 하니까.”

그녀는 펜을 손안에서 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엘리가 생각에 골몰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어쨌거나 이번 축제의 목적은 해산물을 홍보하는 거라, 그에 맞는 일을 해야 할 텐데……”

자카리는 말없이 이엘리를 바라보았다.

그는 생각에 곰곰이 빠져 있는 그녀의 얼굴을 좋아했다.

긴 속눈썹을 나비처럼 내리깔고 여 러 상념에 집중하는 얼굴.

그는 무심결에 손을 뻗었다.

“……?”

이엘리는 의아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이엔, 다 괜찮지만.”

“응?”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뺨을 스치고 입술 언저리를 어루만졌다.

요새 그녀가 잠까지 줄이며 일에 골몰하는 것은 자카리도 잘 알고 있었다.

가실거리는 입술을 톡 두드리며, 그가 속삭였다.

“너무 무리하지는 마.”

자카리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이엘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매번 밤에 잠도 재우지 않으려 들면서, 그런 말을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

그 말을 들은 자카리는 말문이 막힌 얼굴이 되어 버렸다.

이엘리는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농담이야, 농담.”

“……정말로 농담이야?”

“뼈가 있는 농담이긴 하지만.”

그녀는 책상 위에 탁 소리 내어 펜을 내려놓았고, 그의 크라바트를 손으로 매만지며 말했다.

“나도 즐거우니까 괜찮아.”

“……”

이엘리의 말을 들은 자카리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침대에선 그렇게 격정적인 주제에, 이렇게 놀릴 때마다 수줍어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그의 목을 끌어당긴 그녀가 깊게 키스했다.

“축제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그거야. 먹거리.”

이엘리의 확고한 목소리를 들은 자카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의 일주일 동안 고민한 끝에 이엘리가 내리게 된 결론이었다.

음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인의 피가 여기서 다시 들끓는다.

“먹거리?”

“응. 그래서 이번 회의에서도 그런 쪽을 주로 다뤘어.”

이엘리는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녀의 전생은 차치하더라도 사실 음식은 중요하다.

축제에서 가벼운 간식거리를 먹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데. 제 아내를 보며 그는 웃음을 참았다.

“맞아, 그렇지.”

“그런데 어떤 먹거리들을 제공할지 에 대해서는 아직 좀 고민 중이야.”

그녀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하자, 자카리는 미간을 좁힌 그녀를 바라보다 불쑥 물었다.

“그런 문제까지 네가 고민해야 하는 거야?”

“물론이지. 이런 문제는 솔선수범 해야 한다고.”

그녀는 검지를 곧게 세우고 살랑살랑 흔들어 댔다.

그리고 자카리는 또 한 번 이엘리의 일 중독적인 면모에 감탄했다.

이엘리는 양손으로 턱을 된 채, 두 눈을 가늘게 뜨면서 중얼거렸다.

“한 손에 들고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주로 해서, 다른 음식도 곁들 이면 좋을 것 같은데.”

“……”

“그리고 해산물이 주가 되어야겠지.”

황가로 따지자면 황후가 제도에서 열리는 축제에 대해 고민하는 형국이었지만, 자카리는 따지지 않기로했다.

이엘리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거다. 대신 자카리는 그녀와의 대화에 집중했다.

“해산물이라……” 

“지금 생각나는 건 고작 꼬치 정도인데, 그건 이미 흔하잖아. 뭔가 독특한 게……”

독특한 것. 제국에서 먹지 않는 것.

이엘리는 멍하니 고민하다 말고,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오징어 튀김? 아, 그러고 보니 오징어 튀김이 먹고 싶네.”

파를 종종 썰어 넣은 간장에 찍어 먹으면 맛있는데.

그녀는 입맛을 다셨다. 자카리가 질색했다.

“오징어나 문어를 먹을 수도 있어?”

“그럼, 얼마나 맛있다고.”

그녀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오징어나 문어는, 모양 때문인지 제국에서는 별로 소비되지 않는 식 재료였다.

북부 야만족들은 먹는다고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욱 꺼려 하는 식재료.

“그럼 오징어나 문어를 기름에 곧 바로 튀기는 거야?”

자카리의 물음에 이엘리는 순간 말 문이 막혔다.

아닌데. 오징어 튀김은 그런 음식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튀김옷을 입혀서……”

어떻게든 설명해 보려던 이엘리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이곳에 없는 요리를 설명 하려니 역시 어렵다.

이엘리도 어떻게든 제국식 식사에 적응해서 살고 있었지만, 지나온 전 생의 요리들이 그리웠다.

‘아, 튀김이랑 떡볶이 먹고 싶다.’

이엘리는 뚱하니 생각했다.

솔직히 쌀과 고추장을 구할 수가 없으니 떡볶이는 불가능했다.

‘식재료를 기름에 볶거나, 혹은 기름에 통으로 넣어서 튀기는 음식들은 있지만……”

이엘리는 미간을 좁혔다. 현재 제국에서는 이엘리 기준을 충족하는 ‘튀김’은 없는 걸로 안다.

그러니까, 튀김옷을 두툼하게 입혀 튀겨 내는 음식 말이다.

그녀는 저도 몰래 놀란 낯을 했다.

‘가만. 튀김?’

그녀가 멈칫하더니, 그대로 눈가를 좁힌다.

나 뭔가 재밌는 것을 생각해 낸 것 같은데. 튀김이라?

‘튀김 정도는 재연하는 것도 가능 하지 않을까?’

비록 이엘리는 요리에 재능은 없었 지만, 튀김을 어떻게 만드는지는 알고 있었다.

곱게 체를 친 밀가루에 소금을 섞어 튀김옷을 만들고, 기름에 넣어 익혀 만드는 것. 그녀는 조금 진지 해졌다.

‘그게, 나에게는 너무 당연한 음식 이라서……”

다른 사람들이 튀김옷을 입혀 튀기는 튀김의 존재를 모른다는 건 생각 하지 못했다.

자카리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그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를 불렀다.

“이엔?”

“아, 미안.”

그녀는 파드득 생각에서 벗어났다.

갓 튀겨 바삭바삭한 튀김옷을 생각 하니 절로 군침이 돈다.

“그건 그렇고 자카리, 튀김이야.”

“……튀김이라니?”

“이번 축제에서는 튀김을 판매할 거야.”

이엘리는 잔뜩 신이 나서 그렇게 말했고, 자카리는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한입 크기로 잘라서 튀기면 축제를 구경하며 돌아다니면서 먹기에도 용이하다.

게다가 장점은 하나 더 있었다.

‘해산물은 변질이 잘되잖아.’

그러나 고온에 튀겨 만드는 튀김은 변질 위험도 적다.

이엘리는 자카리에게 인사를 남기는 것조차 잊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뒤에 남겨진 그는 황망한 얼굴로 아내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그날 이후, 공작 부인은 내내 공작성의 주방에서 살았다.

공작 부인의 지휘 아래 주방장은 몇 가지 요리들을 개발해 냈다.

공작성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행정 관들과 어민들까지 모두 공작 부인 이 새로 개발한 요리들을 시식했고, 모두 호평을 했다.

시간이 지나, 축제의 날이 다가왔다.

풍어제를 겸한 축제는 규모가 크지 않았다. 오히려 지역 축제에 가까웠 다.

처음부터 큰 규모로 치르면 위험부담이 있다는 공작 부인의 판단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방문자는 무척 많았다.

“공작 부인께서 직접 기획 하셨다면서요?”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요?”

그 이유는 바로 공작 부인이 축제를 기획했다는 것, 그 하나 때문이었다.

결혼식 이후 여러모로 북부에서 인 기를 끌게 된 공작 부인이다.

그런 공작 부인이 공식적으로 행사를 기획하다니.

“음, 솔직히 그런 식으로 입소문이 나게 된 건 몰랐지만…… 뭐, 사람들이 많이 몰리면 좋지.”

그녀는 떨떠름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공작 부부는 현재 축제가 개최되는 장소에 방문한 상태였다.

그들이 선정한 장소는 북해에 인접한 소도시로써, 간신히 도시 딱지만을 붙인 곳이었다.

“……이 도시가 생긴 이래로, 이렇게 사람이 많이 방문한 건 처음 봅니다.”

축제의 기획자로서, 공작 부부를 수행하기 위해 곁에서 있던 페터는 멍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자그마한 도시 안에는 관광객들이 바글바글하게 모여 있었다.

지금껏 몇 번이나 풍어제를 치뤘음에도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던 일이었다.

이엘리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려 보였다.

“뭐, 전 이미 있었던 축제를 활용 했을 뿐이예요.”

“공작 부인.”

“이렇게 좋은 축제를 이미 갖고 있으면서도, 지금까지 활용하지 못한 게 오히려 아쉽죠.”

이엘리는 하늘거리는 재질의 하얀 드레스를 입고, 손목엔 파란 리본을 매고 있었다.

파란 리본은 어민들이 기원을 올리는 바다 신께 보이는 예의를 상징하는 거라 했다. 이엘리는 웃었다.

“그것보다 축제는 이만하면 성공적으로 치러질 것 같네요.”

“예. 아마 매출도 상당할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다행스러운 일이예요.”

이엘리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축제의 모습은 무척 활기차 보였다.

바다 신을 기리는 푸른 깃발이 흰 구름에 닿을 양 나부끼고 있었다.

내부는 관광객들로 가득 차, 그야 말로 인산인해였다.

“아 참, 공작가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해 주신 음식들도 불티나게 팔리 고 있더군요.”

페터가 기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사실 페터가 말하지 않아도, 음식을 주로 판매하는 가판대는 이미 사람

들이 길게 줄을 서 북적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녀가 몸을 돌렸다.

“우리도 그렇다면 축제를 좀 즐겨 볼까?”

이엘리는 약간 흥분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자카리는 이엘리를 흘끗 내려다보 며 웃었다.

“그래, 그러자.”

아무래도 제 아내는 축제 구경에 몸이 달아 있는 것 같다. 자카리도 구경은 찬성이었다.

“다만 들어가기 전에.”

자카리는 부드럽게 이엘리의 어깨를 끌어당겼다.

그녀를 제 품 안에 끌어안으며 그가 말했다.

“서로 엇갈려 헤어지지 않도록, 내 가 널 에스코트할 수 있게 허락해 주겠어?”

“……”물론이죠, 공작 각하.”

이엘리는 애정 섞인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했다. 두 부부는 서로를 향해서 씩 미소를 지었다.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귓등으로 흘리며 공작 부부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축제의 규모가 작았기에 마차의 출 입은 제한되었다.

걸음조차 제 맘대로 떼기 힘들었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좋았다.

“다들 즐거워 보여.”

“이엔, 네가 노력한 덕분이지.”

“그렇게 띄워 줘도 나오는 건 없어.”

“난 진심인데?”

자카리는 눈매를 접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엘리는 그와 시선을 맞춘 채 코 끝을 찡그렸다.

“우리 남편님은 날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

“당연하지. 그래서 싫어?”

“아니. 엄청나게 좋다는 뜻이야.”

다정한 대답에 자카리는 살짝 뺨을 붉혔다.

하지만 어느새 이엘리는 축제 구경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휩쓸린 채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걸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