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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화 (109/196)

109화

“게다가 이 지역에는 어민의 안전 함과 많은 수확을 기원하기 위한 축제도 있고요.”

일종의 풍어제(豊漁祭)였다. 하지만 규모가 작은 데다가, 불규칙적으로 이루어지는지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풍어제가 있는지도 몰랐다.

공작 부인이 그런 것까지 모두 살 피고 있을 줄은 몰랐던지라, 사람들은 놀란 얼굴이 되어 서로 눈치를 살폈다.

하나 들려오는 공작 부인의 목소리는 가벼웠다.

“그리고 축제는 여러 사람들을 한 번에 끌어 모으고, 상품을 소개할 수 있는 자리니까요.”

이엘리는 여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파격적인 제안에 사람들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만약 그 축제를 정기적인 행사로 고정시킬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한 홍보 효과는 없겠죠.”

“그, 그렇기는 합니다만……”

“예산 문제가……”

멀리서 듣고만 있던 행정관들이 더듬더듬 입을 열자, 이엘리는 오만한 얼굴이 되었다.

“여러분,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 세요?”

그녀의 물음에 사람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자카리는 등 뒤에서 그녀의 모습을 만족스러운 얼굴로 지켜보았다.

그녀가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는 그 자체가 기뻤다.

“황가와도 비견할 수 있는, 제국에서 가장 부유한 영지.”

이엘리는 나비 같은 속눈썹을 팔랑 거렸다.

그녀가 태연한 어조로, 주변 사람들을 휘둘러보며 말한다.

“헤센바이츠 공작령이예요.”

“고, 공작 부인.”

“그리고 여러분들을 지원할 사람은 바로 저, 헤센바이츠 공작 부인이 죠.”

홀로 여유로운 이엘리를 앞에 둔 채 사람들은 모두 얼어붙었다.

헤센바이츠 공작 부인. 그 이름이 주는 강력함을 새삼스럽게 다시 한 번 인지한 탓이다.

이엘리는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적어도 예산 문제 때문에, 축제 준비의 발목을 잡을 일은 없을 거라 약속 드리겠어요.”

이엘리는 가볍게 시선을 기울였다. 비록 상냥하게 웃고 있지만, 그 목소리는 오연하기만 하다.

“그리고 예산 문제를 제외한다면 이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데.”

자리에  모인사람들은 모두 침묵했다.

그녀는 생긋 웃어 보인 후, 차분하게 다시 묻는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

“난 찬성.”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헤센바이츠 공작이 아무렇지도 않게 입을 열었다.

상당한 예산을 소모하는 계획임에 도, 마치 ‘오늘 산책이라도 나가자’ 라고 말하는 것처럼 가벼운 어조였다.

“공작 각하께서는 제 의견에 찬성해 주신다고 하는군요.”

그렇게 말한 이엘리는 흘끗 뒤를 돌아보았다.

자카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든지 네 마음대로 하라는 뜻이다.

자카리와 눈빛을 교환한 이엘리는, 어깨를 으쓱이며 미소 지었다.

“이왕 이렇게 됐으니, 이제는 여러 분들의 뜻이 궁금한데.”

“……그, 그러니까.”

“어떤가요?”

당연히 거절의 뜻이 나올 리 없었다.

이런 축제만큼 효과적으로 무언가를 홍보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으니까.

다만 아무렇지도 않게, 상당한 양의 예산을 편성하고 사용하는 공작 부부의 배포에 사람들은 내심 혀를 내두를 뿐이었다.

그러한 공작 부인을 지지하는 공작의 태도 또한.

“그렇다면 일주일 후에 다시 모이 도록 하죠.”

이엘리는 몸을 일으켰다. 생긋 눈 웃음을 친 그녀가 행정관들을 손짓해 부르더니 말을 덧붙인다.

“그때까지 예산안 등, 필요한 서류를 작성해 올리도록 해요. 미리 검토해 볼 테니까요.”

아무래도 북부의 새로운 공작 부인은 조금은 일 중독 증상이 있는 것 같다.

행정관들과 행정원들은 앞으로 갈 갈 갈려 나갈 자신들의 미래를 예상했다. 그럼에도 불만이 없는 이유는, 역시.

‘휘하의 사람들보다 앞장서서 모범을 보이시는 분이니까.’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는 많은 일을 처리하고, 열정적으로 행동한다.

모든 일은 공정하게 처리되며, 상 벌 또한 확실하다.

그러니 불만을 가질 틈이 없었다. 사람들은 감탄에 찬 얼굴을 했다.

 회의가 끝났다. 자카리는 능숙하게 이엘리를 에스코트하여 밖으로 빠져 나왔다.

점심 식사를 끝내자마자 모였는데 도, 어느새 태양은 뉘엿뉘엿하게 지고 있었다.

자카리가 그녀에게 물었다.

“어때, 이엔. 오늘 회의 결과는 만족스러웠어?”

“응, 뭐 나쁘지는 않았어.”

이엘리는 곰곰이 생각에 빠진 얼굴이 되어 대답했다.

잠시 후, 그녀가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다들 예산을 너무 함부로 사용하는 건 아니냐고 생각하는 것 같긴 했지만……”

자카리는 그런 그녀를 힐끗 내려다 보았다.

입술을 모은 채, 이엘리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뭐, 난 필요한 예산을 써야 하는 곳에 사용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거든.”

“그래?”

“응. 예산이 든다는 이유로, 해야 할 일 자체를 하지 않는 건 바보짓 이야.”

이엘리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돈은 써야 할 곳에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 그게 이엘리의 신조였다.

“오히려 예산이 집행되는 과정을 꼼꼼하게 살펴서 낭비되지 않는지를 살펴봐야지.”

“……”

이엘리의 일중독 증세를 익히 알고 있는 자카리였기에, 그는 살짝 뚱한 얼굴을 했다.

“이엔, 어쩐지 그녀가 네가 네 일을 늘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북부의 공작 부인이라면 이 정도는 해야지.”

“……그렇구나.”

묘하게 감동받은 자카리였다. 그녀가 자기 스스로의 입으로 ‘북부의 공작 부인’이라고 말할 줄은 몰랐으니까.

한편 이엘리는 아내 한정 감수성 넘치는 남편이 받는 감동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문제에 집중했다.

아까 전에 봤던 어민을 발견한 것이다. 또한 인재는 언제나 소중하다.

“저기요!”

이엘리는 목소리를 높였다.

인재 영입을 위해 발 벗고 나선 이엘리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당신. 이름이 뭔가요?”

그는 흠칫 놀랐다. 공작 부부와 마주친 것으로도 모자라, 공작 부인과 이렇게 가까이서 대화하게 될 줄이야.

“페, 페터입니다만……”

“아하, 페터. 좋은 이름이네요.”

이엘리는 빙그레 웃었다. 자카리는 다시 한 번 불퉁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전혀 사심 없이 일 때문에 대화하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다른 남자와 말을 섞는 게 싫은 걸 어떡 하나.

“당신 혹시 이번 축제의 기획자가 되실 생각은 없나요?”

마치 내 동료가 되지 않겠느냐? 그렇게 묻는 것 같은 어조다. 그녀가 나긋하게 말을 이었다.

“당신이 이번 축제를 맡아서 움직여 주시면 좋을 것 같아서요.”

“제, 제가요?”

“그럼요. 여기에 페터, 당신 말고 다른 사람이 더 있나요?”

그렇게 말한 그녀가 생긋 눈웃음을 쳤다.

페터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확 붉히고 말았다. 그때…….

“좋은 생각이군.”

자카리가 이엘리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불쑥 끼어들었다.

느닷없는 공작의 등장에 페터는 움찔했고, 이엘리는 도끼눈을 떴다. 그럼에도 자카리는 뻔뻔했다.

그가 시선을 맞받으며 씨익 웃어 보였다.

‘이 정도는 괜찮지?’

‘내가 못 살아, 정말.’

그 정도의 뜻을 담아서, 이엘리는 살래살래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러 고는 다시 대화로 돌아왔다.

공작의 난입 덕분인지 페터는 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화들짝 놀란 페터가 허둥지둥 답했다.

“제, 제가요? 말도 안 됩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는 운송 과 홍보의 중요성 자체를 알지 못한 답니다.”

이엘리는 단호하나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녀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는다.

“사실 북부에서 나는 해산물들은 여러모로 훌륭하죠. 신선하고 맛도 좋아요.”

“공작 부인……”

“저도 이렇게 질 좋은 해산물이 북부에서만 소비되고 끝나는 건 조금 아쉽다고 생각해요.”

이엘리의 목소리에 페터는 두 눈을 깜빡였다.

이엘리는 확고한 표정이었다.

“그러니 당신에게 축제의 기획을 맡기고 싶어요.”

“하지만 저는 축제 같은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그리고……”

“그런 건 도움을 받으면 되죠. 행정관들을 붙여 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엘리는 인재의 소중함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자고로 인재란 적절한 곳에 활용해 야만 한다.

“여러모로 북부에 큰 애정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따스한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를 지켜보면서 자카리는 제 아내가 저 어민을 낚은 이후 얼마나 갈갈 갈아 댈지를 생각했다.

저 어민이 좀 가엾게 느껴진다.

“전 북부에 당신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답니다.”

한편 아무것도 모르는 페터는 코끝이 찡해 오는 것을 느꼈다.

어쨌든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동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제 생각을 입이 아프도록 떠들어 봐야 아무도 들어 주지 않았는데.

그런데 지금, 북부에서 가장 고귀한 여인이 자신의 의견에 귀를 기울 여 주었다.

‘매번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면서 욕을 들어먹기나 일쑤였는데……’

고작 어민에게 기획자의 위치를 맡기는 것 자체가 파격적인 인사 조치였다.

페터는 지금 기회를 붙들어야 함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꾸벅 허리를 숙여 보인 페터가 열정적으로 말했다.

“가,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공작 부인!”

“이번 축제로 북부의 훌륭한 해산 물들도 널리 홍보가 됐으면 좋겠군요.”

이엘리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그 얼굴은 쓸모 있는 인재를 자신의 그물에 집어넣은 자 특유의 표정이었다.

참고로 이엘리가 골라낸 인재들은 ‘인재’라고 쓰고 ‘노예’라고 읽는다.

“그럼 수고하세요. 다음 회의에서 또 보죠.”

“살펴 가십시오!”

활기찬 인사가 뒤따랐다. 자카리는 당연하다는 것처럼 이엘리의 손을 꼭 붙들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의 손을 잡듯, 자신의 손을 맞잡은 자카리를 보며 이엘리는 두 눈을 가늘게 떴 다.

“자카리, 넌 너무 질투가 심해.”

고작 어민들과 몇 마디 대화를 나 누는 것도 이렇게 경계하면 어째.

“질투가 아니라 애정 표현이라고.”

이엘리를 등 뒤에서 꼭 끌어안은 그는 씩 웃었다.

그녀의 뺨에 쪽 소리 나게 키스하 면서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유능하고 사랑스러운 아내 가 제 곁에 있어 주어서 정말 다행 이라고.

* * *

축제는 차근차근 준비되어 갔다.

그녀는 손수 사람들을 지휘했고, 당연히 그녀 휘하의 사람들은 갈갈 갈려 나갔다.

그들은 모두 눈 밑에 검은 그림자를 달고 유령처럼 배회하기 시작했다.

“이엔, 피곤하지는 않아?”

“피곤해도 해야지.”

"내가 도와줄 건 없어? 간식이라도 갖다 줄까?”

그리고 축제를 준비하는 와중, 공작이 공작 부인에게 보여 주는 엄청난 애정 표현도 그들에게 소소한 흥밋거리였다.

공작은 제 아내의 집무실을 알짱거리며 간식 따위를 갖다 나르고, 심부름을 하는 것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시간을 내기 위해 공작은 매 번 새벽에 기상하곤했다.

“자카리, 간식이나 심부름 같은 건 필요 없어.”

공작 부인의 단호한 대답에 공작은 금세 풀이 죽었다. 공작 부인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보다 아침잠을 좀 더 자는 게 어때? 요새 매번 잠을 설치지?”

“괜찮아.”

“내가 안 괜찮아. 네 일이 얼마나 바쁜지 알고 있는데, 매번 이러니까 미안하단 말이야.”

보다 못한 공작 부인이 그렇게 말 할 정도로 그의 업무량은 심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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