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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화 (104/196)

104화

“그래도 나 혼자 먹는 건 좀……”

이엘리가 난처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자카리는 이엘리가 수프 그릇을 말끔히 비울 때까지 곁에서 지 켜볼 따름이었다.

이후 쟁반 위에 그릇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며 그가 말했다.

“사실 난 식사보다는 다른 게 훨씬 더하고 싶어서.”

“다른 거?”

“그러니까……”

쟁반을 테이블 위에 올려 둔 자카리가 이엘리의 허리를 부드럽게 끌어당겼다.

이엘리는 저도 모르게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입술과 입술이 겹치고, 호흡이 뒤섞인다. 어, 잠깐만. 이건……?

“아아……”

목 안쪽부터 달콤한 신음이 치솟아 오른 건 그녀 탓이 아니었다.

키스가 너무 농밀한 탓이다.

“……읏, 자, 잠깐……”

하지만 이엘리의 가날픈 목소리마 저 그는 남김없이 집어삼켰다.

머릿속을 새하얗게 물들이는 키스에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하아.”

잠시 후 자카리의 입술이 떨어졌다. 이엘리는 저도 모르게 큰 숨을 내쉬었다.

자카리는 가라앉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햇살이 밝은 한낮임에도 그의 눈동자는 까맣게 빛나고 있었다.

“이런 거.”

“……어……”

“물론 나도 배가 고프지. 하지만 신체적인 허기라기 보다는, 오히려……”

자카리의 손이 그녀의 뺨을 가만히 쓸어내렸다.

자카리의 시선은 온전히 그녀만을 담고 있다.

“……네가 모자라서 그런 거라고 말해 두면 될까?”

“자, 자카리.”

이엘리는 어린 새처럼 파드득 어깨를 떨었다.

자카리의 손바닥이 제 뺨을 어루만진다.

약간 체온이 낮은 손바닥이 달아오른 몸에 닿는다.

시시각각 쾌감이 달아올랐다.

“지금까지 너무 오래 참았어.”

“……”

“너를.”

단호한 어조였다. 잠긴 목소리 안 쪽으로 오래 묵은 욕망이 가라앉아 있다. 자카리가 속삭였다.

“어젯밤에 네가 마음의 준비가 다 됐다고 했을 때,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넌 모를 거야.”

이엘리는 말문이 막혔다. 자카리는 그녀의 목 언저리에 손을 얹은 채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안 돼?”

마치 비 오는 날 길가에 버려진 강아지 같은 눈빛으로 자카리는 그렇게 말한다.

목에 닿은 자카리의 손바닥이 주는 감촉이 지나치게 강렬하다.

세상에, 넌 어쩌면. 그녀는 한숨을 삼켰다.

“그렇게 말하는데 내가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어?”

작게 소곤거린 그녀가 자카리의 목 에 팔을 감았다.

그것 자체가 허락이라는 것을 자카리는 알았다.

그는 다소 성급한 동작으로 그녀에게 키스했다.

“살살해……”

“……그래.”

낮게 가라앉아 그르렁거리는 목소리로 자카리가 대답했다.

마치 쾌락에 몸을 떠는 맹수 같은 목소리였다.

등에 닿는 침대의 보드라운 감촉도 이젠 익숙하다.

이엘리는 두 눈을 내리감았다.

 그리고 약 한 시간 후. 이엘리는 침대에 길게 누워서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자카리는 사실 이걸 노렸던 게 아닐까? 체력 회복 후의 2차전 같은 거. 그래서 굳이 식사까지 해다 바

친 거야.

“자카리, 이건 아니잖아……”

끙, 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키며 이엘리가 말했다.

자카리는 말짱한 얼굴로 이엘리를 돌아보았다.

“뭐가?”

“그, 그러니까.”

막상 대답하려니 말이 좀 궁색하 다. 이런 한낮에 열심히 서로의 몸을 탐했던 거?

하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하는 건 또 부끄럽고. 이엘리는 힐끔 자카리의 눈치를 살폈다. 그가 웃었다.

“많이 피곤해?”

“당연하지! 너 일부러 나한테 밥 먹인 거 아냐?”

“물론 그건 아니지만……”

그녀에게 팔베개를 해 준 채 모로 누웠던 자카리의 표정이 짓궂어졌다. 그가 작게 속삭인다.

“지금 네 표정을 보니 먼저 밥을 먹인 건 역시 현명한 판단이었다, 싶네.”

“……”

내 귀여운 남편 돌려내, 지금 자카리는 너무 능글거리잖아. 그녀는 울 상이 되었다.

그런 그녀가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것처럼 자카리는 그녀의 이마에 쪽 입을 맞춘다.

“그러고 보니 씻고 싶지 않아, 이엔?”

“음, 그건 그런데.”

그녀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젯밤부터 오늘까지 뜨거운 시간을 보냈으니, 슬슬 목욕물에 몸을 담그고 싶긴했다.

자카리는 제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 보다 말고 진지하게 물었다.

“내가 씻겨 주면 안 될까?”

“……”

이 변태! 그런 의미를 담아 이엘리는 자카리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자카리는 뻔뻔한 얼굴이었다.

“뭐 어때, 우린 이미 결혼한 사이인걸……”

“아니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렇지, 너무 당당한 거 아냐?”

이엘리는 기가 찬 낯이 됐다. 그들이 밤을 보낸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이러나.

하지만 이제 자카리는 애써 꾹꾹 눌러두었던 욕망을 숨길 생각이 전 혀 없었다. 그가 당당하게 말했다.

“아까도 말했잖아. 계속 기다렸었다고.”

“하지만.”

“하지만이 아니야, 이엔.”

자카리가 그녀를 빤히 바라본다. 그녀는 말을 잃었다. 이렇게까지 확고할 필요는 없지 않니?

“난 너와 모든 것을 해 보고 싶어. 그러니까……”

새파란 눈동자가 아내를 흘끔 곁눈 질로 바라본다. 자카리는 간절한 어 조로 그녀에게 말했다.

“……너랑 같이 목욕을 해 보는 것도 내 꿈 중 하나였어. 안 될까?”

“안 돼!”

이엘리가 반사적으로 외쳤다. 하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자카리의 눈동자가 너무 촉촉하다.

하지만 안 돼. 이대로 자카리에게 넘어가면 분명 그런 분위기로 넘어 갈 텐데, 내 몸이 못 버텨!

“그, 그렇게 쳐다봐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되어 이엘리는 고개를 내저었다.

자카리는 대번 실망한 낯이 됐다.

“진짜로?”

“응!”

“정말로?”

“으응……”

저기 자카리, 너 일부러 그런 표정 하는 거지? 나 미안해지라고? 거기 다 그 집요한 질문들은 또 뭐야.

그녀는 한숨을 삼켰다. 자카리는 이제 시무룩한 얼굴로 시선을 살짝 내리깔고 있었다.

“……저기, 자카리.”

결국 패배한 건 그녀 쪽이었다. 아니, 저렇게 촉촉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면 이길 수가 없잖아!

“대신 내 머리카락을 감길 수 있는 권리를 줄게."

이엘리는 애써 당당한 얼굴로 말했다.

내심 너무 뻔뻔한 건 아닌가 싶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자카리는 열렬 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진짜지? 좋아!”

“아 참, 네 아내가 까무러치는 꼴 보기 싫으면 얌전히 머리만 감겨 주기로 약속해."

이엘리는 험상궂은 얼굴이 되어 새 끼손가락을 내밀었다. 협박처럼 말을 덧붙인다.

“그러지 않으면 머리 감겨 주는 것도 금지야.”

“물론이지!”

얼굴이 활짝 펴진 자카리가 이엘리의 손가락에 제 손가락을 걸었다.

엄지로 도장까지 꾹 찍은 이후, 자카리는 대번 그녀를 답삭 안아 들었다.

그녀는 그의 목에 팔을 감으며 한숨을 쉬었다.

‘뭐, 이제 자카리에게 안기는 것 정도는 익숙하니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원.

자카리와 함께 관계할 때마다 느끼는 쾌락은 정말 좋은데, 이대로라면 체력이 먼저 깎여 일찍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든다.

그녀는 절레절레 고갤 저었다.

 뜨거운 물을 받고 찬물로 온도를 맞춘 후, 이엘리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적신다. 향기로운 치자 향이 퍼졌다.

‘어젯밤만 해도 자카리와 이렇게 삽시간에 진도가 나갈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이엘리는 미간을 좁혔다. 자카리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한데 모아 꼼꼼히 문질렀다.

구름처럼 거품이 피어올랐다.

‘과연 후계자를 만들 수나 있을까, 손만 잡고 자는 건 아닐까 걱정했었 지만……’

그건 모두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이렇게 자카리가 열정적일 줄 알았다면 그냥 모른 척하고 있을걸.

이엘리는 한숨을 삼켰다. 그때 자카리가 이엘리를 흘끗 바라보더니, 곧장 질문을 던진다.

“이엔. 발도 씻겨 줘도 돼?”

“그래, 그 정도야 마음대로 해.”

이엘리가 코끝을 찡그리며 웃었다. 그녀의 대답을 들은 자카리는 수줍은 얼굴을 했다.

아니, 끝까지 갈 땐 뻔뻔하게 굴어 놓곤 왜 이제 와서 수줍은 척이람? 그녀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그럼 머리 감기고 금방 해 줄게. 잠깐만 고개를 뒤로 젖혀 줄래?”

“아, 응.”

이엘리는 몸을 숙였다. 자카리는 그녀의 목을 욕조에 받치고,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분홍색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로 사락사락 스쳐 내린다.

자카리는 보드라운 감촉에 저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자카리?”

“……그, 아무 생각도 안 했어!”

“으응……”

자카리는 반사적으로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이엘리는 대번 한심한 얼굴이 되었 지만, 더 핀잔을 주지는 않았다.

머리를 감기고 수건으로 꼼꼼하게 싸맸다. 이엘리가 흘끗 뒤를 돌아본다.

“다 됐어?”

“응.”

자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두 눈을 반짝인다.

“발을 씻겨 주기 전에.”

“그러기 전에?”

“키스 정도는 해도 되지?”

“……”

이엘리는 할 말을 잃었다. 그가 그녀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이러다 입술 붓겠어, 현실적인 고민을 하던 그녀는 금세 키스에 빠져 들었다.

잠시 후 그가 고개를 떼어 냈다. 가라앉은 눈동자에는 애정이 가득 차 있었다.

'아, 저 눈동자는 좀 위험한데.’

이엘리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저런 눈빛을 할 때마다 자카리는 그녀를 제대로 잠조차 자지 못하게 몰아치곤 했으니까.

하지만 자카리는 이번엔 최대한의 자제력을 발휘했다.

“이엔.”

이엘리의 이마에 쪽, 소리가 나도 록 입술을 맞춘 그가 시선을 내렸다.

잠시 후 자카리가 나지막한 목소리 로 소곤거렸다.

“네가 내 아내라서 정말 행복해.”

설탕 같은 목소리에 심장이 간질거렸다.

이엘리는 저도 모르게 뺨을 붉혔다. 그 얼굴을 바라보던 자카리가 쿡쿡 웃는다.

“이엔, 조금은 나 때문에 설랬어?”

“……사람 놀리는 건 그만둬, 알았지?”

“놀리는 거 아니야, 진심이라고.”

그렇게 대답한 자카리가 수건을 가 져왔다. 그녀의 머리카락을 빈틈없이 감싼다.

보들보들한 수건의 감촉에 이엘리는 나른한 기분을 느꼈다.

그때 그녀의 뺨에 쪽 소리 나게 입을 맞춘 그가 소곤거렸다.

“근데, 이엔.”

“응?”

“정말이야, 난……”

그와 동시에 자카리가 그녀를 반짝 안아 들었다.

귓가에 닿는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난 항상 네가 내 사람이라고 만인에게 알리고 싶거든.”

“……”

날것의 소유욕을 마주 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분 좋은 서늘함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그럼 이만 나가자.”

담백하게 말한 자카리가 이엘리를 추슬러 안고 밖으로 나섰다.

그 품에 안긴 채, 그녀는 눈동자만을 데굴데굴 굴렸다.

음, 앞으로의 결혼 생활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어쩐지 느낌이 온다.

‘아무래도 몸이 그리 편하지만은 않을 것 같네.’

적어도 당분간은 밤마다 무척 고될 것 같다. 이엘리는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짓눌러 삼켰다.

* * * 

그녀를 침대에 앉혀 둔 자카리는 이엘리가 갈아입을 옷을 찾는다며 옷장을 열었다.

이엘리는 베개에 기댄 채 뒷모습을 응시했다. 잠시 후, 자카리의 입술에서 난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옷장의 문을 활짝 열어 둔 그는 곤혹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보다 못한 그녀가 물었다.

“왜 그래?”

“그게……”

자카리는 어쩔 줄 몰라하며 그녀를 마주 보았다.

미간을 좁힌 자카리가 한숨을 섞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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